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택쥐베리
내가 여섯살적에 한번은 원시림에 관하여 쓴 《자연계의 실화》 라는 책에서 굉장한 그림을 본 일이 있었다. 그것은 왕뱀 한 마리가 짐승을 삼키려 하고 있던 그림이었다. 이 그림이 그걸 옮겨 놓은 것이다.
그 책에는 「왕뱀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 버린다. 그리고는 움직일 수 없게 되는데, 그 먹이의 소화를 위하여 반년 동안 잠을 잔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이것을 읽고 밀림 속의 모험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나는 색연필을 가지고 나의 첫번째 그림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나의 제1호 그림이다.
나는 나의 걸작품을 어른들에게 보이며 내 그림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무섭지 않으냐구? 모자보고 놀라는 사람이 어디 있니?」라고 대답하였다.
내 그림은 모자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뱀이 통째로 삼킨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그림을 그렸다. 이번에는 왕뱀의 뱃속을 그렸더니 어른들은 그제야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항상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나의 제2호 그림은 다음과 같았다.
이번에 어른들의 반응은 왕뱀의 뱃속인지 거죽인지 하는 내 그림을 집어치우고 지리학, 역사, 수학 그리고 문법이나 열심히 공부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하여 여섯 살 때 위대한 화가로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다. 내 그림 1, 2호의 실패로 나는 무척 실망해 있었다. 어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럴 때마다 늘 설명해 주어야 하니 어린아이들에겐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난 딴 직업을 택해 비행기 조종술을 배웠다. 나는 세계 곳곳을 조금씩 비행했으며, 정말로 지리학은 나에게 무척 유용한 것이었다. 나는 한 눈에 중국과 아리조나를 구별할 수 있다. 만약 밤에 길을 잃게 되면 이러한 지식은 더욱 가치가 있다.
이렇게 생활하는 동안 나는 중요한 일에 관계하고 있는 어른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나는 이런 어른들 사이에서 주로 살았다. 나는 이 어른들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아 왔지만 어른들에 대한 내 판단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그들 중 좀 명석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내 그림 1호를 보여 주며 실험해 보았다. 나는 늘 이 그림을 가지고 다녔다. 이 사람이 이 그림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 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이구동성으로 늘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자군요.」
그래서 그 후 나는 왕뱀이나, 원시림, 또는 별에 대해서는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수준으로 내 자신을 낮추어 그들의 관심거리인 브리지 게임이나 골프, 정치, 넥타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분별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매우 반가와했다.
그래서 나는 6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까지 진정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도 없이 혼자서 지냈었다. 비행기 엔진에 고장이 났었다. 나는 정비사도 승객도 동승하지 않았었으므로, 나 혼자서 어려운 수리를 해내야만 했다. 나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가지고 있는 식수도 겨우 1주일을 마실 만한 분량이었다.
그래서 첫날밤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1000마일이나 떨어진 사막에서 잠을 잤다. 망망대해에서 뗏목을 타고 방황하는 난파선의 선원보다 더 고독했었다. 해 뜰 무렵, 내가 이상한 작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나의 놀람을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세요―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뭐라구!」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눈을 간신히 깜박거려 뜨고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나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서 있는 정말 이상한 작은 소년을 발견하였다. 다음 그림은 내가 나중에 그린 것 중에서 가장 잘 된 소년의 초상화이다. 그러나 물론 내 그림은 실물보다는 훨씬 못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탓만은 아니다. 내가 여섯 살 때 어른들은 화가로서 대성 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왕뱀의 뱃속과 겉모양을 그린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려 보지 못했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소년을 바라 보았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10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불시착해 있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피로와 배고픔에 지쳐 있거나 그렇다고 목이 마르다거나 무서워 떠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1000마일 떨어져 있는 사막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가까스로 그 소년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런데― 너는 여기서 필 하고 있는 거냐?」
그러자 그 소년은 아주 중요한 것을 말하듯 매우 천천히 되풀이해서 말했다.
「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주시겠어요... 」
너무나 뜻밖의 신기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거기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사는 데서 1000마일이나 떨어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양을 그린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는 하였지만, 나는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과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지리, 역사, 산수와 문법밖에는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약간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 소년에게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건 상관없어요. 양의 그림을 그려 주세요... 」
그러나 나는 양의 그림을 그려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자주 그려 보았던 앞서 말한 두 가지 그림 중의 하나를 그렸다. 그것은 왕뱀의 겉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소년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었다.
「아니예요, 이게 아니란 말이예요! 나는 왕뱀의 뱃속에 들어 있는 코끼리 그림을 원하는 것이 아니예요. 왕뱀은 아주 위험한 동물이고 코끼리는 너무 거추장스러워요. 내가 사는 곳은 모든 것이 다 작아요.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양이란 말이예요. 양을 그려 주세요.」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양을 그렸다. 소년은 그것을 자세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싫어요, 이 양은 병에 걸려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양을 그려 주세요.」
그래서 나는 또 다시 그렸다.
소년은 봐주기라도 하듯이 다정하게 웃었다.
