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리더십’을 재평가하는 사람들은 벤투가 과거 한국 축구에선 볼 수 없던 제대로 된 빌드업(상대 압박을 무력화하고 공격을 전개하는 일련의 움직임과 패스 워크)을 강팀들을 상대로 해낸 데 주목한다. 빌드업이 세계 축구의 대세임을 강조하는 전문가들마저 “벤투의 빌드업 철학은 약팀이 많은 아시아에서나 통하지 월드컵에선 안 통한다”며 우려한 바 있지만, 결국 벤투의 뚝심이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거꾸로 고집을 내려놓고 이강인 선수를 조커로 중용해 한국 축구의 희망을 보인 유연성도 호평 대상이다.
인상적인 장면은 또 있었다. 가나전에서 앤서니 테일러 주심이 한국의 마지막 코너킥 기회를 외면하고 경기 종료 휘슬을 불자 벤투는 주심에게 달려가 격렬하게 항의해 퇴장까지 당했다. 이 행동이 경솔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김영권 등 당시 주심을 향해 격렬하게 항의하던 선수들이 경고를 받아 다음 경기에 못 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발휘한 고도의 임기응변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선수에게 향했던 주심의 시선, 카드를 꺼내려는 움직임을 감독 쪽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진실은 벤투만이 알겠지만 그는 일단 기자회견에서 “모든 책임은 (감독인) 나에게 있다”며 선수나 환경 탓을 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들고 온 전술은 ‘빌드업 축구’다. 수비진에서부터 뚜렷한 목표를 가진 패스로 전진하는 방식이다. 문전으로 공을 멀리 보내 승부를 거는 기존의 한국과는 달랐다. 상대가 강할수록 더 높은 완성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월드컵에서는 상대적인 약팀인 한국이 수비 위주로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지만, 벤투 감독은 결국 대표팀의 체질을 바꿔 16강 진출을 일궈냈다.
2001년 1월 부임한 히딩크 감독은 18개월 동안 ‘압박 축구’를 한국에 이식했다. 수비는 수비수만 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위치와 상관없이 공을 가진 상대 선수를 포위하는 전술로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다.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53) 감독은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을 이끈 외국인 감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2018년 8월 사령탑에 올라 4년 3개월이나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체계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공격에 힘을 싣는 ‘빌드업 축구’의 뚜렷한 철학을 심었다는 평가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선 수비, 후 역습’이 대표적인 전술이었다. 실제로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의 공 점유율은 37%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들고 온 ‘빌드업’ 축구는 이를 바꿔 놓았다. 문전으로 공을 멀리 보내 승부를 거는 방식이 아닌, 우리 진영에서부터 패스로 공격 주도권을 갖고 조금씩 전진하는 것이다. ‘개인 기량이 뛰어난 팀과 겨루는 월드컵에선 수비 위주로 임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했지만 벤투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약팀을 상대로 치른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본선 직전 강팀을 상대로 한 평가전에서도 변함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만의 방식으로 16강 진출을 일궈내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대표팀의 공 점유율은 48.7%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