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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8일
아침고요수목원을 오후2시에 출발하여 오후 3시 30분에 자라섬에 도착하였다. 자라섬에 내린 시티투어버스의 손님은 나혼자. 다른 손님은 거이 외국인지만 모두 남이섬에 내렸다. 자라섬은 어떤 섬인지 몰랐는데 인터넷 검색하다가 구절초가 한창이라기에 여행계획에 넣었던것인데 신의 한수였다. 자라섬 꽃단지는 남도에 있는데 입구에 남도로 가는 전기차가 무료로 운행하고 있었다. 20일 까지만 무료. 한참을 기다려 전기차를 타고 남도로 갔다. 남도에서 나오는 막차는 4시 50분. 시간이 별로 없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얀 구절초가 백일홍과 더불어 온 벌판을 덥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구절초와 백일홍은 첨봤다. 호수옆에 코스모스도 큰무리는 아니지만 예쁘게 피어있었다. 올해는 태풍으로 코스모스 구경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늘공원과 자라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부지런히 구경하고 사진찍고 전기차 출발 시간에 맞추어 남도 입구에 도착하였다. 허지만 전기차 덕분에 모든 시간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원래 계획은 자라섬에서 6시 5분에 가평역행 시티버스를 탈 예정이었는데 한시간이 빨라져 오후 5시 5분에 혼자서 시티버스를 타고 5시 20분에 가평역에 도착했다. 용산행 기차 예약시간은 6시 32분 대략 난감. 가평역 근방에는 식당도 없어 대합실에서 빈둥거렸다. 한시간 빠른 열차도 예약을 했었는데 필요없다 생각하고 취소한 것이 화근. 다음에는 좀 손해가 가더라도 천천히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여튼 좋은 구경을 했다. 자라섬은 모두들 승용차로 방문하고 외국인도 거의 방문 안하지만 시간만 잘 맞추면 나같은 외지인도 시티투어버스로 얼마든지 편하게 다녀올수 있는곳이다.
가평역 남도 들어가는 전기차 타는곳 전기차 가평군 여행정보 추천 여행 코스(당일 코스) 자라섬(나인포레스트 이화원) → 음악역1939 → 아침고요수목원 추천 여행 코스(1박 2일 코스) 첫째 날: 나인포레스트 이화원 → 음악역1939 → 자라섬 둘째 날: 아침고요수목원 → 아침고요동물원 여행 정보 □ 가평군 문화관광, 031-580-2114, www.gptour.go.kr 관광지 무장애 정보 - 나인포레스트(이화원) * 이용시간: 하절기 (3월~10월) 09:00~18:00, •동절기 (11월~2월) 09:00~17:00 이용요금: 어른 7,000원, 어린이 5,000원(※24개월 미만 무료) 장애인 1~3급 50% 할인 / 다둥이가족(동시입장시) 30%할인 / 65세이상 경로 2,000원 할인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유모차 이동가능 * 출입 경사로 있음 * 수동휠체어 대여 가능(매표소), 대여용 유모차는 없음 - 음악역1939 * 이용시간: 09:00~ 21:00, 연중무휴 * 이용요금: 무료, 시네마1939는 유료 (일반 영화 6,000원, 3D영화 8,000원) * 장애인주차장 있음 * 유모차 이동 가능 * 장애인화장실(남․녀 구분) 있음 * 시네마1939 예매 사이트: http://www.1939cinema.com/ - 아침고요수목원 * 이용시간: 08:30~일몰 시, 연중무휴 * 이용요금: 어른 9,500원, 어린이 6,000원(※36개월 미만 무료) 65세 이상 경로, 장애인, 국가유공자 7,500원 (해당 증명서 필수 지참) * 물품보관함 있음(매표소 맞은편) * 유모차 유료대여 (대여료 1,000원, 보증금 1,000원) * 휠체어 무료대여 (보증금 1,000원 반납시 반환) * 유아휴게실 있음(기저귀갈이대, 소파, 전자레인지) * 장애인주차장 있음 * 수목원 전체 유모차 이동 가능 - 아침고요가족동물원 * 이용시간: 10:00~18:00 (동절기 11월~2월 17:30까지), 연중무휴 * 이용요금: 대인 12,000원, 어린이 11,000원 (※24개월 미만 무료)65세 이상 경로, 장애인, 국가유공자 10,000원 (해당 증명서 필수 지참) * 화장실 내 기저귀 갈이대 있음 * 장애인 주차장 있음 * 유모차 및 휠체어 대여가능 (유료) 이동정보 자가운전 정보 -서울양양고속도로-금남IC-경춘북로-가평오거리-가화로 자라섬 캠핑장 방향 대중교통 정보 [전철] 상봉역-가평역, 하루 42~49회 (5:10~23:00) 운행, 약 40분 소요, (65세 이상 경로, 장애인 무료) * 문의 : 상봉역 1588-7788, 가평역 031-581-2855
