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건축비가 남아서 교구에 70억을 기부했다는 언론기사를 봤다. 내가 다니는 본당인데, 주일미사를 다녀도 이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 본당 지인들에게 말했더니,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놀라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본당 신자들이 건축헌금을 마련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70억이 남았고 기증까지 했다니 황당했다.
▲ ⓒ 최진
흑석동본당 신자 A 씨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본당에서 건축비가 남아 교구에 남은 돈을 기부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본당 주보를 통해 나온 건축 관련 공지는 목표액보다 금액이 부족해 신자들이 분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순간 70억이라는 큰돈이 남아 그것을 교구에 기증했다니 황당하다는 것이다.
A 씨가 접한 < 가톨릭평화신문 >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교구 흑석동본당은 올해 2월 성전 건립 후 남은 70억 원을 교구 신설본당 마련 자금으로 냈다. 본당은 300석 규모의 대성당과 교육관, 사제관 등 3개 건물을 증축해 지난해 11월 봉헌식을 했다.
이날 전달식에서 당시 흑석동본당 주임신부였던 이 모 신부는 성전 건립에 정성을 아끼지 않은 본당 신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번 기탁 성금 70억 원이 교구가 신설하는 본당의 신축 부지를 매입하는 데 쓰이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에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정성을 담아 주님께 봉헌하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준 흑석동본당 공동체는 교구의 모범”이라고 치하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 언제든지 연락하길”
제보내용 확인을 위해 흑석동본당을 방문했다. 본당 관계자들은 제보자가 언론을 통해 본당 기부 내용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본당 관계자는 “본당 신자라는 분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사무실에 오셔서 직접 물어보시면 쉽게 알려드렸을 텐데, 왜 언론을 통해 알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본인이 정말 본당 신자고 당당하다면 언제든지 와서 확인하면 된다. 이렇게 언론을 통해 문제 삼는 것은 성당에 일부러 안 좋은 이미지를 주려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흑석동본당은 건축비 관련 본당 재정에 대해 투명하게 신자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성전 증축을 비롯한 일체의 자금을 매주 주보를 통해 신자들에게 알렸다. 또한, 제보자가 몰랐다고 말하는 성전 건축비 기탁 내용도 주일 교중미사에서 본당 신부가 직접 알렸다고 했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본당 주임신부님이 교중미사 공지사항 시간에 신자들에게 기탁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알렸다. 교중미사가 본당의 가장 대표적인 미사이기 때문에 그때 모든 신자에게 잘 알렸다.
70억 원 기부에 대해서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본당에는 봉안당(납골당)이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자금을 더해 증축 공사를 했다. 처음부터 봉안당 자금은 교구의 것이기 때문에 그 돈이 남았다고 해서 본당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남은 건축비를 교구에 기부한 것이다”라고 했다.
▲ 흑석동본당 봉안당 ⓒ 최진
흑석동본당은 대성전 증축 외에도 특수사목 담당 사제들의 숙소와 교육관 건설이 포함됐기 때문에, 교구가 봉안당 자금을 성전 증축에 보태도록 했고, 그 돈이 남았기 때문에 다시 교구로 기부했다는 것이다.
본당 재정분과장은 “본당 증축을 한다고 했을 때 신자분 중에 100억을 내놓겠다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신부님께서 성당 건축은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거절했다. 만약 돈이 목적이면 그때 일어 벌어졌을 것이다. 흑석동성전은 개인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신자의 정성을 모아 세운 성전이다”라고 했다.
본당 신자들이 힘으로 성전을 세운다는 각오였기 때문에, 타 본당을 돌아다니며 건축비 모금 활동도 하지 않았다. 재정분과장은 “우리 힘을 모아 성전을 증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했고, 본당 관계자는 “우리는 땅도 있고 건물도 있다. 다른 성당을 방문해 비용을 도와달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이러한 흑석동본당에 주변 성당 신자들도 자발적인 모금으로 정성을 보탰다.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흑석동본당 증축 공사는 본당 신자들과 지역 신자들이 함께 뜻을 모은 화합의 성전 증축이었다.
재정분과장은 “주보 공지와 신부님 공지, 그리고 언론을 통해 관련된 내용이 모두 신자들에게 알려졌다. 그렇지만 궁금한 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나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해도 좋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을 언론을 통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다루는 것은 안타깝다”며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제보자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과정의 정당성이 이번 문제의 핵심”
▲ ⓒ 최진
이 문제의 핵심은 신자들이 정보에서 소외된 것이다. 신자들의 돈이 들어간 건축비를 본당 신부 마음대로 결정했는데, 궁금하면 사무실로 오라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절차적인 정당성 문제인데, 왜 개인 신상을 노출해야 알려준다는 것인가. 천주교가 내부고발자에 대해 그리 관대한 종교였나.
A 씨는 본당에서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라는 본당 관계자들의 논리가 이번 기부상황에 대한 문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축비 기부가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는 제도적 차원의 문제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얼마 전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본당 보좌신부님이 6개월 만에 일신상의 이유로 성당을 옮겼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니 신자들 사이에서는 무성한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 가운데는 주임신부님과 마찰이 있어서 쫓겨났다는 말도 있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신자 입장에서 교회가 두렵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성당 사무실로 찾아오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무섭기도 하다”
어느 조직이나 내부 문제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내부 문제를 조직 내에서 말하게 되면 주의해야 할 인물로 찍힌다. 제보자가 누구인지를 찾기보다는 본당이 당연히 해야 할 제 일을 하면 된다.
A 씨는 주보를 통해 건축헌금에 관한 공지는 알려졌으나, 70억 원이라는 건축기금이 남아서 그것을 교구에 기증했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또한, “모든 신자가 교중미사를 드리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미사를 드려야 하는 부모들과 청소년·청년들은 몰라도 되는가. 그렇다면 모든 신자가 동참한다는 논리가 말이 안 된다”라고 일갈했다.
기부 기사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본당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평화신문에 나온 70억 기부 기사는 진정한 의미의 기부가 아니다. 잔금 반환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것을 기부 형식으로 기사화 했다는 것도 잘못된 것 아닌가”라며 “언론으로 기부 사실을 다 알렸다고 했는데, 모든 신자가 평화신문을 봐야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A 씨는 본당이 충분한 건축비가 있었음에도 본당과 지역 신자들에게 돈을 부담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동참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성당과 교육관 사제숙소까지 짓는 대규모 공사라면 교구가 갑작스럽게 자금지원을 결정했을 리가 없다고 추측했다. 교구 지원이 미리 계획됐다면, 주변 성당 신자들로부터 돈을 지원받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70억이라는 여윳돈이 있었으면서도 지역 성당 신자들에게 흑석동본당의 이름을 팔아 돈을 걷은 상황이 문제라고 짚었다.
내가 사무실에 가서 물으면 기부 내용을 알 수는 있었겠지만, 나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물음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이것을 다루면 교회의 제도적인 문제, 방향의 문제가 제기된다. 신자들에 대한 정보 소외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조직의 문제다.
A 씨는 “신부님 축일은 대대적인 행사로 알리면서, 신자들의 돈이 들어간 수백억 규모의 공사는 알리지 않는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기부 내용을 알리고 싶지 않았거나, 신자들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라며 한국 천주교가 신자들에 대한 존중과 그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을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