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외 1편
박연식
이사하는 날이다
내 공간이 공개되는 불편한 일 앞에 있는 듯
나는 짐 사이에서 서성이는데
온 근육을 동원해서 일을 할 뿐
누구의 삶을 엿볼 여력이 없는 인력 아저씨들
주인은 나가란다
무거운 짐들이 사다리차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잊혀질 시간들이 보따리 안에서 가쁜 호흡을 한다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쌓인 시간과 버려진 시간 사이로 낯선 길이 생겨나고
그 길을 삶의 이정표 삼아 오래 걸을 것이다
새 집
이곳의 구름도 숲도
아이들 놀이터의 활력 넘치는 소리도
더딘 내 시 속에서 새 생명으로 깨어나길
빈 그네
굵은 허리의 나무들이
무겁도록 잎들을 매달고 있다
나무 아래 부처처럼 앉아있는 노인
간간이 흔들리는 잎들의 유희
그네는 바람을 털고 햇빛을 털고
기다림으로 비운 자리
잎들 사이 낮달이 가는 휑한 놀이터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그의 시선으로 기운 그림자
길게 누우니
아이들이 몰려와
그네를 낚아챈다
그네는 훨훨 허공을 난다
한참을 아이들을 따라 가던 눈길 멈추고
노인은 자리를 뜬다
그가 놓고 간 시 한 수
빈 그네 사라졌다
박연식
1954년 충주 출생.
2018년 한국시학으로 등단. 시집 사는 일이 온통 주머니 속의 가을.
시치미 동인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