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거의 무감각해질 정도로 숱하게 들어온 바다. 최근에 나온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 조사’ 결과는 이전의 위기론을 확인시켜 주면서 그 논의를
더욱 강화시키게 되었다. 지난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급성장했던 한국 교회가 교인의 감소 현상을 보였다는 것은, 가히 한국 교회의 ‘위기
담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천주교 신자는 295만 명에서 219만 5천 명이 늘어나 514만여 명에 이른
74.4%의 급성장을 이룬데 반하여, 개신교는 876만 명에서 14만 4천명이 줄어 861만 육천 명으로 1.6% 감소했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인구 구성비 6.6%에서 10.9%로 늘어나고 개신교는 19.7%에서 18.3%로 줄어들었다. 지난날 개신교 교인의 수가 부풀려졌던 것인지에
대한 더욱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어떻든 그 수치를 놓고 보면 한국 개신교회의 위기 담론을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통계청의 수치에 걸쳐 있는 한국 교회의 ‘성장 위기론’에 더하여, 아니 그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늘의 한국 교회가 다가오는 미래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겠는가 하는 ‘본질 위기론’이다. 앞의 것과 뒤의 것이 연결되어 있기는 하되, 깊이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국 교회의 본질
문제에 시선을 돌려 그 문제를 뜯어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관심은 다만 어제 오늘에 나온 것이 아니다. 교회 안팎에서
간단없이 들어왔던 소리이며 또한 여러 가지로 개진되었던 문제이기도 하다.
아래에서도 바로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우선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어떻게 빚어져 구조화되었는지, 그 삶의 터전을 사회학의 눈으로 분석해 본 다음, 우리 사회의 구조와 변동
과정 속에서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터 잡아 왔는지를 풀이하고, 거기에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 교회가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한국 교회가 어떤 문제 상황에 던져져 있는지에 대한
‘자기 이해’이며 ‘자기 분석’이다.
II. <한국 사회의 구조와 변동>
사회학은 언제나 사회
질서와 사회 변동을 주목해 왔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눈여겨보고 탈산업 사회와 정보화 시대를 문제 삼고 시민 사회를 거론한다. 새로운 사회
질서가 떠오르고 사회가 변동하는 기제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 나타나는 기득권 세력과 변동 세력을 예의 주목한다. 사회학자들은 여태 이 끊이지 않는
문제 상황과 씨름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그러한 문제 상황에 들어있다. 급격한 산업화의 결과로 도시화를
겪으면서 농촌은 피폐해졌다. 농촌의 전원 풍경은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거대한 도시가 나타났다.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과 함께 삶의 형태도 바뀌고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는 가족의 형태도 변화를 겪었다. 이에 더하여, 민주화의 변동 과정에도 들어섰다. 자연히 사회 참여를 당연한 권리로
주장하게 되면서 권력의 독점 체제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다 확장 일로를 겪고 있는 지식과 정보의 흐름 속에 들어서 지식과 정보의 공유와
투명성을 요구하기에도 이르고 있다. 변동의 과정은 언제나 혼란과 불안을 낳는다. 피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 변동의 세력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서쪽에서 불어와 동쪽을 휩쓸고 북쪽에서 몰아쳐 남쪽을 강타하기도 한다. 변동은 날로 증폭하여 그
파장은 온 세계를 뒤덮고 있다. 노동 형태의 재구성, 지식과 기술의 오름세, 정보의 소통, 성장과 생태계 파괴,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 온
‘생각의 틀’ 자체를 넘어서려는 여러 생각과 주장, 이러한 것들이 지구 전체를 휘몰아가고 있다. 변동의 세기이며 세기의 변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동의 기제는 사회마다 다르다. 그 기제가 같다면 어느 특정 문화권의 특출한 사회 분석가의 이론에 맞춰 모든
사회의 문제 상황을 진단하고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다르다. 역사와 문화 가치를 담아내고 있는 사회 구조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사회가 겪는 변동의 역사 경험은 같을 수 없고 그 기제 또한 다르기 마련이다. 여기에 그 사회 나름의 문제에
