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의 멋진 이탈, 세계로 향한 눈길
유네스코 에이 포트 갤러리
(UNESCO A.poRT)
그곳은 ‘터진개’라 부르는 곳이다.
과문한 내가 알기로는 인천 중구 신포동 그 골목이
과거 일제에 의해 매립되어 시가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바다와 육지가 만난 곳.
갯벌이 시작되는 곳, 거기서부터 서해바다여서, 세계로 열린 곳이어서 ‘터진개’라 했다.
속칭 58년 개띠 생들이 여드름 숨기며 다닐 무렵 그 골목은
수제비와 칼국수로 유명했고,
청춘들의 ‘상열지사’가 틈틈이 도모되었던 추억이 서린 곳인데,
지금은 청소년우범지대라는 현수막이 공사 중인 건물 앞 벽에 붙어있고,
그 아래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듯 보이는 여학생이 담배를 물고 있다가 나를 보자
마려운 듯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린 청춘들의 고민과 슬픔이 아직도 녹아있는 곳이구나.
신포동.
한 때 연말연시에 이곳을 지나려면 사람들의 어께에 밀리고 등 떠밀리며 걸어야 했다.
그러면서 인천문화예술의 노른자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45년 12월 해방 기념 인천전이 열렸던 금융조합건물이 지금의 기업은행이고,
인근 길 건너편 사동에 1965년 인천공보관이 신축 개관되어 각종 전시, 공연이 있었다.
최영섭 선생이 작곡한 ‘그리운 금강산’ 발표도 2층 공연장에서 있었다고 전해들은 바 있다.
패션거리엔 서예 대가 동정 박세림 선생의 대동서숙,
무여 신경희 선생의 한의원 겸 서실
그리고 사진가 이종화 선생의 병원(인천원 자리)도 지척에 있었다.
동양표구(화랑), 사임당표구(화랑)도 미술인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다.
‘오소전’으로 유명했던 은성다방에서도 각종 문화예술행사가 간간히 있었는데
바로 ‘터진개’ 입구 2층에 있었다.
‘터진개’ 골목 깊은 곳,
1930년에 지어진 2층집. 지붕 끝이 쓰러져 내리다 앞 건물에 기대어 버티고 있는
건평 20여 평 정도의 목조 건물에 갤러리가 작년부터 있었고,
야심찬 예술혼이 초겨울 안개 속에 잠긴 집이 있다.
바로 사단법인 유네스코인천광역시협회 부설 유네스코 에이포트 갤러리.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지역 문화예술의 장려 및 보존, 국제예술교류 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 예술의 장르를 막론하고 동 시대 작가들의 활동 영위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며,
이를 보전하기 위해 기록하며,
전, 후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을 설립 취지로 세워 운영하고 있다 한다.
2010년 9월 전시 공간 ‘프로젝트51’로 문을 연 설치미술가 이탈.
그는 7살에 인천에 와 미술가로 성장했으며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설치미술 작업을 해 온 주목받는 작가이다.
그가 올 해 1월 (사)유네스코 인천광역시협회와 부설 갤러리 협정을 맺어
봄부터 건물 레노베이션을 거쳐,
5월6일부터 개관전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강하진, 김경인, 홍윤표) 3인전을 시작으로
예술가들의 정류장(A.poRT)을 열었고
어느새 새로운 차기년도 구상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유네스코는 교육·과학·문화의 보급 및 교류를 통해
세계인들 사이의 이해를 돈독히 하고 협력관계를 촉진함으로써
국제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려는 국제연합의 전문기관이다.
인천에도 유네스코와 연관된 기구가 있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 갤러리를 통해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갤러리는 1층이 약 10여 평 된다.
이 글을 쓰는 2011년 12월13일 현재 장성복 작가의 ‘Mindscape' 작품전이 진행 중 이었다.
개관전(5월~7월) 이후 사진가 윤복근 작품 초대전(9월), 김태준 작가 기획전(10월)이 있었고
지난 11월엔 ’이어달리기‘인천공간 연합전시와 이탈 개인전이 있었다.
장성복 초대전에 이어 조명식 작가 초대전이 준비되고 있다.
경사진 나무 계단을 딛고 2층에 오르면 전시실을 겸한 연구소가 있다.
이탈 작가의 공간이면서 정담과 토론을 할 수 있는 탁자,
작가들의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한 책장이 있다.
이탈 관장은 앞으로의 계획을 이렇게 펼쳐놓았다.
먼저 이 공간의 성격에 대하여 공적 전시관이 가질 수 없는 기능에 대한 대안 공간으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사적 정치적 선언이나 성에 대한 고정관념 탈피,
환경문제나 사회적 현상 등에 대한 작가들의 독특한 예술적 작업과 시선 등을
차별 없이 수용하는 공간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 운영을 위한 방법으로 현재 운영위원회 구성을 진행 중이다.
2012년에 에이포트에서 작가들을 소개하여
아시아권 작가, 큐레이터와 교류를 계획하고 있는데,
중국 북경 순장예술특구 작가들과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고,
이 외에도 아시아 8개국 정도 작가들의 아카이브 조성과 작가들을 초청하여
세계 예술의 port 역할을 하려한다.
여기에 따르는 비용 마련이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인천의 ‘터진개’에서 발현하고 있는 이런 프로젝트가
듣는 이에게 기대감을 갖게 하는 건 분명하다.
시방 큐레이터로 이영욱씨를 영입하고 기획위원을 구성중이며,
운영위원회도 원활히 구성되기를 바란다.
한사람의 생각과 움직임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역사를 보는 사람은 안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탈 작가가
경제적 어려움을 포함한 초겨울 스산한 바람으로 눅눅한 느낌을 갖게 하는 요즘,
패기 있는 이탈로 가슴을 뛰게 할 것이라는
즐거움을 갖고 터진개 골목을 나왔다.
2011.12.15 고 춘 (계간 예술인천 2011년 제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