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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가는 로또복권이 아닙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발견할 수 있는 네잎크로바입니다. 너무나 흔해서 오히려 등한히 하기 쉬운 것입니다. 오늘은 행복법칙 두번째, 생각 바꾸기입니다. 행복한 생각은 그대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 기적 가운데 사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한 기적이 있는데 그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이야기입니다. 사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다 나오는 사건이라는 것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과 그 기적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오늘은 생각이라는 관점에서 그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말씀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시간가는지도, 배고픈지도 모르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말씀을 많이 먹어도 여전히 먹어야 되는 존재입니다. 삶은 예기치 않는 문제들의 연속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 다니면서 수련한 제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https://youtu.be/QVGwC-tywO4?si=2vWus6t62YET7IEp
https://youtu.be/oPpI4qwiw8Y?si=qevSrOPStR5JcEQl
https://youtu.be/Zc5GXJ3LDAQ?si=D3W524X0OEQrFu9F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셔서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하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성경의 표현은 예수님이 미리 답을 다 아시고 저들의 생각을 아시려고, 믿음을 보시려고, 문제를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요 6:6)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지는 많은 문제들은 우리의 생각을 시험하기 위해 주신 문제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주어진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십니까?
빌립은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경제문제입니다. 예수님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입니다.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빵을 한 입씩만 먹는다고 해도, 그 빵을 사려면 이백 데나리온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요 6:7)
1000원짜리 빵하나만 줘도 5백만원이요, 5000원 식사로 하면 2,500만원입니다 그런 소리입니다.
예수님의 초기사역부터 따라다니며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들을 한 없이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도 역시 주님이 기적을 베푸실 수 있음을 생각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력이 오래되었다고 생각의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는 다고 하지만, 흔히 내 생각, 내 의견에 사로잡혀 신앙할 때가 많습니다. 돈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부족이 문제였습니다.
그때 안드레가 한 아이를 데려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 6:9)
안드레는 아이의 작은 도시락을 가져왔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거기 까지만 말했더라면 참 좋았을 터인데, “이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며 자신의 생각의 짧음을 드러내었습니다. 몇 %의 해결책이 됩니까? 얼마의 가능성이 되겠습니까?
1%의 가능성도 아닙니다. 확률을 계산해보면 단 1%, 1/5,000=0.02%의 가능성으로 이것은 해결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습니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그것은 경제상의 문제니 안된다고, 확률학적으로 불가능 하니 안된다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을 능히 해결해 보여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마 14:18-19)
내가 할 수 있느냐를 생각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실까에 대한 생각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경제문제, 확률문제도 아니라 믿음의 문제요, 견해의 문제요, 생각의 문제였습니다. 문제의 한가운데서 이미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줄 생각하시고 믿고 축사하시는 것입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안된다 못한다 하는 불가능의 중심에서 주님은 0.02%의 가능성을 100%로 바꾸어 버리셨습니다.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신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작은 것, 그것으로 무엇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생각을 집중하셨습니다.
1) 믿음은 생각 바꾸기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요? 믿음장 1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쉬운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히 11:1) 보이지 아니하지만 아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생각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 안된다는 생각을 주님때문에 긍정적인 생각, 된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고로 신앙이란 생각바꾸기입니다. 생각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다른 표현은 생각입니다. 지어내는 생각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창조적 생각,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 하나님이 하실수 있는 생각들을 하며 현실에서 이루어가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요 6:11)
저희의 원대로 먹고도 12바구니나 더 남습니다. 그러니 0.002%를 가지고도 100% 200%의 기적들을 이루어내십니다. 문제는 생각입니다.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동안 불평꺼리는 늘어납니다. 원망꺼리에 우리의 모든 생각이 점령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할수 없는 구제불능이 되고야 맙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되는 방향, 가능성의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위대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보통사람들은 되는 가능성이 많은 것 속에서 보통의 일을 해 냅니다.
악한 사람은 잘될 충분한 가능성속에서도 가능성은 보지 못하고, 안될것만보고 원망, 저주,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앞서가는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가능성을 가지고도 큰 일을 이루어내는 사람입니다.
더욱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 가능성이, 희망이 없는 것 가운데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냅니다. 그것이 생각의 힘입니다. 그것이 생각의 결과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작지만 주신 것,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생각이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낸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할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생각이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낸다.
2) 죄는 생각의 왜곡입니다.
* 한 술주정뱅이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술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 두 아들은 장성하여 한 사람은 술주정뱅이가 되고 또 한 사람은 정말 성실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결과가 참으로 궁금하여 한 기자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삶을 사시게 되었습니까? 술주정뱅이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서 제가 어떻게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세상에 불평꺼리, 원망꺼리를 도무지 찾을수 없는 곳이 어디였을까요? 아마도 그곳은 에덴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가득한 곳,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고 하실맘큼 모든 필요가 체워지고,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얼마나 행복하며 감사할수 있었을까요? 이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아담과 하와가 마땅히 해야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분명히 그모든 축복들을, 사랑들을 누리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저희를 위하여 창조하셨군요” 라고 할때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수 있었을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단은 하나님이 주신 그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할수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생각의 왜곡을 가져오는 질문을 합니다.
