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농업박물관 교육동에는 우리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대한제국시대, 일제강점기, 해방이 이후~현재까지의 식생활문화를 유물과 사진,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주식인 밥과 부식인 반찬으로 이뤄진 한상차림 식문화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문화는 주식인 밥의 부족한 영양분을 부식인 반찬에서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밥은 주로 쌀이나 보리, 밀 등의 곡식을 쪄서 만들었으며 반찬은 채소류, 육류, 어패류 등 다양한 영양소를 지닌 재료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음식재료는 우리의 밥상을 이루며 식생활의 근간이 되었다.
〈구석기시대〉 약 70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동굴에서 살거나 강가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풀이나 열매를 채취하고 커다란 돌을 깨서 만든 주먹도끼, 여러 면도끼, 주먹찌르개 등 돌을 뗀 석기를 사용하여 짐승과 물고기를 잡았다.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의 대표적 돌을 뗸 석기의 하나로 주먹에 움켜쥐고 열매를 채집하거나 동물의 뼈를 도려낼 때 도끼처럼 찍고 자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용풀이나 열매를 채집하여 먹었다. 돌을 뗀석기를 사용해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거나 손질하였다. 음식은 불을 사용하여 익혀 먹었다.
〈신석기시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 시기로 먹거리가 풍부하고 밭농사에 사용할 물을 끌어들이기 쉬운 강가나 바닷가 근처에 정착하여 살았다. 밭에서 콩이나 조, 팥, 피, 수수 등 을 기르고 개와 돼지를 키웠으며 물고기와 조개를 수렵 채취하는 어로생활을 통해 식생활을 유지하였다. 돌을 이용해 갈판과 갈돌 등 간석기를 만들어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다양한 빗살무늬의 토기로 음식조리와 식량 저장 등에 사용하였다.
〈청동기시대〉:청동기시대에는 강가나 계곡 근처의 구릉지나 살기슭에 주변에 모여 살았다. 집안에 화덕을 설치하여 난방으로 사용하거나 음식을 익혀 먹었다. 정착지 주변에 논과 밭 등의 경작지를 만들어 식량을 조달하였다. 청동기에느농부가 따비로 밭을 갈고 이는 조각이 있어 청동기시대의 농경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탄화된 쌀과 볍씨 자국이 있는 토기 등을 통해 벼농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청동기시대의 시루는 찜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조리 도구로서 진초도 패총, 북창군 대평리 유적 등에서 발견되었다. 시루를 이용해 조리한 음식으로 찐 밥과 고기류나 어패류의 찜 요리 등이 있었 것으로 추정한다.
고구려 요리로 알려진 '맥적'은 고기를 장과 마늘로 양념하여 불에 굽는 요리다. 불고기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고기 요리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중국 삼국지'위지이동'에 따르면 고구려 사람들이 장양 (藏釀)을 잘한다는 기록이 있다. 장양은 술 빚기, 장 담그기, 채소절임과 같은 발효식품을 일컫는 말로 해석된다.
장독대: 독은 저장용 도구로 예전에는 가정마다 사용하였다. 전통 농가에서는 짱독, 쌀독, 물독, 술독, 김칫독 등 다섯 가지를 오(五) 독이라고 하여 가정 산림에 기본으로 여겼다. 장독대는 보통 장광이라고도 하는데 위치는 집안에서 햇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으로 하였다.
장독은 발효 음식을 위한 과학적 원리가 담긴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용기다. 흙을 구어 만든 장독의 미세한 기공으로 미생물, 효모 등이 통과하며 식품의 발효를 돕는다. 또한 온도, 습도를 흡수, 조절하는 성질이 있어 발효 음식을 썩히지 않고 오랫동안 숙성시키는데 최적의 용기다.
삼국시대의 식생활: 삼국시대 식재료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백제와 신라는 주로 밭농사와 논농사를 지었다. 고구려는 밭농사를 중심으로 식재료를 확보하였다. 주식으로는 밥이 자리를 잡았는데 철제 솥이 보급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채소, 육류, 어패류 등의 재료를 반찬으로 하여 부식을 만들어 먹는 식사의 기본 구조가 확립되었고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음식 재료와 조립법, 가공법이 발달하였다. 밥과 반찬 국으로 이어진 한상차림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농산물의 가공 방법과 술, 장, 젓갈 등의 방법도 발달하였다.
