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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質問)
누구나 삶의 질문 한 두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노동자로 생활하던, 장사꾼으로 생활하던, 아니면 직장인이나 교단에 서는 지식인이더라도 개인적이던 공동체의 문제이던 삶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기적인 질문일 수도 있고, 평생을 떠안고 가야하는 질문도 있을 것입니다.
“잘 제시된 문제는 반쯤 풀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어느 공학도의 말도 있지만 우리 삶의 문제는 어느 정도 성숙해야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은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 합니다.
누구나 어른이 되려면 성장통을 겪듯이 저 또한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특히 저의 성격이 내향적이어서 한 때는 삶의 허망함과 열등감이 저의 삶을 결박하여 힘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유치환시인의 『생명의 서(書)』의 첫 소절처럼 그렇게 나의 젊음은 황량했습니다.
그때 던진 질문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생명을 작동하는 힘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세계는 어차피 물리적 세계인 시간과 공간에 제약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한계 내에서 생명의 목적이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덧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사회가 만든 문명이 그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문명이 가진 물량과 기술적인 힘으로 자유의 영역을 넓혀온 것이 역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 범주내에서 인간은 사회와 시대가 갖는 구속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 속에서 개인의 좌표를 해독할려면 현재라는 시대를 읽을 수 있을 때에 가능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현재를 읽는 배경이며, 정치 또한 현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는 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태어난 것을 참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개인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의 가면을 쓴 어떤 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저의 오래된 질문인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철학적 질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현학적으로 흐를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자기가 생물학적 존재라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기도 하니까요. 저의 두 번째 질문인 현재의 좌표를 읽는 역사와 정치체제에 대한 것도 첫 번째 질문이 진정성과 구체성을 갖자 못한다면 어떠한 공감도 얻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이 지금보면 젊은 날의 치기일 수도 있고, 또 절박함이 부족했는지 한동안 외면하고 있다가 오랜 낭인생활을 끝내고 조금 안정을 찾게된 40전후의 나이에 다시 나의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제가 있던 마포사무실에서 버스로 10분이면 교보분고에 갈 수 있습니다. 가끔식 들러곤하던 교보문고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걸리던 글판에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문장이하나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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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다면 신(神)도 침묵할 것이고, 정의는 잠자며, 자연과학은
정지되고 철학과 문학은 말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정신적 충격이고 각성제였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책을 구매하기 시작하였는데, 교보 문고에서 아마 7~8백권은 족히 되었을 겁니다. 그 당시 청년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윌 듀란트의 『철학의 즐거움』을 다시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학자였으니까요. 그리고 윌 듀란트의 또 다른 저서 『역사의 교훈』의 한 문장을 읽으면서 사유의 모호성에서 벗어나 이 세계의 구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생물학의 한 조각이다. 인간의 생명은 육지와 바다에서 유기체들이 겪는 온갖 우여곡절의 일부이다.” 그것은 어떤 철학적 사유도 구체성을 갖지 못하면 공허한 사유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사색의 표류가 끝없이 지속되면서 저에게는 중심도 끝도 없는 세계만 펼쳐졌습니다. 그러다가 이 삶의 수수께끼와 세계의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교양과학 도서들도 즐겨 읽곤 했는데 다행스럽게 그런 책에서 이 세상 사유의 끝에까지 가본 사람의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이며 영국왕립학회 의장인 마틴 리스가 도달한 사유의 끝을 보게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큰 수수께끼는 이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인가가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왜 존재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방정식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들을 현실 우주로 구현시킨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그런 질문들은 과학너머에 있다. 그것들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영역이다.”(마틴 리스『여섯개의 수』)
별과 원자 사이, 바이러스와 인간 사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이 한낱 바이러스든 신(神)이든 우주를 통제하는 힘이 존재하며 그 힘들은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출현과 생존은 우리가 실제 볼 수 있는 우주보다 훨씬 더 광대한 우주의 특별한 ‘조율’에 의존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연과학은 어떻게 이러한 세계가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해석은 할 수 있지만 왜 이러한 세계가 만들어져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취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마틴 리스의 말에 각주(脚註)를 달았습니다. (각주: 폐 일언하고 종교인들과 신학자들은 신(神)이 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것은 참 편리하지만 열쇠도 없이 문을 잠구어 버리는 무책임한 사람이나 할 짓이다. 그기에는 아예 과학적 지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설사 과학이 이 세상을 설명하는데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다듬어 나가야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어떠한 피조물도 할 수 없는 인간의 고귀한 정신이다.)