[기차] 용산역-가평역, ITX-청춘 하루 18~30회(06:00~22:48) 운행, 약 1시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88-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가평,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28회(06:45~22:05) 운행, 약 1시간 20분 소요 *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txbus.t-money.co.kr 음식·숙박정보 숙박 정보 -취옹예술관(한옥스테이) : 경기도 가평군 상면 수목원로 300 / 031-585-8649 /site.onda.me/20419 / 진입경사로 있음 / 2~3인실 6개, 5~6인실 3개, 단체실 1개 / 전실 온돌 / 바비큐 가능 / 주차공간 넉넉함 / 문화체험(다도, 자연염색, 규방공예, 두부 및 떡만들기 등 별도예약) / 한국관광공사 품질인증 한옥스테이 -리버하임리조트 :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북한강로 1706-118 / 031-584-3500 /riverheim.com / 패밀리룸, 풀빌라, 스위트룸 등 총 객실 30개 / 개별 주차공간 / 탁구장 및 족구장/ 바비큐 가능 -이뜨랜리조트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로 326-128 / 031-581-0600 /ethrenresort.com / 바비큐 가능 / 조식제공 / 주차 가능 식당 정보 -이센피자: 피자, 치즈오븐돈가스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중촌로 10 / 031-582-3356 / 영업시간: 11:40~21:00 (주말 마감 20:30)/ 휴무일: 매월 1․3․5째주 일요일 / 주차장 있음 / 입식테이블 / 유아식탁 있음 / 유아식기 있음 -고원: 한정식 / 경기도 가평군 상면 수목원로 125 / 031-584-3585 / 영업시간:09:30 ~20:00 / 휴무일: 설․추석 당일 / 입식 테이블 / 출입구 계단 있음 / 유아식탁 있음 / 유아식기 있음 -금강막국수 숯불닭갈비: 막국수, 메밀쌈 숯불닭갈비 / 경기도 가평군 상면 수목원로 16 / 031-584-5669 / 영업시간: 10:30~21:30 / 연중무휴 / 입식테이블 및 좌식 / 주차 가능 / 유아식기 있음 방랑 시인 김삿갓
박 훈 석 지음
36. 평양 기생의 숨은 마력
나룻배가 강을 건너 언덕에 이르렀다.
김삿갓은 언덕에 올라 앉아, 저물어 가는 산과 강을 새삼스럽게 둘러보았다 .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강과 산이었다 . 한참을 그렇게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던 김삿갓은 시장기가 나며 술 생각이 간절해 왔다 .
(에라 ! 남들처럼 기생 외도는 못 하나마 술이나 한잔 마시자 )
성안으로 들어가니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가고 있었다. 구질구질한 뒷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주천 "(酒泉 )이라는 간판을 내건 술집이 보였다 .
(주천 ? ... 이것은 이태백의 시에서 나온 말이 아니던가 . 그러고 보면 술집 주인은 시에 능통한 사람인 게로군 .)
김삿갓은 주저없이 술집에 들어가니, 주인은 남자가 아니고 60이 다 된 파파 할머니였다 .
"나 , 술 한잔 주시오 . 오늘밤 이 집에서 자고 갈 수도 있겠지요 ?" "좋도록 하시구려 . 방은 하나뿐이지만 , 선객 (先客 )이 있으니까 함께 주무시면 될 거요 ."
주인 노파가 술상을 가져오는데, 나이는 60이 다 돼 보이지만 본바탕은 제법 예쁜 얼굴이었다 . (이 노파는 기생 퇴물쯤 되는가 보구나 .) 김삿갓은 맘속으로 그렇게 짐작하며,
"주천이라는 말은 이태백의 시에서 나오는 말인데 , 그런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
하고 주인 노파에게 물었다.
"그 이름은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이 지으셨다오 ." "술집 이름을 주천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 영감님은 무척 유식했던 모양이죠 ?" "유식한 것을 아는 손님이야 말로 더 유식하신가 보구려 ? 안그래요 ? 호호호 ..."
하며 주인 노파가 웃으며 말한다. 마침 그때 방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려왔다.
"방안에 누가 계신가 보구려 ." "누구는 누구겠어요 . 오늘밤 손님과 동숙할 선객이지요 ." "나하고 동숙할 손님이오 ?"
김삿갓은 방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선, 술을 혼자 마실 수는 없었다 . 그리하여 방안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
"방안에 계시는 형씨 ! 이리 나오시오 . 우리 두 사람은 오늘밤 같이 자야 할 처지이니 , 이리 나오셔서 술이나 한잔 나눕시다 ."
방안에 있던 손님은 기다리기나 했던 것처럼 얼른 술청으로 나오며, "실례하겠소이다 ." 하며 술상 앞에 마주 앉는다. 나이는 40쯤 되었을까 , 무척 우둔해 보이는 시골 사람이었다 . 김삿갓은 자기소개를 하며 술잔을 내밀어 주니 , 상대방은 술을 먼저 마시고 나서야 , "나는 황해도 옹진에 사는 강 서방이외다 ." 하고 말한다.
