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소녀 (隨筆)
影園 / 김인희
한여름 장대비 같은 소나기 소동 후 태양의 반대편에 아치형 일곱 빛깔 무지개가 드리울 때가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이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고 어떤 날에는 희미하여 눈여겨봐야 할 때가 있다. 드물게 쌍무지개가 뜨는 날도 있다. 쌍무지개가 뜨는 날은 행운이 두 배로 겹치고 기쁨도 배가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지개를 몇 번 보았을까. 내 기억으로는 열 손가락을 다 꼽을 수 없다. 유년시절 마루에 앉아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지개를 보았던 것이 최초의 기억이다. 그때 어머니께서 무지개를 가리키면서 선녀가 내려오는 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언니는 저쪽 산에 있는 연못에서 반대쪽 산에 있는 연못까지 연결하는 다리라고 말했다. 유년시절 읽은 동화 「나무꾼과 선녀」를 생각하면서 무지개는 연못과 연못을 연결하여 선녀들이 목욕하러 다니는 다리라고 믿었다.
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얼굴이 하나 있다. 소나기 내린 후 반짝 나타나는 무지개와 같이 살면서 가끔씩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인연이 하나 있다. 내가 상업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용산전자상가에서 경리로 근무할 때였다. 1980년대 용산전자상가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대로 양쪽으로 전자제품을 파는 상가가 빼곡했다. 사무실마다 경리업무를 보는 여직원이 한 명씩 있었다. 더러 큰 사무실은 두 명 있는 곳도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최우선으로 사무실 청소하고 커피 잔을 씻는다. 아침마다 공동화장실은 청소용구를 세탁하고 커피 잔을 설거지하는 여직원들로 만원이었다. 출근 시간이 비슷했으니 날마다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다. 조명상가 경리언니는 말이 없어서 무서웠다. 연합전기 언니는 친절해서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근무했던 바로 옆 사무실 경리는 외국인 손님하고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때 나는 잔뜩 위축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 그 애를 만났다. 아침에는 어수선하고 바빠서 잘 볼 수 없었던 그 애가 점심때 커피 잔을 설거지하고 있었다. 그 애는 커피 잔을 눈에 바짝 가져다가 살피면서 설거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나이가 같다는 것을 알았을 뿐 이름을 묻지 않았다. 어쩌다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웃으면서 ‘안녕!’하고 인사했다. 대화를 하더라도 ‘얘, 관리비 냈어?’, ‘얘, 네 고향은 어디니?’, ‘얘, 주말에는 뭘 하고 지냈니?’······. 그날 나는 그 애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얘, 왜 커피 잔을 눈에 가까이 가져다가 보는 거야? 불편해 보여.’라고 말했다. 그 애는 조심스럽게 커피 잔을 설거지하면서 시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 애는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시력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그 애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펜던트 장식이 불교의 글자 ‘옴’ 자라고 말했다. 그때 내 기억으로 한문과 비슷한 것도 같았고 추상기호 글자를 닮았던 것 같다. 그 애의 엄마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딸의 시력이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목걸이를 걸어주었다고 했다. 그날 그 애는 한쪽 눈의 시력은 전혀 없다고 했다.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도 안 좋다고 했다. 절망적인 것은 그 희미한 시력마저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방법은 없는 거니? 수술하면 좋아지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그 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날 그 애가 내게 ‘얘, 나는 처음에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은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거라고 생각했었어. 우습지?’라고 말했을 때 주저앉을 뻔했다.
그 후로 우리 둘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은행 업무를 보다가 만났을 때나 관리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 애는 서울태생이었다. 부모님 하고 같이 지내면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날마다 예쁜 옷을 입고 왔으며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서 흰 목덜미가 유난히 아름다웠다. 나는 시골에서 상경한 촌닭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쥐꼬리만 한 경리 월급으로 적금 들어가면서 교통비를 걱정하고 서점에 들러 한 권의 책을 사는 것이 최고의 사치였던 시절이었다. 내가 천안으로 이사 오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삼십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 애가 살면서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생각날 때가 있다. 언젠가는 그 애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했던 적도 있다. 그 애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랐다.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에 안도하면서 부디 그 애가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아서 시력을 찾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때 우리 이름을 서로 말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그 애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할 수 있었을 텐데.
소나기 내린 후 하늘에 뜨는 무지개처럼 그 애는 내 삶의 언저리에 가끔 떠오른다. 어느 날에는 목걸이와 함께 선명하게 떠오르고 어떤 날에는 흰 목덜미만 희미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어쩌다 쌍무지개처럼 아침저녁으로 생각날 때도 있었다. 그 애도 가끔 내 생각할까. 그 애에게 난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었을까. 오늘 밤은 이름 모를 소녀 생각으로 잠을 설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