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앓이/ 김태유 (2025. 01.)
아직도 동장군 어금니 같은 잔설이 방장산 옆구리를 물고 있다. 겨울 위세도 지쳤는지, 바람에는 풀이 죽은 찬 기운이 맥을 못 춘다. 그렇게 닦달하듯 몰아치던 칼바람에 몸서리치던 벚나무 가지엔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린다.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꽃망울은 아지랑이 올라오면 울음이 터지리라. 누워 있던 마른 풀잎을 뚫고 파랗게 올라오는 새순들, 이리저리 치이는 묵은 해를 보낸 풀들이 쓸쓸하며 애처롭다. 밟으면 와삭하고 부서질 낙엽도 이제 곧 태어날 아기 잎새를 보려는 듯 잔뜩 웅크리고 있다. 그렇게 땅이 열리는 봄 소리에 열다섯 소년의 봄 앓이가 재발한다.
고등학교 입학을 얼마 앞두고 난 산등성이 두 개를 넘어 가출했다. 거머리같이 달라붙던 가난, 위로 형 둘, 누나 둘, 아래로 여동생 둘 나는 다섯째였다. 아버지와 형들 그리고 내 밥엔 그래도 하얀 쌀이 드문드문 박혀 있지만, 어머니와 누나들 여동생들은 보리밥에 고구마가 촘촘히 들어 있던 시절. 일찌감치 큰형은 머슴으로 작은형은 서울로 도망쳐 석유풍로 외판으로 나갔고, 누님 둘 또한 방직 공장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아들 하나는 건져 볼 요량이었던 아버지는 입학을 앞두고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과 더불어 담배 연기가 방 안에 자욱했다. 농사지을 땅도 없었지만, 농사일에 재주가 없었던 아버지는, 거간꾼으로 논밭 흥정하기, 소 돼지 중개하기, 저수지 물막이 공사하기, 양송이버섯 공장에 볏짚 납품하기 등 어깨와 등에 무거운 걸 올리기 싫어하셨다. 그래도 배포는 크셔서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뒷다리 하나는 늘 아버지 차지었다. 그동안 장판 밑에 있던 아버지 비상금을 조금씩 빼내, 베개 한쪽을 터서 숨겨 놓았던 돈을 챙기고 며칠 전 빨아서 널어놓았던 운동화를 신고 어머니는 밭으로 아버지는 삼거리로 자전거 타고 떠나시는 모습에 맞춰 산으로 이어진 울타리를 비집고 집을 나왔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목덜미, 이마에 땀이 차오를 때쯤 뒤돌아보니 맨발로 논에 들어가 볍씨를 뿌리는 동네 아저씨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봄의 문턱에서 정강이에 냉기가 칼날처럼 쑤셔 댈 것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오싹하고 진저리가 처졌다. 걷고 넘고 달려 신작로에 도달하니 허기가 몰려왔다. 아지랑이 피는 산을 뒤로하고 파란 줄이 그어진 합덕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혹여 아버지가 따라올까 봐 연신 뒤를 돌아다보며 마음을 졸였다. 자갈이 튀는 비포장도로를 덜커덩거리며 달려 합덕을 지나 신례원에 도착하여 서부역이 종착지인 기차에 올랐다.
법랑 냄비 테두리 만드는 공장이 나의 첫 직장이었다. 일 한지 얼마 안 되어 사장이 돈 받으러 갔다가 채무자의 손에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는 수 없이 먼저 서울로 올라온 지금은 사돈이 된 친구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해양 측량하는 회사를 소개해 주었다. 직원들 심부름이며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해 주는 사환이었다. 직원들이 퇴근하면 철제 책상 위에 홑이불 한 장으로 발발 떨며 자던 시간이 지금도 악몽처럼 떠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심부름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사장실에서 튀어나왔다. 아버지였다. 망연자실하여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평소에도 웃는 모습과 마음씨 고운 미스 정 누나가 다 들어서 알고 있다는 듯 "왜 그랬어? 아버지 오셨어." 하면서 사장실로 이끌었다. 포마드를 발라 번질번질 윤기 나는 머리칼의 사장님과 물색 한복에 중절모를 쓴 아버지는 보기만 해도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분위기를 어떻게 구워삶아 놓았는지 두 분 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파안대소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선 돼지 한 마리를 사 줄 테니 길러서 새끼를 내고, 그걸 팔아서 송아지를 사고, 그걸 팔면 학자금 걱정은 없을 게 다 그렇게 해서 내년에는 학교에 가자. 시골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아버지는 침이 마르도록 설득하였고 난 설득당하고 말았다. 한 달이 되었는데도 돼지는 고사하고 병아리 한 마리 들여놓지 못했던 아버지, 난 두 번째 가출하였고 돈을 벌어 이듬해 기어이 교복을 입었다.