그리고 나는 사유의 끝에 가보았던 또 한사람의 글을 읽게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끝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내가 그토록 뜨거운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 남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단순한 무(無) 또는 공허(空虛)이고 공포의 원인이었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공포일까. 아직은 이해가 안간다. 하지만 공간·시간·그리고 인과율과 같은 한정된 틀을 초월하는 것이 꼭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비상식적이라거나 소스라쳐 놀랄만한 일이 못된다.” (칼·구스타프 융『기억, 꿈, 사상』)
아시다시피 칼·구스타프 융은 분석심리학을 개척한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제자로 스승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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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넘어선 정신분석학자였습니다. 우리의 고사성어로 이야기하자면 청출어람이벽어람(靑出於藍而碧於藍)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는 프로이드의 리비도(성적본능에 의한 충동)개념을 넘어 집단무의식의 경지를 열었습니다. 어떤 집단 혹은 민족의 경험 속에 녹아 있는 무의식의 개념이 개인의 무의식의 개념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힘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신화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융은 그것을 인간의 원형(原型) 곧 아키타이프(Archetype)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유의 끝이 도달한 글은 저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 조차도 자신이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어렵게 찾아낸 문명사관인 도전과 응전의 역사운동을 칼 융을 먼저 알았더라면 그렇게 방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한 적도 있습니다. 융의 인간의 의식에 대한 사유는 결국 세계의 실재를 인식하는 데에 이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에 동물계를 초월하고, 마음이 있기에 그의식의
발달이 자연의 일방적인 기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의식과 더불어
세계의 실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곧 자연을 소유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 창조주를 확인하는 행위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적인 사고행
위가 아니었더라면 아예 존재할 수 없었던 세계가 이에 의해 비로소 현상적
인 세계로 모습을 드러낸다. 창조주에게 만일 자기의식이 있었다면, 자신외에
의식을 가진 피조물을 결코 창조해 내지 않았으리라.“
(칼·구스타프 융『기억·꿈·사상』)
제가 알기로는 마틴 리스와 칼 융은 분야는 다르지만 평생을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조율하는 방정식을 찾아다닌 학자였습니다. 그 방정식은 사실 요즈음 디지털 언어로 말하면 알고리즘에 해당됩니다. 그들의 질문하는 능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몰두하도록 만들었을까.
오랜 생각 끝에 저는 그것을 ‘설레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명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설레이는 호기심이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레임을 김광규 시인은 어린아이들의 생명력에서 찾은 듯 합니다.
“아이들의 팽팽한 마음, 튀어오르는 몸, 그 샘솟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김광규의 『오래된 물음』)
이 설레임은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찾아오는 것이며, 그들에게 시를 쓰게하기도 하고,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하게도 하며 그림을 그리게도 하는, 또한 글을 쓰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사실 이 설레임이 없다면 그의 삶의 생명력은 고갈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은 노년이라도 이 설레임을 가졌다면 그는 젊은 사람이며 또한 외모도 남보다 젊게 보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설레임이 우리 생명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저도 그것을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열정을 가진 기질도 아니어서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만들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주제파악(?)은 제대로 하고 있어서 주제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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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짓은 감히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독서였습니다.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독서량을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책을 읽을수록 내가 참 무식하다는 걸 일깨워 주었습니다. 김남조 시인의 말은 그런 설레임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시인의 감성은 참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지식과 지성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임마누엘 칸트의 핵심을 찌르는 말도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조직화된 지식이다, 지혜는 조직화된 삶이다.”
지식은 호구지책(糊口之策)이요 지혜는 인생지책(人生之策)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하여 저의 독서여정이 시작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저의 독서여정은 첫 번째 질문인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생명이란 어떻게 작동되는가.’ 두 번째는 ‘현재를 읽는 배경이 되는 역사와 정치제도는 무엇인가.’에 대부분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나의 삶에 대한 문제와 한반도의 생존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것을 외면하면 불의하고 부당한 권력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악마는 착한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때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 곧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도 정치적인 감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일찍이 2천4백년전 아테네의 정치적인 감성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한 페리클레스의 글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곳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조용함을 즐기는 자로 여겨지지 않고, 시민으로서 무의미한 인간으로 간주된다.” 명(明)나라 말기 고증학자 고염무(顧炎武)도 일침을 가합니다. “천하(天下)가 망하는 데에는 필부(匹夫)에게도 책임이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말이 전문분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주로 주제파악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며, 개인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삶에도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의 교육열은 유대인의 전통적인 교육철학울 하나의 전범(典範)
으로 세계가 칭송하듯이 우리 교육에 찬사를 보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이 일제강점기와 참혹한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경제대국 10위에 오른 것은 우리의 교육수준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열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높지만 그것이 만드는 학벌이 신분제사회가 되어 평생을 규정짓고 탈락한 사람에게는 패자부활전도 어려운 냉혹한 사회를 만들로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중등과정에서 소위 일류라는 우수한 학교에 들어갔지만 사람의 가치를 시험점수와 성적순위로 결정하는 것에는 늘 회의를 느껴왔습니다.