맞닥뜨려야 하는 사회 분석가의 섬세한 투시력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변동 기제는 어떠했으며 그 역사의 경험은 또
어떠했는가? 이에 대한 논의는 여러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 가운데서 역사 사회학의 눈으로 풀이하고자 하는 분석의 내용을 짧게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우리 사회의 변화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서구의 근대화와 경제 발전은 전근대의 사회 구조를 근본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변형의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근대화라고 했던 경제 발전은 전래의 사회 구조를 근본에서 허물어뜨리지 않고 이를
조정-원용하여 온존시켜 온 변동의 과정이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으면서도 우리는 전래하는 가족 중심의 의식 세계를
지켜 왔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의식을 효과 있게 동원하여 경제 성장을 부추기고 경제 발전을 도모했던 것이다. 이 의식 세계를 자극하여 ‘우리
집안이 잘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집집마다 나누어 가지도록 경쟁 동기를 유발시켰으며, 실제로 그것은 우리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매우
유효하였다. 우리가 이룩한 경제 성장의 이야기는 이러한 기제로 풀이되어야 할 것이었다. 집안을 단위로 하여 집안을 위하여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를 불어넣어 경제의 부를 추구하고 획득하도록 행동 지향성을 몰아붙였다. 가족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가족주의’ 또는 회사와 같은
조직체를 가족으로 유추하는 ‘유사 가족주의’라는 의식 세계였다. 이 힘이 우리가 추종하고 신앙했던 ‘조국 근대화’라는 경제 성장 과정의
밑바탕이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모든 것을 경제의 잣대로 재고자 하는 ‘경제주의’와 한통속이 되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우리 사회의 변동을
추동해 온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면 우리의 모습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층 건물이 들어선 서울의 모습은
뉴욕과 런던과 파리와 버금할 정도다. 그러나 친분 관계를 중시하며 그 테두리 안의 친밀성을 강조하고 신뢰 관계를 그 밖으로 확장하지 못하여
좀처럼 좁다란 의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 지향성은 견고한 전래의 친분 관계의 틀을 허물어뜨리고 그
도시에 어울리는 도시민의 의식을 일궈온 다른 나라의 도시 사람들과 같지 않다. 우리의 경우 특정 도시에 살면서도 사사로운 친분성을 뛰어넘는
‘도시민’의 의식 세계를 갖지 못하고 전래의 친분 관계에 집착하는 ‘가족’ 또는 ‘유사 가족’의 의식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 밖으로 나타나는
근대의 모습과는 달리 사회 구성원의 행동 지향성은 전래하는 의식의 틀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말이다. 서구와는 달리 우리의 사회 변동은
이러한 ‘친분 중심의 의식’ 세계 안에서 일어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베버의 표현으로, ‘친족의 사슬’을 깬 서구의 역사 경험과는 달리
‘친족의 사슬’ 그 안에서 사회 변동을 이룩해 온 특이한 역사 경험인 셈이다.
III. <한국
교회의 실체>
바로 이러한 한국 사회의 구조 속에 한국 교회가 터 잡고 있다. 한국 교회도 우리 사회의 구조 밑에 들어서
있으며 그 구조화 과정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변동의 과정에 어떻게 대응하고 그 과정에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는 역사 사회학자들에게 실로
흥미 있는 관심거리로 다가온다.
지난 역사의 질곡에서 개신교는 우리 사회의 변혁 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그 일에 만만찮은 기여도
하고 지울 수 없는 업적도 남겼다. 그것은 다만 역사의 우연이 아니라 개신교가 지니고 있는 ‘변형의 능력’ 때문이었다. 개신교 지향성은 세속
질서에 대하여 언제나 긴장을 자아내는 변형의 가능성을 뿜어내기 마련이다. 기존하는 질서가 어떤 것이든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여겨 절대화할 수
없는 초월의 변형 지향성을 구체화하여 실행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사회의 온갖 습속에 도전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제사라는
가족 중심의 종교 의례도 타파하고 신분의 칸막이를 부수고 한문 중심의 의식 세계도 허물어뜨렸다는 것은 다만 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초기의 한국
교회는 이러한 변형 지향성을 표상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조직체를 가리켰다.
