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쁜 날, 소백산에 모데미풀 만나러 가는 날
1. 제2연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주릉, 멀리 가운데는 비로봉, 그 앞은 제1연화봉, 연화봉
人喧小白太白高 소백산과 태백산 높다고들 떠들더니
複嶺重關天下壯 겹겹의 재 첩첩 관문 천하의 장관일세
積翠巃嵸六百里 험준하고 가파른 산 육백 리에 뻗어 있고
煙霞縹緲連靑嶂 아스라한 연무 속에 산봉우리 이어졌네
――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 「죽령(竹嶺)」 중 일부
▶ 산행일시 : 2023년 4월 22일(토), 황사 심함
▶ 산행인원 : 3명(악수, 버들, 메아리)
▶ 산행코스 : 죽령, 제2연화봉(강우레이더관측소), 천문대, 연화봉, 제1연화봉, 비로봉, 어의곡주차장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6.4km
▶ 산행시간 : 6시간 15분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26명) 우등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번 출구 전방 스타벅스 앞(07 : 40 - 출발)
10 : 25 - 죽령(689m), 산행시작
11 : 34 - 제2연화봉(1,357.3m),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
12 : 25 - 연화봉 갈림길, 점심( ~ 12 : 43)
12 : 50 - 연화봉(蓮花峰, 1,376.9m)
13 : 36 - 제1연화봉(1,395.0m)
14 : 03 - 1,374m봉
14 : 24 - ┫자 천동리 갈림길
14 : 30 - 비로봉(毘盧峰, △1,439.7m), 휴식( ~ 14 : 45)
14 : 52 - Y자 국망봉 갈림길
16 : 40 - 어의곡주차장, 산행종료
17 : 36 - 버스 출발
20 : 02 - 양재역
2. 산행지도
작년에는 소백산을 5월 7일에 갔었다. 그때도 들머리는 죽령이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죽령을 가기가 순탄하지 않았
다. 아침에 사당동 네거리에서 차량통제가 있었다며 양재역까지 오는 데 40분이나 걸렸다. 우리 버스가 특히 늦었
다. 주말이면 수많은 안내산악회 버스가 북적이는 양재역이다. 그들 모두 떠나고 소백산 가는 우리만 늦도록 남았
다. 죽령 가는 중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릴 틈이 없다. 괜히 단양 시내로 들어가서 버벅거리다 어렵사리 죽령을
간다.
작년 그때는 소백산에 모데미풀이 끝물이라 몇 개체밖에 보지 못했다. 올해는 봄이 작년보다 빠르다 하여 열흘 전에
여러 카페와 블로그를 검색하여 소백산의 모데미풀 근황을 알아보았다. 소백산 어느 계곡인지는 몰라도 물가 주변
에는 이미 만발하였다. 그렇다면 산정에는 좀 늦게 피지 않을까. 산정 사정은 모른다. 허탕 칠 수도 있다. 간절한
마음을 안고 작년보다 15일 이른 오늘 소백산을 간다.
소백산을 가기로 어느 들머리에서 오르는 것이 가장 힘들까? 나는 죽령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웬만한 들머리와 주
능선과 지능선, 봉봉은 다 가보았다.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7km가 가장 힘든 코스다. 산길이 아닌 콘크리트 포장한
임도라서 그렇다. 고도차가 687m에 불과하여 비교적 완만하지만 질리도록 그 긴 오르막에 누구라도 지치기 마련이
다. 더구나 눈요기할 조망은 트이지 않고 임도 주변 풀꽃 또한 변변치 않다. 퍽 따분하고 팍팍한 걸음이다.