그런 회의와 나 자신의 열등감에 저의 독서 취향은 교과서류의 위인전이나 세계명작등에서 벗어나 이 세계가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철학적인 성찰이 수반된 비판적인 독서로 방향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 집에 교회전도사가 심방을 오게되었습니다. 아마 신앙심 좋은 저의 부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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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고신대학 출신 젊은 전도사는 고등학교 입학 후 교회를 나오지 않는 저를 구원(?)하러 오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대개 전도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사는 셰계를 이해시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화시킬려고 하며, 대상이 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하는 일방통행식의 설교에 가깝습니다. 마치 우리의 교육이 진부한 주입식이듯이 말입니다.
그때 저의 책상에 알베르 까뮈의 책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고식적인 자세를 취하며 무신론자 였던 까뮈도 교통사고로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쩝…사실 그런 논리에는 저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자나 성직자들은 교통사고에서 제외되는 특권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전혀 설득력이 없는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신학대를 갓 졸업한 전도사들이 가진 독서량이나 삶의 성찰이 깊었으면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 당시에는 저는 반작용으로 그런 책에 더욱 침잠해 들어갔습니다.
아마 그때 읽은 책들이 장용학의 『요한시집』과 최인훈의 『광장』같은 작품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집단 전체의 질서에 들어 맞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개성과 개인적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 획일적 삶의 양식이 결박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공감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이나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을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무진기행이 주는 분위기는 나의 불확실한 삶을 안개로 상징하듯이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독서 편력은 누구의 지도를 받으며 선택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어서 가정과 학교가 원하는 정향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나를 점점 더 비주류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군복무시절에는 신병이었을 때는 어느 병사나 겪는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참모실에 있던 관계로 고참이 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모처럼 독서를 할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가져갔던 책이 아놀드 토인비의 『현대문명비판』이라는 다수의 논문집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활자체로 되어 있어 지금은 읽기도 어려운 을유문화사의 교양선집으로 소장한 지가 50년이 넘는 이책은 아직도 저의 서가에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옥스포드 배일리올칼리지 출신으로 그 대학은 영국대학에서도 부동의 일위를 차지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 진화론의 최전선에서 과학의 대중화를 이끄는『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 리챠드 도킨스, 하버드 대학생 수백명과 토론식 강의로 ‘정의’의 철학적 지평을 넓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교수들이 이 대학 출신들입니다.
저는 토인비 논문집을 읽으면서 엄청난 지식을 가진 역사학자라는 것, 그리고 그때까지는 몰랐던 역사와 신학(神學)을 연결하는 접점에서 역사의 가치를 신학의 영역에까지 확대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정통역사학자들은 물론 그런 연결고리들을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토인비는 시(詩)와 신화의 영역이 역사학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한때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미·소 냉전시대에 외교분야에서 뛰어난 역할을 했던 헨리 키신저 장관은 토인비의 역사관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사람으로 그의 박사논문도 토인비 연구로 학위를 획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로 하여금 사고의 전환을 하게 만들었던 인물은 영국의 박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이었습니다. 물론 ‘진화론’이라는 이론이 18·9세기 유럽과학자들의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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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공공연히 인정되었지만 그것이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작동이 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은 19세기 문명의 정점에 있었던 세계국가로서 그 시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윈은 부르조아계급인 대지주이자 의사의 아들로서 삶을 위한 직업과는 관계없이 곤충채집과 보잘것없는 바닷가의 따개비 연구를 시작으로 생물학과 지질학 그리고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문의 분야를 넓혀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박물학 재능을 알아 보았던 에딘버러대학의 은사였던 헨슬로교수의 추천으로 해군전함 비글호(號)를 타고 5년간(1831~1836) 과학탐사를 하며 화석표본을 위시한 수천 점의 표본을 수집했으며 18권의 방대한 비망록을 기초로 『비글호 항해기』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다윈이 서른살에 출간한 이 책은 알렉산더 흄볼트의 저서 『코스모스』와 함께 가장 위대한 탐사기로 평가받고 있는 책이며, 그가 남아메리카 마젤란해협을 거쳐 갈라파고스섬에서 행해진 연구는 결국 그의 불후의 명작 『종(種)의 기원』이라는 책의 가장 중요한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1687년 『프린키피아』라는 저서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밝혀낸 아이작 뉴턴이 “내가 이룬 업적은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고백하였듯이 다윈 역시 그런 거인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기 때문에 인류의 과학과 지성사에 거대한 업적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거인의 대표적인 인물이 알렉산더 폰 흄볼트와 『인구론』의저자 맬서스, 그리고 『지질학 원리』를 쓴 동시대의 지질학자이며 다윈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찰스 라이엘이었습니다.
