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은 아브라함 시대의 살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십일조를 받았으며 족보나 삶의 시작과 끝이 기록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다윗 시편과 신약 히브리서에서는 그를 레위 계통보다 우월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직의 모형으로 보아,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을 예표하는 핵심 인물로 해석합니다. 이처럼 구약의 역사적 인물에서 시작해 메시아적 예표로 발전한 멜기세덱은 쿰란 공동체, 필로, 유대교 문헌 및 초기 기독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멜기세덱
<영> Melchizedek; <히>말키체뎈; <헬> 멜키세뎈
아브라함 시대의 살렘 왕을 가리키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창 14:18). 멜기세덱은 나의 왕은 세덱 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세덱은 어떤 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문자적으로는 “의”를 뜻한다. 참조. 수10:1, ‘아토니세덱’). 히 7:2은 이 이름을 의의 왕으로, 살렘 왕을 평강의 왕으로 해석하고 있다.
살렘-이 성읍은 후에 예루살렘이 되었다-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은 사웨 골짜기(왕의 골짜기)에서 아브람(아브라함)을 영접하고,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의 군대에게 떡과 포도주를 제공하였다(창 14:17-18). 그리고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아브람의 복을 빌었으며, 아브람은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을 인정하고 그의 축복에 응답하여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 가운데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19-20 절). 이때에 아브람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이미 그에게 계시된 하나님 곧 여호와와 동일한 분이심을 인정하였다(참조. 22절).
시 110:4은 시온에서 통치할 유다의 왕을 멜기세덱의 계승자로 보고 있는데, 이 왕은 단지 그 성읍의 왕이 아니라,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다. 이러한 신분은 다윗 왕이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사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다(삼하6:12-19; 참조. 왕상 8:14,22-23, 54-56) 그런데 시 110편은 신약, 특히 히브리서에서 많이 인용되면서 또한 해석되어지고 있다.
히 7장은 창 14:18-20에 근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의 합법성을 인정한 것은 레위 자손의 제사장직보다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이 우전함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히 7:4-10). 그러므로 시 110편에 언급된 메시야적 통치자는 레위 계열의 제사장 직보다 앞선 한 계열의 제사장이다(히 7:11-19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참조.5:6,10, 6:20). 창세기를 보면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갑자기 소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히 7:3은 멜기세덱을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시작한 날도 생명의 끝도 없는 인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전임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모형이기도 하다(참조. 시 110:4). 이에 반해 레위 계열제사장의 합법성은 그가 레위 자손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는 그 합법성이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쿰란 공동체를 포함해서 유대교의 다양한 분파들이 큰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쿰란 공동체는 그를 하늘의 재판관으로 보았다(11QMelch). 또한 그는 「희년서」, 「십이 족장의 유언서」, 필로와 요세푸스의 저서들, 「탈무드」, 그리고 초기 기독교와 영지주의 책들 가운데서도 언급되고 있다.
* 참고 문헌
J. A Fitzmyer, Eassys on the Semitic Background of the New Testament SBL Sources for biblical study 5 (1974), pp.221-267; F.L.Horton, The Melchizedek Tradition, NTSMS 30 (1976).
출처: 『아가페 성경사전』, pp.468-469.
첫댓글 히5:5-11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씀에 특히 공감합니다.
<호크마 주석: 히브리서>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 저자는 앞에서 모세와 예수의 유사성을 비교하여 모세와 예수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서유사성이 있었으나(3:1-2), 우월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음을 논증하였다(3:3-6). 같은 방법으로 본절에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아론과 그리스도가 비교되고 있다. 양자는스스로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거하기 위해 시2:7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들로서 하늘의 특권을 지닌 자이며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존재임을 제시한다. 한편 저자는 본절에서 '예수'라는 이름 대신에 '그리스도'(* , 호 크리스토스) 즉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Morris, Lane).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 저자는 앞절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더우월하신 대제사장이심을 논증하기 위해 시110:4을 인용하고 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의 헬라어 '카타 텐 탁신 멜키세덱'(* )은 멜기세덱계열의 제사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멜기세덱과 같은 형태의 제사장이시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에게는 후손이나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Morris, Moffatt, Hewitt).