"옹진서 오셨다구요 ? 노형도 나처럼 평양 구경을 오신 모양이구려 ! "
강 서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는 구경을 다닐 팔자는 못된다오 ." "그럼 평양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 "나는 옹진에서 염전을 하고 있지요 . 평양에는 소금 값이 금값이라고 하기에 , 장사 차 소금 한 배를 싣고 왔다가 쫄딱 망해 지금은 알거지가 되어 버렸다오 ." "저런 ! 어쩌다가 그렇게도 엄청난 실패를 하셨소 ?"
그러자 강 서방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장사에 밑진 것은 아니라오 . 돈은 주체를 못 할 만큼 엄청나게 번 걸요 ." "아니 그렇다면 그 돈은 어떡하고 왜 알거지가 되었다는 말이요 ?" "왜는 무슨 놈의 왜겠소 . 그놈에 기생 외도에 미쳐 그만 , 많던 돈을 몽땅 퍼주고 , 결국은 알거지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적이 놀랐다.
"에이 여보시오 . 기생 외도가 아무리 좋기로 돈을 그렇게까지 퍼 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 "형씨는 아직 모르시는 모양이구료 . 평양 기생들은 사람을 어찌나 잘 녹여 대는지 , 돈을 있는 대로 퍼 주고 싶어지던걸요 ." "그렇게나 많은 돈을 퍼 주었으면 정도 꽤 많이 들었을 터인데 , 그래도 돈이 떨어지니까 상종을 아니 하려 합디까 ?" "돈 떨어지자 님 떨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소 ? 평양 기생들은 소금 한 배를 몽땅 삼켜 먹고도 세상에나 , "짜다 "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더란 말이오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양천대소를 하였다.
"하하하 , 소금을 입으로 먹은 것은 아니니까 짜다는 말을 했을 리가 없지요 . 그나저나 돈을 벌러 평양에 왔다가 알거지가 되어서 몹시 후회스러우시겠소이다 ."
김삿갓이 위로의 말을 들려주자, 강 서방은 도리질을 하며 말한다 .
"알거지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기생 외도를 하다가 알거지가 된 것을 후회하진 않아요 ."
강 서방이란 사람은 기가 막히게도, 대동강에서 만났던 뱃사공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 돈을 몽땅 빼앗기고도 후회하지 않는다니 , 평양 기생들의 숨은 마력이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
"어째서 후회를 안 하지요 ?"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지만 , 평양 기생과의 즐겁던 기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 "하하하 ,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구려 . 평양 기생과의 살림이 그렇게도 즐겁습디까 ?" "즐겁다 뿐이겠어요 . 끼니 때 마다 진수성찬에 , 잠자리 기술 또한 정신을 황홀하게 해 주니 , 돈은 둘째 치고 눈앞에 황홀함이 뒷일을 생각하게 하지 않더란 말입니다 ."
(*옮긴이 여담 (餘談 ).... 평양에는 기생 외도 못지않게 , 남자 외도 또한 , 즐겁던 기억을 영원히 남게 하는 전통이 있는 모양이다 . 불법이 되었든 합법이 되었든 , 평양을 다녀온 남쪽에 남자와 여자는 도대체 무엇에 홀리고 왔는지 ? 한번 다녀오게 되면 , 정신 줄을 놓고 , 말하는 것을 보면 , 아이로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하하하 , 알거지가 되고도 후회가 되지 않을 정도라니 알 만한 애기요 . 그러면 고향에 내려가 부지런히 소금을 만들어설랑 , 한 배 또 싣고 와야 하겠구려 ?" "아닌게아니라 , 돈이 되거든 다시 한번 놀러 올 생각이라오 ."
그 기생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강 서방은 그 기생에게 어지간히 미친 모양이었다 .
"알거지가 되었다면서 , 고향에 돌아갈 노자는 가지고 있소 ?" "내가 돈이 똑 떨어진 것을 알자 , 그 기생은 <처 자식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속히 고향에 돌아가라 >며 , 노자만은 주던 걸요 . 그것만 보아도 평양 기생들은 얼마나 영리한 여자들이예요 ."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배 (梨 ) 주고 속 빌어먹는다 >는 말이 있다 . 수중에 있는 몇 천 금을 모두 퍼 준 처지에 , 고향에 돌아갈 노자 몇 푼 돌려받은 것을 다시없는 은혜로 생각하게 하고 있으니 , 평양 기생들의 수법은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 당한 쪽에서 오히려 고맙게 여기고 있으니 , 김삿갓으로서는 그저 웃을 밖에 없었다 .
"대관절 그 기생은 나이를 몇 살이나 먹은 여자요 ?"
