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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레위인을 위한 성읍과 들
“그때에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가나안 땅 실로에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우리가 거주할 성읍들과 우리 가축을 위해 그 목초지들을 우리에게 주라 하셨나이다 하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수21:1~45).”
가. 레위인에게 성읍과 들을 분배함
21장은 ‘레위인을 위한 성읍과 들’에 관한 말씀이다. 민수기 35장 2절에 의하면 모세가 레위인들에게 성읍을 주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서 여호수아가 이 땅을 분배하게 되었다. 성읍과 사면의 들인데, 성읍은 거처할 땅이고 들은 가축을 먹일 초지라고 했다. 이것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2천 규빗씩 정방형의 약 1㎢ 되는 지역이다. 이것은 각 지파가 자기 기업 중에서 떼어내서 준 성읍이다. 왜 레위인에게 모든 지파가 자기의 성읍과 들을 분배하여 주었는가?
출애굽기 32장 25절 이하에 보면, 금송아지 사건이 나온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모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던 신이라고 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먹고 마셨다. 그때 모세가 내려와서 진노하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선 사람은 내게로 나오라고 했을 때, 레위 지파가 나왔다. 레위 지파가 우상숭배를 하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진을 깨끗하게 했던 사건이 생겼다. 이 일로 인해서 결국 레위인은 성막봉사를 하는 특별한 지파로 구별되게 되었다.
결국 레위인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운 데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물론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들이지만 레위인들은 제사장 아론을 섬기도록 했다. 직접 성막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바깥에 일들을 도와주도록 명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사장은 스스로 혼자 성막을 봉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나님도 당신 스스로 존재하시지만 당신이 무엇을 하실 때는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
1) 레위인은 성막의 모든 기구들을 지킴
레위인은 아론을 도와서 회막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守直)한다고 했는데, 수직한다는 것은 ‘지키고 간수한다.’는 뜻이다. 성전의 모든 기구들은 전부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금이나 은이나 놋, 제단이나 휘장, 떡상, 향로, 촛대, 등잔, 법궤 등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성분을 묘사하고 있다. 이 성막의 기구들을 수직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성분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했을 때(사43:12참), 여기서 증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자신의 성분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증인이라는 말은 ‘복제’라는 뜻이다. 그 생명과 그 인격을 복제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밀은 대대로 수만 년 동안 계속 복제되어 왔다. 계속 복제되어 왔기 때문에 옛날의 밀이나 지금의 밀이 똑같다. 이것이 증인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배워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증인이 아니고, 그 자신이 복제되어야 증인이 된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성막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성막의 기구를 지켜야 하는 레위인이 만일 없었다면 성막의 기구는 누가 훔쳐갈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 하나님의 성막은 오늘날로서는 교회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참 교회가 어떻게 이 세상 속에 유전되어 나올 것인가? 교회를 지키는 사람에 의해서 유전되어 나온다. 교회의 성분이 없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외형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교회에 다닌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물 위를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도 없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그분의 성분을 모르기 때문에 피상적인 사건을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증인들이 필요했다. 그분 자신의 성분이 없으면 그분 자신을 전할 수가 없다.
나. 레위인에게 성읍과 들을 줌
성막의 기구들을 지키는 직무,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분을 지키는 직무이다. 그것을 보존하는 일이다. 레위인들은 가장 가까운 데서 그 성막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은 자기들의 성읍 중에서 레위인들이 우거해야 할 땅과 들을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성막을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 주어야 한다. 그래서 레위인들을 위해서 자기들의 기업지 중에서 성읍을 나누어 준 것이다.
1) 레위인이 하나님의 기업이 됨
하나님은 만물 중에서 인류를 자기의 기업이 되게 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그 인류가 타락했기 때문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의 기업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이 다시 타락했기 때문에 레위인을 자기 기업이 되게 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자기 기업으로 삼고, 다음에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온 인류를 기업으로 삼고, 결국 온 인류로 하여금 만유를 기업으로 삼기 위해서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소금이다. 그래서 각 지파 속에 다 있어야 된다. 레위인은 한군데만 있으면 안 된다. 소금덩어리가 한군데 뭉쳐 있으면 다른 데는 다 썩어버린다. 소금은 골고루 뿌려놓아야 한다. 생선에 간을 할 때, 소금 한 주먹을 생선 머릿속에 집어넣어 놓으면 머리는 상하지 않겠지만 다른 곳은 상한다. 소금은 고루 뿌려져야 된다. 고루고루 뿌려져야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기업에 레위인이 살도록 했다.
