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신대 다큐멘터리 사진연구회 Newshawk '위도' 展 2005년 1월 31일 ~ 2월 20일, Gallery1019
참여작가 : 김그린, 김재우, 김정수, 김학기, 김현이, 박서리, 성제현, 신진철, 이근용, 이세현, 이준우, 최민하, 홍기복 1963년 영광군에서 전라북도 부안군으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고 고슴도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고슴도치 蝟자를 써 ‘蝟島’라 불리는 11.14㎢ 작은 섬 ‘위도’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위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사람냄새 좋아하는 동무들과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선다.
10년 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페리호 참사가 정확히 10년이 지난 2003년 가을 어느 날, 아직도 ‘위도’는 TV뉴스와 신문의 머리기사를 채우고 있었다. 10년 전엔 끔찍한 침몰사고로 또 10년 후엔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부지로 선정되어... 왜? 이런 아픔을 ‘위도’ 사람들이 겪어야 하나 누가 이런 아픔을 선택했단 말인가? 힘없는 몸뚱이 하나 보호해 보려고 입은 가시 옷이 남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일까? 결국 제 몸 하나 보호해 주지 못한 방패막이 아니던가.
버스를 타고 부안으로 가는 길, 읍내에 들어서자 시골마을 전체에는 때 이른 개나리가 군락을 이루듯 노란 반핵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도로 양편은 물론이고 상점 쇼윈도에도 가정집 대문에도 심지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입은 옷에서도 반핵에 대한 의지를 철저히 나타내고 있었다. 부안사태, 부안주민들에겐 ‘방폐장’이란 단어하나만 꺼내도 격앙된 모습으로 봇물 터지듯이 말을 쏟아낸다. 부안주민들이 심정이 이러한데 정작 자신들이 사는 곳에 ‘방폐장’이 들어서는 상황에 처한 위도 주민들은 얼마나 격앙된 모습을 보일지 걱정 앞섰다.
격포항에서 서해카페리호를 타고 위도로 향했다. 뱃머리가 서쪽으로 돌아서자 페리호는 기관실의 굉음과 함께 가을바다를 가르며 세차게 내달렸다. 20분 정도 지나니 멀리서 섬이 눈에 나타났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세와는 달리 작고 아담한 섬이었다. 위도항에 들어섰다. 노란색 깃발과 마주서서 예상했던 광경이었다는 듯 불안에 휩싸였지만 마을 전체가 격양된 모습이었던 부안과 달리 노란깃발 빼고는 여느 시골과 마을과 같은 위도였다. 이번 사태가 마치 자신들의 일이 아닌 양 개의치 않고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에 우리는 언제나 그랬냐는 듯 카메라 한대 덜렁 메고 사람냄새를 찾아 걷는다. 섬 한바퀴를 둘러보는데 성인남자 걸음으로 4시간여 정도 걸리는 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순박하고 정겨운 모습들이었다. 그들에게 ‘방폐장’ 이야기를 건네 본다. "요즘 물괴기도 잘 안 잡히제, 그거 들어서면 정부에서 보상금도 주고 그런다든디" "그거 들여놨다가 사고라도 생기믄 다 죽는거 아녀?" 위도에서 조차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유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해마다 줄어드는 어획량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고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때 정부에선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후보지로 위도를 선정했고 주민들 사이에서 유치를 시키면 혹시라도 많은 보상금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의견과 위험성이 높은 시설을 섬에 들일 수없다는 의견이 대립하였고 결국은 주민들 간에 깊은 골이 생기고 말았다. 서로 모르는 이 없고 명절 때가 되면 섬전체가 한 가족처럼 음식을 하던 1800여명의 위도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사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염원을 섬 주민 모두가 모여 띠배에 띄워 보내는 ‘위도띠뱃놀이’라는 풍어제를 성대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 유명한 행사에서까지도 찬성과 반대쪽으로 갈려 따로 지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누가 이들 마음에 깊은 골을 만들고 상처를 주는 자격을 가졌는가? 우린 어떠한 결정권도 또 능력도 없다. 다만 이 상처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낡은 카메라 한대와 튼튼한 두 다리로 그들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이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또 그 아픔을 기록할 뿐이다. 10년 전 서해페리호 참사가 일어났던 그 뱃길 위에서 바라보는 고슴도치 형상의 섬 ‘위도’... 우린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백분의 일초동안의 빛으로 고슴도치의 아픔표정을 잠시 지켜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