「이것 보세요.」그는 말했다. 「이것은 양이 아니예요. 이것은 염소예요. 뿔이 나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또다시 그렸다. 그러나 그것도 앞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소년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은 너무 늙었어요. 나는 오래 살 수 있는 양을 원해요.」
이렇게 되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비행기 엔진 분해를 서두르고 있었으므로, 아무렇게나 대강 그렸다. 그리고는 다음 그림을 가지고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양이 있을. 상자일 뿐이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상자 안에 들어 있어.」
나는 이 어린 감정가의 얼굴에 감도는 명랑한 기색을 보고 매우 놀랐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거예요! 이 양은 풀을 많이 먹어야 하나요?」
「왜 물어 보지?」
「제가 사는 곳은 모든 것이 아주 작거든요...」
「이 양이 먹을 만큼은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내가 그려 준 양은 아주 작은 양이야.」
소년은 고개를 숙여 그림을 보았다.
「그렇게 작지는 않은데요― 여기 보세요! 잠이 들어 버렸어요...」
이것이 내가 이 어린 왕자와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이 어린 왕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기까지는 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왕자는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으나 내가 묻는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것 같았다. 다만 우연히 한마디씩 하는 그의 말로 모든 사실을 조금씩 알게되었다.
예를 들자면, 그가 처음으로 내 비행기를 보았을 때 (아마 나에게 비행기를 그리라고 했다면 비행기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못 그렸을 것이다) 이렇게 물었다.
「저 물건은 무엇이지요?」
「저것은 물건이 아니야. 날 수 있는 거야. 비행기라고 하는데 저것은 내 것이야.」
나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럼, 하늘에서 떨어졌군요?」
「그래.」하고 나는 점잖게 대답했다.
「거 참, 재미있는데요!」
어린 왕자는 귀여운 목소리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가 웃는 것을 보니 화가 났다. 나는 그가 나의 불행한 사고를 심각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역시 당신도 하늘에서 왔군요! 어느 별에서 왔나요?」
그 순간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에 쌓인 그의 정체에 대하여 한줄기의 희미한 빛을 잡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질문을 했다.
「너는 다른 별에서 왔구나?」
그러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어린 왕자는 비행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저것을 타고 왔다면 그다지 멀리서 온 것은 아니겠군요. 」
그리고는 오랫동안 공상에 잠기더니, 주머니에서 내가 그린 그림을 꺼내어 매우 소중한 듯이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다른 별에서 왔을 것》 이라는 반신반의적인 생각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려고 하였다.
「도대체 너는 어디서 왔니? 네가 말한 《내가 사는 곳》 이란 어디지? 그리고 그 양을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거지?」
한동안 말없이 생각하더니 어린 왕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상자를 그려 준 것은 참 다행한 일이예요, 밤이면 양이 이 상자를 집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죠.」
「그렇겠구나. 필요하다면 끈을 주지. 낮엔 양을 매어 둘 수 있도록 말이야. 그리고 양을 매어 둘 수 있는 말뚝도 주지」
그러나 내 말을 듣자, 왕자는 몹시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보였다.
「매어 둔다고요! 참 이상한 생각이군요!」
「하지만 매어 두지 않으면 이리저리 헤매다가 길을 잃고 말 거야.」라고 말했다.
어린 왕자는 또 소리내어 깔깔 웃었다.
「그렇지만 어디 갈 테도 없잖아요?」
「아무데나. 곧바로 앞으로 갈 수 있지.」
그러자 왕자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요. 내가 사는 곳은 모든 것이 아주 작으니까요!」
그리고는 어딘지 모르게 슬픈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똑바로 가봤자, 그리 멀리는 못 가요...」
나는 이렇게 하여 두번째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왕자의 고향인 그 별은 겨우 집채만한 크기의 작은 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에 대해서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나는 지구니, 목성이니, 화성이니, 금성이니 하는 이름이 붙은 큰 별 이외에도 망원경으로도 보기 힘들만큼 아주 작은 별들도 무수히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천문학자는 이런 별을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만 붙여 준다. 예를 들면 작은 혹성 325번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나는 어린 왕자가 온 별은 B-612라고 알려진 작은 혹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작은 혹성은 망원경으로 오직 한번 보였을 뿐이다. 1909년에 터어키의 천문학자에 의해서 이 별이 관찰되었던 것이다. 이 천문학자는 국제 천문학 회의에서 자기가 발견한 별에 대해 당당하게 증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터어키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른들이란 다 그래...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터어키의 독재자가 작은 흑성 B― 612에 대한 평판을 듣고는 신하들이 유럽식의 옷을 입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1920년에 다시 그 천문학자는 아주 훌륭한 옷을 입고 그 작은 혹성에 대해 증명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두가 그 천문학자의 보고를 인정하였다.
