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트레일러닝 대회 때문에 지난 목요일 밤에 왔는데 지진 때문에 난리가 났더군요.
대회장은 Sempol이라는 곳인데 지진이 발행한 곳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예정대로 대회는 진행되는데 마음 한쪽으로는 뭔가 심한 미안함이 있습니다..
21키로, 42키로, 70키로, 100키로, 이렇게 4개 종목이 있는데 저야 당연히 100키로 뛰었죠.
대회 참가자 명단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는데, 제가 지금까지 같이 대회를 뛰어봤던 영국의 Harry, 이탈리아의 Alessandro, 일본의Tomohiro와 Hisashi 등의 최상위급 선수들은 참가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대신 필리핀,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에서 잘 뛰는 선수들이 참가를 했지만, 어쨌든 이번 대회는 열심히 뛰면 5위 안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작년 우승자의 기록이 16시간 59분이었으니까 일단 목표는 18시간 언더로~
대회 시작시간이 밤 12시인 줄 알고 11시 넘어서 숙소에서 나가서 대회장 도착, 짐 맡기고 도넛 사먹고 있는데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리고... ㅋㅋ 완전 바보같죠?
갑자기 후다닥 뛰어들어가서 선수 대열에 합류하고 초반부터 선두와 멀어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쫓아갔습니다.
작은 언덕과 개울을 건너고 조금씩 경사가 심해지더니 갑자기 절벽같은 산으로 올라가는데 선두 불빛은 벌써 한참 위에서 잠깐씩 보이더군요.
어쨌든 일단 최선을 다해서 거리를 줄여보자 생각하고 한 명씩 잡아가며 꾸준히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같이 가기 시작한 프랑스선수 Laurent... 작년에도 참가했었다는데 체력도 좋아 보이고 페이스 조절도 상당히 잘하더군요.
오늘의 우승자는 필리핀 선수가 될거라는 등... 간간히 얘기를 나누면서 거의 대회 전체 레이스를 같이 했습니다.
약 35km쯤의 보급소를 앞두고 밤안개 속에서 길을 헤매던 선수들 몇 명을 만났는데 다행히 제가 GPX 루트를 따라 가고 있어서 이 선수들을 끌고 보급소까지 도착을 했는데 같이 올라간 선수가 1위로 리드하던 필리핀 선수였더군요. 그땐 몰랐습니다.
보급소에 제가 좋아하는 코코넛 음료와 바나나를 실컷 먹는 사이에 프랑스의 Laurent와 필리핀의 Rexell은 먼저 출발하고, 뒤를 보니 저 아래에서 아직도 안개속에 갖혀서 길을 헤매는 선수들의 불빛이 보이더군요.
제 헤드램프를 비추며 소리질러서 방향을 잡아주고 출발하니 벌써 앞 선수들은 보이지 않고…
보급소에 있던 사람이 알려준 방향으로 한참을 가다가 표지판을 보니까 42km와 21km만 적혀있어서 GPX를 봤더니 경로이탈… 이런 젠장 보급소 사람들이 100km 와 다른 종목의 코스가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아요.
아직 초중반이라 1km 정도의 알바는 경기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꾸준히 경기에 집중했습니다.
50km를 지나 이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Ijen 화산의 정상을 찍으러 올라가는데 정말 수많은 관광객들이 파이팅을 외쳐줘서 나름 수월하게 올라갔습니다.
정상이 멀지 않다는 것 알았을 즈음에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선수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역시 필리핀의 Rexell이 선두, 두 번째는 인도네시아의 Suparmin, 그 다음으로 프랑스의 Laurent가 빠른 속도로 다운을 하고 있더군요. 줄줄이 인사를 하며 선두와의 거리를 보니 대충 1km가 조금 넘는 것 같았습니다.
앞 선수들과의 거리는 확인을 했고, 뒤에 따라오는 선수들과의 거리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정상을 내려오면서 제 다음 순위의 선수를 확인해보니 중국의 Zhong Liu인데 쉽게 볼 선수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 선수와의 거리는 약 1.5km라 20km 이내에 순위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고, 그 이후의 선수는 3km 이상의 거리니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순위가 바뀌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선두를 쫓아가려면 다운에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여야 하는데 슬슬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군요.
걸어서 내려가기도 힘든 산을 내리 쏘니까 아까 올라올 때 파이팅을 외쳐주던 관광객들이 길을 비켜주며 많이 놀라더군요.
다행히 앞에 뛰어 내려간 선수들이 있어서 제가 내려올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어물쩡하다가는 5위 선수에게 잡힐 것 같아서 더 열심히 다운을 했는데, 일단 화장실을 들려서 급한 볼일을 보고… 그 사이에 5위 선수가 지나갔을까 아직 안 지나갔을까 생각하며 다시 부지런히 뛰어봅니다.
