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 1
빛 좋은 어느 날 열어젖힌 항아리 한 줄기 바람마저 임자 술맛이 제일이라며
귀엣말로 속삭이던 그날 밤이었을 거야
대청마루 거닐던 대감마님 헛기침만 해대던,
장작 패던 노총각 꺽쇠 킁킁거리며
기웃대던 그날밤 이후
이녁의 성주단지 비워지는 날 없고,
한겨울 구들장 식을 걱정 없는지 달항아리처럼 올랐다며
동네 아낙네들 해지는 줄 모르고 입방아질해대는 것인데
취한 달빛이 게슴츠레 뒤뜰로 불러내니 장독대 맨드라미
수줍게 얼굴 붉히고, 이녁 젖가슴같이 허옇고 통통했던
감꽃 소리죽여 고개 떨구던 그날 밤, 성질 급한 밤꽃 내음에
자리 내어주는 오월 부둥켜안은 거라고
산달 맞은 직박구리 시끄럽다
동백꽃
붉고 탱탱한 꽃술
간밤, 누굴 만나고 온 걸까
입술 자국 붉게 묻은 저 꽃
머리 희끗희끗한 할망구 성화에
꽉 다문 입술 시퍼렇게 질렸구나
탐스럽고 실그럽던 꽃봉오리
지난밤, 어떤 소리 들은 걸까
심술 난 동장군의 칼바람에
꼭 닫은 귓불 발갛게 열병 났구나
안달 난 마음에 서둘러 찾아온 매듭달
한밤 내내, 심장까지 얼어붙은 저 꽃
붉은 입술 속 노란 달빛 어딜 가고
하얀 눈물만 날리는가
아버지의 묏등
분명, 초록 신발 신겨 보내드렸는데
세월 따라 누렇게 닳고 달았구나
여름 소낙비에
아들, 딸 운동화 비에 젖을세라
툇마루에 올려 주셨는데
당신 신발 하염없이 비 맞고 있어도
들여놔 줄 자식 하나 없구나
눈물로 촘촘히 엮었던 신발 간데 없고
구멍 숭숭 난 뗏장 엄동설한 어찌 견디실까
진흙 더덕더덕 묻었던 고무신
깨끗이 닦아드린듯
새하얗게 빛나는 눈꽃 신발 좋다며
아무 걱정 마라, 걱정 마라 손사래 치시는구나
다시 찾은 늦봄
개망초 한 무리 지어 외롭지 않다며
꽃신 자랑하고파 기다리고 계시는구나
파전
하얀 가슴 푸른 멍
갈래갈래 찢어지는
아픔일지라도
세상사
탁배기와
어울리다 보면
달큰한 날 오지 않겠냐?
비가 와서
그냥,
안부 한 접시 전하네
밥의 힘
눈물 한 바가지 엎었습니다
산산조각 난 마음
캄캄한 방 귀틍이에서
아무리 꿰매려 해도 손끝만 찌를 뿐입니다
간밤 스산한 바람에 덩달아 덜컹거리던
얼굴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거울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베란다에서 시계추처럼 서성이던
까마귀 짓 분명했습니다
실오라기 등잔불이라도 켜 놨다면
눈물 바가지 집어 갔을까
분명, 씁슬한 맛이었을 거야
구겨 신은 운동화 걸음 멈춘 자리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간에게
나비 다가와 입맞춤합니다
순간, 백열등처럼 희미하게 다가오는 친구 문자
내게 달음박질로 안깁니다
괜찮은 거지, 밥 한번 먹자
눈물 한 바가지 다시 엎었습니다
박용숙
충남 청양 출생
2023년 <<애지>>로 등단
시집<<시계추도 가끔은 멈추고 싶다>>
- 박용숙의 시집 <<시계추도 가끔은 멈추고 싶다>>를 읽고
금번 첫 시집을 상재한 박용숙의 시집 <<시계추도 가끔은 멈추고 싶다>> 는 대상을 관찰한 내면의 폭이나 자기애와 이타애가 잘 결합 된 긍정적인 시세계로 일관되고 있다. 그것은 화자로 투사가 된 대상물로서의 여러 형태의 페르소나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압력밥솥, 거미, 몽당빗자루, 낮별, 이쑤시개, 과속 단속카메라, 쪽파" 등이 그 좋은 예다. 이러한 데에는 근본적으로 삶을 대하는 화자의 심성이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더 지적을 하자면 자기승화, 또는 자기정화의 바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의 작품으로는 <마이산 시래기>나 <나를 세탁하다>에서 잘 드러난다.
박용숙의 시에 나타나는 특징은 시에 등장하는 대상을 대하는 화자의 애틋한 시선을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에서 그는 절대로 화자나 그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에게 모든 대상은 "나"일 뿐이다. <쭉정이>에서 "나"가 그렇고, <배추와 독거노인>에서 "나"가 그렇다. "나"는 보편적인 화자나 내가 아니라 대상을 지칭하는 나로 지극히 겸손한 화자의 처지를 드러내는 "나"인 것이다.
소주
맥주
양주
막걸리까지
산은,
매일 아침
사람들이 뱉어낸 술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기꺼이 들이킨다
이젠
취할 때도 되었지
-<단풍> 전문
<단풍>에서는 이타적이면서 자기애로 향하는 시상의 전개로 시의 분위기가 신선하나 가을날 풍경에 편린으로 물든 단풍한 잎을 걸어 놓는다.
그러면서 결국은 그의 애틋한 편린은 자신 혼자만이 아닌 자기애와 이타적인 시선으로 "너와 나"(<공공하수처리장 맨홀 앞에서>)로 동질성을 찾게 해준다.
인사발령날의 심란한 마음을 사실적으로 추적한 <인사발령>이나 인간관계를 이루는 관계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동지 무렵>, 가끔 멈추는 시계추처럼 볼품없는 흔적을 지우며 조용히 물러나고 싶은 화자의 지친 모습도 수명다한 건전지로 가감없이 지적해낸다.
그러나 박용숙은 절망이나 한탄에 머무르지 않고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서 고흐의 고뇌를 떠올리며 영혼을 팔아먹었다는 말에 영혼에 대해 "재고"를 하게 된다. 박용숙 그가 삶을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왔고, 그의 시가 스프링처럼 빨리 복원되고 일정한 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삶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그 삶을 대하는 이타적인 자기애가 가득찬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용숙의 시는 다행히도 티나토스의 선을 넘지 않고 에로스에 머물러서 그 자신에 대한 자아화를 확장하여 시의 균형을 잘 맞춘다.
더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계에서 발길을 거두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를 써 내었다.(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