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동안 이어온 진민사 전존문서의 가치조명 - 오토산 진민사 전존문서 학술대회
김미영(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2019년 12월 5일(목) 의성조문국박물관에서 '의성 진민사 기록문서의 의미와 가치 조명'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학술대회는 경상북도와 의성군에서 주최하고 한국국학진흥원이 주관하는 행사로 진민사 소장 고문서의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준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
의성 오토산 진민사
진민사鎭民祠는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五土山에 자리하고 있다. 제향인물은 의성김씨 첨사공 김용비金龍庇로, 신라 경순왕의 아들이자 의성김씨 시조인 김석金錫의 9세손이다. 의성김씨 문중에서는 1세~8세까지의 인물에 대한 정보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그나마 역사적 기록이 전하는 김용비를 실질적인 시조로 받들고 있다. 김용비는 고려 명종 때 의성지역 토호세력이었고 민란을 제압한 공적을 세워 사당에 모셔졌다. 사당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517년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사당이 퇴락해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진민사鎭民祠’라는 편액을 내린 뒤 봄가을 중월仲月에 관아에서 제수祭需를 제공하여 향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당시 진민사는 의성 읍내 관아官衙 가까이에 있었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사당이 헐리면서 김용비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는 오토산으로 이건하게 된다. 이후 1980년 중반 자손들이 중심이 되어 오토산 정비사업에 착수하여 198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400년간 이어온 진민사 전존문서傳存文書
진민사에 보관된 문서는 총202건(3,500면)으로, 16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약 400년에 걸쳐 생산되었다. 이중 133건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는데, 당시 “…… 이들 문서는 조선 중기부터 근현대까지 작성된 것으로 가장 이른 것은 16세기 후반의 기록이다. 사우祠宇의 제향, 재산관리, 문중 문화 등과 관련하여 문화적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문서 특징은 시기적 단절 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기록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며, 한 문중에서 장기간에 걸쳐 향사와 문중 관련 문서를 수장해 온 것은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따라서 진민사 소장 고문서 133점을 일괄하여 문화재자료 지정대상으로 선정한다.”(경상북도보 제6070호. 2016.10.6.)라는 이유로 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진민사 전존문서는 소지所志와 전령傳令 등 관청관련 문서가 9건이며, 재정 상황을 기록한 도록都錄과 문부文簿 등이 74건, 임원이나 운영 규칙을 기록한 임안任案과 계안契案 등이 14건, 참사자나 제향 관련 사항을 기록한 시도時到와 전성록展省錄 등이 77건, 종회 연락을 위해 작성한 회문回文과 간찰簡札, 참배 혹은 방문자 현황을 기록한 참알록參謁錄과 심재록尋齋錄 등이 14건이고, 기타 13건 등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강석근 국제언어문학회 회장은 「의성의 김용비와 진민사 제향」이라는 주제로 의성김씨 시조부터 김용비까지의 세계世系를 밝히고 그가 진민사에 제향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검토하였다. 김명균 교남문화 대표는 「의성 진민사 전존문서의 성격과 의의」에서 진민사 소장 고문서 중 재정관련 내용을 담은 74건의 문서를 고찰 · 분석하였다. 김수민 동국대 강사는 「조선시대 사대부 묘의 석물 연구-의성김씨 오토산 묘를 중심으로」에서 오토산 김용비의 묘역에 조성되어 있는 석물石物의 형태와 재질 등을 검토하였다.
ⓒ한국국학진흥원
오토산 진민사의 역사문화적 가치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오토산 진민사는 의성김씨 문중이 아니라 의성읍민에 의해 건립·추앙되었던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즉 특정 문중의 사유재산으로서가 아니라 의성을 대표·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오토산 진민사 일대는 의성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성씨이자 전국적 대성大姓의 하나인 의성김씨 최상위 조상의 묘소가 자리하는 곳으로, 수백 년간 묘소를 수호해온 역사문화적 사적을 중심으로 지금도 전통의례가 행해지는 범종교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16세기를 기점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진민사의 기록문서(경상북도 문화재자료)는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민사가 특정 문중과 혈통을 넘어 지역문화유산으로 거듭나야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 이 글은 한국국학진흥원 소식지 《예던길》 47호(2020년 봄호)에
수록된 원고를 재정리하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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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학연구현장] 400년 동안 이어온 진민사 전존문서의 가치조명 - 오토산 진민사 전존문서 학술대회|작성자 한국국학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