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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들은 제가 2013년 한 해동안 "홀씨"카페에 올렸던 글을 옮겨왔습니다.
책이야기 # 3=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유홍준- 2011.9(창비)
먼저 이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이하 답사기)가 내 글쓰기 주제인 자연과 생태에 관한 책과의 연관성에 대해 변명해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제 1세대 아니 답사의 원조 해설가이신 유홍준 교수님 명성을 이 나라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분이기에 굳이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을 것 이다.
그의 첫 <답사기 –남도 답사 일 번지>이후 다섯 권의 <답사기>가 연이어 나오고 우리가 다 아는 공직(문화재청장)과 전공인 미술사 강의에다 저술로 거의 지난 10 여 년간 출간이 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차 지난 2011년 공직을 물러난 후 다시 상아탑으로 돌아가 답사기 후속편 <인생도처유고수>라는 부제를 달고 6편이 드디어 나왔다. 나는 지난 시간동안 후속편을 속으로 은근히 기다려오고 있었기에 얼른 <답사기 6편>을 구입했다.
참 저자는 이 6편이 영화나 연속극의 속편 개념이 아니라 <시즌 2>의 새로운 출발로 시작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6편의 내용은 경복궁 이야기가 무게 중심에 있었고. 내가 오로지 정호승 시인의 시 한편을 읽고 단박에 달려가서 울고 온 “선암사” 이야기며 점입가경이랄까 그가 공직을 물러난 후 5도2촌(일주일에 5일은 도시 생활 2일은 농촌생활)할 요량으로 부여 반교리에 휴휴당(休休堂)이란 자그마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거나, 장날이나 쉬는 날, 가까이 있는 무량사 사하촌 길거리에서 관광객을 맞아 산나물 들나물 몇 무더기를 펴놓고 파는 촌로들과의 자연에 관한 대화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본인 말로는 식물에 관한한 전공 밖의 일이니 잘 모른다고는 하나, 그는 분명 식물, 특히 야생식물의 마니아 이상 수준의 학자인 것을 나는 알았다. 그가 이끄는 학생들에게 늘 왜 풀과 나무의 이름을 알아야 하는가의 이유를 소상히 말하고 있다.
내가 이 대목을 읽을 때, 그래 우리 숲 공부 하는 사람도 필독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굳었다. 그 후 <답사기 6권>이 나오고 일 년도 채 안된 사이 <답사기 7권-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 연이어 나왔다. 부제가 예시하듯 이번에는 제주도 답사기이다. 물론 나는 즉시 구해서 밤새워 열독하고 있는데, 마지막 쪽을 덮을 무렵에 나와 창경궁에서 5.6년을 <궁궐지킴이>로 함께 봉사하던 한 처자가 먼 전화 목소리로 자기 제주도로 시집가게 됐는데 나를 “인사차 먼저 만나 뵙겠다.” 는 연락이 왔다. 즉시 읽던 책을 들고 나가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너 제주사람 될 것인데 이 책 그 제주사람 될 정보가 들어 있으니 숙독하고 제주에 귀화(歸化)해서 예쁘게 잘 살아라”는 말과 함께 넘겨줬다.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서점을 들려 새로 또 한권 사서 눈에, 가슴에, 머리에 긴장을 넣어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
이 책<답사기 7>은 유홍준 교수가 동서 길이 73km, 남북 길이 31km의 타원형의 섬. 제주도를 수 십 번 드나든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모두 15편으로 구성, 완성한 것이다. 그가 이 책을 낸 동기로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출가한 여제자의 독촉 같은 성화 즉 시댁 어른들을 모시고 제주여행 다닐 때 꼭 알고 봐야할 곳을 쉽게 설명하게 하기 위한 답사자료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 허씨> (여기서 제주 허 씨는 제주도 여행 가서 빌려 타는 렌터카 차 번호판에 “허”자가 있기에 제주도 여행객을 의미한다.)를 위해서 썼다고 한다. 참 절묘한 작명이다.