김삿갓은 그 기생이 혹시 예전에 들린, 주막 무하향 주모의 도망간 딸 , 가실 (可實 )이 아닌가 싶어 기생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 "내가 좋아했던 기생의 이름은 <매화 >라 하고 , 나이는 열아홉 살 밖에 안 된 기생이라오 . 나이는 어리지만 , 시도 잘 짓고 , 노래도 잘하고 ... 못하는 게 없어요 . 게다가 잠자리 기술은 어찌나 좋던지 , 마치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만 같던 걸요 .“
37. 양협무일치 , 능식일선강 (兩頰無一齒 , 能食一船薑 )
(두 볼에는 이가 하나도 없건만 , 생강 한 배를 널름 삼켰구나 .)
"하하하 , 우화등선 (羽化登仙 )이라더니 , 노형은 기생 외도로 신선놀음을 하셨구려 ."
김삿갓이 한바탕 웃고 있는데, 주인 노파가 술을 들고 들어오며 , "처음 만난 양반끼리 무슨 재미있는 일이 많아 그렇게도 웃고 계시우 ." 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주인 노파를 옆에 주저앉히며 말을 걸었다 .
"이보시오 , 주모 ! 옹진서 왔다는 이 양반 말 좀 들어 보시오 . 이 양반은 어떤 기생한테 소금 한 배를 몽땅 털리고도 후회를 안 한다는 거예요 . 그런데 그 기생은 소금 한 배를 송두리째 삼켜 먹고도 <짜다 >는 말 한마디도 안 하더라니 , 웃을 밖에 없지 않소 ? "
그러나 주인 노파는 별로 우습지도 않은지 예사롭게 대답한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기생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많다오 . 지난 가을에는 전라도에서 생강 장수가 생강 한 배를 싣고 와서 큰 돈을 벌어선 , 어떤 기생한테 몽땅 빼앗겨 버렸다는 거예요 . 그 기생은 생강 한 배를 몽땅 삼켜 먹은 셈이지요 ."
김삿갓은 크게 웃으며, "이 양반이 좋아하던 기생은 소금 한 배를 먹고도 <짜다 >는 말 한마디도 안 했다는데 , 그 기생은 생강 한 배를 집어삼키고 <재채기 > 한 번도 안 한 게 아니오 ?" 하고 너스레를 치자, 주인 노파가 다시 말한다 .
"남자들은 코 밑에 있는 입으로만 먹는 줄 알지만 , 기생들은 논이든 밭이든 소금이든 생강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입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모양이구려 ? 안그래요 ? 호호호 ...".
주인 노파의 말 받아 넘기는 재주가 보통은 아니었다.
"평양 기생들에게는 뭐든지 먹어 치우는 특별한 입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옹진 양반은 소금 한 배를 몽땅 빼앗겼고 , 전라도에서 온 생강 장수는 생강 한 배를 몽땅 빼앗겼다니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겠소 ." "자기가 좋아서 저지른 일인데 억울하기는 뭐가 억울하겠어요 . 허기는 생강 장수는 생강 한 배를 몽땅 빼앗긴 것이 어지간히 억울했던지 , 어느 날 기생의 옥문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 시를 한 수 읊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오 ."
김삿갓은 생강 장수가 기생의 옥문을 들여다보며 시를 지었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할머니는 그 시가 어떤 시였는지 아시오 ?" "알고말고요 . 평양 사람들치고 그 시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갔시오 ." "그렇다면 그 시를 좀 적어 보여 주시려오 ?" "그럽시다 그려 ."
주인 노파는 즉석에서 종이에 시 한 수를 적어 보였다.
遠看似馬目 (원간사마목 ) 멀리서 보면 말 눈깔 같고 近視如膿瘡 (근시여농창 ) 가까이 보면 진무른 부스럼 같도다 兩頰無一齒 (양협무일치 ) 두 볼에는 이가 하나도 없건만 能食一船薑 (능식일선강 ) 생강 한 배를 널름 삼켜 먹었구나 .
...
김삿갓은 그 시를 읽어 보고 배를 움켜잡고 웃으며 감탄했다.
"나는 시를 수없이 읽어 보았지만 , 이렇게도 실감나는 시를 읽어 보기는 처음이오 ."
그러자 주인 노파도 웃으며 받아넘긴다.
"그럴 밖에 없잖아요 ? 남자들은 <옥문 >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데다가 , 시까지 그럴 듯하게 읊어 놓았으니 감격스러울 밖에 없겠지요 ."
주인 노파는 말솜씨가 능란할 뿐만 아니라, 글도 제법 유식해 보인다 . 어디로 보나 평양 기생 퇴물이 틀림없어 보였다 .
38. 재혼 못한 죄
김삿갓은 주인 노파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어서 물었다.
"내가 아까 이 집에 들어오다 보니 책을 읽고 계시던데 , 책은 어떤 책이었소 ?" "혼자 심심하던 차에 이런 책을 읽고 있었다우 ."