내가 작은 혹성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히 이야기해 주고 그 번호까지 쓰는 것은 어른들의 생활 태도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 사귄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일은 묻지도 않는다. 즉 이런 말은 묻지도 않는 것이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떠냐? 어떤 놀이를 가장 좋아하지? 나비채집도 하니?」와 같은 말은 묻지도 않고, 「그 애는 몇 살이지? 체중은 얼마나 나가니? 그 애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시니?」라고 물어 댄다. 어른들은 이런 숫자들로만 그 애가 어떤지 다 안 것처럼 생각한다.
어른들에게 「장미빛 벽돌로 지어졌고, 창문에는 제라늄 꽃이 피어 있으며,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앉아 있는 아름다운 집을 보았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런 집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어른들에게「2만달러짜리 집을 보았다.」고 말을 하면 그들은 「정말 굉장한 집이구나!」라고 감탄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왕자는 귀여웠고, 웃었으며, 양을 찾고 있었다. 그것이 어린 왕자가 이 세상에 있었던 증거다.」라고 말하거나 「어떤 사람이 양을 갖고 싶어한다면 그것이 그가 이 세상에 있다는 증거다.」라고 어른들에게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마 어른들은 당치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어린애 취급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왕자가 작은 혹성 B-612에서 왔다.」고 하면 어른들은 알아차리고 더 이상 아무 질문도 안할 것이다.
어른들이란 다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을 너그럽게 대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을 이해하는 우리에게는 숫자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옛날이야기처럼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옛날옛적에 어린 왕자가 있었다. 그 왕자는 자기보다 약간 클 정도의 별에서 살았다. 그리고 양 한 마리를 갖고 싶어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해도 인생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더욱 동감할 것이다.
나는 누구든 이 책을 부주의하게 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어린 왕자와의 지난날의 기억들을 기록하면서 슬픔으로 몹시 괴로와했다. 나의 친구가 양을 데리고 내 곁을 떠난 지도 벌써 6년째가 된다. 지금 이 친구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 친구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누구나 친구를 갖는 건 아니다. 만일 내가 그 친구를 잊는다면 나도 어쩌면 숫자에만 관심이 있는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목적으로 나는 다시 그림물감과 연필을 샀던 것이다. 여섯 살 때 왕뱀의 겉모양과 뱃속을 그린 그림 이외에는 아무 그림도 그려 본 일이 없는 내가, 지금 이 나이가 되어 다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는 초상화를 가능한 한 실물과 같게 그리려고 한다. 그러나 잘 될는지는 모른다. 한 그림이 잘 되면, 또 다른 그림은 실물과 비슷하지도 않다. 나는 왕자의 키에 있어서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어느 곳에서는 키가 너무 크고 또 다른 곳에서는 너무 작았다. 그리고 그의 옷 색깔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그러나 나는 서투른 솜씨지만 최선을 다해서 그럭저럭 그럴 듯하게 그려 놓았다.
더욱 더 중요한 부분에서 역시 실수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잘못은 아닐 것이다. 어린 왕자는 나에게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알았다. 아마도 나를 자기자신과 같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계도, 나는 상자 안에 있는 양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른다. 아마 나도 어른들과 약간 같은 것 같다. 나도 나이를 먹어야만 했으니까.
날이 지나감에 따라 우리가 주고받는 말에서 나는 어린 왕자의 별에 관해서나, 그 별을 떠났을 때의 일이며, 그의 여행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이러한 정보는 매우 천천히 알게 된 일이었고, 왕자가 생각하던 중 무심결에 한 말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사흘째 되던 날 바오밥나무의 재난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모두 양의 덕택이었다. 왜냐하면 어린 왕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정말이구 말구.」
「그것 참 잘 됐군요!」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 일이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왕자는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면 양이 바오밥나무도 먹을 수 있겠네?」
나는 어린 왕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바오밥은 작은 나무가 아니고 성곽 만큼이나 큰 나무이며 코끼리 한떼를 끌고 가서 먹는다 해도 다 먹어 치우지 못한다. 」
왕자는 코끼리 한떼라는 말을 듣고 웃었다.
「코끼리를 포개 놓을 수도 있겠네요.」라고 왕자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재치 있는 말을 했다.
「큰 바오밥나무도 처음에는 작은 나무였잖아요.」
「그야 맞는 말이지. 그러나 왜 작은 바오밥나무를 양에게 먹이려고 하지?」
왕자는 곧장 대답했다. 「아니 그것도 몰라요!」왕자는 자명한 이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머리를 짜내 그 뜻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상 내가 아는 바로는, 왕자가 살던 별에는 다른 별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식물과 나쁜 식물이 있었다. 따라서 좋은 식물의 좋은 씨와 나쁜 식물의 나쁜 씨가 있었다. 그러나 씨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씨들은 캄캄한 땅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그중의 어떤 씨가 얼른 눈을 떠볼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이 작은 씨는 점점 자라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조금씩 자라다가― 아름다운 어린 줄기를 햇빛을 향해 쑥 내밀어 뻗는다. 그것이 무우의 싹이든가 혹은 장미의 어린 줄기라면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어도 좋다. 그러나 나쁜 식물이라면 눈에 띄는 대로 곧 없애 버려야만 한다.