그런데 자기 사회를 향한 기독교의 ‘변형 지향성’과
에너지는 일제 강탈기에 접어들어 겨레 해방의 반일독립 운동에 투입되면서 잠시 멈춰버리고 말았다. 말하자면, 전래의 사회 구조와 의식 세계를
변혁코자 했던 그 변형의 과제가 중도에서 정지해버린 것이다. ‘가족주의’를 종교 차원에서 표상해 온 조상 숭배의 제사 의례를 부술 수 있었던 그
강력한 변형의 능력이 반일 독립 운동의 의식 세계 그 밑으로 들어가 사그라지게 된 상황이 되었다. 그 상황에서 광복을 맞았다. 깊은 수준에서
처리되지 않은 전래의 가치 지향성 위에, 산업화의 물결이 휩쓸고 들어온 것이다. 앞에서 말한 ‘가족주의’ 또는 ‘유사 가족주의’에 터한 경제
성장의 과정이 전개되었던 배경이다.
알다시피 군부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조국 근대화의 경제 성장 이념은 어렵지 않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호응과 지지를 획득하였다. 광복은 했으되 남과 북으로 두 동강이 나고 이어 터진 전쟁으로 궁핍할 대로 궁핍한 상황에서도 정치의
민주화를 지키고자 했고, 그것이 반공의 유일한 방패였던 시대가 있었다. ‘빵보다 자유!’ 라는 구호가 호소력을 행사했던 민주화의 맹아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이 집권하고, 이 구호의 앞뒤는 바뀌고야 만다. ‘자유보다 빵!’이 등장한 것이다. 더욱 강렬한 호소력을 행사하게 된
구호였다. 우리 사회 전체가 바야흐로 경제 성장을 가장 높은 가치로 치켜세워 자유와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는 일단 접어두고 모두가 ‘성장의
목표’를 향하여 일사분란하게 행진코자 했다.
여기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절대의 자리로 올라서고 궁극의 가치처럼 받아들이게 된
‘조국 근대화’는 차라리 종교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교회는 이 경제 성장이라는 신앙(?) 운동에 어떠한 긴장도 느끼지 않았으며, 당연히
어떠한 반론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운동에 합세하였다. 교회는 성장 종교의 동조자이자 협력자였다. ‘조국 근대화’의 깃발이 약속해 주는
풍요로운 땅을 향해 국가와 교회가 손을 맞잡은 것이다. 둘 사이에 이견이란 있을 수 없었다. 같은 목표, 같은 뜻을 지향하고 있었다. 교회마다
물질의 풍요와 여유를 갈구하고 마침내 그것이 거의 유일한 ‘축복’으로 여기는 열렬한 신앙이 넘쳐나고, 모든 것을 물량의 잣대로 재는 것을
당연시하는 의식의 세계를 고착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목회의 성공이라는 것도 양과 수치로 가름하고 교회의 권위마저도 수량의 크기로 판단케
되었다. 소용돌이치는 경제 성장의 물결에 한국 교회가 여지없이 휩쓸려들었다. 물질의 풍요를 일차의 관심과 가치로 삼는 ‘경제주의’의 세력에
교회가 ‘식민화’되어버린 것이다.
경제주의의 지배 밑에 들면 모든 것을 경제의 가치로 바라보고 모든 것을 경제 논리와 경제 잣대로
풀이코자 하기 때문에 그 밖의 것은 언제나 부차의 것이다. 민주의 가치가 무시되고 인권의 중요성이 짓밟혀도 그것들은 경제 우선의 가치와 논리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심지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의 성장에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할 때라고 일장 설파를 한다. 그렇게 우리의 경제
성장이 전개되었고,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교회가 성장해 왔다. 교회의 성장은 그러한 경제 성장의 절대화 과정과 동행해온 역사의 산물이었다.