주인 노파는 그렇게 대답하며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책을 집어다 보인다. 김삿갓은 그 책을 받아 보다가 깜짝 놀랐다 . 그 책은 여계 (女誡 )라는 책으로 , 여자의 부덕 (婦德 )과 예의범절에 대해 소상히 적은 , 양가집 규수들이 읽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
"아니 , 할머니는 60이 다 돼 가지고 , 아직도 이런 책을 읽고 있단 말입니까 ?" "이 책이 어떤 책인가를 알고 계신 걸 보니 , 손님은 어지간히 유식한 분인가 보네요 . 나는 60이 다 되었지만 , 그래도 여자는 어디까지나 여자라오 ." "아직도 이런 책을 읽고 계신 것을 보니 , 나이에 비해서 정신 연령은 무척 젊은가 보군요 ." "신로심불로 (身老心不老 :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청춘이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 호호호 ..."
주인 노파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간드러지게 웃는데, 아직도 남자를 끄는 매력의 색기가 철철 흘러 넘치는 웃음이었다 .
"영감님은 언제 돌아가셨다고 했지요 ?" "영감님이 돌아가신 지는 20년이 다 됐다오 ." "그렇다면 영감님은 할머니가 40대에 돌아가신 셈이 아니오 ?" "내가 마흔 한 살 때에 돌아가셨다오 ." "그래요 ? 나이 차가 상당하셨는데 , 처녀 총각으로 만나신 것은 아닌가 봅니다 ?"
김삿갓은 눈 딱 감고 한마디로 물어보았다.
"네 , 처녀 총각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 영감님이 시를 좋아하는 유식한 사람이었고 나 역시도 시를 좋아했고 , 열 아홉 살에 만나 , 20여 년간이나 살림을 같이해 온 우리 부부는 처녀 총각으로 만난 ,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살아온 걸요 ."
김삿갓이 주인 노파와 이런 말을 주고받는 동안, 옹진서 왔다는 강 서방은 ‘매화 ’라는 기생 생각이 간절했던지 ,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었다 .
김삿갓은 주인 노파와 술잔을 나눠 가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할머니는 지금도 10년은 젊어 보이는데 , 영감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새파랗게 젊어 보였을 게 아니오 ?" "아닌 게 아니라 ,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 내 나이로 보지 않는다오 ." "그렇다면 홀로 되셨을 때 , 주변에서 재혼하라는 사람이 많았겠구려 ." "여기저기서 재혼을 신청해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오 . 어떤 중신아비는 나보다도 열 살이나 연하인 젊은 신랑감을 천거해 왔던 일도 있었던 걸요 ." "그런데 어째서 재혼을 아니 하셨소 ?" "재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어요 . 그러나 영감님이 살아 계실 때 <여계 >라는 책을 하도 여러 번 읽으라고 권했기 때문에 , 재혼할 용기는 끝내 내지 못했어요 ." "재혼을 못 한 죄는 <여계 >라는 책에 있었다는 말이군요 . 그렇다면 여자들에게는 그런 책을 함부로 읽힐 게 아니네요 , 안그래요 ? 하하하 ..."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웃어 보이며 그런 농담을 하였다. 주인 노파도 어딘지 수긍이 가는 점이 있는지 잠시 명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얼굴을 들며 말한다 .
"손님은 무척 유식한 것 같으니 , 내가 재혼 문제로 고민하던 심정을 글로 한번 써볼까요 ?" "좋소이다 . 글로 써 보시오 ."
그러자 주인 노파는 재혼 못 한 심정을 시로써 이렇게 써 보이는 것이었다. ... 六十老寡婦 (육십노과부 ) 육십 먹은 늙은 과부가 單居守空閨 (단거수공규 ) 빈 방을 홀로 지키오 慣誦女誡詩 (관송여계시 ) 여계라는 책을 많이 읽어서 頗知姙似訓 (파지임사훈 ) 여자의 도리를 알고 있는 탓이었소 .
傍人勸之嫁 (방인권지가 ) 이웃에선 시집가기를 권했고 善男顔如槿 (선남안여근 ) 얼굴이 꽃 같은 신랑감도 있었지요 白首作春容 (백수작춘용 ) 나는 흰 머리를 젊게 꾸미자니 寧不愧脂粉 (영불괴지분 ) 분 바르기가 부끄러워 시집을 못 갔소 . ... 시를 모두 읽은 김삿갓은 빙긋이 웃음을 지으며 주인 노파에게 말했다.
"이 시를 읽어 보면 , 할머니는 재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 용기가 없어 못 한 것이 아니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용기를 내어 재혼하는 것이 어떻겠소 ?"
김삿갓은 눈 딱 감고 재혼을 적극적으로 권고해 보았다. 60노파에게 재혼을 권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말이었다 . 그러나 주인 노파는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
"다 늙은 여자가 이제 와서 남부끄럽게 무슨 재혼이에요 !"
주인 노파의 대답 속에, 은연중 재혼의 뜻이 있다는 의중을 읽은 김삿갓은 내심 놀라면서 , 상황을 휘감아 치기위해 재빨리 술잔을 내밀어 주며 , "자 . 한잔 드시오 ! 아무리 늙었기로 재혼을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지 . 나이가 무슨 상관이오 ?" 하고 또 한 번 부추겨댔다.
주인 노파는 술 한 잔을 단숨에 들이 키고 나서 말한다.
