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업(일일회원)
작성 2002/09/30
- 조령산(1,017m) 2002. 9. 29.(일요일) -
* 9월 첫 주로 예정됐던 산행이 마지막 주로 밀린 것은 이유가 많다. 59년 사라호 이래 가장 강력한 태풍 루사의 방문과 기하급수적으로 번져갔던 바이러스에 의한 눈병, 그리고 민족의 대이동을 몰고 다니는 한가위 중추절과 이를 치루기 위한 벌초행렬들이 바로 그들이다. 경주지역의 대표적 산악단체인 <경주일요산악회>의 9월 정기 산행 코스가 문경새재, 조령산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구미가 당긴다. 나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이화령 꼭대기에서 조령산을 거쳐 제3관문으로 가는 코스가 맘에 든다. 이 코스는 우리가 차를 가지고 간다면 도저히 하루만에 다녀올 수 없는 곳이다. 이런 이유로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 <발가대 산악회>는 경주일요산악회의 일일회원이 되기로 작정을 한다. 그래서 따라나선 회원은 5명. 모두 산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이들이다. - 김기식, 윤부근, 김인식, 김재현 그리고 나.
새벽 6시 30분은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이미 새벽이 아니라 오전이다. 황실예식장 앞으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이들은 조촐한 결혼식의 하객은 충분히 된다. 117명의 일행을 태운 3대의 버스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려가다 대구쯤에서 차창에 비를 맞는다. 일기예보에선 분명 비를 얘기했는데, 경주의 아침 날씨는 쾌청한 가을이어서 예보가 틀렸음을 속으로 은근히 비꼬며 좋아했는데.... 다행히 칠곡 휴게소에 내려 차를 한 잔 하는 동안에 비가 멎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날씨가 우리를 도울 준비를 하는가 보다.
구미를 지나 아포 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활주로를 달리는 기분으로 달려가니 곧 상주고 점촌이다. 고향마을을 지나면서 새색시 첫 친정나들이 하는 듯한 묘한 기분에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이화령휴게소다. 이 밑으로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서울로 가는 유일한 길인데 요즘은 여유와 풍유를 즐기는 이들의 드라이브길이 되고만 곳이다.
시계를 보니 9시 40분. 경주를 떠난 지 꼭 3시간 만이다. 중부고속화도로가 완공되면 30분은 또 줄어들게 분명하다. 3호차에 올라 오늘 산행코스를 구수한 입담으로 정확한 연대까지 제시하며 안내해주던 분의 말에 의하면 이곳 문경새재는 옛날 과거(科擧)를 보러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던 유일한 길이란다. 물론 추풍령도 있고 죽령도 있지만, 추풍령은 추풍낙엽이 될까봐 꺼렸고 죽령은 죽미끄러질까봐 겁을 내고 오직 이 곳, 새도 단 번에 넘지 못 하고 쉬었다가 넘었다는 조령(문경새재)를 택했단다. 우리말의 유희를 접할 수 있는 기회여서 또 두배 즐겁다.
이화령휴게소의 화장실은 산 오를 채비를 하는 이들을 맞느라 분주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외줄기 길을 따라 조령산 정상으로 향한다. 걸음 빠른 이도 소용없고 오직 입담 좋은 이들만 제 세상을 만났다. 월 40만원을 주고 배웠다는 어느 회원의 패관문학(음담패설?)은 야사에 능히 오를 만하다. 질 좋은 음향설비로 녹음만 잘 한다면 테이프가 날개를 달고 팔려 나갈게 틀림없으리라. 그 질퍽한 내용들을 어눌한 말로는 도저히 옮기지 못 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실습하며 배울 수 있다면 나도 얼른 등록하고 픈데...'라는 음담(?)을 속으로만 더듬거릴밖에...