그런대 왕자가 살던 별에는 나쁜 씨가 있었다. 그 씨가 바로 바오밥의 씨였다. 그 별의 땅속에는 온통 바오밥의 씨앗 투성이였다. 바오밥이라는 것은 빨리 없애버리지 않으면 나중에는 결코 제거할 수 없게 되는 식물이다. 바오밥은 별 전체에 퍼져서 그 뿌리로 별을 꿰뚫는다. 만일 별이 작고 바오밥이 너무 많이 있으면 바오밥은 별을 산산이 쪼개 버리고 만다...
어린 왕자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건 훈련에 관한 문제지요. 아침에 몸 단장이 끝나면 그 다음엔 정성들여 별의 화장을 해야 할 시간이지요. 바오밥의 작은 것은 장미나무와 똑같지만 조금만 더 크면 구별이 되니까. 그때 바로 모든 바오밥을 규칙적으로 뽑아 버려야 해요. 그것은 비록 무척 귀찮은 일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작은 왕자는 덧붙였다.
어느날 왕자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아이들이 이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그림을 잘 그려야 해요. 언젠가 당신 나라 아이들이 여행을 할 때 그 그림은 도움이 될 겁니다. 때때로,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할일을 뒤로 미루었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때가 있지요. 그러나 바오밥에 있어서는 미루어 두면 틀림없이 재난이 와요. 나는 게으름뱅이 하나가 살고 있던 별을 알고 있지요. 그 사람은 어린 바오밥나무를 셋이나 내버려 두었다가...」
그래서 나는 어린 왕자가 설명해 주는 대로 그 식물의 그림을 그렸다. 나는 도덕가같이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바오밥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별에서 길 잃은 사람에게 이러한 중대한 위험이 닥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한번만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하려 한다. 「어린이 여러분, 바오밥을 조심하십시오!」
나와 같이 내 친구들은 오랫동안 바오밥을 모른 채 이 위험을 피해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주는 교훈이 가치가 있다면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아무리 힘들었다 하더라도 나는 상관없다.
아마도 당신은 나에게 이러한 질문을 할 것이다. 「바오밥의 그림처럼 훌륭하고 인상적인 다른 그림들이 이 책에는 왜 없는 겁니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다른 그림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바오밥을 그릴 때만은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온 정성을 다해 평소의 능력 이상으로 그렸던 것이 확실하다.
어린 왕자! 나는 조금씩 당신의 슬픈 비밀을 알게 되었소... 당신은 석양을 바라보면 유쾌한 기분이 들어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것도 알게 되었소. 나홀째 되던 날 아침에 당신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새로운 사실을 알았소.
「나는 해가 질 무렵을 제일 좋아해요. 해지는 모습을 보러가요.」
「그러나 우리는 기다려야 되는데.」라고 나는 말했다.
「기다린다고요? 무엇을요?」
「해질녘까지. 해지는 시간까지 기다려야지.」
처음 당신은 이 말에 매우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당신은 혼자 웃었다. 내게 또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언제나 내 집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정오일 때 프랑스는 해질녘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만약 1분 동안에 프랑스로 날아갈 수 있다면 지금 정오에도 당장 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프랑스로 해지는 것을 보러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 그렇지만 어린 왕자의 조그마한 별 같으면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를 조금만 움직여도 보고 싶은 때는 언제라도 저녁놀에 물든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지...
「나는 하루 동안에 해가 지는 것을 44번이나 보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말하기를,
「대개 사람들은 슬플 때 해지는 것 보기를 좋아하지요...」
「하루에 해지는 것을 44번이나 볼 정도로 그때 그렇게 슬펐나?」라고 물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닷새째 되던 날, 또다시 양의 덕택으로, 어린 왕자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왕자는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마치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문제에 의문이 생긴 듯 이런 말을 했다.
「양이 작은 관목을 먹을 수 있다면, 꽃도 먹을 수 있겠네요?」
「양은 닥치는 대로 아무것이나 먹지.」라고 대답했다.
「가시가 있는 꽃도 말이예요?」
「물론 가시가 있는 꽃도 먹지.」
「그럼 가시가 있으나마나네요?」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순간 나는 엔진에 꽉 죄여 있는 나사를 늦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 비행기의 고장이 치명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게다가 식수도 거의 다 떨어져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가시가 무슨 소용이 있지요?」
어린 왕자는 한번 질문을 하면 대답을 얻을 때까지 가만 두지 않았다. 나는 나사를 푸는 일로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대답해 버렸다.
「가시는 아무런 쓸모도 없지. 꽃들은 심술궂게 가시를 달고 있어!」
「그래요!」
얼마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는 왕자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지 않아요! 꽃은 연약한 생물이예요. 꽃은 순진해요. 꽃은 될 수 있는 한 걱정없이 살려고 해요. 꽃들은 그들의 가시를 무서운 무기로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대답을 못했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나사가 돌려지지 않으면 망치로 부셔 버려야지.」다시 어린 왕자가 내 생각을 흔들어 놓았다.