"허기는 그래요 .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지 , 남이 대신 살아 주는 것은 아니지요 ..." "물론이지요 . 옛날에 어떤 여류 시인이 있었는데 , 그 여자가 남편을 여의고 지은 시를 읽어 보면 , 홀로 산다는 것은 뼈를 깎는 듯이 괴로운 일인가 봅니다 ." "어마 ! 그런 시가 있나요 ? 그 시를 한번 들려 주실래요 ?" "그럽시다 그려 !"
김삿갓은 <별리한 (別離恨 )>이라는 시를 아래와 같이 적어 주었다 .
平生離恨成身病 (평생리한성신병 ) 님 여읜 슬픔이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 (주불능료약불지 ) 술로도 못 달래고 약으로도 못 고치오 衾裏泣如氷下水 (금리읍여빙하수 ) 이불 속에서 홀로 우는 차거운 눈물 日夜長流人不知 (일야장류인불지 ) 밤낮없이 흐름을 누가 알리오 .
...
주인 노파는 시를 읽어 보고, 새삼 한숨을 지으며 감탄한다 .
"이 시는 어쩌면 나의 심정을 이렇게도 절묘하게 말해 주고 있을까 ? ..." "그러니까 외롭게 살지 말고 , 지금이라도 재혼을 하란 말이오 . 내가 중신을 들까요 ?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어요 ? ...."
주인 노파는 김삿갓의 얼굴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그윽이 바라보다가, "글쎄요 ... 손님처럼 글을 잘 하는 사람이라야 말이 잘 통지 않겠어요 ?" 하며 은연 중에 김삿갓에게 마음이 있음을 암시해 보이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 아무리 계집에 게걸이 들었기로 , 60 노파의 기둥서방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그러자 지금까지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던 강 서방이 주인 노파의 말을 듣고 샘이 나는지 불쑥, "여보시오 . 주인 할머니 ! 이왕 재혼을 하려거든 이 손님 대신에 내가 어떻소 ? 나는 아직도 기운이 왕성한 놈이라오 ." 하고 무뚝뚝한 어조로 씨부려대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강 서방의 말을 지나치긴 했지만 농담으로 알았다. 그러나 주인 노파는 강 서방의 말이 비위에 거슬렸던지 , "손님은 아까부터 아무 말도 안 하고 술만 마시더니 어느 새 취하셨나 보구려 . 술은 그만하고 , 이젠 방에 들어가 주무시기나 하시오 ." 하고 은연중에 따돌리는 태도를 보인다. 강 서방은 그 소리가 비위에 거슬렸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리며 씹어 뱉듯이 말한다 .
"잘들 해보슈 . 재혼을 하려거든 행동으로 할 일이지 . 무슨 놈에 말들이 그렇게도 많소 ."
어제까지도 애송이 기생과 좋아 지내며 가진 것을 모두 털린 강 서방이 설마 60먹은 주인 노파에게 샘을 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
김삿갓은 그의 일거일동이 어디까지나 질투로만 보였다. 질투도 질투지만 , 강짜도 보통이 아닌 , <삼천리 금수강산 강짜 > 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 아무려나 강 서방이 화기롭던 분위기를 휘저어 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김삿갓도 주인 노파와 단둘이 술을 마시기가 몹시 멋쩍었다 .
그리하여 잠시 후에 방으로 들어와 보니, 강 서방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 요란스럽게 코를 골고 있었다 . 김삿갓도 자리에 눕자 이내 잠이 들었다 . 그런데 한잠 늘어지게 자다가 웬일인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 옆에서 자고 있던 강 서방이 보이질 않았다 .
(응 ? 이 사람이 자다 말고 어디를 갔을까 ?)
소피라도 보러 갔으려니 하고 귀를 기울였더니, 주인 방에서 해괴망측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 그 소리란 것이 , 남녀 간에 교접할 때 나는 소리가 아닌가 . 알아보나 마나 강 서방이 자다 말고 안방으로 건너가 60 노파를 덮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
(세상에 알 수 없는 것이 남녀 관계로구나 !)
어제까지도 애송이 기생에게 미쳐 돌아가던 강 서방이 설마 60 노파를 덮칠 줄은 몰랐다 . 주인 노파는 강 서방을 분명히 좋아하지 않았다 . 그러나 일을 당하고 보니 별로 싫지 않았던지 , 노파 자신도 제법 흥겨운 콧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
잠시 후 강 서방이 건너오자 김삿갓은 어둠 속에서 강 서방을 놀려댔다.
"밤잠도 못 자고 부역을 치르느라고 수고가 많구려 ! "
강 서방은 약간 어색한 어조로, "형씨가 마음에 없어 하길래 , 내가 대신 부역을 치렀소이다 ." 하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애송이 기생만 데리고 놀다가 , 늙은이를 상대해도 흥이 납디까 ?" "매화 생각이 간절하지만 , 매화는 만날 수가 없기에 홧김에 한 서방질이지만 , 따지고 보면 젊었거나 늙었거나 그 맛은 그게 그겁디다 ."