제2연화봉 갈림길. 왼쪽 사면을 도는 임도 옆에 커다란 정상 표지석이 있다. 왜 하필 정상이 아닌 임도 옆에 정상
표지석을 세웠을까? 이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나는 당연히 정상을 오르는 오른쪽 임도를 간다. 0.3km를
가면 산상전망대(강우레이더 건물 8층)와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 제2연화봉 대피소다. 그 반대편에 연화봉을
가는 길이 이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다른 임도다. 대피소는 취사장과 화장실이 있다. 주위 사방에 키 높은
철조망을 튼튼하게 둘렀다.
황사가 심하여 산상전망대에 올라도 대피소 마당에서 보는 조망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 건물 8층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뿐이다. 올라온 길 내려간다. 연화봉2.7km. 평지나 다름없다. 임도 오른쪽 도랑 건너 산자락에서 처녀치
마를 본다. 천마산을 가면 험지인 절벽 위에서 드물게 보는 처녀치마가 여기는 약간 비탈진 풀숲에 산재하였다.
우리 일행 26명 중 죽령에서 비로봉을 가는 사람은 많아야 10명쯤 되지 않을까. 나머지는 천동리로 갔다. 거기는
죽령에서 가는 것 보다 4km가 짧다. 처녀치마 들여다보느라 내가 맨 후미다.
연화봉도 정상을 오르기 직전 갈림길 왼쪽은 사면으로 질러간다. 버들 님 발걸음을 절약하기 위해 갈림길 공터에서
점심밥 먹는다. 대부분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7km를 2시간 30분 걸릴 것을 예상한다. 밥 먹고 나니 그 시간이다.
연화봉 정상은 오른 길을 돌아가지 않고 그 너머로 길이 나 있다. 연화봉 내리는 북사면 길이 나에게는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임도가 끝났지만 울퉁불퉁한 너른 돌길이다. 사면은 아직 황량하다.
작년에는 짙푸른 초원에 온통 홀아비바람꽃 세상이었다. 주춤주춤 내린다. 모데미풀(Megaleranthis saniculifolia
Ohwi) 군락지에 들어선다. 굳이 생사면을 누빌 필요가 없다. 등로 주변만 둘러보아도 충분하고 바쁘다. 나도 나도
하고 모데미풀이 여기저기서 고개 들고 아우성이다. 길바닥에 납작 엎드려 그들과 눈 맞춤하는데 지나는 일단의 등
산객들이 대체 무슨 꽃이기에 그렇게 정성 드려 찍느냐고 묻는다. 소백산을 오면서 모데미풀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작년에 보았던 안내판(철거했는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의 내용을 알려준다.
3. 멀리 가운데는 도솔봉
4. 소백주릉 동쪽 지능선, 멀리 가운데가 원적봉(?)
6. 처녀치마
7. 선괭이눈
8. 모데미풀
“모데미풀은 소백산국립공원의 깃대종이자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종으
로서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멸종의 우려가 있습니다. 모데미풀은 깊은 산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4~5월
에 흰색의 꽃이 피며, 꽃 밑에는 총포가 크게 자라 잎처럼 보입니다. 소백산국립공원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개체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깃대종(flagship species)은 유엔환경계획이 만든 말인데, 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
할 수 있는 주요 동·식물을 뜻한다고 합니다.
나의 설명을 듣더니 수대로 휴대폰을 꺼내어 모데미풀을 사진 찍기 시작한다. 다른 풀꽃들에게도 그렇지만 모데미
풀을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 찍는다는 것은-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얘기로 들리리라-결례가 아닐까 한다. 물론
내가 찍는 풀 바디 DSLR 카메라라고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앉은뱅이 삼각대와 릴리즈도 준비하여 상하좌
우로 들여다볼 수 있는 모니터 틸팅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넉넉한 시간이다.
산행도 해야 한다. 건성건성 찍는다.