「당신은 정말로 꽃들이 그러리라고 생각하나요― .」
「아니야, 아니야!」나는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처음에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대답한 거야. 네가 알다시피, 나는 중요한 일에 정신이 없어서!」
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중요한 일!」
나는 왕자가 보기에 매우 추하게 보이는 물건 위에 엎드려 쇠망치를 들고 기름으로 손을 시커멓게 해가지고 있었다...
「당신은 어른 같은 말만 하는군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부끄러웠다. 그러나 왕자는 상관없이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무엇 하나 분별없이 혼동을 하고 있어 ...」
왕자는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 그는 금빛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별에 붉은 얼굴을 한 신사 한 분이 있었어요. 그 신사는 꽃 냄새를 맡아 본 일도 없고 별을 구경한 일도 없었어요. 그는 누구도 사랑한 일이 없었고, 매일 하고 있는 일이란 숫자를 더하는 일이었지요. 그리고 하루종일 당신처럼 『나는 중요한 일로 바쁘단 말이야!』라고 되풀이하며 말해요. 그리고 그 말이 무슨 자랑인 양 뽐내기만 하거든요. 그러나 그는 사람이 아니예요, 그는 버섯이예요!」
「뭐라고?」
「버섯이라구요!」
어린 왕자는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꽃들은 수백만년 동안 가시를 가지고 있지요. 양도 마찬가지로 수백만년 동안 꽃을 먹어 왔지요.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고생을 하며 아무 쓸데없는 가시를 키우는지 그 뜻을 알려고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예요? 양과 꽃 사이의 싸움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붉은 얼굴의 뚱보신사의 덧셈보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내 별에는 딴 곳에서는 절대 자라지 않는 이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꽃이 하나 있는데, 어느날 아침 꼬마양이 모르고 따먹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고 가정해요. 그런데도 그런 일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이렇게 말을 계속하면서 왕자의 창백했던 얼굴이 붉어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수백만 개의 별에서 자라고 있는 단 한 송이의 꽃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되지요.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만약 양이 그 꽃을먹는다면, 순식간에 모든 별이 캄캄해질텐데...』 당신은 그것이 대단치 않다는 말인가요!」
왕자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슬픔에 흐느껴 목이 메었던 것이다. 밤이 되었다. 나는 손에 들었던 공구들을 놓았다― 지금 이 순간 쇠망치나 나사나 목마름 또는 죽음이 뭐 그리 대단한가? 별 위에, 흑성 위에, 내 별에, 이 지구 위에 내가 돌보아야 할 어린 왕자가 있다. 나는 왕자를 안고 조용히 흔들면서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꽃은 위험하지 않아, 너의 양에게 씌울 입마개를 그려 주지. 그리고 꽃을 둘러쌀 울타리를 그려 줄께. 내가― 」
나는 왕자에게 뭐라고 말할지 몰랐다. 나는 어색한 느낌이 들어 머뭇거렸다.
어떻게 하면 왕자를 달래어 전처럼 다정한 사이로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눈물의 나라는 참으로 알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얼마 후 이 꽃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었다. 왕자의 별에서는 늘 소박한 꽃들이 피고지고 했다. 그 꽃들은 꽃잎이 한 겹이고 또 장소를 차지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아침에 풀속에서 피어났다가 밤에 조용히 시들어 버리는 꽃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날아온 씨가 싹튼 것이다. 이 싹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왕자는 자기 별에 있는 조그마한 싹들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이 조그마한 싹을 매우 자세히 관찰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종류의 바오밥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싹은 자라서 조그마한 나무가 되더니 자라는 것을 멈추고, 꽃이 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온 커다란 봉오리를 보고 있던 어린 왕자는 금방 그 봉오리로부터 신비로운 것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꽃은 녹색의 방 속에서 자기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완전한 준비가 된 것 같지 알았다. 꽃은 세심하게 색깔을 고르고 있었다. 천천히 옷을 입었다. 그리고 꽃잎을 하나하나 다듬고 있었다. 이 꽃은 들판에 핀 양귀비꽃처럼 꽃잎을 헝클어뜨린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고 싶지 않았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세상에 태어나고 싶었다. 정말로 요염한 꽃이었다! 이렇게 꽃의 신비로운 치장은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막 태양이 떠오를 때 이 꽃은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정성을 들여 꼼꼼히 화장을 한 그 꽃은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아! 아직도 잠이 덜 깼나 봐. 어머나, 실례했어요. 내 꽃은 아직 헝클어져 있어요...
그러나 왕자는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정말 아름답구나!」
「그래요?」꽃은 상냥하게 대답했다. 「저는 햇님과 함께 태어났어요...」
왕자는 이 꽃이 겸손하지 못할 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얼마나 감동적 이고 마음 설레게 했는지!
「아침 먹을 시간이예요.」꽃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저에게 아침식사를 갖다 주시지 않겠어요?」
어린 왕자는 수줍어 하다가 맑은 물이 담긴 통을 가지고 와서 꽃에게 아침밥을 주었다.
