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22>] 미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나서 한국이 2003년 12월 쇠고기수입을 중단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타결을 위한 4대 선결조건의 하나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키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검역과정에서 갈비뼈가 상자채로 발견되고 위험물질인 척추까지 검출되는 소동이 반복됐다. 그래서 2007년 10월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이 중단된 상태였다.
정권이 바뀌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미국에 가서 그 빗장을 모두 풀어버렸다. SRM(광우병특정위험물질)을 제외하고는 연령제한 없이 모든 부위를 수입하도록 문을 활짝 연 것이다. 광우병의 잠복기간은 소의 경우 3년이라 수입기준을 출생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로 제한했는데 그것을 풀었다.
광우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세력이 쏟아내는 말이 너무 천박하고 저급하기 짝이 없었다. 값싸고 질 좋을 고기를 먹게 됐다, 광우병이 무서우면 먹지 마라, 구제역과 달라 전염병이 아니다, 96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 3억 미국인은 물론이고 미국교포나 유학생이 먹어도 뒤탈이 없다, 미국 가서 햄버거 실컷 먹고 나서 딴소리한다는 따위가 그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질병의 위험성이다. 국민들은 값을 따지는 게 아니었다. 국민건강을 지켜야 할 정부가 검역주권을 포기한 데 대한 불만과 광우병에 대한 공포를 토로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선결조건으로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사실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FTA와 무관하다니, 뚱딴지같은 소리도 늘어놓았다.
집권세력은 96개국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먹는데 왜 시끄럽게 떠드느냐는 식으로 나왔다. 한국 등 7개국이 90% 이상 수입하고 나머지 국가는 수입실적이 미미하다. 멕시코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이지만 30개월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같은 체결국이지만 캐나다는 광우병 발병국가라 완전개방이다. 일본은 2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로 제한하고 대만, 이집트, 홍콩도 미국산은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로 제한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무차별적으로 개방했다. 생후 30개월 미만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햄, 소시지 같은 가공품까지 포함해서 수입을 허용했다. 소는 20개월간 키우면 성우가 된다. 육우라면 사료 값을 많이 들여 더 오래 키울 이유가 없다. 30개월 이상은 젖소가 아니면 씨받이 암소라 고기질이 나쁘다. 그 까닭에 미국 사람들은 주로 20개월 미만 송아지고기(veal)를 먹는다.
2008년 5월 청계천에서 여중생들이 처음 들었던 촛불의 물결은 국민의 분노를 태우며 꺼질 줄 몰랐다. 장대비에도 도심 곳곳으로 번져 서울의 밤을 밝혔다. 어린 여학생들이 촛불을 들었던 그 자리를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가족, 연인, 친구끼리 손을 잡고 채웠다. 청와대롤 향해 미친 소를 반대하던 함성이 독재타도, 정권퇴진이란 반향을 일으키며 전국에 메아리쳤다. 촛불저항이 시민불복종운동으로 승화되어 민주주의의 새 장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방방곡곡에서 벌어졌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2년에도 미국에서 네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되면서 다시 촛불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은 2012년 5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촉구 시위. ⓒ프레시안(최형락)
민의를 조롱한 이명박 정부의 설익은 정책들
촛불저항은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잉태되었다.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며 국민을 너무 당혹하게 만들었다. '강부자', '고소영'으로 이어지는 무자격자-무능력자의 인사파동은 국민에게 절망감을 안겨줬다. 공직자로서는 허물투성이들이건만 'best of best'(최고 중의 최고)라는 말로 덮어버렸다. 거기에는 민의를 조롱하는 독선만 있었을 뿐이다.
집권세력이 쏟아내는 말, 말, 말이 너무 어지럽더니 숱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국민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 게 아니다. 일본처럼 광우병 위험성이 적은 살코기만 사먹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미국 축산업자를 두둔하는 소리만 골라서 내뱉었다. 그것도 국민건강을 걱정하는 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했다.
미친 소를 감싸는 허튼소리를 이 입, 저 입이 늘어놓더니 국민을 뿔나게 만들었다. 광우병 쇠고기뿐이었다면 촛불이 들불처럼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운하만 해도 환경재앙을 염려하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한다' '안 한다', '물류'가 아니고 '관광'이다, '운하'가 아니고 '치수'이다, '정부주도 사업이다' '아니다' 등등 수시로 말을 뒤집었다. 그것도 모자라 국민을 계몽하려고 들었다.
정부의 중요한 기능은 국민의 이익과 직결된 공적기능의 수행이다. 민간영역에 맡기기에는 투자규모가 크고 공공적 성격이 강한 분야를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다. 보건, 철도, 전기, 수도, 도로, 항만, 가스, 방송, 금융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막대한 국민세금을 투입해서 기반시설을 확충한다. 그런데 국민적 논의도 없이 민영화하겠다며 난리였다.
민영화의 본래 뜻은 사유화(privatization)이다. 국민의 재산인 공적영역을 돈 몇 푼 받고 거대자본-외국자본에 넘기겠다는 소리다. 이명박 정권은 잇단 실정을 소통부족으로 치부했다. 언론 탓이라며 언론장악을 노골적으로 획책했다. 군사독재 시절을 떠올리는 언론통제술을 동원했던 것이다.
민심이반이 촛불저항을 불렀다. 그런데 배후세력을 척결한다며 좌파니 반미로 몰아갔다. 경찰은 비폭력 시위에 물대포, 군홧발, 방패 찍기로 대응하며 야만성과 폭력성을 자랑했다. 폭력경찰의 행태도 군사정권과 판박이로 닮았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명동성당에 지도부가 있었다. 촛불집회에는 딱히 지도부랄 조직도 없었고 누가 누구한테 지시할 수도 없었다. 포털사이트 토론방 '아고라'에서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며 촛불을 들었다.
운동 가요는 없었고 해학과 풍자가 넘쳐났다. 젊은 엄마들의 유모차 부대, 예비군 병장들의 호위에 김밥부대도 등장했다. 주류언론에 대한 불신이 인터넷 생중계,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1인 미디어를 불렀다. 거리시위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누리꾼들이 집에서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댓글을 달며 사이버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