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바위능선의 칼바위(575m)
왜 산에 오르나? 겨울 등반에서 얻는 수확은 무엇인가? 우리는 삶에서 비롯하는 그 어떤 문
제도 풀지 못했다. 하지만 삶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얻고 돌아왔다. 우리는 각자 나름
대로, 쌩떽쥐뻬리가 말했던 바를 잠시 동안이나마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역경을 거쳐 쟁취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아트 데이비슨, 『마이너스 148°』에서
▶ 산행일시 : 2014년 1월 25일(토), 비, 안개
▶ 산행거리 : 도상 18.6㎞
▶ 산행시간 : 9시간 31분
▶ 교 통 편 : 전철과 버스 이용
▶ 시간별 구간
06 : 55 - 우이동, 도선사 입구 버스정류장, 산행시작
07 : 09 - 육모정공원지킴터
07 : 38 - 육모정고개
08 : 30 - 영봉(靈峰, 604m)
09 : 25 - 백운산장
09 : 45 - 백운대(836.5m)
10 : 33 - 용암문(龍岩門)
10 : 48 - 시단봉(柴丹峰, 592m), 동장대
11 : 46 - 659m봉, 대남문
11 : 53 - 청수동 암문
12 : 30 ~ 12 : 50 - 사모바위(紗帽--), 점심, 응봉능선으로 감
13 : 25 - 응봉(매봉, 333m)
13 : 53 - 진관사(津寬寺), 북한산 둘레길로 감
14 : 28 - 기자촌공원지킴터
14 : 56 - 406m봉
15 : 15 - 향림당(향림사지)
15 : 43 - 향로봉(香爐峰, 535m)
16 : 18 - 비봉탐방지원센터
16 : 26 - 구기동 이북오도청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 대남문 가는 길, 맨 왼쪽의 보현봉은 안개에 가렸다
▶ 영봉(靈峰, 604m), 백운대(836.5m)
이른 아침 7호선 중계역 1번 출구 26m 전방 버스정류장에서 탄 지선 1166번 버스는 내 자가
용이나 진배없다. 버스는 1호선 창동역 들려 두 사람 동승하여 도봉산 자락 방학동 돌아 우이
동으로 간다. 도선사 입구에 내려 가로등 밝힌 우이령길 대로로 간다. 북한산 둘레길 우이령
구간을 지나기 위해서는 아직도 사전 예약해야 한다.
왼쪽으로 도원사 굿당 가는 ┫자 갈림길 지나 바로 철조망 둘러친 육모정공원지킴터가 나오
고, 철조망문 안으로 들어가 탐방객수 세는 계수기 통과하여 산속 소로로 간다. 날이 아직 이
른데다 흐려서인지 숲속은 더 어둡다. 으스름한 눈빛(雪光)으로 간다. 너덜길. 빙판과 바위를
분간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엎어질 뻔하였다.
오른쪽으로 신검사(神劍寺) 가는 ┣자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욕심을 버린 우리의 마음은 모
두가 행복해집니다.” 신검사에서 내건 플래카드가 어째 시주를 독려하는 걸로 읽힌다. 등로
가 비로 쓸려있더라니 용덕사 절집으로 잘못 들어갔다. 용덕사 개 두 마리가 산골짜기 쩌렁쩌
렁 울리게 염불한다.
등로 주변의 눈 덮인 기암괴석이 어둠 속에서는 무서우리만치 기괴하게 보인다. Y자 계곡 가
운데 얇은 능선을 오른다. 가파른 돌계단을 갈지자로 휘돌다 데크계단 오르면 육모정고개 쉼
터다. 이제 등로는 얼음 언 바위 슬랩을 무시로 지나야 할 것. 아이젠 찬다. 얼음에 박히는 아
이젠 발톱의 쾌음을 감각하며 성큼성큼 나아간다.
날씨가 푹해도 산에는 눈으로 내릴 줄 알았던 비가 산에도 비로 내린다. 어슴푸레한 시야가
점차 트일 것 같더니 일순 안개가 몰려와 훼방한다. 안개 속을 간다.
자연공원법 제28조가 전가의 보도다. 지능선과 골짜기마다 출입금지 팻말을 달았다. “국립공
원 특별보호구역, 출입금지, 위반 시 과태료 50만원 부과(자연공원법 28조)”
어느 등산객이 2008.6.7. 지리산 중봉에서 하봉 구간을 산행하다가 적발되어 산청군수로부터
50만원의 과태료 부과처분을 받자 법원에 차례로 이의제기, 항고, 재항고, 위헌법률제청신청
을 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어 마지막 수단인 위헌소원심판을 청구하였는데 헌법재판소 또한
위헌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 공원관리청이 자연공원의 보호나 훼손된 자연의 회복 또는 공원 탐방객의 안전 등을 위
하여 출입금지 등을 정한 지역에서 그 금지 등을 위반하여 출입한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
항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출입금지지역에 출입한 법 위반자들에 대하여 과태료의
제재를 부과함으로써 출입금지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출입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수단
의 적합성 또한 인정된다.