이스라엘은 항상 우상숭배를 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 속에 레위인들을 섞어놓아야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 레위인들은 성막의 기구를 보존하는 사람들이다. 광야에 있을 때는 이것을 매고 다닌 사람들이다. 운반하고 다시 설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성막을 메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대신에 각 지파 속에 끼어 살도록 해놓았다. 이스라엘 전 지역에 골고루 퍼져 살았다.
2) 레위인이 도피성을 주관함
도피성은 레위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있었다. 하나님의 성분을 보존하는 사람들 안에 부지중 살인한 자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도피성을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레위인만이 가지고 있었다. 레위인이 가지고 있는 지역에 하나님의 도피성이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분이 있는 그 사람과 그 세계 속에 부지중 죄 짓는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성분이 있을 때, 부지중 범죄한 사람이 우리를 통해서 구원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도피성이다.
3) 레위인의 성읍이 준비된 후에 안식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을 다 나누고 난 다음에 “땅 나누는 일이 마쳤더라(수19:51).”고 했다. 여기서 다시 도피성과 레위인의 성읍을 택정한 후에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수21:44).”라고 말하고 있다. 차원이 높아졌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나누는 일을 다 했다 하더라도, 도피성과 레위인의 성읍이 없으면 그 땅은 안식할 수 없다. 땅을 다 분배했다 해도 대적은 항상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피성이 준비되고 레위인의 성읍이 준비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거처가 확고하게 정해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것이 결국 세상에 대해서도 안식이 된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안식 되면 우리도 안식이 된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내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어떤 것이 확고하게 정해지면 그때 우리는 분요하던 우리 인생이 평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간단해지고 단순해진다.
우리는 세상 헛된 것에 마음이 팔려서 분요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의 거처로서 안정이 되면, ‘나는 주님밖에는 복이 없구나.’ 이렇게 정해지면 내 인생 자체가 조용해지게 된다. 시끄럽던 사람이 시끄럽지 않게 되고, 복잡하던 사람이 복잡하지 않게 되고, 원망하던 사람이 원망이 없어지게 된다. 슬프던 사람이 슬픔이 없어지게 되고, 괴롭다는 사람이 괴로운 것이 없어지게 된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다 사라지게 되고, 안식과 평안이 오게 된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면에 안식을 주셨다. 그리고 대적이 그들을 당할 자가 없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졌다고 했다(수21:44,45).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처가 확보되고, 그 거처를 지킬 사람이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처로 부름 받았다. 그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 우리는 그의 백성이고 그의 거처이고 그의 신부이고 그의 몸이다. 그렇게 부름 받은 자리에서 우리 인생이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게 된다.
오직 우리는 그의 거처로 있을 때 완전하다. 하나님이 원래 사람을 지으실 때 당신의 거처로 지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거처가 될 때까지 요동한다. 주인을 찾을 때까지 물건은 계속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주인을 제대로 만날 때까지, 제 자리에 올 때까지 사람은 요동할 수밖에 없다. 자기 위치에 오면 그때 사람이 요동함이 없어진다. 우리의 정해진 위치, 그 길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수21:45).” 우리 인생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모든 것이 다 완전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했다. 이것은 자기에게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졌다.
다. 레위인을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임
우리는 레위인으로 부름 받았다. 하나님의 성분을 지킬 자로, 성막의 직무를 수행할 자로, 그리고 성막을 봉사하는 대제사장인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서 부름 받았다. 섬기고 지키고 수직하는 이것이 바로 레위인들의 임무이다. 이 임무가 너무나 귀중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성읍 중에서 가장 좋은 성읍을 골라서 레위인들에게 주어야 했다. 레위인을 자기들 성읍 가운데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자기들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부패하지 않고, 흑암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이 어둠에 빠지지 않는 길이며, 썩지 않는 길이다. 이것을 조금 다르게 말하면, 형제와 함께 거하는 것이 썩지 않고 어둡지 않는 길이다. 그 형제가 레위인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제가 나와 같이 있어서 내가 늘 편안하고 안정이 된다면 세상에 요동할 필요가 없어진다. 왜 그 사람과 있으면 어둡지 않은가? 그가 레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지파도 빼놓지 않고 모든 지파가 자기들의 성읍을 레위인에게 내놓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들이 사는 길이었다. 하나님은 레위인을 골고루 배치해서 없는 데가 없도록 했다. 우리는 따로 떨어져 나가서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도 안 되고, 레위인이 없는 곳에 살아도 안 된다. 우리가 늘 접촉하고 늘 교제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늘 소금과 접촉해야 하고, 늘 빛과 접촉해야 한다.