이제 60km를 지났으니 조금 더 경기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앞으로 20km가 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구간입니다.
꾸준히 가다보니 선두와의 거리가 조금 좁혀졌는지, 70km 보급소에서 2위로 가던 인도네시아 선수를 만났습니다. 순위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싶어서 물만 채우고 바로 출발.
75km 쯤의 작은 산을 올라가는데 약 200m 위에서 1위로 가던 필리핀 선수와 2위 프랑스 선수가 같이 올라가는 것이 보이길래 다시 필 받고~ 고고고~
결국 이 선수들을 그 산의 다운에서 잡았습니다.
1~3위가 한 팩이 되어버렸는데, 1위 선수가 쉬어가는 상황이고 2, 3위 선수가 무리해서 쫓아왔다면 곧 다시 벌어질테고, 1위 선수가 지친 상황이라면 끝까지 해볼만한 상황인거죠.
일단 제가 내려오던 탄력과 페이스를 유지하며 앞장서서 다운을 하니까 프랑스 선수는 바짝 붙어오는데 필리핀 선수는 점점 떨어지더군요.
필리핀 선수가 좀 지쳐보이기는 했지만 이미 입상경력 때문에 제법 알려져 있기도 했고 그냥봐도 예사로운 선수가 아니라서 왜 따라붙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5키로쯤 더 가서 보급소에 있는데, 이미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필리핀 선수가 나타나더니 보급을 하지않고 빠른 속도로 우리를 지나쳐 가더군요.
"음... 역시 나랑은 레벨이 다르구나. 저 친구 따라갈 생각은 일단 접자"라고 생각하며 다시 가파른 산을 올랐습니다.
이곳 산들이 대부분 가파른 흙산인데 지나치게 건조하고 푸석푸석해서 올라갈 때 쉽게 미끄러지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상당합니다. 그런데 보급소를 하나 건너뛴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각오를 하고 2위와의 거리차를 확실히 하려고 하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인지라... 제가 우려했던 상황이 생겼더군요.
필리핀 선수가 작정하고 프랑스선수와 나를 떼어내려고 한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 산의 중반도 오르지 못하고 그늘에 앉아있었습니다. 이미 물도 떨어진 상태에서 버티고 버티다 결국 주저앉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남은 거리가 약 15km 정도이고 이 친구의 표정은 거의 탈진 상태라 다시 회복해서 치고 오지는 못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어쨌든 상당히 측은해 보이는 이 친구에게 물을 좀 나눠주고 프랑스 선수랑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우승에 대한 계산을 시작합니다. 나란히 가서 1, 2위를 하는 것은 싫었거든요.
프랑스 선수도 우승을 의식했던지 몇 번을 치고 나가는데 제가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다시 붙어서 가니까 더 무리하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단 한 번의 브레이크 어웨이를 성공해서 프랑스 선수를 확실하게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오르고 있었는데, 마침 그 산의 정상에 올라서 길게 늘어져있는 능선을 보니까 딱 여기다 싶더군요.
예상되는 남은 거리가 약 13km니까 더 늦으면 기회도 없겠다 싶었습니다.
프랑스 선수에게 "안 뛸꺼야?"라고 물었더니 "난 조금만 더 걸을께"라고 대답을 하길래 "천천히 따라와"하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신사적인 브레이크 어웨이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7분 페이스 정도... 곧 6분 페이스... 그리고 5분 중반으로 올려서 뛰다가 뒤를 보니까 약 2~300미터 뒤에서 프랑스 선수도 뛰기 시작하더군요.
500m 이내의 거리차라면 쉽게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죽을만큼 뛰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라고 속으로 계속 소리를 질러가며 약 5키로 정도를 뛰었습니다.
남은 거리가 13km니까 1km만 벌려놓으면 절대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다운이 끝나고 그 산과 다음 산의 이어지는 곳까지 내려오니 보급소가 나타났습니다.
순간 다시 초특급 계산을 했습니다.
나에게 남아있는 물이 약 500미리 정도... 이걸로 마지막 산의 정상까지 3km를 올라가야 하는데 가능할까... 여기서 보급하다가 자칫 프랑스 선수를 만나다면 브레이크 어웨이가 실패로 돌아가는데 어쩌지?..
일단 견뎌보기로 작정하고 보급소를 지나쳐서 그냥 올라갔습니다.
제 나이가 52세... 이번에 우승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전혀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같이 뛰던 프랑스 선수가 지난 보급소에서 마지막 산이 가장 힘들다며 걱정을 했었는데, 저도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더군요.
정상이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물은 떨어지고... 하지만 심리적 저지선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 산의 정상까지 딱 한 모금은 끝까지 남겨뒀습니다. 그것마저도 없으면 불안감 때문에 패닉에 빠지기 쉽거든요.