저자는 이러한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더 우월하신 존재임을 논증하고 있다. 아론계통의 대제사장은 오로지 제사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는 제사장이며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로서 훨씬 더 우월하시다(Bruce).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 본절은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과 똑같은시험을 당하셨음을 시사한다(2:14-18). '육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르코스'(* )는 '살'을 뜻하는 말로서 '영'과 반대되는
물질적인 육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연약성을 지니셨으며 인간이 느끼고 당하는 감정이나 어려움을 똑같이 느끼시는 대제사장이심을 시사한다(4:15, Bruce).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본 구절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의 지상 생활 중 겟세마네에서 드린 고뇌에 찬 기도장면에 대한 묘사일 것이라고 주장하나(눅22:39-46, Bruce, Robertson, Hewitt) 예수의 지상 사역 중 어느 특정한 순간에 적용시키기 보다는 그의 대제사장적인 사역 전체에 적용시키는 것이 타당하다(Lane, Maurer, Morris). 한편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에서 '올렸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세넹카스'(* )는 희생 제물을'바치다'라는 의미의 제의적(祭儀的) 용어이다(Maurer). 이것은 1절에서 언급된 대제사장의 제사와 평행을 이룬다. 대제사장이 속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물'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올린 '간구와 소원'을 의미한다(Rasco).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 '경외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라베이아스'(* )에 대해서는 두가지 해석이 있다. (1)혹자는 '두려움'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기도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Morris). 예수는 죽음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두려움을 느끼셨으나 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복하셨다. (2)혹자는 '율라베이아스'가 '잘'에 해당하는 접두사'유'(* )와 '붙들다'는 뜻의 헬라어 '람바노'(* )의 합성어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나타낸다고 한다(Robertson).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본문은 시22:24의 '부르짖을 때 들으셨도다'와 상응된다. 이것의 일례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장면을 들 때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14:36)라는 예수의 기도가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사실상 예수의기도의 목적은 고난의 잔을 옮기는 데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었으므로(막14:32-36) 그의 기도는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예수의 기도를 받아들이셨다(Boman, Rissi, Maurer). 이 사실을 저자가 본절에서 밝히는 이유는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의 제사가 항상 받아들여진 것은 아닌 반면에 예수의 기도는 받아들여졌음을 주지시키기 위함이다(Lane).
한편 본문은 앞에서 언급된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과 연결된다. '죽음에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 다나투'(* )는 예수께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예수를 지배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활을 통해 죽음의 영역을 극복하셨음을 시사한다(Vos, Friedrich).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고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시다(Morri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구원을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마덴 아프 혼 에파덴'(* )은 헬라문학에서 오랫동안 쓰여진 관용구로서'배우다'의 헬라어 동사어근 '마드'(* )와 '고난받다'의 동사어근 '파드'(* )는 음성학적으로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수사학적인 효과를 위해 자주 함께 사용되었다(Lane). 수사학적 관용구가 적용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 순종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였으며 순종의 과정 속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Bruce, Morris).
본절에서 사용된 '고난받다'의 헬라어 '에파덴'(* )은 '파스코'(* )의 부정 과거 능동태 직설법으로 본서에서 오직 '예수의 수난'에만 사용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암시한다.