꽃은 피어나자마자 자기의 허영심을 가지고 왕자를 괴롭혔다. 이러한 사실이 진실이라면 왕자로서는 다루기가 좀 곤란한 일이었다. 애를 들면 어느날 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네 개의 가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호랑이라도 와보라지요!」
「내 별에는 호랑이가 없는데...」라고 어린 왕자는 반박했다. 「그리고 어쨌든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으니까.」
「저는 풀이 아니예요.」꽃은 상냥하게 말했다.
「잘못했어...」
「저는 호랑이 같은 건 무섭지 않아요.」꽃은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바람을 무서워해요. 나를 위해서 바람막이를 만들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바람을 두려워한다고, 그것 참 식물로서는 안 된 일이구나.」라고 말하고는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꽃은 아주 까다로운 생물이야...』
「밤에 나에게 유리덮개를 씌워 주셔요. 당신이 살고 있는 이곳은 매우 추워요. 내가 살던 곳은―」
이 말을 하다가 꽃은 말을 중단하였다. 꽃이 여기 왔을 때는 씨의 형태였었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를 알 리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이런 거짓말을 해놓은 꽃은 당황해 있었다. 왕자에게 자기의 거짓말을 얼버무리려고 기침을 두세번 하였다.
「바람막이는 어떻게 되었죠?」
「네 말을 듣고 지금 찾고 있는 중이야...」
그러자 꽃은 억지로 기침을 하여 왕자로 하여금 불쌍한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그래서 마음씨 좋고, 다정다감한 마음을 가진 왕자이지만 곧 꽃을 의심하게 되었다. 꽃이 대수롭지 않게 지껄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왕자는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꽃의 이야기를 듣지 말아야 했었는데.」어느날 왕자는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꽃이 하는 말은 들을 필요가 없어. 꽃은 단지 바라보고 향기만 맡는 거야. 내 꽃은 나의 별을 온통 향기롭게 했는데. 그런데 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몰랐어. 이 발톱 이야기는 나를 몹시 괴롭혔지, 내 마음을 연민과 자비심으로 가득차게 했어, 」
그리고 왕자는 계속 말을 했다.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했어요. 꽃은 나에게 향기와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했었는데. 나는 꽃에서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불쌍한 거짓말 뒤에는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꽃은 정말 모순덩어리야! 하지만 나는 꽃을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어...」
나는 어린 왕자가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해서 그의 별을 탈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출발하던 날 아침, 그는 별을 깨끗하게 정돈하였다. 왕자는 활화산을 잘 청소했다. 그는 두 개의 활화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활화산은 아침밥을 지어 먹는 데 무척 편리하였다. 그리고 하나의 사화산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왕자는 「언제 폭발할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사화산도 역시 깨끗이 청소하였다. 화산은 청소만 깨끗이 되어 있으면 폭발 없이 서서히 일정하게 연기를 내뿜는다. 화산폭발은 굴뚝에서 뿜는 불과 갈은 것이다.
이 지구에 있어서는 화산들을 청소하기에 우리 인간들이 너무 작다. 그래서 화산폭발로 인한 괴로움이 끝나지 않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근래에 돋아난 바오밥의 싹을 우울한 마음으로 뽑아 버렸다. 그는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날 아침에는 늘상 하는 일이었지만 그에게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꽃에게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워 주려 할 때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잘 있어.」라고 꽃에게 말했다.
그러나 꽃은 대답이 없었다.
「잘 있으라니까.」그는 다시 말했다.
꽃은 기침을 했다. 그러나 감기가 걸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리석었어요.」마침내 꽃은 왕자에게 말했다. 「용서를 빌겠어요. 그리고 부디 행복하세요...」
그는 꽃이 원망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왕자는 바람막이 유리덮개를 손에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왕자는 이 꽃이 왜 이렇게 얌전한지를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꽃이 왕자에게 말했다. 「그 동안 당신이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었어요. 하지만 관계 없어요. 당신도 역시 나와 같이 어리석었어요. 부디 행복하세요... 유리덮개는 내버려 두세요, 이젠 필요가 없어요.」
「그렇지만 바람이 불면―」
「내 감기는 대단한 것이 아니예요... 밤의 서늘한 바람은 나에게 좋아요. 나는 꽃이니까요.」
「하지만 짐승이 나타나면―」
「나비와 친해지려면 두세 마리의 쐐기벌레쯤은 참고 견디어야죠. 나비는 매우 아름다와요. 나비나 쐐기벌레가 아니라면, 누가 나를 찾아와 주겠어요? 왕자님은 멀리 가버리실 거고... 큰 짐승 같은 것은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나는 가시가 있으니까요.」
그리고는 꽃은 천진난만하게 네 개의 가시를 보여 주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이렇게 주저하지 마세요. 떠나기로 결심하셨잖아요. 자 떠나세요!」
꽃은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꽃은 이처럼 자존심이 강했다...
