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서울 올라오다가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에서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다가 대형 카고 트럭에 받혀서 내 차 왼쪽이 부서졌다.
송파구 석촌동 수리센터에서 수리했고, 오늘 오후 7시에 차가 나온단다.
운전하다 사고를 낸 아내한테 차를 언제 인수하느냐고 묻는 내가 무척이나 심기불편했다.
화가 아직도 안 풀렸기에.
15만km도 안 뛰었는데도 하도 많이 수리를 했기에 이제는 그 차를 쳐다보기도 싫다.
지금도 아내는 막내아들한테 남의 차가 와서 살짝 박았다는 식으로 남한테 책임을 돌리고 있었다.
자기가 운전미숙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게 나한테 화나게 한다.
자기반성이 없으니까 숱하게 차를 부딪치고, 고장나게 하는 게 아닐까?
공연히 서울 올라왔다.
아내는 성당 모임에 참석한다고 서둘러서 서울 올라오다가 사고를 냈다.
오늘이 목요일이니 서울 온 지도 나흘째.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기에 나한테는 서울생활이 무척이나 지루하다.
일주일 뒤인 9월 14일이나 15일에는 시골로 내려가야 한다.
9월 16일에 몇 군데의 산에 올라가서 무덤의 풀을 깎아야 한다. 친척들과 함께.
시골에서 머물면서 텃밭 조금 가꿔야겠다는 계획이 있기에 그나마 서울에서 숨을 쉰다.
오늘도 할 일이 없어서 인터넷 카페에 들어와서 남의 글을 읽고, 또 내가 쓴 잡글을 조금 다듬었다.
어떤 날은 글이 무척이나 잘 써지는 날이 있다. 하루에 10건도 더 쓰는 때도 있고, 어떤 날은 1~2편 쓰는 것조차도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오늘은 잘 안 써지는 날이었다.
방금 전 아내는 자동차를 인수받으러 외출했다.
외형은 하도 많이 교체해서 새 차 같으나 속은 걸레처럼 너덜 댈 거다.
나는 쳐다보기도 싫고.
남편인 내가 시력이 약하다는 구실로 아내는 키를 움켜쥐었다. 운전미숙인데도 운전하는 게 적성인 듯 싶다. 이제는 내가 지쳐서 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게 차라리 속이 편하기에.
2.
잡글 쓰는 것도 오늘은 그렇다.
지난 3월 10일 경에 국보카페에 다시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했다.
남의 글을 읽고는 마음에 드는 글에 댓글을 달았으나 이게 무슨 가치가 있으랴? 나한테 생기는 거 아무 것도 없다. 댓글 잘못 달았다고 비난이나 받는 꼬라지가 정말로 안되었다.
나이 일흔 살인 내가 뭐 그리 문학에 조예가 깊다고 남의 글에 댓글 달았을까? 하고 반성한다.
몇몇 사람에 국한했던 댓글도 이제는 자꾸만 시들해진다.
어제 강동구 길동 국보사무실에 들러서 한국 국보문학 9월호를 받아왔다.
식탁 위 컴퓨터 옆에 두고는 이따금 펼쳐 본다.
나는 월간지보다는 봄 가을에 출판하는 '내 마음의 숲'이 훨씬 정이 간다. 왜그런지는 몰라도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것 같아서 그럴 거라고 여기고 싶다.
어제 마광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자살(교살) 소식이 안타까워서, 오늘은 내 책꽂이에서 그의 에세이집 몇 개를 눈여겨보았다. 책 제목만.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등의 제목이 무척이나 그렇다.
아마도 내가 중늙은이라서 더욱 그럴 게다.
오늘은 내 심성이 날카로워졌을까?
'바른 질문 하기'라는 외국 번역책을 꺼냈다. 책은 읽지 않아도 제목만으로도 자꾸만 비판적 사고를 지니고 싶어졌다. 무엇인가 묻고 캐는 듯한 심성이겠다.
3.
지난 5월이던가, 씨알고구마 새 순 몇 개를 잘라서 시골 가져가서 텃밭에 심었다.
서울 아파트 베란다에 올려놓은 화분 가운데에서 씨알고구마 하나를 묻어 둔 화분이 또 나를 속상하게 한다.
이번 9월 초에 시골 다녀왔더니만 씨알고구마 순이 모두 죽었다.
씨알고구마가 지닌 양분을 모두 새 싹, 새 순에만 올렸다는 뜻이고, 정작 본인은 빈 껍질만 남은 채 죽었다.
빈 껍질만 남은 씨알고구마를 쳐다보자니 또 마음이 짠했다. 모든 것을 다 내 준 어미의 형상이다. 빈 껍데기만 남은 흔적, 사체로 남은 씨알고구마를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졌다.
많은 것을 다 자손한테 넘기지 말고, 더러는 양분을 남겨서 자기 몸뚱이도 건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죽는다는 것에 대한 아픔으로 화가 났고 속상했다. 이제는 쳐다보기도 싫어졌으니까.