눈을 가급적 먼 데로 돌리지 않는다. 거기를 본다면 차마 그냥 지나칠 자신이 없다. 모데미풀 이외에 다른 풀꽃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모데미풀과 경염(競艷)에 자신이 없어서일 게다. 모데미풀 군락지를 지나니 홀아비바람꽃과
꿩의바람꽃이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한다. 홀아비바람꽃(Anemone koraiensis Nakai) 또한 우리나라 특산식물
이다. 학명의 명명자 Nakai는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를 말한다. 나카이에 대
하여 약간의 설명을 덧붙인다.
나카이는 한일병탄 1년 전인 1909년 27세의 나이로 함경도 원산에 첫발을 디딘 이래 성진, 청진 등지에서 500여종
의 식물을 조사했다. 이후 그는 초대 조선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1842~1917)의 도움으로 1914년
조선총독부 소속 식물조사원으로 임명되면서 조선식물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게 된다. 나카이가 조선 땅에서 완전히
발을 뺀 것은 1942년이므로 28년간 그의 발에 밟히지 않는 조선 산하는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나카이는 제주도, 울릉도를 비롯해 함경도, 평안도, 금강산 등 조선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우리나라 식물 2만여 점을
채집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그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의 62%에 달하는 527종 중 327종의
학명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하나부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금강초롱꽃(Hanabusaya
asiatica Nakai)의 학명에 하나부사를 넣어주기도 했다.(이윤옥,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
잠시 하늘 가린 숲속 길을 지나고 제1연화봉 데크계단을 오른다. 상당히 가파르고 긴 데크계단이다. 황사는 점점 더
심해진다. 원경은 흐릿하다. 그렇다고 장쾌한 소백주릉을 다 가리지는 못한다. 제1연화봉 정상은 등로에서 왼쪽으
로 약간 벗어났다. 배낭 벗어놓고 들른다. 작년에 이 근처에서 보았던 노랑무늬붓꽃은 아직 싹도 나지 않았다. 봉봉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에는 데크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속도전을 펼치기 좋다.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천동리를 오간다. 비로봉 0.6km, 거기서 국망봉 갈림길까지 0.4km가 약간의 요동이 있
는 철망로드다. 스텝에 맞춰 걷기 좋다. 주변은 황량한 벌판이다. 철쭉은 캄캄한 밤중이다. 예전에는 고목인 주목이
즐비했는데-소백산의 명물이었다-지금은 다 사라지고, 저쪽 멀리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주목 군락지가 있을 뿐이다.
비로봉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차디차다. 우리도 배낭 벗어놓고 정상주로 탁주 분음한다.
13. 홀아비바람꽃
16. 꿩의바람꽃
17. 양지꽃
18. 왼쪽이 제2연화봉
19. 소백주릉 동쪽 지능선, 오른쪽이 원적봉(?)
20. 비로봉
21. 앞 왼쪽이 연화봉, 그 뒤는 도솔봉
22. 비로봉
24. 소백주릉 동쪽 지능선, 가운데가 원적봉(?)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은 예로부터 조망이 뛰어났다. 용문산은 물론 월악산, 태백산, 청량산, 문수산, 오대산, 치악산
등이 보였다고 한다. 오늘은 겨우 죽령 건너 도솔봉이 흐릿하게 보인다. 삼각점은 4등이다. 단양 425, 2003 재설. 소
백산의 명물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철쭉이다. 소백산 철쭉은 예전부터 이름났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1671)
은 풍기군수로 부임한 그 이듬해인 1549년 4월에 소백산 국망봉을 올랐다. 그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 중
일부다.
“산 위에는 기온이 매우 고랭(高冷)하여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쳐 그칠 사이가 없으므로, 나무가 자라면서 모두 동쪽
으로 기울고 가지와 줄기가 굽어 있고 왜소하였다. 4월 그믐께라야 잎이 피기 시작하고 1년 동안 자라는 것이 몇 푼
이나 몇 치에 불과하며, 앙상하게 시달려 모두 애써 싸운 모양을 하고 있으니, 깊은 숲과 큰 골짝에서 자라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 (…) 석름ㆍ자개ㆍ국망 세 봉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8, 9리 사이에 철쭉이 우거져 한참 난만하게 피
어 너울거려서 마치 비단 병풍 속을 거니는 것 같기도 하고 축융(祝融)의 잔치에 취한 것 같기도 하여 매우 즐거웠
다. 봉우리 위에서 술을 석 잔 마시고 시 일곱 장(章)을 지으니, 해가 벌써 기울었다. 옷을 털고 일어나 다시 철쭉꽃
숲을 지나 내려와서 중백운암에 이르렀다.”