“흄볼트가 없었다면 비글호를 타지도 않았을 것이고, 『종의 기원』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흄볼트는 18세기 유럽의 지적 영웅이었습니다. 18~9세기를 통털어 최고의 시인이며 작가였던 궤테조차도 “흄볼트와 함께 하루를 보내며 깨달은 것이, 내가 혼자서 몇 년 동안 깨달은 것보다 훨씬 더 많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로만 듣던 흄볼트를 우연히 KBS다큐 4부작 『왜 탐험하는가』를 보면서 저 또한 초인적인 흄볼트의 탐험을 위대한 업적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큐는 흄볼트가 경험했던 탐험루트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는데, 남미 페루와 칠레를 흐르는 해류를 흄볼트해류라고 부르며 그 해역에서 살고 있는 1m짜리 대왕오징어를 흄볼트오징어라고 하고, 심지어 사막에서 사는 펭귄을 흄볼트펭귄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기념하여 명명한 베를린 흄볼트대학은 전세계의 자연과학자들 뿐만아니라 인문학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 수학자 아이젠슈타인, 사실 중시의 실증주의 역사학자 레오폴드 랑케, 철학자 포이에르 바흐, 노벨 물리학자로는 막스 플랑크, 아인시타인, 하이젠베르크 등이 이 학교에서 연구하거나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인터넷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알고리즘입니다.
말하자면 알고리즘이 더 많은 영역에서 이 세상을 지배하며 인공지능에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리즘의 원료는 데이터입니다. 다윈은 빅토리아시대의 대영제국에 실았으며 부유한 부르조아 집안이기 때문에 그때 수집할 수 있는 최고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데이트를 수집하여 찾아낸 결론이 자연선택이라는 알고리즘이었습니다. 데이터가 없다면 어떤 종류의 모델링이나 공식을 통해서도 유용한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거꾸로 모델링을 통해 만들어진 알고리즘이 없다면 데이터는 파편화된 정보의 조각들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유능한 수사관은 범죄현장에 남아 있는 사소한 흔적들을 증거로 근거하여 번죄현장을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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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피의자를 압박하여 꼼짝할 수 없도록 자백을 받아냅니다. 우리는 1980년대 미국의 형사추리극인 『형사 콜롬보』에서 콜롬보형사가 범죄현장을 재구성하는 추론능력을 보며 많은 공감을 했던 적이 있으며 더빙을 한 성우 배한성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나는 역사가와 과학자들도 그런 추론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과학자에게는 데이터와 그가 세운 가설은 시간이 갈수록 또 그 학설을 계승하는 학자들이 많을수록 더욱 더 정교한 모습을 갖추어 나가게 됩니다.
다윈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은 흄볼트 같이 직접 탐험을 통해서수천점의 표본을 수집한 경우(비글호의 5년간의 항해)와 세계 여러나라의 .과학자들과 동물원의 사육자들, 그리고 여러 전문가들과 서신을 왕래하며 알게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와 편지를 주고 받은 사람들이 인도 자메이카 뉴질란드 카나다 오스트렐리아 중국 보르네오 하와이제도까지 아우르는 것을 보면 당시 빅토리아시대의 영국이 얼마만한 영향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서신은 말레시아에서 측량기사로 종사하고 있는 러셀 월레스가 보낸 서신이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다윈이 생각했던 동식물의 생존과 멸종, 그리고 종(種)이 어떻게 분화되어 종의 기원을 이루는지, 그리고 가장 강력한 힘인 자연선택을 고스란히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월레스의 서신 중의 일부입니다.
“본 글의 목적은 여러 종(種)의 개체가 부모보다 더 오래 살기위해 수많은
다양성을 일으키고 최초의 형태에서 후대로 가면 갈수록 연속적인 변이를
일으키는 일반 법칙이 자연에 존재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윈은 밀림에 있는 한 측량기사가 이런 사고에 이르렀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후 든든한 후원자였던 찰스 라이엘의 중재로 월리스와 서신은 계속 이어져 두사람은 경쟁자가 아닌 과학사에서도 보기드문 아름다운 관계로 칭송받는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다윈이 완성한 진화이론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창의적인 시선과 다윈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통해 수집한 방대한 정보의 합작품으로 보아야 됩니다.
다윈이 주고 받은 서신 중에 전 세계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만 해도 1만 4천통이 넘으며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거의 초인적인 탐구라고 할 만합니다. 당시는 우편제도가 생긴지 얼마 안되어 런던에 살고 있는 과학자 친구이자 동료들인 토마스 헨리 헉슬리〮〮· 조지프 후커· 찰스 라이엘등과는 서신왕래도하며 학회의 일로 만날 수도 있지만 에른스트 헤켈을 비롯한 수십명이나 되는 독일의 자연사학자들,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의 식물학자 아사 그레이와의 서신은 한번 답장을 받는데에만 두 달정도 걸리기도하며 특히 오지에 사는 탐험가들과는 답징을 받는데는 큰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다윈의 예의를 갖춘 정중한 편지에 성실한 답변을 해주었으며 다윈을 존경하며 그 학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습니다. 독일의 헤켈과 하버드대학의 아사 그레이교수는 다윈을 예찬하는 다윈주의자가 되었으며 시골에 있는 다윈의 집 다운하우스를 방문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들을 다윈의 전기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여러 전기 중에도 자넷 브라운이 쓴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책은 어느 문학작품보다도 감동을 주는 기념비적인 전기였습니다.