마치 천민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듯이 ‘천민 기독교’를 이야기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좁다란 자기 집안의 이익과 치부를 위하여 집안의
테두리 넘어 더욱 넓은 삶의 세계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는 이기성에 뿌리내린, 그 일그러진 탈선 자본주의의 행태가 교회 속에도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의 윤리성을 묻지 않는 행동 지향성이 사회 구석구석에 들어와 있고, 물질 획득에 집착하는 물량주의에 모든 사회 영역이
침식되고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오늘의 우리 사회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전래하는 좁다란
‘가족주의’ 또는 ‘유사가족주의’의 틀 안에 갇혀 교회도 좀처럼 그 너머 이웃 일반에 대한 넓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좁은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행동 지향성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자체의 좁다란 울타리 너머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러 있다. 자기 교회의 울타리 너머 다른
교회와 협력하고 다른 교단과 연합하는 일이 어렵기만 하다. 좁은 친밀성이 끄는 의식의 세계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든 것을 물질의
획득과 물질 향유의 맥락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경제주의’가 합류하여 좁다란 교회 조직체의 물량화를 더욱 부채질 하여 교회의 부흥과 성공이 바로
개교회의 수량화와 그 크기로 이해하고자 하는 천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실로 역설이다.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해코자 하는
교회가 좁다란 집단의 이익과 경제 논리의 늪에 빠져 모든 것을 좁은 이해관계와 물량의 잣대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교회의 관심이 자기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감금되어 있고 교회의 활동도 돈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뒤바꾸어, 경제력만 있으면--어떤 목사의 표현으로, ‘자본만
있으면’--자기 교회도 좀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푸념하고, 나아가 물질의 여유가 있으면 어떤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외친다. 물질의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경제주의’의 하수인이요 시녀가 된 것이다. 경제 요인을 우선하는 의식 세계이며 그 세계에 정복당한
자들의 의식 세계이다. 짐짓 비판하고 나오는 저 맑스류의 ‘좌파’ 유물론의 옆자리로 들어선 ‘우파’ 유물론자이다. 바깥 유물론을 공격하면서
‘자기 안’의 유물론은 보려고도 하지 않고 도려내려고도 하지 않는 한국 교회의 위선이다.
IV. <미래를 향한
돌파>
한국 교회가 전래하는 좁다란 ‘가족주의’ 지향성과 오늘에 이르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물질 획득의 ‘경제주의’
지향성을 돌파하지 않고서 새로운 앞날을 약속받겠다고 한다면, 참으로 천박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세상의 잣대가 아닌 교회의 잣대를
가져야 하고, 그 잣대로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가족주의’ 또는 ‘유사가족주의’와 경제주의가 맞장구치며
구조화시켜 놓은 우리 사회의 지배 가치와 이념, 그 밑에 무릎 꿇어온 지난날을 청산할 때가 온 것이다. 그 지배의 틀을 벗어나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 교회는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참으로 만만찮다. 이 두 지향성이 우리 사회에 단단히
진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로 서있기 위해서는 그 구조를 돌파하여 교회의 본질을 되찾아 그것을 지켜가야 한다. ‘교회는
교회이다’. 교회는 좁다란 자기 이익과 물량의 계산에 집착하는 다른 조직체와 성격을 달리한다. 기업체나 관공서와 같은 다른 목적과 존재 이유를
가진 조직체를 흉내 낼 것이 아니다. 교회는 기존하는 사회의 흐름에 동조하여 그것을 옹호하며 유착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비판의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교회와 다른 사회 영역이 유착할 때 교회는 그 특유의 ‘변형 능력’을 잃고 현상 유지의 타성에 빠져 타락의 길로 떨어진다.