또한 공원 탐방객의 출입금지지역에의 출입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 사건 법률조
항이 적용되지 않는 점, (…) 공원 탐방객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더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고(…)”(전원재판부 2010헌바99, 2012.2.23.)
토치카가 있는 503m봉은 암봉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크게 돌아 넘는다. 헬기장 지나고 다시
암봉. 슬랩이 엷게 얼음 코팅한 빙판이라 철주와 쇠줄 잡고 오르는 것이 철봉에 매달린 턱걸
이 다름 아니다. 오늘은 경점마다 막막하다. 이 암봉을 내릴 때는 오른쪽 홀더 없는 슬랩으로
트래버스 하는 것보다 밧줄 잡고 직하로 내리는 편이 낫다.
안개 속 등로의 빙판을 골라 딛다보니 영봉이다. 만천만지한 안개다. 벼르고 새벽을 도와 영
봉을 오른 뜻은 겨울 눈 쌓인 인수봉의 아침은 또 어떤 장려일까 보려함인데 틀렸다. 그래도
그냥 물러서기는 너무 아쉬워 20분 넘게 서성거렸으나 안개가 걷히기는커녕 더 짙어진다. 영
봉에서 너덜길 0.2㎞ 내리면 하루재다.
도선사 쪽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만난다. 무언의 순례자들이다. 인수암 삽살개는 등산객이 돌
담 넘어 자기를 꼬나보면 짐짓 딴청부리다 눈길 돌리면 막 짖어댄다. 너덜 계곡길이 걷기 좋
다. 울퉁불퉁하던 너덜은 얼음과 눈으로 평평하게 골라졌다. 슬랩 가로지르는 데크계단 오르
고 계곡 빙판길 잠깐 지나다가 가파른 사면 한 피치 오르면 백운산장이다. 한적하다.
내쳐 간다. 오른쪽으로 숨은벽 또는 밤골 가는 갈림길에서 이제는 망설이지 않는다. 지난가을
과 초겨울에 그 골을 누볐었다. 위문.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지만 백운대에 오르면 혹시나 일
진광풍이라도 불어 조망이 트이지 않을까 하는 요행심이 생긴다. 바윗길 철주와 쇠줄에는 빗
물이 흥건하여 장갑이 당해낼 수가 없다. 백운대도 무중이다. 커피 한 잔 타 마시고 내린다.
2. 영봉 가는 길의 왼쪽 지능선
3. 영봉 자락
4. 영봉 가는 길의 왼쪽 지능선
5. 영봉 가는 길의 왼쪽 지능선
6. 인수봉 자락
7. 백운산장
8. 대동문, 비가 내리니 등산객들이 문루에서 쉬고 있다
9. 칼바위(575m), 정상에 등산객이 보인다
10. 지나온 성곽길, 맨 왼쪽이 시단봉(동장대)
11. 형제봉
12. 보국문 지나서 조망처인 615m봉
13. 대남문 가는 길
14. 청수동 암문
▶ 응봉능선, 진관사(津寬寺)
위문 지나 만경대 사면 도는 등로가 겨울산의 험로다. 장갑은 다 소진했고 맨손으로 쇠줄 움
켜쥐자니 모리스 에르족의 짝에 버금가겠다. 노적봉 직전 안부에서 길은 풀린다. 양지쪽 등로
는 더러 엉망진창이다. 용암봉과 만경대 경점인 일출봉은 우회한다. 용암문 지나 동장대가 있
는 시단봉. 새해 해맞이 명소라고 한다.
비가 제법 모양내어 내린다. 많은 등산객들이 대동문 문루에서 휴식하고 있다. 우산 받치고
간다. 칼바위능선 갈림길인 580m봉에서 잠시 시야가 트였다가 이내 감감해진다. ╋자 갈림
길 안부인 대성문. 직진한다. 지척의 보현봉도 안개에 가렸다. 대남문 문루는 장날처럼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문수봉 오른다는 것이 청승이다 싶어 우회하여 청수동 암문으로 돌아 넘
는다.
산행에 왕도는 없다. 청수동 암문 내리는 너덜길이 만만하지 않다.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아이
젠이 버거워하는 빙판이다. 능선에 들어 허리 편다. 석문 지나고 승가봉 넘어 사모바위. 소나
무 숲속 암반에 자리 잡고 휴식 겸해 점심 먹는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타프 치고 빗소리 들으
며 도란도란 담소 나누는 정경은 보기에도 좋다.
