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육백아흔다섯 번째
44번 버스
2001년 데이얀 엉 Dayyan Eng 감독이 연출한 단편 영화 <버스 44>는 사회의 무관심과 방조가 낳은 비극적인 결말을 다룬,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한 여성 버스 기사가 버스를 운행하며 산길을 넘고 있는데, 강도 두 명이 승객들의 금품을 빼앗고 기사에게 달려들어 성폭행하려 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못 본 체하고 있었는데, 오직 한 청년만이 그들의 만행을 말리다가 칼에 찔리고 심하게 얻어맞았습니다. 강도들은 버스를 세우고 여성 기사를 숲으로 끌고 가서 폭행한 후 한참 뒤에 돌아왔습니다. 폭행을 당한 여성 기사는 조금 전 강도들을 제지했던 청년을 차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황당해하며 내리지 않으려 하자 억지로 끌어내리고 짐도 던져 버렸습니다. 어이없어하는 청년을 두고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청년은 하는 수 없이 아픈 몸으로 터벅터벅 산길을 가다가 절벽 아래로 추락한 교통사고를 목격합니다. 기사가 커브 길에서 속도를 높여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해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멀리 낭떠러지 아래를 바라보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44번 버스였습니다. 여성 운전기사는 살만한 가치가 있었던 그 청년만 내리게 해 살려두고, 강도들과 모른 척 외면했던 승객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간 사건이었습니다. 악행을 저지른 자들뿐만 아니라 이를 방관한 사람들도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사회적 전환기에서 최대의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라며 방관과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일러주었습니다. 세상은 악한 사람들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침묵’으로 인해 악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괜히 부끄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