레위인을 가까이하는 것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레위인을 돌보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왜 레위인을 먹여 살리라고 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레위인이 거기에 있어야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 레위인들은 우상숭배할 때 쫓아가서 칼로 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있어야 자기들이 곁길로 가지 않고 산다. 레위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언제든지 우상숭배를 하면 칼 차고 나갈 사람들이다.
레위인을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우리의 참 레위인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는 것이 바로 복이다. 가까운 곳일수록 빛이 밝다. 소금은 가까이 있을수록 덜 썩는다. 빛 가까운 데 있을수록 덜 어둡다. 멀리 갈수록 위험하다. 변방으로 갈수록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성막을 싸고 있는 것은 레위인들이다. 성막 주변에 있는 것이 복이다. 이 사람들이 기업을 다 받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말씀하신 선한 일이 다 완수되었다고 했다.
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
주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살면, 세상에 나가 산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어둠과 부패에서 우리 자신도 보존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아무 목적 없이 세상에 나가서 자기가 무엇 때문에 있는지 모르고 아무 의식도 없이 살다 보면 세상에 동화되고 만다. 세상에 나갈 때는 정신을 차리고 ‘나는 성막에서 봉사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성막을 지키는 직무를 가진 사람이구나. 나는 레위인이구나.’ 이렇게 알고 세상 속에 들어가면 나는 의식화된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레위인이라는 의식 없이 흐트러져서 산다면 그것은 기독교인일지는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증인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많이 있어도 힘이 없다. 많이 있기는 있지만 아무 힘이 없다. 의식화된 한 사람이 필요하다.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 가거나 직장 속에서 ‘성막을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하는 의식을 가지고 가야 그 사회를 이기는 사람이 된다.
자기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의식이 있어야 한다. 의식을 확실히 가지고 가야 어디를 가더라도 내 몫을 하게 되고, 내 위치를 갖게 된다. 그 환경을 이용해서 내가 어떤 세계를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전혀 그런 의식이 없이 가면 내가 있는 자리까지 다 뺏겨버리게 된다. 교회에 와서 겨우 살다가 또 직장에 가면 도로 마찬가지가 되고 만다.
우리는 레위인으로서의 의식이 필요하다. ‘나는 레위인이다. 나는 성막을 지켜야 할 사람이다. 나는 성막에서 일해야 할 사람이다. 나는 아론 앞에서 수종을 들어야 할 사람이다.’ 이것을 알고 어디를 들어가도 들어가면 비록 나는 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그 땅이 전부 그 한 사람의 것이다. 알고 보면 의식화된 한 사람의 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기 때문에 누군가가 강력하게 이끌면 끌려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레위인이다. 하나님의 성막을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성분을 수호해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거기서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생각할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이다.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인정을 받으면 뭘 하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잘한다 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냥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 속에 간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로 세상에서 인정받으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나는 인정받지 않아도 좋으니 내 멋대로 하겠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비난받으면 그것도 곤란하다. 그 사람도 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좋을 대로 하는 사람이다.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 자신을 거기서 제한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항상 나 자신을 제한하고, 그 사람들에게 제한을 받을 때는 제한을 받아야 하고, 그 사람들에게 내 이익을 포기할 때는 포기해야 한다.
한 가지를 취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할 수도 있고 제한할 수도 있는 그런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 거기서 우리의 영역이 넓어질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그 영역을 넓히지 못하면 그 속에서 나는 저절로 위축되어서 술자리에 가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 도박판에 가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 여기에 가도 별 볼일 없고 저기에 가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된다.
나는 대구교회 나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속에만 가진 사람은 남이 볼 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므로 너무너무 답답해 보인다. 놀려면 확실히 놀거나 끌고 가려면 확실히 끌고 가든지 해야지 노는 것도 아니고 끌고 가는 것도 아니면 뭘 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확 끌어당기거나 아니면 확 끌려가거나 둘 중 하나여야 된다. 사실 가보면 재미가 없다. 마지못해 끌려가서 앉아 있어 봐야 재미가 없다.
우리의 입장을 확실하게 하자. 우리가 그리스도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막의 기구를 지키는 사람으로서의 의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지키는 의식을 가진 사람일 때, 비로소 우리의 성읍을 완전하게 차지하게 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적절한 배정 안에 우리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꼭 필요한 자리에 안배하여 그 성을 지키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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