강 서방은 그렇게 대답하며, 자리에 누워 만족스러운 자세로 네 활개를 쫙 편다 .
"아무튼 형씨 덕택에 내일 아침은 반찬을 잘 얻어먹게 되었소 ."
김삿갓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놀려대었다. 다음날 아침 조반상이 들어오는데 , 김삿갓이 이미 예언한 대로 반찬이 푸짐하기 이를 데 없었다 . 김삿갓은 밥상에 마주 앉으며 강 서방을 또 한 번 놀려댔다 .
"형씨 덕택에 오늘 아침은 내가 생일을 쇠는 셈이오 ."
강 서방은 씩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가는 정이 있었으니 오는 정도 있어야 할 게 아니오 . 주인 늙은이는 형씨에게 마음이 있던 모양이었지만 , 형씨가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기에 내가 대행을 했을 뿐이오 ." "처녀가 애기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더니 , 아무튼 나를 위해 수고해 주셨다니 고맙소이다 ."
주인 노파는 쑥스러운 탓인지, 두 사람이 밥을 먹는 동안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 이윽고 김삿갓이 행장을 차리고 나서며 강 서방에게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했다 .
"나는 먼저 떠나겠소 . 형씨는 며칠 더 묵어서 떠나시오 ."
마침 그때 주인 노파가 옷을 곱다랗게 차리고 나타나다가 김삿갓에게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어머나 ! 벌써 떠나시려구요 ?" "나는 모란봉 구경을 가는 길이오 ." "모란봉 구경을 가신다구요 ? 뭐니뭐니 해도 경치가 좋기로는 모란봉이 제일이라우 ."
주인 노파는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 "참 , 모란봉 애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 내 어릴 때 이름도 <모란 >이랍니다 ." 하고 묻지도 않은 자기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주인 노파가 <경치 좋기로는 모란봉이 제일 >이라고 잔뜩 치켜 올려놓고 나서 , <자기 이름도 모란 >이라고 말하는 것이 밉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얼른 이렇게 비꼬아 주었다 .
"나는 평양 구경을 떠날 때 , 평양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어 보았는데 , 어떤 중국 사람이 모란봉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시를 지었더군요 ." "그 시가 어떤 시였는지 , 여기 좀 적어 주실래요 ?"
그러면서 주인 노파는 종이와 붓을 갖다 놓았다. 김삿갓은 서슴치 않고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써갈겨 주었다 .
...
聞道牧丹峯 (문도목단봉 ) 이름이 모란봉이라 들어왔건만 牧丹花已老 (목단화이노 ) 모란꽃은 이미 너무도 늙었네 莫恨峯無花 (막한봉무화 ) 모란봉에 꽃이 없다 나무라지 마시오 峯名亦自好 (봉명역자호 ) 이름만으로도 그런대로 좋은 것을 .
남의 시를 빌려 주인 노파의 늦바람을 비꼬아 준 것이었다. 그러자 주인 노파는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이 시는 풍류를 모르는 사람의 시로군요 . 꽃이 좋다는 것만 알았지 단풍이 더 좋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요 . <홍엽승어이월화 (紅葉勝於二月花 : 단풍이 이월의 꽃보다도 아름답다 )> 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
주인 노파의 재치 있는 반격에 김삿갓은 머쓱해졌다. 늙다리 퇴물 , 평양 기생은 결코 ,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 이렇게 코침을 한 대 맞은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객줏집을 나서려고 하였다 . 그러자 주인 노파는 김삿갓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지 대문 밖까지 따라 나오며 , "평양 구경을 하시다가 오늘 저녁에 또 오실래요 ?" 하고 묻는다.
"나는 워낙에 기러기 넋이 되어서 ... 오게 되면 오고 , 못 오게 되면 못 오고 ..."
딱 잘라 거절하기가 민망해서 애매하게 대답해 주니, "아무래도 좋아요 . 돈은 별로 많지 않아 보이니 , 돈 떨어지거든 언제든지 들르세요 . 술은 공짜로 대접할게요." 하고 김삿갓이 다시 왔으면 하는 말투다.
"술을 공짜로 먹여 주겠다니 고맙구려 ."
김삿갓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려다가, 문득 평양으로 도망간 무하향 주모의 딸이 생각나서 , "참 , 평양에 본명을 가실 (可實 )이라고 하는 기생이 있을 터인데 그런 기생을 모르시오 ?" 하고 물어보았다.
"본명만으로는 사람 찾기가 어렵지요 . 기명 (妓名 )을 뭐라고 하지요 ?" "기명은 나도 모르지요 . 분명이 이름이 <가실 >인 것은 틀림없어요 ." "평양에 기생이 몇 천 명이 있는데 , 기명조차 모른다면 사람을 어떻게 찾는다오 ? 나이는 몇 살이나 되지요 ?" "나이도 자세히 모르지만 , 아마 30은 넘었을 것이오 ." "기생 환갑이 20이니까 , 30이 넘었다면 , 환갑을 지난 지 벌써 10년이나 되는 셈이네요 . 그런데 손님은 그 기생과 특별한 관계가 있으신가요 ?"