Y자 국망봉 갈림길. 오른쪽 국망봉 가는 길은 막았다. 4월 30일까지다. 산불예방 및 자연자원 보호를 위해서다.
남들은 가는데 내가 못 가면 배가 아플 노릇이거니와 그쪽으로 가고 싶을 미련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막아놓아 잘됐
다 싶다. 어의곡주차장(4.7km)을 향한다. 완만한 내리막이다. 그쪽에서 오르는 여러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힘차게
수인사 건네 그들의 기운을 북돋아 준다. 울창한 잣나무 숲길 지나고 1,058.2m봉 직전에서 능선 벗어나 오른쪽으로
사면을 내린다.
가파르고 긴 데크계단이다. 데크계단이 끝나면 돌길이 이어지고 산자락 돌아 계곡 길이다. 등로 주변의 풀꽃들이
발목 붙든다. 자주족도리풀(Asarum koreanum J.G.Kim & C.S.Yook ex B.U.Oh)이 그 대표다. 자주족도리풀도
종소명에서 보듯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충북대 생물학과 오병운, 김재길 교수와 경희대 약학과 육창수 교수가
2020년 국제학술지 피토타사(Phytotaxa)에 발표하였다. 그간 자주족도리풀이 외대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오늘 들여다보니 외대에서도 꽃이 핀다.
계곡을 빠져나오자 비로소 하늘이 트인다. 바라보는 새밭문봉은 춘색이 곱다. 새밭은 을전(乙田)을 말한다. 하산 길
에 적지 않게 해찰을 부렸는데도 산행마감시간(17시 20분)을 40분이나 남겨놓고 마쳤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모데
미풀과 좀 더 놀다오는데 아쉽다. 주차장 아래 포말 이는 계곡으로 내려가 탁족한다. 발이 시리다. 서둘러 서울을
향한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르지 않는다.
저녁은 양재역 부근 음식점에서 먹는다. 지난주 연인산에서 데려온 덕순이가 남았는지 메아리 대장님이 덕순주를
조제했다. 오늘 버들 님의 감투정신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래서 술잔 높이 들어 건배한다. 버들 님이 초반에 무척 힘
들어 하면서도 먹는 것은 매우 부실했다. 물을 하도 많이 마셔 배가 부르다며 간식도 점심밥도 별로 먹지를 않았다.
걱정이 컸다. 산행거리 16.4km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럼에도 버들 님은 기어이 완주하고야 말았다. 나중에는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기세였다.
그때 버들 님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산행마감시간을 넘겨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버스 먼저 출발하라고 이르고,
우리는 택시 불러 단양으로 가서 열차나 시외버스 타고 가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면 나는 산마루에서 풀꽃들을 더
오래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 덕순주가 더욱 맛 난다.
<부기>
산행 중에 찍은 여러 야생화는 별도로 올릴 예정이다.
25. 가운데 흐릿한 산은 봉우등
26. 왼쪽 흐릿한 산은 봉우등
27. 멀리 오른쪽은 도솔봉
28. 털진달래가 아닐까.
29. 멀리 오른쪽은 도솔봉
30. 오른쪽이 국망봉
31. 비로봉에서
32. 소백주릉, 멀리 가운데 연화봉과 제2연화봉이 보인다
33. 자주족도리풀
35. 천남성
36. 어의계곡
37. 뒤 오른쪽은 새밭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