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레닌 동상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 앞에 세워진 레닌의 동상<사진>은 1917년 4월 그가 바로 이곳에서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열광하는 수많은 노동자, 군인 그리고 농민들 앞에서 연설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상이었다.
오른손을 들어 마치 미래를 제시하는 듯한 그의 자세는 사실 고대 로마의 황제의 동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로마시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조각에서 오른손을 든 제스처는 백성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의미를 가졌다.
개인숭배에 대해 레닌 자신은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혁명 당시 인구의 반 이상이 문맹이었던 러시아에서 그는 시각적 선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특히 동상이나 기념물은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눈길을 끌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공공의 공간에 동상을 세워 기념해야 할 인물 66명의 명단을 제시했는데, 마르크스·엥겔스 외에, 로베스피에르·톨스토이·쇼팽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 생존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또는 포스터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핀란드역의 레닌 조각상은 1926년 제작된 이래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이후 비슷한 스탈린의 동상이 세워졌고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으로 이어지는 등, 주로 사회주의나 전제주의 국가에서 그 전통이 유지되었다.
영원불멸을 강조하기 위해 견고하고 압도적인 규모로 세운 이러한 동상들도 그들의 권력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 또 다른 권력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흐루쇼프 시대에 스탈린의 동상은 파괴되었으며, 핀란드역의 레닌 동상도 작년에 폭탄이 터져 코트의 엉덩이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중국에서도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마오 초상화를 물감으로 얼룩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미술과 권력의 결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정치와 권력의 재현물로 기능하며, 바로 그런 이유로 권력의 이동이나 붕괴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기 때문이다.
현대 서양에서는 개인을 숭배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껴 인물의 이름을 도서관이나 대교 등에 붙여 기념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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