=====5:9
온전하게 되었은즉 - 본절은 고난받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본질이 불완전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심으로 인해 사람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서 온전케 되셨음을 뜻한다(Lane, Hewitt, Meeter, Morris). 예수께서는 고난을 통해 구속 사업을 완수하시고 그의 백성의 대제사장으로 완전하다는 인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이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Klappert, Hewitt).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그리스도께서는 온전케 되신 결과로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본절의 '순종'은 앞절에 언급된 예수 자신이 행하신 '순종' 즉 죽음의 고난을 받기까지 행한 철저한 복종을 의미한다(Lane).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한 것과 같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도 그러한 순종을 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렇게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원한'의 헬라어 '아이오니우'(* )는 '끝없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은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참된 것이며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참하늘에 속한 것임을 암시한다(Morris, Williamson).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순종으로 온전케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는 칭하심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6절) 그리스도께서 율법하에 있던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과는 다른 약속의 은혜에 의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시사한다(Hewitt).
=====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 '멜기세덱에 관하여는'에 해당하는헬라어는 '페리 후'(* )로서 헬라어 '멜기세덱'이라는 명칭이 직접 거명되지 않고 관계대명사 '후'(* )로 나타난다. '후'의 성(性)에 따라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후'는 남성으로 10절의 멜기세덱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Robertson, Bruce, Morris). (2)'후'는 중성으로 그리스도의 전체적인 대제사장직을 가리킨다고볼 수 있다(Lane, Hewitt). 전자의 경우는 멜기세덱에 관하여 일반적인 유대 개념과는 다른 관점에서 설명될 것이므로 저자가 7:1-28에서 그것을 논하기에 앞서 본절을 통해 수신자들을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Robertson). 후자의 경우는 저자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라는 난해한 주제를 납득할 만한 이해력이 수신자들에게 결핍되어 있음을 수신자들에게 주지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Hewitt). 한편 '할 말이 많으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폴뤼스 호 로고스'(* )는 헬라 문학의 관용구로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하여 사용되었다(Lane).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 '둔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드로이'(* )는 부정어 '네'(* )와 '멀다'라는 뜻의 '호데오'(* )의합성어로서 '듣는 것에 무관심한' 혹은 '이해력이 부족한'을 뜻한다. 혹자는 본절을 앞 문단의 결말로 보아 '듣는 것이 둔하다'는 말은 9절에서 언급된 '자기를 순종하는
'즉 그리스도께 대한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 저자의 말을 수신자들이 충분히 깨닫지 못함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Lane, Morris).
상세한 설명에 공감합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자 '평강의 왕'이라는 뜻을 지닌 살렘 왕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로 축복하였으며, 아브람은 그의 제사장 직분을 인정하여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시편 110편과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을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오실 메시아적 통치자의 모형으로 예언하고 해석합니다.
그의 제사장 직분은 레위 계열보다 앞서며, 히브리서는 족보나 시작과 끝이 없는 그를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전임자이자 모형으로 설명합니다.
멜기세덱은 쿵란 공동체, 유대교 문헌, 필로, 요세푸스, 초기 기독교 등 다양한 전통과 문헌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하늘의 재판관 등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족보도 시작도 끝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처럼 영원히 거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통해,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구원 사역을 깊이 묵상합니다.
인간의 제사장 직분과 레위 계열의 한계를 뛰어넘어, 친히 의와 평강의 왕으로서 우리에게 생명의 떡과 잔을 나눠주시는 주님의 온전하신 주권 앞에 모든 공로를 내려놓고 엎드립니다.
이 땅의 헛된 혈통이나 율법의 의에 메이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서 영원한 대속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보혈만을 의지하여 날마다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레위 계열의 한계를 넘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주님의 완전하신 십자가 단번의 제사를 온전히 의지합니다.
인간의 공로와 율법의 의를 모두 내려놓고, 의와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보혈만을 바라보며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니다. 아멘!
아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왕의 제사장 신분을 인정하고 그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에게 축복을 받은 것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초신자 때는 멜기세덱이 누구고 누구를 예표하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하다가 성경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우리 카페에서 다뤄지는 많은 지식들의 도움을 받으니 멜기세덱 쯤이야 당연히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성경의 정교한 짜임에 대해 감탄이 나옵니다.
좋은 내용의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