응봉능선으로 간다. 진관사에서 둘레길 따라 불광역으로 갈 계획이다. 등로는 바윗길이거나
소나무 숲길이다. 바윗길 암봉 오르내릴 때에는 쇠줄의 빗물 쓰느라 양손이 꽁꽁 얼고, 소나
무 숲길에서 녹인다. 능선은 금방 숨이 끊어질 듯하면서도 길게 이어지다 응봉(매봉, 333m)을
솟구쳐 놓고 급격히 맥을 다한다. 해탈문에 들어 진관사로 간다.
진관사는 예로부터 동 불암사, 남 삼막사, 북 승가사와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아
왔다고 한다. 대찰이다. 전통사찰음식 맛보게 하는 건물 짓는다고 어수선하다. 중정식(中庭
式) 가람배치의 왼쪽 나가원(那迦院) 현판과 주련이 눈길을 끈다. ‘부처님 계신 곳’이라는 뜻
인 那迦院은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의 글씨라고 한다.
나가원 주련이다. 절집 다른 주련보다 불가의 냄새가 적게 난다.
細推今舊事堪忍 고금의 세상사 살펴보노라니
貴賤同歸一土邱 귀천을 가림 없이 모두 흙으로 돌아갔네
梁武玉堂塵已沒 양무제의 화려한 궁궐도 이미 티끌이 되었고
石崇金谷水空海 석숭의 황금덩이도 빈 바다의 물거품이 되었네
光陰乍曉仍還夕 시간은 잠깐 새벽이었다가 곧 저녁이 되고
草木纔春卽到秋 초목은 겨우 봄인 듯싶더니 문득 가을
處世若無豪末善 세상 살아감에 작은 일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死歸何物答冥候 장차 죽어서 염라대왕에게 무엇으로 대답할까
15. 사모바위
16. 응봉능선 초입에 있는 암릉길의 소나무
17. 응봉능선의 나무뿌리 드러난 등로
18. 진관사 나가원(那迦院)의 멋들어진 글씨의 현판
19. 진관사 대웅전 뒤편의 소나무숲
▶ 향림당, 향로봉(香爐峰, 535m)
해탈문, 일주문 나와 북한산 둘레길로 간다. 은평 늪지 둔덕의 보호수인 느티나무군을 둘러보
며 동네길 대로를 따르다 산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산을 간다. 기자촌공원지킴터 직전 갈림길
에서다. 날이 개는지 해가 나고 전에 보지 못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암봉이 언뜻 보
인다. 갈등이 인다. 고질병통이 도진다. 발걸음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둘레길을 버리고 자석
에 이끌리듯 암봉을 향한다.
그렇게 나를 유인하고서 안개는 칙칙하게 다시 드리운다. 암릉을 간다. 날이 맑다면 비경일
암릉이다. 슬랩에는 시멘트를 발라 발판을 만들어 놓았다. 소나무 숲길 지나 너럭바위가 나온
다. 엄청 넓다. 나는 아직 이처럼 너른 바위를 본 적이 없다. 그간 내가 북한산을 알 만큼 다녔
다고 자부했는데 허투루 다녔구나 자책한다. 406m봉 오르는 능선이다.
406m봉 정상에서 갈 길 몰라 사방 쑤셔보다 절벽에 막혀 유일한 출구인 동진하여 내리고 ╋
자 갈림길 안부다. 직진은 향로봉 0.7㎞. 왼쪽은 진관공원지킴터 1.8㎞. 오른쪽은 향림사지(향
림당) 0.5㎞. 향림사지를 경유하여도 향로봉을 오르는 길이 있으리라. 향림사지 탐방하러 간
다. 방금 오른 406m봉을 왼쪽 사면으로 돌아내린다. 평평하고 널찍한 잣나무숲이 향림사지
다. 주춧돌이 주변에 널려 있다.
왼쪽 골짜기로 더 내려가자 장대한 절집 축대가 나온다. 향림사가 대찰이었다. ╋자 갈림길.
직진은 산허리 돌아 족두리봉으로 가고 왼쪽이 향로봉으로 간다. 가파른 너덜길 심산유곡이
다. 어쩌다 등산객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만 들려 둘러보고 환청이 아닌가 흠칫한다. 빗물 섞인
땀으로 범벅하여 능선마루에 오르고 곧 향로봉이다.
날이 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만 내려가자! 비봉 가기 전 ├자 갈림길 안부에서 비봉탐방
지원센터로 내린다. 가파른 너덜 사면 뚝뚝 떨어져 내린다. 탕춘대성, 상명대 갈림길에서 금
선사 목탁소리에 흐트러질 뻔한 맘 다잡고 금선사 쪽으로 간다. 금선사 갈림길 지나고 목정굴
계류에 내려 낯 씻으며 산행을 마감한다.
20. 기자촌공원지킴터 직전에서 바라본 암봉, 저 암봉에 혹해 북한산 둘레길을 버리고 향로
봉을 올랐다
21. 향로봉 가는 길이 소나무숲길
22. 팥배나무 열매, 406m봉 정상에서
23. 향림사지(향림당)의 잣나무숲
24. 향림사지(향림당) 축대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