주인 노파는, 나이가 60이 넘은 퇴물 기생인 주제에 질투하는 어조로 대꾸한다 . 김삿갓은 속으로 기가 차 하면서 , 주인 노파에게 적당히 휘감쳐버리고 객줏집을 나오며 혀를 찼다 .
(에구 , 평양 기생은 퇴물이라도 무섭다 !)
모란봉에 올라 보니 저 멀리 눈 아래 푸른 비단폭처럼 대동강이 넘실거리는 것이 장관이었고, 강 건너 능라도에는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이 바람결에 흐느적거렸다 .
때마침 산에는 진달래꽃이 만발해 있어 삼삼오오 모란봉을 찾는 상춘객이 입은 백의(白衣 )가 연보랏빛 진달래 색깔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온 산이 붉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
(아아 , 우리가 백의민족 (白衣民族 )으로 자랑할 만하구나 . 그리고 금수산은 단순한 금수강산의 한 면이 아니라 지상의 선경 (仙境 )임이 분명하구나 !)
김삿갓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한동안 넋을 읽고 취해 있었다. 고려 때 시인 권한공 (權漢功 )이 평양 구경을 왔다가 , 모란봉 위에서 대동강을 굽어보며 시를 지은 일이 있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
모랫가의 푸른 나무는 봄빛이 엷고 물에 비친 청산에는 저녁놀이 짙구나 물 속에 있는 듯 원근조차 모르겠는데 어디선가 석양에 노랫소리 들려오네.
이윽고 금수산 꼭대기에 올라오니, 평탄하고 훤칠한 을밀대 (乙密臺 )가 나온다 . 거기는 사방이 탁 틔어 있어서 어디든지 마음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곳 이므로 을밀대를 사허정 (四虛亭 )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
하늘로 날아올라갈 듯이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사허정의 웅자(雄姿 )! 언젠가 이곳 사허정에 올라온 당나라 시인이 이곳의 경치에 감탄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
금수산 산머리에 손바닥처럼 평평한 대가 있네 모름지기 하늘에 사는 신선이 바람을 타고 때때로 놀러 오는 곳이리.
때마침 정자 위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하객들이 엉겨 돌아가는데 , 한편에서는 기생들이 풍악에 맞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이 잔치가 무슨 잔치요 ?"
김삿갓은 옆에 있는 하객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 잔치는 평양 갑부인 임 진사 댁 회갑 잔치라오 ."
김삿갓은 출출하던 판인지라, 마침 잘되었다 싶었다 . 회갑 잔치라면 술과 음식을 마음껏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김삿갓은 사람 틈을 비집고 정자 위로 올라와 보았다. 백발이 성성한 임 진사 내외는 온갖 음식이 요란스럽게 차려진 환갑상 앞에 단정히 앉아 , 그의 아들과 사위들 내외에게 헌수배 (獻壽盃 )를 받고 있었다 .
이런데다가 바로 옆에서는 4, 5명의 기생들이 은은한 풍악에 맞춰 나비처럼 춤을 추며 "태평가 "를 나지막하게 부르고 있는데 ,
이래도 태평성대 저래도 태평성대 요지일월(堯之日月 )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 )이라 오늘도 태평성대니 만수무강하소서 ....
자식들과 친척들의 헌수배가 끝나자 하객들의 차례였다. 김삿갓도 하객 행렬 속에 끼어들어 축배를 올리며 덕담을 늘어놓았다 .
"오늘의 수연 (壽宴 )을 진심으로 축하하옵니다 . 바라옵건데 학수천세 (鶴壽千歲 ) 하시옵소서 ."
음식을 푸짐히 얻어먹으려고 축배를 올렸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자 임 진사는 김삿갓을 마주 보다가 적이 놀라는 얼굴을 하며 ,
"이렇게 축하를 해주니 고맙소이다 . 그런데 귀공은 누구신지 기억이 분명치 않구려 . 귀공의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 이름을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김삿갓은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대답했다 .
"저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불청객이올시다 . 모란봉 구경을 왔다가 수연을 베푸시기에 우연히 축하의 말씀을 올리게 된 것이옵니다 ." "모르는 사이인 데도 이렇게 축하를 해 주셔서 더욱 고맙소이다 . 축하까지 받았으니 이제는 피차 간에 서로 알고 지내야 할 게 아니겠소 ? 나는 임현식 (林賢植 )이라는 늙은이오 . 귀공의 함자는 어떻게 되시오 ?"
임 진사가 부득부득 이름을 알고자 하므로 김삿갓은 아무리 싫어도 이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 이름은 ‘김립 (金笠 )’ 이라고 하옵니다 ." "옛 ? 김립 선생이라면 방랑 시인으로 유명한 ‘삿갓 선생 ’ 이라는 말씀인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