개신교 정신은 국가와의 유착도 거부할 뿐더러 특정 정파나 특정 세력과 뒤범벅이 되는 유착과 용해의 자리에 결코 들지 않는다. 교회는 이 모든
것에서 ‘초월’하여 이 모든 것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키고자 한다. 그것이 개신교 전통의
생동력이고 활력소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러하였다. 우선 좁다란 친분 중심의 관계가 아무리 오래되고 아무리
뿌리가 깊다 하더라도, 아니 그것이 아무리 우리의 미풍양속에 속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장을 자아내어야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상전, 여자와 남자가 하나라는 말씀의 위력을 실천해야 했기 때문이다. 말씀은 사회 변형의 능력을 제공해 주는
힘이었기에, 그 힘에 의지하여 교회는 조선 시대의 습속을 도전하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바로 그러한 변형의 능력을 오늘의 교회가 상실해버린
것이다. 나아가, 궁핍하기 이를 데 없는 한말 조선 사회에서도 물질의 부를 내세우기보다는 그 너머, 그것보다 더욱 깊고 더욱 높은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을 널리 펼치는 데 더욱 큰 관심을 쏟아야 했다. 사회 약자들에게 다가갔고 억눌린 자들을 보살피는 새로운 삶의 유형을 만들어
왔다. 한 세기 전 역사를 새롭게 일군 한국의 교회가 이 땅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증인됨이 그렇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형의 능력도 오늘의
교회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전래하는 좁은 가족주의의 뿌리를 도려내지 못했기에 우리의 의식 세계도 좁다란 관심 세계에 묶여 있게
되었으며, 꽉 막힌 개교회주의와 답답한 교파주의의 굳은 담벼락 안에 갇혀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를 온통 휘몰아가고 있는 경제주의에 모두가
굴복했기에 우리의 삶이 물량의 힘에 휘둘리게 되었으며, 교회와 목회의 본질조차 물량화의 맥락에서 뒤틀리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우리의 삶을 왜곡시키고 있는 좁다란 친분주의의 울타리를 걷어치우는 일에 앞장서야 하며, 인간의 삶을 오직 경제의 잣대로
재고 있는 피폐한 경제주의의 틀을 부수는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국 교회가 이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그 극복의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한국 교회에 다시 한번 ‘변형의 능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하고 요청한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구조 속에 터하고 있으면서도 그 구조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긴장의 자원’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누구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질문하지 않는 좁다란 우리 사회의 ‘(유사)가족주의’와 ‘경제주의’를, 한국 교회만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만, 친분의 좁다란 울타리 밖의 이웃한 사람들의 아픔과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자기의 이익 계산과 이익 극대와의 좁은 세계 너머 이웃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살필 수 있는 넓은 공공의 관심 세계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V.
<영성의 목회>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화되기 이전의 목회자는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모든 영역이
목회자의 관심거리이자 목회자가 지도해야 할 항목이었다. 그러나 사회 분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 영역이 여러 갈래도 나누어졌을 뿐만 아니라
구체스런 수준으로부터 일반스런 수준과 층위로 세분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서 목회자는 지난날과 같이 모든 것에 관심을 쏟기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목회자의 관심은 삶의 근본 방향을 설정하는 ‘일반 수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구체 수준’의 문제는 그 영역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분화된 영역의 담당자들이 책임을 지도록 그들에게 맡겨둘 수밖에 없다. 세세한 데 이르기까지 지시하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이고, 이것은 새로운
율법주의의 함정을 파는 일이 된다. 이 점에서 목회자는 ‘세상의 소리’를 대행하여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질문하고 초월할 수 있는
‘말씀의 소리’를 내야 한다. 영성의 차원이란 다름 아닌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일상인들이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현 상태를
두둔하고 정당화할 때 영성의 지도력을 갖춘 목회자라면 언제나 그 ‘현실’ 논리를 질문하여 현 상태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현실’의 경제 상태가 어렵기 때문에 흑인 노예제도를 바꿀 수 없다고 하는 ‘현실’ 논리를 질문했던 것처럼,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민주화와 인권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현실’ 논리를 질문했던 것처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쯤은 훼손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현실’ 논리를 질문하고 있는 것처럼, 영성의 목회자들은 그 완고한 ‘현실’ 논리를 돌파하는 변형의 능력을
행사할 것이다. 영성의 지도력을 지닌 목회자라면 온갖 ‘현실’ 논리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현실의 압력을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마침내 이를
돌파해 나갈 것이다. 그 ‘현실’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의 틀’이며, ‘세상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세상의 틀에 맞춰보고 세상의
논리로 풀이하는 것들을 거꾸로 뒤집어, 하나님 나라의 틀에 맞춰 세상의 틀을 보고 하나님 나라의 논리로 세상의 논리를 비추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성의 사회 신학’이다.