즉 집필 동기가 제주도 여행자를 위한 것임을 밝혀 놨다. 제주도 하면 머리에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그 범위는 몇 손가락 안에 다 들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를 표현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구는 “하늘과 바람이 사랑한 섬”이라하고. 누구는 “바다와 산이 있어 아름다운 그 섬”이니 –
그 앞서 교과서에서 배운 것 같이. 삼다삼무(三多三無) 즉 세 가지가 많고 (이것은 다 안다.) 삼무 (세 가지가 없다. 도둑과 대문과 거지) 의 섬, 게다가 유 교수님은 삼보(三寶)의 섬, 즉 세 가지 보물이 있는 섬이라고 했다.
여기서 삼보란 제주의 독특한 “자연과 민속과 언어”를 말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제주는 자연의 보고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공인된 1) 세계 7대 자연 경관. 2)UNESCO 생물권 보전지구. 3) UNESCO세계자연유산. 4) 세계 지질공원 등으로 지정 된 보물섬이다.
나는 지금까지 제주 섬을 두 번 다녀왔다. 첫 번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 내가 현직 교사로 있으면서 당시 구로공단 단지 내의 공장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졸 혹은 고졸 졸업장이 없는 불우한 근로 청소년들이 많이 일하고 있었는데 공단 관계자와 뜻있는 교사들이 모여 야학을 열고 있었다. 나는 그 중고등부에 7년간 야간 봉사활동으로 과학 과목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학생들은 학구열이 대단했다. 하여 공단본부에서 여러 해 동안 선생님들이 수고했다고 겨울 방학 때 한번 제주도 여행을 시켜준 적이 있는데 거기에 묻어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를 봤다. 이때는 단체로 깃발아래 몰려다니느라고 그저 겉핥기식 인증사진 찍은 일만 기억난다.
물론 그 전이나 지금이나 신혼여행지로 제주도가 인기 좋았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림의 떡. 우리 내외는 결혼식 끝나고 내가 고3때 담임선생님이시던 윤선생님께서 김천여고에 근무하심을 확인 하고 김천 황악산 직지사 사하촌에서 하루 묵고 이튿날 준비해간 곽에든 하얀 와이셔츠 하나 달랑 들고 선생님을 뵈온 것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197.80년 당시 제주도 신혼여행은 부잣집 자식이 아니고서는 언감생심 이였다. 내가 두 번째로 제주도에 입도 한 때는 2004년 이른 봄. 진짜 관광 이였다. 그것도 아내와 둘이서 — 여행사에서 파는 관광상품이 아니라 마침 내 딸아이가 여행사에 근무하고, 하나뿐인 아들 녀석도 잘나가고 있던 당시. 내가 극구 물리친 회갑잔치 행사를 거부한 몇 년 지난 뒤였다, 3박4일의 짧지 않는 기간에 사전 정밀한 계획아래, 제주 1급 가이드와 함께 그야말로 <제주 허씨>의 신세를 지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제주의 풍광을 봤다. 물론 여행 일체의 경비는 내 아들 딸들이 다 사전 알아서 해결 했었지.
그 때 내가 해외로 가지 않고 제주도를 택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나는 필생과업으로 우리나라 <마을숲>에 관하여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하여 모 출판사와 구두계약하고 2002년부터 연속 4년을 남한 땅 곳곳의 마을숲을 찾아 조사 기록하여 우리나라의 <마을숲>의 소중함을 알리고 농촌사회의 붕괴로 소멸되어 가는 소중한 생태유산인 마을숲을 기록 보존할 생각에 몰두 할 때 이였다.
남한 육지의 오래되고 이름난 마을숲은 거의 다 보고 거듭 봤으나. 그 때까지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곳이 바로 <제주도의 마을숲>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작업은 내 능력, 노력, 정력 부족으로 지금까지 미완으로 남았다.
따라서 이번 <답사기 7>은 그 당시 내가 본 제주도의 여러 지역의 생태들, 예를 들면 산천단의 곰솔. 곳자왈. 사려니 숲. 산군부리. 성산 일출봉. 섶코지가는 길 유채꽃이며. 비자림. 여미지식물원을 비롯한 수많은 색다른 식물원. 그 외에 난대림 가로수. 해안의 담팔수들과 들과 길가의 삼나무 숲. 등등을 실감나게 회상하고 확인 할 수 있는 책이다.