고려시대의 전기: 고려 초기에는 국교(國敎)인 불교의 영향으로 모든 생명체의 살생을 금지하였다. 이로 인해 가축의 도축이나 어로활동 등 살생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유류나 생선을 대신할 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발달하게 되었다. 요리에 초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참깨를 재배하여 참기름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한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조미료가 유입되어 다채로운 맛을 즐기는 식생활을 영위하였다. 채소 음식의 발달로 국물까지 먹는 국물형 김치가 발달하여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발효 기술이 정착하였다. 차(茶) 문화가 유행하여 차를 즐기는 다도가 생겼고 밀가루와 꿀을 반죽하여 기름으로 지져 만든 유밀과 정맥 등 과류(稞類)도 발달하였다.
고려시대의 후기: 고려 후기에는 몽골의 영양으로 가축 도살법과 여러 가지 육류 조리법이 발달하여 고기 요리가 성행하였다. 그리고 만두의 일종인 상화(霜花)가 들어오고 술을 증한 기술이 알려져 증류식 소주가 등장하였다. 이 외에도 포도주, 사탕, 후추 등이 전해졌으며 고려가 원나라에 전해준 음식으로는 유밀과(고려병), 인삼주, 생선국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식생활: 조선시대에는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양반 제도가 정착되었고, 경국대전을 통해 관례, 혼례, 장례, 제례 등의 기본 규범이 확립되었다. '규합총서' '농가집성' 등 조리서와 농서 등이 출판되었고 각 지방에 따라 특색 있는 향토 음식이 발달하였다. 우리 식생활 문화의 전통이 재 정비되는 시기이자 우리나라 음식의 완성기로서 오늘날과 비슷한 식생활문화가 자리 잡았다.
대마도 일본 등 남쪽에 위치한 나라들로부터 고추, 감자, 고구마, 호박, 옥수수, 땅콩 등 외래 작물이 유입되었다. 고추는 고춧가루와 고추장으로 가공되어 김치를 비롯한 각종 음식의 조리에 중요한 향신료로 사용되었다. 비빔밥은 조선 전기에는 '혼돈밥' 조선후기에는 '골동반' 또는 '부븸밥'으로 불렸다. 비빔밥은 쌀밥과 여러 가지의 색의 반찬이 한데 어우러져 한상차림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에는 청나라, 러시아 및 일본과의 교류로 서양 문화의 유입은 우리 식생활에도 영양을 주었다. 1807년 강화도 조약 이후 쌀, 보리, 인삼, 해삼 등을 외국으로 수출하고 술, 향신료, 조미료 등을 수입하였다. 이에 따라 서양의 문물과 다양한 음식, 조리법 등이 전해지면서 서양음식 문화가 조선 사회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토지, 쌀 등 물적 자원을 수탈하면서 극심한 식량난에 빠지게 되었다. 원래 우리의 전통적인 식문화는 각자 독상이 기본이었으나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한상에 음식을 차리고 여러 명이 둘러앉아 먹는 식문화로 변화하였다. 반찬도 가공식품인 일본식 왜간장과 아지노모도(조미료)의 등장으로 우리의 식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해방 이후에도 전쟁과 흉년으로 인하여 극심한 식량 부족으로 생계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쌀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혼분식(잡곡밥) 장려운동과 미국에서 식량원조로 들어온 밀가루의 유통으로 밀가루 음식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60~70년대(박정희정부)에는 우리 군이 월남전에 참전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우리 군 현대화와 480 양곡(미 잉여농산물) 밀과 밀가루 원조를 받아 농가마다 밀가루가 넘쳐나 팔아서 가용돈을 쓰기도 하고 수제비, 칼국수, 국수, 빵 등으로 보릿고개를 면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전두환정부)에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식생활도 영양과 맛을 추구하는 풍요로운 식생활로 변화하였다.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에서 다양한 음식과 부식을 함께 하는 변화가 일어났으며 가공식품과 커피 등 기호식품의 이용이 증가하였다.
우리나라의 음료는 누룽지를 끓인 검불은 커피색의 구슬림 한 숭늉이었다. 70년대 전기밥솥이 등장하면서 숭늉이 사라지고 보리를 태워 끓인 보리차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커피가 암거래로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동서식품에서 커피를 생산 하면서 전국 농촌에까지 다방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0년 대부터 오늘날까지 식품의 소비형태가 세계화되면서 동서양 세계 각국의 음식을 다양하게 즐기는 식문화가자리 잡고 있다. 또한 바쁜 현대 생활로 인해 음식을 직접 요리해 먹는 것보다 가공식품이나 편의식품 등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e수원뉴스 차봉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