이렇게 하여 한국 교회는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있는 비좁은 의식 세계를 돌파하여, 그
너머의 새로운 삶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자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한국 교회의 과제이며, 거기에 한국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윗글 보다 이글을 먼저 읽었더랬습니다. 사회학자다운 글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저는 박교수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글 속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가족주의'와 '경제중심주의'가 한국교회 위기 불러왔는가이고 , 이것이 교회의 세속화의 주요변인으로 인정 받을 만한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성구 교수의 블로그에 가니 이 글이 있더군요, 교회의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성경으로 판다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 그렇다고 이글이 무용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해 하지마시기를 ... 잘 읽어보고 많이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문제를 특정한 관점으로 환원해서 판단하는 극은 오해와 위험을 불러 오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예. 저도 유명인사이시라는것밖에 모르는데 뉴조기사를 보고 강연원고가 보고싶어서 검색해 찾았습니다. 개신교의 부패(?)문제를 천민기독교라고 부름이 좀 파괴적일수도,사회구조와 교회의 개연성에 대한 설명도 자칫잘못하면 교회가 사회현상의 하나로 치부되는 일이 발생하므로 조심스러운일인데 반하여..이분의 강연은 사회학적인 용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신학적인것으로 보여져서 퍼왔는디, 조금 다른 느낌이신가봅니다.^^
암튼,교회의 원리를 벗어난 물량주의,기복주의,가족주의(집단이기주의)..등등의 개혁과제들과 교회연합까지 언급되어있어 깊이 생각해볼만한 글이고,거기다 생태신학까지 생각해야한다면 우리시대 교회의 고민들은 다 들어있는듯합니다.(민중은 귀한데,민중신학?? 여성은 귀한데,여성신학?? 생태신학도 말입니다.^^)
첫댓글 꼭 읽을 필요가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윗글 보다 이글을 먼저 읽었더랬습니다. 사회학자다운 글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저는 박교수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글 속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가족주의'와 '경제중심주의'가 한국교회 위기 불러왔는가이고 , 이것이 교회의 세속화의 주요변인으로 인정 받을 만한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성구 교수의 블로그에 가니 이 글이 있더군요, 교회의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성경으로 판다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 그렇다고 이글이 무용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해 하지마시기를 ... 잘 읽어보고 많이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문제를 특정한 관점으로 환원해서 판단하는 극은 오해와 위험을 불러 오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이 글이 한목협 수련회에서 강연되었다니.... 의미가 있군요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건가요^^ 요즘 다른 카페에서 논의 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는 것같아 왠지 이 글이 낯설지 않아 보입니다.
예. 저도 유명인사이시라는것밖에 모르는데 뉴조기사를 보고 강연원고가 보고싶어서 검색해 찾았습니다. 개신교의 부패(?)문제를 천민기독교라고 부름이 좀 파괴적일수도,사회구조와 교회의 개연성에 대한 설명도 자칫잘못하면 교회가 사회현상의 하나로 치부되는 일이 발생하므로 조심스러운일인데 반하여..이분의 강연은 사회학적인 용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신학적인것으로 보여져서 퍼왔는디, 조금 다른 느낌이신가봅니다.^^
암튼,교회의 원리를 벗어난 물량주의,기복주의,가족주의(집단이기주의)..등등의 개혁과제들과 교회연합까지 언급되어있어 깊이 생각해볼만한 글이고,거기다 생태신학까지 생각해야한다면 우리시대 교회의 고민들은 다 들어있는듯합니다.(민중은 귀한데,민중신학?? 여성은 귀한데,여성신학?? 생태신학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