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문학회 사화집, 박용숙 외『멸치, 고래를 꿈꾸다』 출간
지혜사랑 시인선 『멸치, 고래를 꿈꾸다』(박용숙 외)는 애지문학회 회원들의 열여덟 번째 사화집 - 『나비, 봄을 짜다』, 『날개가 필요하다』, 『아, 공중사리탑』, 『버거 씨의 금연캠페인』, 『떠도는 구두』, 『능소화에 부치다』, 『엇박자의 키스』, 『고고학적인 악수』, 『혁명은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는가』, 『유리족의 하루』, 『버려진다는 것』, 『어떤 비행飛行』, 『도레미파, 파, 파』, 『굴뚝꽃』, 『문어文魚』, 『마당에 호랑이가 산다』, 『북극 항로』에 이어서 - 이 된다.
김형식, 이원형, 정동재, 김선옥, 손경선, 임덕기, 김늘, 이희은, 백홍수, 김길중, 최윤경, 김명이, 김행석, 박설하, 박성진, 김소형, 최병근, 조숙진, 이국형, 유계자, 김재언, 박용숙, 김은정, 김혁분, 이병연, 박정란, 김은, 탁경자, 최명률, 현상연, 강익수, 백승자, 김평엽, 백지, 허이서, 이용우, 남상진, 사공경현, 김도우, 조순희, 정해영, 이미순, 현순애, 이선희, 박영화, 조성례, 권혁재 등, 47명의 시인들은 서정시를 쓰는 시인도 있고, 자유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시를 쓰는 시인도 있고, 자연과학적인 측면에서 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 낙천적인 시인도 있고, 회의적인 시인도 있다. 저마다 제각각 사상과 취향이 다르지만, 그러나 모두가 다같이 우리 인간들의 행복한 사회를 꿈꾸며, ‘시인 만세’인 시세계를 열어나간다.
고래가 될 수 있을까?
메타버스에는 널려있다지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오늘도 홈쇼핑 최저가 핸드폰 결제
그래도, 태평양 가슴에 품으니
이까짓 편의점 아르바이트 서너 개쯤이야
하루 세끼 삼각김밥도 견딜 수 있어
바다 한가운데 은빛으로 빛나는 내 모습
날치 꽁치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아
노는 물도 당연 다르지
옥션의 경매 정보나 쿠팡의 쿠폰도 팡팡 쌓이고
광고판도 뼈대 있는 내 이름 석 자로 빛나고 있지
이제는 겪을 일 없는 풍파
신의 가호란 말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 이놈 똥 뺄 것도 없겠네
달랑 소주 한 병으로 나를 깨운 거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저 아줌마는 모를 거야
내가 어떤 세상 꿈꾸는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술고래 말고
푸른 물결 헤쳐나가는 대왕고래
가슴에 산다는 걸
정말, 고래가 될 수 있을까?
---박용숙, [멸치, 고래를 꿈꾸다] 전문
박용숙 시인의 [멸치, 고래를 꿈꾸다]는 우리 젊은이들의 ‘풍요 속의 빈곤’을 노래한 시이며, 도저히 불가능한 희망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가상의 공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메타버스”에는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것들이 널려 있고, 언제, 어느 때나 “홈쇼핑”을 통해 “핸드폰으로 결제”하고 구입할 수가 있다. 멸치는 우리 젊은이들이고 취업준비생들이며, “그래도, 태평양을 가슴에 품으”며,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일을 하면서 꿈을 잃지 않는다. 넓고 넓은 태평양의 고래를 꿈꾸며, “하루 세 끼 삼각김밥”으로 견디며, “바다 한가운데 은빛으로 빛나는 내 모습”을 잃지 않는다. 날치와 꽁치들, 즉, 소위 수많은 손님들과 부자들의 갑질에도 기죽지 않고, “옥션의 경매 정보나 쿠팡의 쿠폰도 팡팡” 쌓아놓으며, “이제는 겪을 일 없는 풍파”와 “신의 가호란 말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으며 참고 견딘다.
하지만, 그러나 수많은 손님들과 부자들의 눈에는 “이놈 똥 뺄 것도 없겠네”라는 시구에서처럼 “멸치”의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달랑 소주 한 병으로 나를 깨운”다. 제아무리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저 아줌마는 모를 거야”라고 태평양의 고래를 꿈꾸고 있을지라도 멸치는 먹이사슬의 최하 천민이지, “푸른 물결 헤쳐나가는 대왕고래”가 될 수가 없다. “정말, 고래가 될 수 있을까?” 아아, 우리 젊은이들이여, 아아, 우리 흙수저들이여! 이 세상에는 신도 없고 천국도 없고, 오직 사악하고, 또 사악한 부자들(주인들)뿐이 없단다. 이 세상에서 꿈꾸는 것은 자유이지만, 편의점의 멸치란 오직 소주 한 잔의 안주거리로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달이 섬진강
은어 떼를 몰고 오면
강가에서
시의 추를 던지며
별을 낚는다
---탁경자, [어초장] 부분
말들이 히힝 울었다
경마장이 아니었는데
재갈을 물리고
오도 가도 못하는
첩첩산중
결가부좌로 포박당한 부처가
유리안치 되었다
---최병근, [모처럼] 부분
허공에 힘껏 줄을 던져
깎아지른 절벽을 낚는다
정을 쪼듯 내리치는 물살에 새겨진 문신
상처가 깊을수록
지느러미의 골이 빛난다
덜컥 입질이 왔다 이번엔 정말 크고 센 놈이다
---이병연, [바위를 낚다] 부분
바람 넘나드는 문간방 처마
그늘에 매달려 아픔 말리고 있다
허공에 상처 부벼
껍질 만드는 일이다
---현순애, [곶감을 꿈꾸다] 부분
소크라테스가 죽었다
플라톤도 죽었다
숙제를 마친 사람은 죽는다
---사공경현, [숙제] 부분
---박용숙 외, 애지문학회 사화집『멸치, 고래를 꿈꾸다』,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