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정전은 임금이 항상 근면하시라는 의미로 근정전(勤政殿)으로 지었고요.
그렇다면 정도전(鄭道傳)이 꿈꿨던 새로운 세상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신권(臣權) 중심의 세상이었습니다. 정도전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왕조체제에서 오는
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조(王祖)라는 것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잇기 때문에
성군(聖君)이 나올 수도 있지만, 폭군(暴君)이 나올 수도 있지요. 따라서 어떤 자질의 왕이
즉위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본 겁니다. 소위, 복불복(福不福)이라는 거지요. 성군이
나오면 괜찮지만, 폭군이 나오면 나라가 망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폭군이
나와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시스템, 매뉴얼을 만든 것이 바로 정도전이지요.
이전의 왕들은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생활할 수 있었지요. 술을 먹고 싶으면
마시면 되고, 놀고 싶으면 어느 정도 놀 수 있는 여유가 있었어요. 그러나 조선시대 왕들은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정도전이 강화한 경연(經筵)제도 때문입니다. 경연이란 왕이 신하와 함께
학문을 토론하고 현실 정치를 의논하는 것인데, 사실상 왕을 공부시키는 것입니다.
조강(朝講)이라 하여 아침에 공부하였고, 점심시간에는 주강(晝講)을, 저녁시간엔 석강(夕講)을
했습니다. 이렇게 의무적으로 2시간씩 하루에 총 6시간을 신하들과 공부를 한 겁니다.
그리고 '윤대(輪對)'라 하여 의무적으로 각 관청의 관리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하고, 아래로는 선비부터 위로는 재상까지 그들의 상소문을 받아서 읽어야 하는데,
이 상소문을 읽는 시간을 하필 잠자기 직전으로 배치합니다. 상소문에는 비판적인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상소문을 읽는다는 것은 오늘날로 따지면 인터넷에 달린 악플(악성댓글)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쓴 글에 달린 악플을 줄줄이
읽으면 잠이 잘 올까요? 정말 죽을 맛이겠지요. 이처럼 조선시대 왕들을 쥐 잡듯이 잡아서
성군으로 만들겠다는 게 바로 정도전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답니다.
-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