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육부서) 말씀일기 본문은 시편 75: 6-10인데
어제 시편 75편을 통째로 올려서
오늘은 (교회전체) 말씀일기 본문인 욥기 30장을 정리해서 올려 보겠습니다.
욥기 26장에서 31장까지는 욥과 욥의 친구들의 3회전에 걸친
논쟁 이후에
욥의 독백입니다.
자신의 고난은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과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과율’을 넘어선 것이라고 항변하며
하나님께 호소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독백의 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욥의 고난 받기 전과
지금 고난 받고 있는 때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욥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이런 재앙이 온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욥은 모릅니다.
욥기가 끝나도 욥은 자신에게 왜 이런 재앙이 왔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욥기’도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켜야 합니다.
죄 없이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림자처럼 욥이 보여줍니다.
욥이 당한 이런 고난을 ‘대속을 위한 고난’이라고 합니다.
‘대속적인 고난’이란
대속을 하시는 분이 죄 없이 대신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나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을 받은 이유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고함과 동시에
성도의 고난도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욥이나 다윗의 고난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라보게 됩니다.
만약 이런 부당하고 애매한 고난의 의미를 모르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헛수고로 보일 것입니다.
‘답이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딱 맞아 떨어지는 답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이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답은 결국 ‘인과율’입니다.
그러나 욥기서나 성경은 그런 인과율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도는 ‘답이 없는 고난의 길’을 가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만난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저주받아 죽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누가 찾고 믿겠습니까?
아무도 이런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찾아오신 하나님이
바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난 가운데 만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고난의 의미를 더 이상 ‘인과율’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그 ‘답이 없는 고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수학공식처럼 답이 나오는 길이 아니라
참으로 ‘답이 없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이 예측도 안 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잘 모르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답 없는 길처럼 보이는 그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길’로 보여 집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의 모든 수단과 방법들을 다 동원하여도 풀 수 없는
그 답 없는 길의 끝에서 발견되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길을 누가 스스로 찾아 가겠습니까?
아무도 그런 길은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길 되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것이 ‘답 없는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걸음입니다.
오늘도 ‘답이 없는 고난’ 속에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한 걸음씩 주님께 나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답이 없는 길’의 끝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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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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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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