한국 사람으로 제주공항에 첫발을 내리는 분은 이국풍 정서에 약간은 취하게 된다. 우선 가로수에서 그렇다. 육지에서는 온실에서나 볼 수 있는 워신톤야자며. 계절이 늦가을부터 이른 봄이면 찻길 가에서 반겨주는 빨간 작은 열매 달린 나무. 우리는 그 나무에 의문을 던진다. 흔히 먼 나무? 먼 나무야! 나무이름이 먼나무. 아하, 그 나무 열매가 <사랑의 열매> 모델이라 했지. 그리고 이 나무는? 이나무 이다!
제주 이야기에서 한라산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두 번 제주도에 갔으나 한 번도 그 영산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오른 적이 없다. 갈 때 마다 이번에는 꼭 오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은 있었지만 모두 무산. 지난번 두 번째 행보 때는 성판악에서 중간까지라도 오를 생각 이였으나 기상악화로 출입금지 당하고 말았다. 나는 이번 이 <답사기 7>을 읽고 한라산 등정의 백미는 윗세오름코스 중에 <영실> 이란 것을 알았고 영실의 신묘한 해설과 사진을 보고 다시 내 밧켓 리스트에 한 항목 적어 넣었다. 영실의 그 장관이란-
몇 해 전부터 제주 올레길 걷기가 대 유행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정상정복 만을 위해 경쟁하듯 앞사람 엉덩이만 바라보고 오르는 일에서 벗어나 좀 천천히 그리고 생각하고 좌우도 바라보고 느끼고 하는 평지걷기 모드로 바뀌는 것 같다. 내 주위에도 제주 올레 몇 번 코스를 했느니 다음에는 몇 번 코스다 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굳이 올레길에 관한 코스 설명은 없으나. 이름난 자연과 역사문화의 현장에는 그 올레길이 겹쳐서 소상히 철저히 소개하고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숲을 공부하는 사람 또는 숲이야기꾼. 숲을 스토리텔링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내공이 학사, 석사, 그리고 박사 수준보다도 윗층인 잡사(雜士)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소위 전천후 전방위 해설 꾼으로 배경지식을 다져놔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이미 학스리가 말한 명구. Know, something of everything. everything of something!(모든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어느 정도에 대해 모든 것도 알아야 한다.)로 말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 “전설이 유물을 만나면 현실적 실체감을 얻게 되고 . 유물이 전설을 만나면 스토리텔링을 갖추게 된다.”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서 나는 “유물”이란 단어를 “숲”과 대치 해본다. 즉 <전설이 숲을 만나면 현실적 실체감을 얻게 되고 숲이 전설을 만나면 스토리텔링을 갖추게 된다.> 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와 전설이 아우러져 있는 제주 이야기를 읽음으로서 우리의 자질을 한 층 더 업 그레이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 제주도 지도를 펼쳐놓고 곳곳의 자연명소와 인고 발자취 서린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몇 가지를 염려하고 있다.
일찍이 프랑스 문필가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은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라며 숲을 지키지 못하면 문명도 옳게 지탱할 수 없다는 이 경구가 나를 편찮게 한다. 지금 제주 지도에 너무 많은 인공조형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의 파괴를 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는 날로 심각하여 지금 한반도의 남쪽 땅에 제주도에만 있던 난대 생물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주도 자체의 난대 생물상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를 어찌하나? 때문에 우리 반도 안의 숲 꾼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이 책에 있는 난대 생물상을 미리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우리나라 특산 <구상나무>에 대하여 재미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189쪽) 사실 나무 이름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 구상나무의 이름을 볼 때마다. 엉뚱한 단어 구상근육(球狀筋肉)이 장난스럽게 떠오른다.
내 풋시절 말놀음 심하게 할 때 우리는 kiss란 무엇인가? 하고 여러 방면으로 따져 본적이 있다. 우선 품사로는 “접촉사” 이고,“어린이는 뽀뽀뽀(반드시 3번)”, “젊은이는 뽀뽀(두 번)” 유식한 사람의 한자로는 “접순(接脣 이때 순자는 입술 순).” 사자성어로는 “설왕설래(說往說來가 아니라 舌往舌來),” 북한에서는 “조딍이 박치기”. 수학선생님은 “입술합동”그리고 인체과학 연구소에서는 “구상근육(球狀筋肉)의 수축상태에서의 구조학적(構造學的) 병렬(竝列)”-
아 얼마나 현학적 예술적 표현인가? 우리의 입술 근육은 특이하게 공처럼 둥근 조직을 하고 있어 구상근(球狀根)이라 한다. 처음 나는 구상나무의 구자가 그 솔방울이 둥그니까 둥근 뜻이 있는 구 球자 일거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구상나무의 구상은 제주방언. 아니 지금은 제주어로 통일 됐다니 제주어로 ”쿳살“에서 유래된 거라 전한다. 쿳살은 제주어로 ”성게“를 뜻하는데 나무 잎이나 열매 모양이 성게 닮아서 성게 닮은 나무 즉 ”쿳살나무“에서 ”구상나무“로 변한 것이 아닐까하는 설이 전하고 있단다.