왕자의 별은 작은 혹성 325, 326, 327, 328, 329그리고 330의 별과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왕자는 이 별들을 방문함으로써 지식을 넓히기로 했다. 첫번째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그 왕은 붉은 옷에 담비모피로 만든 옷을 입고, 단순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아! 신하가 한 명 왔구나.」왕이 어린 왕자가 오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나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나를 어떻게 알아볼까?」
왕에게는 세상이 단순하다는 것을 왕자는 몰랐던 것이다. 왕들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신하인 것이다.
「가까이 다가오라,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이 왕은 마침내 자기가 모든 사람의 왕이라는 것을 뽐내려고 그렇게 말했다.
왕자는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별 전체가 왕의 위엄 있는 담비가죽 옷으로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왕자는 똑바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왕자는 피곤하여 하품이 나왔다.
「왕의 어전에서는 하품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짓이로다.」라고 왕이 왕자에게 말했다.
「하품을 금지하노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왕자는 당황해서 대답을 했다. 「저는 긴 여행을 했어요. 게다가 잠도 못 잤어요...」
「그렇다면 하품을 하도륵 명하노라. 오랫동안 하품하는 것을 못 봤다. 하품하는 건 참 재미가 있구나. 자 하품을 하도록 하라! 이것은 명령이니라!」
「너무 그러시면 겁나요... 이제 더 이상 하품을 할 수 없는데요...」왕자는 무안하여 머뭇거리며 말했다.
「허허, 그렇다면 짐이 명하노니 어떤 때는 하품을 하고 어떤 때는...」
왕은 성급하게 말을 하였고 짜증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그 왕이 근본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자기의 권위가 항상 존경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는 불복종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절대적인 군주였다. 그러나 그는 인품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합당한 명령만 내렸다. 왕은 이러한 예를 들곤 했다. 「내가 만약 대장에게 명령하여 바닷새로 변하라고 한다면 대장이 내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대장의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이 되느니라.」
「앉아도 될까요?」왕자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앉도록 명령하노라.」왕은 이렇게 대답하고 널찍하게 깔린 담비가죽 옷자락을 위엄 있게 끌어당겼다.
그러나 왕자는 이상하기만 하였다... 이 작은 별을 왕은 정말로 무엇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폐하, 」왕자가 왕에게 말했다. 「외람되게 여쭈어 보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질문하는 것을 허용하노라.」왕은 선뜻 대답했다.
「폐하, 무엇을 지배하십니까?」
「모든 것을 지배하지.」왕은 오직 위엄 있게만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왕은 자기의 별과 다른 모든 별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모든 것을요?」왕자가 물었다.
「물론 전부 다지.」왕이 대답했다.
왕의 지배는 절대적일 뿐만 아니라 우주전체의 지배를 뜻하고 있었다.
「별들이 폐하에게 복종하나요?」
「물론이고말고, 」왕은 대답했다. 「별들은 즉시 복종한다. 짐은 불복종만은 용서치 않는다.」
그러한 권력은 왕자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왕자가 이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면, 않은 의자를 뒤로 움직이지 않고, 해가 지는것을 하루에 44번이 아니라 72번도, 100번까지도, 200번까지도 구경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버리고 온 작은 별이 생각이 나서 약간 슬퍼졌던 왕자는 용기를 내어 왕에게 청했다.
「저는 해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제발... 해가 지도록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내가 만약 대장에게 나비처럼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라고 명령하거나 비극을 쓰라고 하거나, 바닷새가 되라고 한 후 그 대장이 지시받은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할 때 둘 중에 누가 잘못인가?」왕이 질문했다. 「대장이냐, 아니면 짐이냐?」
「그야, 폐하지요.」왕자는 확고히 대답했다.
「맞았어. 사람은 누구나 그가 이행할 수 있는 의무를 요구해야 하지, 」왕은 말을 계속했다. 「정당한 권력은 첫째 합리적이어야 한다. 만약 네가 너의 국민을 바다에 가서 물속으로 뛰어들라고 명령한다면 그들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내 명령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나는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야.」
「그런데 저녁해를 보는 것은?」왕자는 또 물었다. 그는 한번 물은 질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답을 얻어야만 한다.
「저녁해를 볼 수 있을 거야. 내가 명령을 내리겠다. 하지만 내 통치 철학에 따라서 조건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왕자가 물었다.
「음!」하고 말하고는 대답하기 전에 두툼한 책력을 찾아보았다. 「음! 오늘 저녁 8시 20분 전쯤이면 되겠다. 내 명령에 얼마나 잘 복종하는지를 알게 될것이다.」
왕자는 하품을 했다. 그는 자기 별에서 보았던 석양이 그리워졌다. 게다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에서 저는 더 이상 할일이 없어요, 」왕자는 왕에게 말했다. 「그러니 이제 떠나야겠어요.」
「가지 마라, 」신하가 생겨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왕이 말했다. 「가면 안돼. 대신을 시켜 줄 테다!」
「무슨 대신을요?」
「무슨 대신... 법무대신을 시켜 주마!」
「그러나 재판받을 사람이 없잖아요!」
「그야 알 수 없지, 」왕은 왕자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 나의 왕국을 전부 돌아본 일이 없어. 나는 너무 늙었어. 마차를 세워 둘 장소도 얼고, 걸을 수도 없으니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이미 둘러 보았는데요!」왕자는 별 저쪽을 또 한번 흘끗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곳은 물론 저쪽에도 아무도 얼었다.