...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이제 하와의 마음속에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저것을 따 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같은 왜곡된 생각을 합니다. 생각이 그렇게 들자 갑자기 달라보입니다. 감정이 바뀌어집니다. 그 실과가 갑자기 먹음직스러워보이고, 보암직스러워 보이고, 탐스러운 매혹적인 실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초점이 맞추어졌을때는, 선악과를 따 먹는 일은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원망에, 서운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을 때는 따 먹지 않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노아홍수 때의 멸망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하나님이 고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렘 6:19)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하신 거의 대부분의 설교를 빠지지 않고 들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참석하지 못할 때는 사람들을 보내어서라도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기보다,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유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왜 그런 엄청난, 도무지 생각할 수 조차도 없는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5)
문제가 무엇이었나요? 생각이 문제요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하지 아니하고, 불평꺼리, 원망꺼리, 터집꺼리들만 찾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설교를 듣고도 멸망에 이른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십니까? 어떤 생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니까?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 5:25)
죄는 아무리 좋은 것도 왜곡시켜 버립니다. 그러니 좋은 것이 오지 못하게 됩니다.
3) 생각하는 대로 인생은 바꾸어집니다.
당신의 삶의 미래는 당신의 생각에 달려있습니다. 절망의 생각을 하면 절망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원망된 생각을 하면, 원망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노릇에서 구원하여 내시길 원하셨습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상 최대의 이적, 홍해의 이적을 베푸시고 구원의 사건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나요?
몸은 애굽을 나왔지만, 생각이 애굽에 메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어디있느냐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당신의 생각이 어디 있느냐입니다.
나의 소속이 어디있느냐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당신의 생각의 소식이 어디냐입니다.
생각하는데로 당신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손을 잡고 멸망해 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이끌어 내셨는데, 왜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까? 몸은 소돔을 나왔지만, 생각이, 마음이 소돔에 메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말씀을 들었어도 멸망에 이르렀습니까? 그 좋은 설교를 듣고도, 그 좋은 분과 만나고도 왜 구원에 이르지 못했나요? 그들의 생각이 은혜를 생각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꺼리, 험담꺼리에 초점을 맞추다 멸망한 것입니다.
모세의 위대함이 어디있습니까?
비록 죄악 세상 애굽에 살았지만 하늘에 그 생각이 고정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 11:26-27)
그의 위대함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며 산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는 보여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보화는 보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았을까요? 믿음을 통하여, 곧 생각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의 생각이 아무렇게나 생각하여 생각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들려주시는 말씀이 그의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그의 생각이 되었고, 그의 삶이 되었고, 위대한 이적이 되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1979년 9월 15일 생후 20개월 된 아이가 부모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타고 있다가 40톤 트럭과 추돌 - 자동차가 화재로 폭발해 버립니다. 몸의 85%가 3도 화상을 입고 50여 차례 수술을 받습니다. 그러나 치료과정에서 손, 발가락, 코, 입술, 귀 모두 떨어져 나가 버렸습니다.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아이는 자지러질 듯 울어야 했습니다. 아저씨, 제발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예수님 얘기를 들려주면 엄마,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보다 내가 더 아픈 것 같아요.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격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러한 아이가 어느날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원망에서 감사로, 잃은 것에서 가진 것으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손가락 발가락도 없는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축구 선수 농구 선수로 활약을 합니다. 청소년 시절엔 산악 자전거와 클레이 사격 선수로 이름을 날립니다. 그는 절망하지 않고 전 세계 앞에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다닙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①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신앙을 통해 배웠습니다.
② 나는 많이 빼앗겨서 많은 것을 줄 수 있어 좋습니다.
③ 하나님은 잃는 것보다 반드시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④ 오늘 나의 승리는 내가 대단해서도 아니고 내 가족이 대단해서도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대단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하나님은 나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많이 생각하면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조엘 소넨버그! 비관하고 절망하고 세상을 저주하며 살아도 비난할 수 없는 인생이지요. 그러나 그는 그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행복하기로, 용서하기로, 자신과 원수를 축복하기로!
그렇습니다. 「생각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없는 것만 생각하면 지옥이 되고, 주신 것 있는 것 감사하면 천국이 됩니다.
핍절의식, 노예의식, 절망의식, 불신의 생각, 부정적 생각이 우리 인생을 파멸시킵니다.
좋은 생각, 감사의 생각, 밝은 생각, 희망적 생각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생각으로 채우십시요. 운명이 바뀝니다. 당신의 삶이 바뀝니다. 인생의 값어치가 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