그렇게 정상까지 올라서 마지막 보급을 하고 약 7키로의 다운을 끝으로 경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끝까지 해낸 제가 자랑스럽더군요.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챔피언"이라며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사진도 찍고... 짧은 인터뷰도 하고... 완전 생소한 경험이었습니다.
총 거리는 약 105키로, 상승합계가 약 4200미터.. 예상대로 프랑스 선수는 약 20분쯤 후에 2위로골인~
85km쯤에서 헤어졌던 필리핀 선수는 결국 마지막 산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70km 지점에서 따돌렸던 인도네시아 선수가 3위로 들어오면서 알려주더군요.
기존의 대회기록이 16시간 59분 51초였고, 저의 기록이 16시간 46분 44초로 약 13분의 대회기록 갱신을 했으니 나름 대단히 성공한 레이스였습니다.
아마도 3주 전에 뛴 일본의 하쿠바 트레일 50km 대회, 그 다음주에 여의도에서 뛴 하프마라톤, 그리고 인터벌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 것이 스피드와 거리에 대한 자신감, 전체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울트라 트레일런 100km 종목은 많은 변수들 때문에 70km 이후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70km 이후에도 멘탈을 확실히 잡고 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이번 경기에서 확실히 배웠습니다.
대회 관계자, 자원봉사자, 같이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 그리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해외 트레일대회 열심히 다니더니 실력도 일취월장하는구나. 많이많이 축하해^^
마니 축하혀~
축하하네! 남다른 클래스! 일간스포츠같읜 신문에 특필해야되는거 아닌가 ㅎㅎㅎ
조성식 만세이^^
대한합니다...축하합니다
달리는 내내 재미있으셨겠어요~^^
국제대회 1등 축하드립니다~
츄카츄카
역시 숨은 실력자! 억수로 축하하고 회복 잘 하시게나. 힘!
와우~~정말 대단합니다~~
일철의 자랑거리가 아닌 대한민국의 자랑거리네요~~수고많았습니다^^
선장 대단하네.... 축하해~~^^~
대한민국 만세다
정말 축하한다.
열심히 하니까 기회가 오는구나 마지막 스퍼트는 상대방을 제끼는거 잘 회복하고 이제 국제적인 선수라 견제가 심하겠네
축하드립니다.
이제 국제적인 선수가 되셨네요
회복 잘하세요
와..축하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지난년에는 수술도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모든걸 극복하셨군요.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 드립니다^^
산을 즐기시더니 일인자가 되셨네요~ 추카드립니다~^^
우와~~!
요즘 계속 산만 달리드니 드디어 한건했네
축하합니다~~^^
선배 대단하십니다.
올림픽 금메달급입니다. 축하드려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결같이 꾸준하게 열정적으로 도전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철인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한 발걸음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대단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넘버원 등극 축하축하~^^~ 회복잘하고 롱런하기 위한 몸관리 잘하삼~ㅎ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즐기시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대단하세요. 트레일런의 최강자시네요.. 축하드립니다~~~
꾸준한 경기경험과 다져온 체력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네. 많이 축하하고 회복잘해서 또다른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네요~.
국제대회 1뜽이라~~
엄청 축하드립니다~~
진짜 평생 기억에 남으시겠어요~~
월드 챔피언 축하해!!
그런데 하나도 낯설지가 않네, ㅋㅋ
꾸준히 대회 참가하고 실력과 기록 향상하더니만, 언젠가 올 날이 이번에 왔네.
이젠 국제 대회 나가면 그 인도네시아 선수 처럼 성식이를 의식하고 그러겠다.
왠지 기분이 더욱 좋을것 같네, ㅋㅋ
무엇보다 그렇게 큰 지진과 쓰나미가 있었는데도 무사히 경기하고 온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네.
진심 축하드립니다.
꾸준히 대회에 참가하시고, 스트라바에도 계속 산을 오르는 기록만 올라오시더니
값진 열매를 수확하셨네요~!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부상을 딛고 세계정상까지!
대단하십니다
와 국제대회에서 1등!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막판에 따돌리고 가실수 있었던 원동력은 출발직전까지 드셨던 도너츠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소식 많이 기대할께요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네요. 축하합니다~^^
한우물 파니까 샘이 솟는군요~~
우승은 최선을 다할때 주어지는 선물같은 것...^^
,축하드립니다!!!
응원과 축하 감사합니다~ 저도 이런 소식 전해드릴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하네요.
와우!
늦게나마 많이 축하해
우승소식 감사^^
와!!~~~ 추카추카 대단해~~
너무오래간만에 방문해서 선배님 후기 읽으니...꾸준함의 결과 느껴지네요.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