ㅡ여기에 내가 또 한 가지 꼭 이 <답사기>를 읽어야 할 이유로, 추사가 9 년 가까이 보낸 제주 유배에 관한 이야기 이다. 추사는 제주에 와서 그의 독득한 서체 추사체를 완성하고 적소에서 부인의 부고를 한 달 뒤에나 듣게 된다. 그리고 다성 초의산사와의 교류와 너무나 넓이 알려진 그의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세한도(歲寒圖), 그동안 그 그림의 나무가 무슨 나무 일까 이설도 있었지만 그림 속에 나오는 나무가 “노송 한그루와 곰솔 세 그루라”는 것을 유교수는 밝힌다. 사실 나는 세한도에 나타난 나무가 그저 소나무와 잣나무 일 것 이라는 추측만 했었는데 –.
유 교수는 이 책에서 추사의 제주 유배생활을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듯 소상히 설명하고 있고 그 유배장소인 대정읍 모슬포 뒤편에 유품을 모아 추사기념관을 세우고 그 인연으로 추사기념관 명예 관장 직을 맡고 있다 한다. 아마 지금쯤 추사가 살고 있던 집 귤중옥(橘中屋)이란 당호가 걸린 그 집 담장 너머 귤나무에 봄빛이 피고 있을 것이고, 돌담 아래 양지 편에는 추사가 그리 좋아하던 수선화가 금잔옥대(金盞玉臺) 혹은 은잔옥대(銀盞玉臺)를 내밀고 있을 것이다. 추사는 수선화를 유달리 귀하게 생각했는데 유배지 제주에 와서 보니 그 수선화가 잡초취급당하고 있어 가축먹이로 쓰거나 짓밟아 버리는 골치 아픈 풀로 치부되고 있음을 알고 가슴 아파 했었다.
사물은 있을 자리에 있지 못하면 아무리 귀한 것도 그저 보잘 것 없는 물건 취급을 당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리라.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연일 메스 콤에서는 남도의 봄을 들먹이고, 성급하게 성산포 앞바다에서는 제주 해녀의 물질에서 봄이 묻어오고 있음을 보여주며, 섶코지 가는 길 유채 밭에 노란 색. 눈 덮인 한라산자락 어느 지점에 눈 녹이며 피어나는 복수초, 곰보돌, 산담. 밭담사이 하늘하늘 피어나는 수선화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봄바람 봄소식 따라 그야말로 하늘과 바다가 사랑한 섬 제주도를 가 볼 사람이나 사정에 따라 가보지는 못하나. 언젠가는 가볼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그런 분 있으면 부디 이 책 <답사기7>을 꼭 한번 보고 가거나 들고 가길 바란다. 굳이 역사 문화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에 관한 많은 스토리텔링에 풍부한 자료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굳이 여기서 토를 달지 않더라도 우리는 유 교수님의 저 박람강기(博覧强記)를 익혀 알고 그의 필력과 원조 해설가로서의 검증된 저력을 믿기 때문이다. 아마 누구나 이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접을 때는 제주의 넓은 바다와 눈 덮인 한라산. 그리고 쭉쭉 벋은 삼나무 가로와 노란 유채꽃 들판이며, 사려니 숲길의 그윽함과 비자림의 신비함. 크고 작은 오름의 길목에 핀 들꽃들이 가슴속으로 들어 올 것 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은 역사와 문화를 품은 남도 <제주의 생태기행문>임이 틀림없다.
굳이 저자 약력은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다 유홍준 교수는 이미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끝>
첫댓글 꼬옥.. 읽어 볼랍니다^^
저도 제주도의 마을숲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유교수님의 티비인터부내용을 봤습니다...^^
북한에서는 입술박치기라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