추월을 할 수 없는 산행길, 그리고 쉴 필요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산행길의 특이함을 조령산은 가졌다. 옛 선비들의 장원급제로 향한 집념을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배우게 위함인가. 휴식이 필요 없음은 군데군데 걸려있는 밧줄 때문이다. 밧줄에는 여러 명이 절대로 매달릴 수 없다. 한 사람이 다 지난 뒤에 또 한 사람이 그 자세 그대로 흉내를 내야하기 때문에 쉼의 여유가 저절로 잠시 생기는 것이다.
조령산 정상은 무대가 좁아 우리 일행 모두의 기념촬영을 불허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발가대회원 5명의 오름을 얼른 사진기에 증명서로 남기고는 만세삼창을 전보다 크게 외쳐본다. 산의 높이가 안내서와 인터넷에 제각각 달리 소개되어 있어 혼란을 가져왔는데, 정상비(頂上碑)에는 1,017m로 깊게 음각되어 있다.
이만한 인원이 한꺼번에 식사를 하는 공간이 없는 터라 군데군데 앉아 맛나는 점심을 펼친다. 거리상으로도 제법 장사진이 된 점심상이다. 우리도 12시 20분에 몇 걸음 옆이 바로 천애 절벽인 작은 공간을 찾아 점심을 한다. 소주가 곁들인 점심 - 이는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기분과 충분히 동격에 올릴 만하다. 이 맛에 산을 찾는다면 욕할 사람이 있을까.
정상을 지나면서 밧줄에 매달리는 시간도 길어지고, 발 놓을 위치에 신경을 더 써야 할 곳이 차차 많아진다. 소나기 한 줄기가 성미 급한 이들의 발걸음을 잡고 우의(雨衣)를 끄집어내게 한다. 이 비로 인해 바닥은 더 미끄럽고, 바위는 더더욱 미끄러워 더딘 행보를 만든다. 우리 일행(5명) 중 한 분은 맨 앞에서 가고 있는데, 벌써 눈앞에 제3관문이 보인다고 휴대폰으로 수도 없이 알린다. 우리는 937봉을 거북처럼 겨우겨우 내려가고 있는데....
꼴찌를 벗어나려 박차를 가하니 숨이 온 몸에 가득 찬다. 그래도 어금니가 굳게 다물어짐은 우리 앞을 몇 백 미터나 앞서 가고 있는 여성분들을 생각하고 나서다. 아무리 남녀 평등이 연착을 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육체적 조건만은 남성이 여성보다 못 해서야 될까보냐. 이런 생각은 곧 오기가 되고 만다. 무릎의 관절이 병증을 보이며 속도를 떨구게 한다. 여성분들을 쳐다보는 눈높이를 동등하게 가지는 지혜를 빨리 터득하는 길밖에 없다.
앞서 가고 있는 윤부근님으로부터 어디메 쯤에 산머루가 있다고 알려오는 휴대폰의 여음이 쟁쟁한데 그곳을 찾을 기력이 없다. 정보는 정보일 뿐 현실과는 큰 괴리를 보이는 순간이다. 이렇게 산행이 끝을 보이고, 시계는 6시간을 걸어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어림잡아도 1시간을 빨리 도착했을 게다.
지난 여름, 월악산을 다녀오면서 하산길로 택했던 조령관, 제3관문이 눈 앞에 보무도 당당히 위용을 자랑하며 버티고 선다. 조령관 바로 옆에 위치한 약수터에서 바알간 바가지로 물을 건네는 여회원님의 손모양이 참한 마음처럼 아름답다. 그 물을 마신 우리는 잠시 과거(科擧) 길의 선비가 된다. 이제 죽미끄러질 일도 추풍낙엽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장원 급제만 기대해도 될 선비의 마음이 되니, 온통 평온함으로 충만하다.
타박타박 20분 남짓 충청북도 쪽으로 하산을 하니, 우리 일행들이 붉은 얼굴로 반긴다. 부지런한 정회원님들이 준비한 따끈한 시래기국밥은 별미다. 같이 따라나온 막걸리 한잔은 허기진 배를 채우고, '포만감', '기분 좋음', '얼큰함', '대화하고픔', '낭만', '금상첨화' 등의 단어를 뇌리에 남기면서 또 한 잔을 들이키게 하더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