생명은 다른 허튼 짓은 접어두고 오로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가지의 일을 지상의 과제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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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자신의 에너지를 전부 투입합니다. 그에 따라 생존전략과 성적전략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개발합니다. 이 두 가지 전략의 핵심은 속임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속임수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포식자와 먹이 사이에는 생존전략으로 속임수가 치열하게 개발되며, 암〮·수의짝짓기와 남·녀의 짝짓기에는 성적전략의 속임수가 다양하고 기이할 정도로 변칙적인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보고 있습니다.
요즈음 저는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술이 극대화되는 것이 공작의 수컷이 화려한 꼬리를 비대칭적으로 진화시키는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할 정도로 의혹이 갑니다. 그렇게 남성의 눈을 끌게하고는 접근하는 남성을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는 모습은 여성이 갖는 이중성을 적나나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성적전략일까요.
영상매체의 발달로 남성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보는 기준이 보통 높아진 것이 아니므로 여성의 아름다움 추구도 한동안 극도로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따라 남성의 자세도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필요할지 모르겠군요.
사실 생존전략과 성적전략은 두가지 다 필요하며 상식적으로는 서로 상보적인 것이 개체의 존속을 위해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생존을 포기하고 짝짓기에 올인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인간에게는 문학의 소재가 돠어 ‘로미오와 쥴리엣“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짝짓기에는 자연선택이 작용하여 지혜롭게도 최적치(optimum)를 찾아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는 여자에게 이춘풍같이 생존자원을 다 탕진하고 신용불량자가 되든지 가십거리가 되어 사회적으로 매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선택은 생명의 진화가 작동하는 공식이며 ‘알고리즘’에 해당됩니다. 물론 그 이론은 단순한 이론이지만그것이 모든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란 존재가 이 우주 속의 하나의 생명현상에 불과하며 그렇게 위대한 존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다윈의 생명과학은 오랜 과거로까지 소급하여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우주는 자연의 장엄함을 아는 자를 겸손으로 인도해 줍니다.
그리고 나는 존재의 왜소함을 아는 자만이 역설적으로 존재의 위대함을 진정 알아볼 수 있으며, 문학과 시와 음악을 통해서 이세상의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고귀한 정신을 큰 울림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작가나 음악가가 될 수는 없어도 그들의 작품에서 웅장한 서사나 장엄한 정신을 느낀다면 우리는 때때로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9년 2월12일은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으며 『종(種)의 기원』이라는 책이 출간된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다윈의 학문을 계승하는 다위니언(다윈주의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그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자연과학자로서 학문의 통섭을 연구하는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교수와 서울대에서 진화론을 철학의 영역에까지 확장하고 있는 장대익교수,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이며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교수가 대표적인 다윈주의자로서 “다윈포럼”이라는 학술행사를 열어 그를 추모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에이브러햄 링컨대통령 또한 1809년생이며 출생날짜도 다윈과 같은 2월12일이라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물론 다윈은 영국의 전형적인 유산자집안인 부유한 의사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반면에 링컨은 켄터키의 오두막집에서 가난한 구두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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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사람 모두 끊임없는 노력으로 50대의 나이에 인간의 사고와 가치를 위해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다는 것은 나에게는 우연이라기보다는 어떤 묵시적 예언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제가 생물학전공자도 아닌데도 다윈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다윈의 학문은 단순한 생물학이 아니라 그기에는 깊은 철학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윈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들인 다위니언들의 책들이 좋은 안내자 구실을 해주었기 때문에 다윈의 자연철학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자연선택이라는 이론은 단순하지만 그것이 설명해줄 수 있는 생명세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합니다. 그것을 잘못 받아들이면 적자생존이라는 유전자 우생학이 인종차별이라는 비극적인 결과까지 낳기도 합니다.
그런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양수준 이상의 지성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됩니다.
마침 저는 자연선택이라는 알고리즘에 깊이 몸을 담구었던 학자들의 책을 먼저 읽고나서 다윈의 『종의 기원』을 접했기 때문에 그런 혼란을 피할 수 있었으며 제닛 브라운이 쓴 다윈의 전기는 다윈의 참다운 진가를 알게해주었습니다.
제일 처음 저를 인도한 책은 리챠드 도킨스의『이기적인 유전자』이었으며, 청소년시절 저룰 도취시켰던 쥘 베르너의 과학소설인 『해저2만리』이후 그렇게 재미있고 웅숭깊은 과학책을 접하기는 처음일 정도로 빠져들었습니다. 그의 해박한 지식도 놀라웠지만 그런 전문적인 지식을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전달하는 그의 표현력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않을 수 없습니다. 그후 그의 두 번째 저서 『확장된 표현형』과 세 번째 저서 『눈먼 시계공』에서는 완전히 압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생존기계’입니다. 유전자라는 이기적인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는 움직이는 로봇같은 것입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생명의 전략 핵심은 속임수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속임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속임수가 동물들의 의사소통의 기본이라면 이 속임수를 감지해내는 능력 또한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강력한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자연이 작동하는 힘은 신비스러워서 자발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은 우리의 경제생활이 작동하는 시장과도 같다는 점을 느낍니다. 자연과 시장은 둘 다 정직합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인간적인 언사로 이야기하자면 냉혹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과 다른점은 우리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시장을 냉혹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도킨스는 이 점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경고하건데, 개인들이 이기적이지 않은 마음으로 서로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에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량과 이타심을 교육해야 한다.”