「그럼 네 자신을 재판할 수 있지 않니.」왕이 대답했다.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남을 재판하기보다는 자신을 재판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드는 일이다. 네가 네 자신을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다면, 너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할 수 있지요.」왕자가 말했다. 「저는 어느 곳에서든지 제 자신을 재판할 수 있어요. 저는 이 별에서 살 이유가 없어요.」
「그래, 그렇다면!」왕이 말했다. 「내 별 어딘가에 늙은 쥐가 한 마리가 있는 것이 분명해. 밤에 쥐소리를 들었어. 너는 이 늙은 쥐를 재판할 수 있지. 가끔 이 늙은 쥐를 사형에 처하는 거야. 그러면 쥐의 운명은 너의 재판에 달려있지. 하지만 재판할 때마다 특사를 베풀어 줘. 한 마리밖에 없으니 아껴둬야해.」
「저는 아무에게도 사형 내리기는 싫어요. 그러니 저는 가겠어요.」왕자가 대답했다.
「가면 안 돼.」왕이 말했다.
그러나 출발준비를 마친 왕자는 늙은 군주에게 더 이상 괴로움을 주기 싶었다.
「폐하께서 즉시 명령에 따르는 것을 원한다면 폐하께서는 저에게 정당한 명령을 내리심이 옳은 줄로 아뢰오. 이를테면, 제게 1분 이내에 가버리라고 명령하실 수 있읍니다. 제가 보기에는 형편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왕이 아무런 대답을 안 했기 때문에 왕자는 잠시 주저했지만 한숨을 내쉬고는 곧 출발했다.
「너를 나의 대사로 삼겠노라.」왕이 급히 소리쳤다.
왕은 여전히 권위에 가득차 있었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두 번째 별에는 젠체하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오! 나를 찬미하는 사람이 오는구나!」젠체하는 사나이는 왕자가 오는 것을 보자 멀리서 소리쳤다. 젠체하는 사나이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를 찬미하는 자로 보인다.
「안녕하세요.」왕자가 말했다. 「참 이상한 모자를 썼군요.」
「이것은 인사를 하기 위한 모자지.」젠체하는 사나이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면 모자를 들고 인사를 하지. 불행하게도 아무도 이 길로 지나가지 않았어.」
「그래요?」라고 왕자는 말을 했지만, 젠체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 없었다.
「손뼉을 쳐요.」젠체하는 사나이가 왕자에게 지시했다. 왕자는 손뼉을 쳤다. 그러자 이 사나이는 모자를 살짝 쳐들고 공손히 인사했다.
『이번이 왕을 방문했을 때보다는 훨씬 재미있는데,』라고 왕자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다시 손뼉을 쳤다. 이번에도 그 젠체하는 사나이는 모자를 살짝 쳐들고 인사를 했다. 5분 동안이나 손뼉을 친 왕자는 이런 단조로운 놀이에 싫증이 났다.
「어떻게 하면 모자를 떨어뜨릴 수 있나요?」왕자가 물었다.
그러나 젠체하는 사나이는 못 들은 체하였다. 젠체하는 사람들에게는 칭찬하는 말이 아니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너는 정말로 나를 찬미하느냐?」그는 왕자에게 물었다.
「찬미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요?」
「찬미한다는 말은 네가 나를 이 별에서 내가 제일 잘 생기고, 옷도 제일 잘 입고, 제일 부자이며, 게다가 가장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그러나 이 별 위에는 당신 혼자뿐인 데요!」
「부탁한다. 좌우간 나를 찬미해 줘.」
「나는 당신을 찬미합니다.」 왕자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뭐 그리 재미가 있나요?」
그리고는 왕자는 그곳을 떠났다.
『정말 어른들이란 별나단 말이야.』이렇게 생각하면서 왕자는 여행을 계속했다.
그 다음 별에는 술고래가 살고 있었다. 이 별의 방문은 잠시 동안이었지만, 왕자는 무척 실망하였다.
「거기서 뭘 하고 있지요?」왕자는 술고래에게 물었다. 술고래는 빈 병과 술이 가득찬 병들을 앞에 수북이 늘어놓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술을 마시고 있지.」술고래는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술을 마시지요?」왕자가 물었다.
「잊어버리려고 마시는 거야.」술고래가 대답했다.
「무엇을 잊으려고 하세요?」왕자는 물었다. 그는 벌써 그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잊는 거야.」술고래는 교수대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말했다.
「무엇이 부끄러워요?」어린 왕자는 그를 도와 주고 싶어 계속 물었다.
「술 마시는 것이 부끄럽지!」술고래는 이 말을 끝으로 하고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래서 왕자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곳을 떠났다.
「어른들이란 정말로 이상하단 말이야.」그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여행을 계속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