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의 기착지 가미노세키(上關)를 거쳐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이르다
- 제9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27
4월 26일(수), 오전 6시 반에 숙소의 로비에 뷔페식으로 차린 음식을 식판에 담아 객실에서 차분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시간의 여유가 있다. 오전 8시 반, 숙소 앞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조선통신사의 기착지인 가미노세키(上關)로 향하였다. 히로시마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달려 경관이 아름답고 한적한 도로에 접어들어 한참 달리니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이토 히로부미의 기념관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야마구치(山口)가 그의 출생지인 것은 기왕에 알았으나 그 현장을 지나는 감회가 별다르다. 일본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와 한국인의 정서는 다른 것을 어이하랴.
가미노세키에 이르니 오전 10시 반, 가미노세키정(上關町)종합센터에서 가미노세키관광협회 야스다 가즈유키 해설사의 조선통신사와 가미노세키에 얽힌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설명 들은 후 실제 조선통신사들이 체류했던 현장을 두루 살폈다.
가미노세키의 해안에 정박한 조선통신사 선박과 유숙처를 그린 화면이 당시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가미노세키는 원래 해로 상 중요거점으로 권력자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해적 두목 무라카미의 무대였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평정한 후 힘을 잃어 그 후손은 조선통신사가 이곳을 지날 때 물길 안내를 맡았다는 기록이 있다는 해설자의 설명이 흥미롭기도.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일행이 이곳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 빼어난 경관과 다양한 자료로 접하는 첫 탐사가 기대 이상의 좋은 코스다. 전날 비바람 불어 힘들었던 여정에 비하여 날씨가 쾌청하여 더 경쾌한 발걸음이어라.
경관이 아름다운 가미노세키를 연결하는 도로에서
한 시간 반가량의 현장탐사를 마치고 규모가 큰 온천탕의 식당에서 면류와 주먹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니 오후 1시가 지난다. 다음 행선지는 원폭피해로 유명한 히로시마, 버스에 올라 두 시간쯤 걸려 히로시마평화공원 주변의 숙소에 이른다. 호텔에 가방 등을 풀어놓고 평화공원으로 향하였다. 평화공원은 1945년 8월 6일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20여만 명이 사망하고 수십만이 부상을 입은 끔찍한 참상을 교훈 삼아 평화를 염원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그 안에 2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숙소에서 10여분 걸어 위령비 부근에 이르니 20여명의 교민(일본의 교민관련 단체인 재일거류민단과 조선인총연합회, 평화통일연합회의 간부와 회원)들이 손을 흔들며 일행을 반긴다. 먼저 위령탑에 꽃다발을 바치고 묵념. 비명에 스러진 영령들이여, 하늘의 위로와 평안을 누리시라. 현지에서 한국어교실을 운영하며 평화통일연합회 간부로 활동하는 윤치중 씨가 원폭피해 당시의 상황과 지금도 열심히 위령비 부근을 청소하는 이들의 정성을 설명하는 동안 모두가 숙연한 표정이다. 위령비 근처에 평화의 종이 세워져 있다. 그곳에 들러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하는 타종을 한 후 공원을 한 바퀴 돌아 숙소로 향하였다. 거리에 펄럭이는 깃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G7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열리는 것을 알린다. 한일우정걷기 일행의 '세계에 평화를, 한일에 우정'의 기치를 내걸고 때에 맞춰 평화공원에 이른 발걸음이 뜻깊어라.
숙소에 돌아오니 오후 5시가 지난다. 40명 가까운 일행이 한꺼번에 식사할 식당이 마땅치 않은 것을 감안하여 저녁식사는 여러 조로 나누어 하기로 정하였다. 9명의 우리 조는 제1조, 6시에 미리 고른 근처의 식당을 찾으니 코로나 여파로 휴업 중이다. 인근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서울에서 도쿄까지 걷는 일행인 것을 들은 30년 경력의 식당주인이 메뉴에 없는 스프와 과일을 서비스한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인 지구촌 식구, 자연스럽게 평화와 우정을 다지다.
조별 저녁식사 후 식당 여주인과 함께
* 원폭희생자 중에는 조선왕조의 이우 왕자가 포함되어 있다. 윤치중 씨가 설명한 그의 피폭 경위가 가슴 아프다. 당시 현역 일본군 중좌로 히로시마에서 근무 중인 이우 왕자는 평소 자동차로 출근하였는데 피폭 당일에는 말을 타고 출근하는 부관이 종아리 부상으로 말 타기가 힘든 것을 안쓰럽게 여겨 자기가 타는 자동차에 그를 태우고 대신 말을 타고 출근하다 피폭당하여 결국 다음날 목숨을 잃었다. 자동차로 일찍 출근한 부관은 콘크리트 건물 안에 있어서 생명을 건졌으나 상관이 자신 대신 피해를 당한 것을 알게 된 부관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세상을 하직하였고.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런가.
첫댓글 김교수님 매일 계속된 일정 소화하시랴, 생생한매일의 후기 남기시랴, 넘 수고가 많으십니다..
부디 건강도 꼭 챙기시고 보람된 통신사길 수행하시고 귀국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