이같은 솔직한 통찰력에는 우리는 공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블랙박스인 유전자 DNA의 부호는 청사진이나 복사기가 아니라는 걸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침서에 가갑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DNA는 복사되는 것이 아니라 지침서이기 때문에 조그만 변이는 항상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사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을 숙주로 하지만 언제든지 변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DNA의 본질을 알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광기의 바이러스는 언제든지 정치와 종교를 숙주로 삼을 수 있으므로 코로나19바이러스가 종교적 광신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신천지교회에서도 우리는 그런 사례를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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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과 생명진화의 메카니즘을 통하여 세계의 실재를 인식하는 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다음은 도킨스가 다윈을 예찬하는 글입니다.
“우리의 뇌가 진화한 한정된 세계에서는 작은 물체들이 큰 물체보다 더 잘움직이기 때문에 큰물체들은 움직이는 것의 배경처럼 보인다. …중략…우리의 진화한 뇌는 전경에 있는 산과 나무가 아니라 그 천체들이 움직인다는 환각을 부여한다. 우리 정신의 부르카에 난 틈은 좁다. 우리 조상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더 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은 부르카의 틈새를 움켜지고 억지로 열어서 현기증이 날 정도의 새로운 이해가 쏟아져 들어오도록 했고, 인간의 정신을 유례없을 정도로 고양시킬 힘을 부여했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경외심을 작가 더글라스 아담스가 잘 표현하고 있어 첨부해 봅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하지만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에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했어요. 나는 신이라는 개념에 극도로 회의적이었지만. 생명과 우주와 만물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타당한 작업모형을 구축하기에는 아는 것이 부족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고 생각해서 해답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다가 30대 초반에 우연히 진화생물학을 접하게 되었지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리챠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 그 다음 작품인 『눈먼 시계공(The Blind Wachmaker)』을 통해서 였어요. 갖자기 ‘이기적 유전자’를 두 번째 읽고 있을 때였던 같은데 모든 것이 제자리에 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단히 단순하면서도 생명의 모든, 한없이 다양하고 난해한 복잡성의 근원이 되는 개념이 있었지요. 그것을 접했을 때 느낀 경외심에 비하면 사람들이 종교적 경험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경험은 솔직하게 시시하게 여겨졌습니다. 나는 언제라도 무지의 경외심보다는 이해의 경외심을 택할 겁니다.”
저 또한 이해의 경외심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며. 자연스럽게 생명의 허무감에서도 벗어나 이 놀라운 세상을 경이롭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 매력에 저는 계속해서 다윈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들의 책을 탐독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케언즈 스미스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일곱가지 단서』, 진화론의 핵심을 가장 잘 설명한 책이라고 평가받는 에른스트 마이어의 『진화란 무엇인가』, 진화생물학자이며 인류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섹스의 진화』, ‘인간의 본성은 타고나는가’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을 쓴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tabula rasa)』, 인간의 진화는 여성이 주도했다는 레나드 쉴레인의 『지나 사피엔스』와 같은 책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한편으로 리처드 도킨스와 견해를 달리하는 일군(一群)의 학자들의 작품도 읽게되었는데 유전자선택론과는 또 다른 다수준 선택론도 있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진화론자이며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 엘드리지교수 같은 사람들로 고생물학자답게 지질학의 암석연대 표본조사에 능한 사람입니다. 굴드 또한 지적 스펙트럼이 워낙 넓은 사람이다 보니 그의 글쓰기는 전방위를 누비며 종횡무진으로 독자들을 압도합니다.
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약할 때도 있으며 생태계가 안정된 상태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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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의 시대를 근거로 ‘단속평형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메이저 리그의 열렬한 팬으로 야구광답게 메이저 리그에 4할대 타자가 1941년 테드 윌리암스가 기록을 올린 이후 78년동안 배출되지 않는 이유를 그의 단속평형설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투수와 타자의 공진화로 어느정도 상향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4할대 타자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언했습니다.
