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 창업주 이야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 토머스 에디슨
좋은 말이다. 하지만 1008번이나 실패한다면
저 말이 생각이 날까?
아마 자살 안하고 살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1008번을 실패한 사람이 있다.
하얀 양복에 검정색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는 할아버지.
바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 프랜차이즈의
창업주 커넬 할랜드 샌더스이다.
그는 1890년에 장남으로 태어나
6살에 아버지를 잃는다.
그래서 그는 홀어머니를 돕기 위해
갖가지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웃의 농장일부터 시작해서
철도, 변호사, 보험사 영업, 페리보트,
미쉐린 타이어 영업 등
파란만장한 이력서를 만들어 간다.
그러던 그는 켄터키 주의 니콜라스빌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파산하고 만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보통 돈을 모으기 시작하는
나이에 파산해 버렸으니 얼마나 허탈했을까.
하지만 그는 그동안 주유소 경영을 통해 얻은
경험 덕분에 새로이 주유소를 개업한다.
그리고 장거리 운전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대접한다.
이때부터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씨가 자라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장거리 운전자들이 많이 들르는 곳에
주유소가 위치하다 보니
샌더스의 음식 서비스는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장거리 손님들을 위해
모텔도 제공한다.
하지만 화재로 인해 그의 레스토랑과 모텔은
한번에 전소되어 버린다. 그의 나이 49세.
그는 2년 후 다시 그리고
더 크게 레스토랑을 개업한다.
레스토랑에 전념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개업 1년 후
그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맛을 완성한다.
'완벽한 맛'의 레시피를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해
레스토랑의 경영이 악화되어
가게를 경매로 넘겼고 결국 파산했다.
그의 나이 66세.
그리고 남은 것이라곤 사회보장금 105달러.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철저히 모든 것을 잃었다.
다시 시작하기엔 돈도 힘도 없던
그는 공원에서 하루종일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맞은편에 행복하게
웃음 짓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난 왜 저 사람들처럼 웃을 수 없지?"
그리고 그는 다시 웃기 위해
마지막 남은 기력을 쏟아 붓는다.
모두들 손가락질했다.
다 늙어서 뭘 할 수 있냐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이곳저곳에서 어렵게 꾼 돈으로
낡은 포드트럭과 압력솥을 하나 사
미국 전역을 다니게 된다.
그에게 남은 단 하나,
‘레시피’를 팔기 위해서였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트럭에서 자고 주유소 화장실에서 면도하며
노력했지만 1008곳이나 되는 식당에서는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고 백 번도 아닌
1000번 이상 거절당한 그의 마음도 지쳐만 갔다.
하지만 그는 결국 해냈다.
1009번의 도전만에 말이다.
힘든 여정 끝에 그는 다시 자신의 이름을 건 음식을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었고
그 레스토랑은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
체인점을 확장시킬 만큼 대성했다.
레스토랑 이름은 바로 KFC(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오늘날 100여 개 나라에 체인점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패스트 푸드점이다.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말은 그저 말일뿐 우린 스스로의 기준에
자신을 가둬두고 ‘늦어서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 핑계를 대곤 한다.
하지만 커넬 샌더스의 일화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일군
신화를 거리에서 마주하곤 한다.
당신의 나이가 65세보다 많은가?
가지고 있는 돈이 105달러보다 적은가?
혹은 1000번 이상 무언가에 도전해 본 적 있는가?
단 하나라도 커넬 샌더스보다 나은 상황이라면
더 이상의 핑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절박함이 없었을 뿐...
커넬 샌더스의 명언
He can do it.
She can do it.
Why not me? Why not me?
Alison Krauss & Union Station - The Lucky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