씨알고구마라고 해서 모두 빈 껍질만 남기고 죽는 것은 아니다.
시골 텃밭에서는 씨알고구마도 1/2쯤은 너끈히 살아서 가을에 새 고구마를 매달기는 한다. 물론 늙은 씨알고구마에 매달린 새 고구마는 품질이 아주 많이 떨어진다.
고구마는 줄기를 잘라서 심는 것이라야 고구마 밑이 크고 탄탄하게 마련이다.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독립해서 자수성가해야만 더욱 성공할 수 있는 이치이다.
어제는 국보문학 사무실에서 문학지를 받아서 무겁게 들고 귀가하면서 잠실 새마을시장을 지나쳤다.
좌판에서는 생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올해 조기재배한 고구마라서 겉이 아주 싱싱하였다.
나는 올해에는 고구마를 시장에서 사다가 먹어야 한다.
내가 봄철에 시골 5일장에서 고구마 순을 사다가 텃밭에 심었으나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와 고구마 두둑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아직 실뿌리도 자리잡지 못했을 터인데도.
지난 7월에 내가 조금 걷어서 새로 두둑에 묻었으나 그 성장세가 아주 불량했다.
이번 8월 말에 시골 내려가 고구마 두둑을 보고는 기대를 깔끔히 접었다.
올해 고구마 맛을 보려면 장에서 사다가 먹는 게 고작일 게다.
고구마는 9월 말부터 캐기 시작한다. 서늘해진 날씨에 냉해를 입기에 10초순이면 거의 다 캐게 마련인다.
벌써 올 한해도 다 지나간다는 느낌이 들겠지.
4.
방금 전 아내는 수리한 자동차를 인수했나 보다.
수리비는 상대 가해차량과 타협을 아직 보지 못한 모양이다. 쌍방 보험회사끼리 협상할 문제이다.
나는 아내한테 말했다.
'그날 사고는 당신 실책이 더 커. 내가 상대방 운전사한테 '전방주의 의무태만' 어쩌구를 말했지만 본질은 당신이 주행선에 잘못 낀 거여. 직진 차량에 우선권이 있어.'
아내는 '보험사에도 제 과실이 더 크다고 하대요. 대형사고가 안 난 것으로도 그게 어디에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아뭇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이고, 별 것이 다 다행이구먼, 차 부서진 것은? 쌍방 수리비는? 보험료는 활증되는데...'
하는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미 다 끝나버린 상황이기에. 지나간 과거사이기에.
내가 바란다면 아내가 앞으로 안전운행에 더욱 조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운전 못하도록 강요할 수도없기에.
운전에 건성인 아내한테 제발 조심하라고 말하기도 지친다.
'속도를 줄여라. 좌우 백미러를 수시로 보아라, 몇 분 뒤의 차량 흐름을 예상하라'고 말하면 이게 지겨운 잔소리로 들리나 보다.
'왜 운전하는데 간섭해요? 당신 말이 더 지겨워요'
라고 불만을 늘 터트렸던 아내였다.
그게 왜 간섭이며, 잔소리였을까? 나는 전혀 아니다. 아차하는 순간에 죽을 수도 있고 크게 다칠 수도 있기에 예방차원에서 말하는 것일 뿐이다.
'당신은 눈 감고 잠이나 자요'
하면서 숱하게 나를 겁나게 했다. 무조건 앞만 보고 질주하려는 본능이다. 상대차량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요즘의 내가 그렇다.
지난 3월 중순부터 국보문학에 들어와서 남의 글을 읽는다.
때로는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글 한 번 다듬었으면 하는 뜻으로 댓글 달았다. 결과는? 내 아내의 운전과 똑같은 상황이다. '왜 간섭하세요 ? 내 방식대로 글 쓸 겁니다'는 답글도 보았다.
그 분한테 딱 한 번 댓글 달고는 나는 후회하였다. 내가 왜 남의 글에 댓글 달았을까?
책에 인쇄되면 글은 빼도 박도 못한다. 잘한 것은 눈에 잘 안 띄어도 잘못된 부분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친다. 모든 게.
문학(文學) 글은 가장 정확히 써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때로는 이상하게 글을 쓰면?
하나의 예다. 한국전쟁인인 625, 815광복절, 31절 등은 어떻게 써야 할까?
1)6,25 2)6.25 3)6, 25 4)6·25 5)이하 생략
1)8,15 2)8.15 3)8, 15 4)8·15 5)이하 생략
내가 보기에는 4)가 맞다. 특별한 뜻을 지닌 날에는 가운뎃 점(·)을 찍어야 한다.
쳐다보기도 싫다!
고구마 농사도 포기했고, 내 잡글 다듬기에도 지친다.
자동차를 수리했으니 다음 주 중에는 또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야겠지.
이런 기대감으로 오늘 밤에는 겨우 숨 쉰다.
2017. 9. 7.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