그의 저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와 『풀하우스』에는 독자들의 새로운 사고를 유도하는 그의 다채로운 지식의 향연을 볼 수 있으며, 교양서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문서적이라도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글은 문학이나 역사와 철학에도 깊은 내공이 있어야 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칼 세이건 , 리챠드 도킨스, 제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학자들은 그런 능력이 있다고 보여지며, 아마 그들은 우물을 깊게 파기 위하여 처음에는 땅의 면적을 넓게 잡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굴드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종교와 많은 갈등을 빚게되자 사실진술과 가치진술은 다르다는 의미로 “과학이 암석의 시대를 다룬다면 종교는 시대의 반석을 다룬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시대의 엄숙한 신앙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에 다윈은 종교계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다윈의 학문을 계승하고 있는 다위니언 학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한껏 누리며 진화론의 외연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 모든 학자들은 다윈의 가치와 명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만아니라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분자구조를 밝힌 이후 부터는 진화가 유전자 수준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명백하게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DNA는 말하자면 생명의 블랙박스입니다.
메디슨 대학의 유전학 교수인 션 캐럴은 이 블랙박스를 열어 진화가 DNA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한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이야기』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DNA분석은 머리카락이나 지문 분석보다도 정확하고 엄밀하며 A(아데닌) C(시토신) G(구아닌) T(티민)이라는 분자로 염기서열을 이룹니다. 1982년까지 밝혀진 DNA염기서열은 100만가지 형질이 체 되지 않았으며 뚜꺼운 책 한권 분량에 불과했으나 지금 그책은 110층짜리 빌딩높이까지 쌓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분량이 되었습니다.
DNA분석능력으로 미국에서 1996년에 17년 전의 살인현장에서 나온 증거를 가지고 분석한 결과 살인미수 혐의로 16년간 복역생활을 한 사람이 무죄로 판정이 나 출옥을 했습니다. 물론 진범은 복역 중이던 다른 사형수의 DNA와 일치하여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그후 13년 동안 150명의 재소자들이 무죄를 입증 받아 풀려났으며 이 가운데 사형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봉준호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수사관들의 끈질긴 추격 끝에 어떤 확신을 가지고 증거물(정액)을 미국에 보내 DNA를 분석의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이라면 우리 기술력으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 돌아온 답은 피의자의 DNA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수사관들의 허탈한 모습이 떠 오릅니다.
A,C,G,T 라는 단 네 개의 철자가 거의 무한히 나열된 이 텍스트들의 해독은 진화생물학 역사상 가장 큰 기회를 열어주고 있으며 DNA는 다윈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진화에 대한 다윈의 생각이 옳았음을 결정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다윈의 위대함이 최첨단 과학에서도 증명이 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다윈이 세운 가설은 150년이 넘도록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점점 더 정교한 과학적 사실로 자리잡았습니다. 참으로 그는 위대한 과학자였으며 전기작가 재닛 브라운의 말대로 그는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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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DNA 증거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카니즘을 넘어 인류의 기원과 초기 문명에 대한 인류학의 분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250년의 노예제로, 보상할 수 없는 고역으로 축적되어진
부(富)가 사라질 때까지, 또한 채찍 밑에서 흘린 피 한방울 한방울이
검(劍)에 의한 피로 보상되어질 때까지 이 전쟁이 계속되는 것이 신(神)
의 의지라면, 3천년 전의 계시처럼 지금 또한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신(神)의 재판은 진실로 모든 것이 올바르다’라고”
(링컨 제2회 대통령 취임연설 중에서)
이 연설문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재선된 링컨 대통령의 취임연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적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관용을”이란 말로 화해의 새시대를 열자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남군과 북군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관용이란 말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을까’라고도 생각할 수고 있었습니다. 링컨이 취임연설을 한 1865년 봄은 여러 주(州)의 농업은 계절에 의해 춘경(春耕)을 하지 않으면 생산에 심한 타격을 받아 아주 심한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부의 그랜트장군이 바로 그때 체결된 항복조건 속에 반대조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 막 무기를 내어던진 남부병사들에게 말을 끌고 농토로 돌아가도 좋다는 저 유명한 양보를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애서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고향 타라로 가서 다시 재기할거라는 독백을 합니다. “신께 맹세할거야, 다시는 배고프지 않곘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 오를거야,”
게티스버그 연설은 남북전쟁의 격전지였던 게티스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3분동안의 짧은 연설이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로 우리가 지켜야할 민주주의 정수를 가장 잘 드러낸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는 일반사람들도 잘기억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2번째의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더 좋아합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국민 여러분’이란 말보다 ‘나의 동료 시민여러분’ 곧 My fellow citizen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국민을 기만한 이유도 있지만 정부를 불신하는 풍조는 조선시대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우리의 오래된 역사의 트라우마입니다. 그래서 ‘국민 여러분’이란 말은 너무 진부하게 들려 미국의 대통령들이 ‘나의 동료 시민 여러분’이란 말이 더 참신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특히 링컨, 케네디, 레이건, 오바마같은 대통령들이 ‘내 동료 시민 여러분’이라고 할 때 우리는 더욱 공감을 느낍니다. 그에 더하여 그들은 유머를 쓸 때도 동료시민들과 일상적으로 소통이 되는 유머이지만 결코 품격을 잃지 않는 센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의 트럼프 정부는 그러한 품격을 볼 수 없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미국의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은 연방제를 유지할려는 북부여러 주(州)와 분리독립과 노예제를 유지할려는 남부 여러 주(州) 간에 치러진 내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내전으로 사망한 남군과 북군의 숫자가 무려 60만명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전쟁 살상력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엄청난 희생이었습니다.