봄이 되면 가슴이 뛰고 울렁거리며 속이 메슥거린다. 마치 상사병을 앓는 사내처럼 말이다. 아지랑이라도 피는 들녘을 보노라면 숨이 가빠진다. 후암동에 있던 측량회사 철제 책상 위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자던 생각에 소스라쳐 잠이 깨기도 한다. 모내기 끝난 초록 바다 논두렁 위를 자전거타고 무섭게 달려오는 아버지의 환영에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일어나곤 한다. 나에게 봄은 소년의 어린 뼈 마디마디마다 지워지지 않는 두려움을 깊숙이 새겨 놨나 보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 벌써부터 침이 마른다.
첫댓글 김태유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어려운 시절을 건너오셨군요.
글을 쓰면서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부족한 이야기를 이렇게 올려 주시니 쑥스럽고 어색합니다.
오 십년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몰랐습니다. 더듬어 찾은 추억에 체증 하나를 덜어냈습니다. 이번에 주신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더욱 전진하겠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답답하여 진땀이 납니다. 아울러 첫 댓글을 보내주신 홍윤선 선생님 존함은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운산 김태유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허기진 배움은 저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학사.석사.박사과정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긴 여행 마치고 평온을 즐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허기진 배움에 울컥해집니다. 회장님의 형설지공 여정이 그려 지는듯합니다.
따스한 마음으로 용기 주심에 감사드리고
반가운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김태유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15살 어린 소년의 봄앓이에 제 마음도 저려옵니다. 산등성이 두개를 넘을때 그 마음이 어땠을지 노란색을 즐겨입어 병아리라는 별명을가졌다는 선생님의 밝은 표정에서 누가 감히 잿빛 시절을 상상이나 하였을까요.
첫작품을 ‘봄앓이’로 그동안의 속앓이를 털어내셨으니 가슴속 깊이 웅크리고 있던 응어리 하나를 덜어내셨습니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진솔하고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축복 가득하시길 빕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먼저 선물 같은 댓글 남겨 주신 피희순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드립니다. (꾸벅)
따스한 말한마디, 또는 글 한 줄에 용기와 희망을 봅니다. 옷장 가득한 노란 옷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다짐도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노란색 옷은 나를 붙잡아주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병아리란 별명도 참 좋아합니다. 성장하면서 붉은색으로 갈색으로 흰색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대가 있으니까요. 저에게 주신 덕담과 격려는 마음한곳에 소중하게 새겨놓겠습니다. 기죽지 말고 힘찬 날갯짓으로 봄바람 같은 훈풍을 일으키라는 명령으로 알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드립니다. 늘 강건하시고 활짝 웃으며 만날 그날을 손꼽아 헤아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구름 베고 누운 산, 운산 선생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역경은 극복하는데 묘미가 있고 스릴이 있겠지요.
지난한 시간들을 부끄러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글로 풀어내니 얼마나 좋아요
좋은 글 많이 많이 기대합니다.
새해 첫날 하늘에서 선녀님들이 부지런히 눈을 퍼붓습니다.
펄펄 날리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데 부회장님의 후덕함이, 쌓이는 눈보다 더 넓고 높습니다.
고맙습니다.
축하는 언제나 마음을 달뜨게 합니다.
양쪽 입술을 귀밑까지 끌어당기는 힘이 발휘되고
눈은 반짝이고 심장은 쿵쿵 뜁니다.
이 에너지를 모아 바람개비 들고 벌판을 달리는 소년이 되어 보겠습니다.
용기와 격려를 아낌없이 주시는 그 모습 본받아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태유 선생님, 신인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살아오신 사연의 넓이 깊이만큼 풀어낼 글도 많겠지요? 절실함을 이길 장사는 없다네요. 앞으로 작가로서의 행보도 기대가 됩니다. 건필 건승을 기원합니다!
곱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주시는 축하의 꿈이 오늘에야 이루어지네요.
고맙습니다.
돌아보면 아득한 산과 두려운 바다를 어떻게 넘고 건너서 왔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순탄한 삶이 아니었기에 주저하면서 망설였는데
어느 날 “부끄러움을 벗어 던지라”는 말이 죽비처럼 어깨에 닿았습니다.
용기보다 만용을 앞세우고 한 걸음 내딛습니다.
도와주실 부회장님의 별처럼 빛나는 지지의 눈빛을 보면서 걸어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깊은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