이러한 전쟁을 치른 전쟁을 설명하고자 하는 역사가는 어떻게 미국인이 어떤 명분이 있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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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화를 굳이 겪어 내려 했는가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자본주의사회의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공업화를 진행하고 있던 북부 자본가와 전통적인 남부의 대지주 경영자의 갈등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합리주의자로만 사는 이성적인 동물은 아닙니다.
원래 이 전쟁은 주로 비경제적인 이유―즉, 북부의 연방존속이라는 목적, 남부의 경우에는 봉건적인 대지주와 노예제를 고수할려는 목적아래서 싸움이 행해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알았던 링컨은 후대의 역사가들 보다도 한 발 앞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예제도가 이 전쟁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링컨은 그 자신이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였으며 그의 연설문에는 신(神)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는 것은 인간이 고귀한 존재라는 것과 인격이라는 인간의 자긍심은 그의 중요한 세계관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 와중에 흑인 노예매매의 비참함과 천부의 인권을 억압하는 청교도의 나라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엉클 톰스 캐빈(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작가 스토부인을 만나서 감동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 당신이 이 전쟁을 일으킨 귀여운 여인이군요.” 이에 스토부인이 이렇게 화답합니다.
“대통령님 그건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우리 그분의 말씀을 필사(筆寫)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聖靈)이 이끄는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것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개념을 만인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링컨이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노예제 250년에 걸친 보상할 수 없는 고역”의 열매를 다 써버리더라도 전쟁이 계속되는 것을 기꺼이 지켜보겠다고 말한 링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사실 인간 역사의 오래된 개념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합리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고귀한 정신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 철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나타납니다. 서구의 역사를 알려면 그리스〮〮·로마 역사에서 고전의 지혜를 먼저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그리스 철학이 중요시한 개념이 로고스(Logos)와 에토스(Ethos)였습니다. 시민이 가져야할 이성적 사고와 윤리에 관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은 파토스(Pathos)와 티모스(Tymo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굳이 하자면 정념(情念)과 패기(覇氣)로 표현을 많이합니다. 그것은 공감적인 감성과 정의감을 불러 일으키는 용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토스의 개념은 문학과 예술에서 많이 드러나지만 티모스는 노예의식이 아닌 무사와 귀족의 도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국가』라는 저서에서 로고스와 에토스가 물론 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만, 실제로 국가라는 공동체를 지키고 유지하는 것은 티모스라는 것입니다. 명예는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과 희생을 무릎쓰고 도전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영광을 추구하는’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정치철학적인 용어를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지만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점에 선 최후의 인간』에서 “패기(覇氣)”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로 이것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헤겔의 역사철학과 니체의 철학에서도 역사발전의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후쿠야마는 헤겔철학 전문가답게 이 ‘패기’라는 개념을 불러와 여러 근대국가가 발전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역사기억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동유럽의 민주화를 이끈 체코의 하벨과 폴란드 자유노조의 바웬사, 중국의 경제근대화를 이끈 등소평, 그리고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대를 ‘티모스’라는 개념없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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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도 압권은 링컨의 남북전쟁의 게티스버그 연설과 대통령 재임 취임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링컨이 지키고자 했던 자유만주주의라는 가치는 20세기 신생국가인 한국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한국전쟁에는 16개국의 참전국과 의료지원 같은 후방지원을 한 동맹국까지 합치면 19개 나라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자유를 지키려고 먼 곳에서 참전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미국이라는 세계국가가 지킬려고 하는 가치를 위하여 희생을 무릎쓰고 참전한 것입니다. 혹독한 추위와 중공군의 개입으로 민간인을 포함하여 100만 이상의 희생을 감수한 한국동란은 그 희생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세계 최빈국이자 약소국가인 한국이 공산국가이자 독재국가인 소련과 중국에 예속돠어 자유를 잃은 나라가 인간다운 삶을 할 수 없다는 정신 곧 ‘패기’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개념이라도 명암이 있는 법이어서 그것이 이념화 되면 권력의 탈을 쓰게 됩니다. 권력은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똑같이 파시즘적인 독재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말하듯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정치철학적인 용어인 패기에도 이러한 어두운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도 에이브러햄 링컨은 정치모델로서 손색이 없으며 그가 탄생한 1809년 2월12일이 찰스 다윈과 같은 해 같은 날이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묵시적 예언으로 다가옵니다.
2020년 8월 15일 사이버 총무 김정율
※첨언: 이 글을 쓰면서 질문의 진정성을 생각하다보니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찌할 수 없이 들어가게되었습니다. 불편하시다면 제 불찰로 여겨 주
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