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별 태블릿PC로 스마트 교육…신입·전입생 ‘부쩍’
‘머리~잇!’, ‘허리~!’ 요란스런 기합소리가 원주 만종초등학교 2층 다목적실 밖으로 울려 퍼진다. 정갈하게 검도복을 차려입고, 보호 장구까지 착용한 학생들이 죽도를 세워들고 상대방을 노려보다 재빠르게 빈틈을 공격해 들어간다. 작은 체구의 3학년 권오승 학생은 선배인 4학년 유태희 학생에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서로 공방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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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건강과 정서안정을 위해 시작한 검도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생들이 참여한다. 올 초에는 양구에서 열린 교육감배 검도대회에서 단체전 3위의 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 |
학교 입학 때까지만 하더라도 성격이 다소 거칠고, 산만하기도 했던 오승 군은 검도를 하면서 점점 차분해지고, 집중력과 끈기도 길러졌다. 본인 스스로도 “1·2학년 때에 비해 참을성도 길러지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많이 좋아졌다”며 뿌듯해 한다.
하루 2시간씩 진행되는 검도 연습이 끝나자 보호대를 벗은 아이들의 얼굴은 땀으로 흥건하다. 뛰고, 기합 넣으며 검도연습을 했던 아이들은 숨을 헐떡이며 물을 마시러 달려 나간다. 다소 붉게 상기되긴 했지만, 다들 신난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주 3회 모두 6시간씩 진행되는 검도 교육 이후 학교 아이들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검도 연습시간에 충분히 뛰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인지, 교실이나 복도에서 괜스레 큰소리를 내거나 고함을 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또 김순희 교장이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 반에 1~2명씩 있던 비만학생들이 지금은 없다. 아이들의 집중력과 끈기도 길러진 것 같다는 것이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검도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은 예쁘게 꾸며진 교실과 복도를 드나들며 잠시 후 진행될 국악오케스트라 연습을 위해 악기를 들고 분주히 또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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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인 1악기 교육을 위해 시작된 국악교육은 지난해 교육부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오케스트라단’으로까지 발전했다. 3학년 이상 전교생이 참여하는 이 오케스트라단은 실제 국안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강사들의 지도로 실력이 급성장, 지역 축제에서 단골 초청팀이 됐다. 사진은 시흥시립 전통예술단 단장을 맡고 있기도한 최여영 강사의 지휘에 따라 연주를 하는 모습. |
위기, 그리고 변화
불과 3년 전인 2011년만 하더라도 만종초등학교의 모습은 이와 달랐다. 만종초등학교가 위치한 호저면 만종리는 우산동, 단계동, 무실동 등 시내 중심가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지만 주거지나 상업시설들이 많지 않아 학령인구가 크게 줄어들고 있었다. 졸업생은 많은 반면, 신입생은 매우 적어 폐교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해야 했던 학교였다. 만종초가 ‘작은학교 희망만들기’ 등의 특성화 프로그램 운영을 하지 않았다면, 2012년 졸업생 17명, 신입생 1명, 2013년 15명 졸업 3명 입학 등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었을 지도 모른다.
만종초등학교의 극적 변신에는 김순희 교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 오는 8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 교장은 2011년 3월 부임 당시를 잊지 못한다. “발령을 받고 미리 방문했던 학교는 교육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곳곳에 낡고 상한 곳도 많았고, 관리가 잘 안된 채 전반적으로 지저분하게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며 “그래서인지 부임 초기 학부모님들을 만나도 학교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교직원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교장은 일단 학교 곳곳을 정비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시설 개선은 비용 때문에 장기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추진했고, 우선은 먼저 할 수 있는 학교 정화활동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학부모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아이들 등교시간이면 주차장에서 학부모들과 만나고 대화를 했다. 지금도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교장실일 정도로 김 교장은 학부모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덕·예·체를 고르게 길러주는 특성화 교육
자칫하면 학생수가 20명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만종초등학교만의 특성화 프로그램을 고민하게 했다. 작은학교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면서 아이들이 커서도 도움이 될 수 있기 위해 검도와 국악교육을 시작했다. 검도가 아이들에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는 판단은 4년여가 지난 지금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다.
이전에 재직했던 학교에서 가야금 병창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극적 변화를 경험했던 김 교장은 우리 전통악기들을 학생들에게 교육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시작된 국악 교육은 지난해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국악오케스트라 사업에 도내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아쟁, 가야금, 대금, 태평소 등 다양한 악기를 학생수에 맞게 구비하고, 실력 있는 강사를 섭외하기 위해 원주시뿐만 아니라,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을 각 악기별로 섭외했다. 이 같은 과감한 투자는 학생들 실력의 급성장으로 드러났다. 창설 첫해인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학생들은 국악연주에 더욱 즐거움을 느꼈고, 지역 축제에 단골 초청 공연팀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리고 교육부가 주관한 ‘행복학교 박람회’에도 초청을 받아 전국의 내로라하는 학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국악오케스트라 실력이 인정을 받으면서 무대에 서는 기회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두려워하던 친구들이 공연을 자주하면서 수백명의 사람들 앞에서건, TV 카메라 앞에서건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만종초 국악오케스트라단의 꿈은 더 커졌다. 바로 2018년에 열릴 평창동계올림픽 기념공연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학생수 60여명의 작은학교에 다니는 전교생이 합심해 아름다운 우리 전통음악을 세계인 앞에서 연주해 내는 모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교실에서 이뤄지는 수업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지난해 교육부가 지정한 스마트교육 모델 연구학교로 지정된 만종초는 전자칠판과 학생 개인별 태블릿 PC를 지원받아 수업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 수학, 영어, 과학, 사회 등 수업의 특성에 맞게 교사들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수업지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수업의 변화는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를 높였고, 적극적인 참여도 끌어내면서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하게 됐다. 최신 스마트 기기를 조작하고, 정보를 활용하는 교육은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적 여건을 고려하면 매우 큰 성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과는 스마트 기기를 십분 활용하기 위한 교사들의 열정적인 공부와 연구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스마트교육을 위해 교사들도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스마트기기와 큰 인연이 없던 고참 교사들도 방학마다 거의 매일 교사연수를 진행하며 기기 사용법을 익혔고, 스마트 기기를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지도안을 작성하는 등 많은 노력을 진행했다.
스마트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 상호간의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습의 속도와 질이 높아졌다.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매체를 활용하다보니 학생들이 수업에 즐겁게 참여하게 돼 효율성도 높아졌다는 것이 담당 교사들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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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교실.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참여도와 흥미가 더 높아졌다. |
소문듣고 찾아오는 학교로…
이처럼 만종초등학교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풍성한 성과로 이어졌고, 도교육청의 ‘작은학교 희망만들기’ 모델학교 지정과 더불어 가시적인 성과들로 드러났다. 만종초의 변화는 자녀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려는 학부모들이 모여들게 했다. 시내에 사는 학부모들이 소문을 듣고 학교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학교를 직접 찾아 운영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들을 본 부모들이 아이들을 전학시키거나 입학시켰고, 그 결과 현재 1·2학년 학생수가 34명으로 전교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입학생이 적어 복식학급을 운영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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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 남녀 학생들이 배구 시합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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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두번 학생들은 서울의 대형서점 나들이를 한다. 수십만권의 책들과 진열대 곳곳에서 책을 읽는 남녀노소 시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독서를 독려하는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 |
퇴임을 두달여 앞둔 김순희 교장은 이러한 변화와 교직원들의 헌신을 더욱 북돋워주고, 지속시킬 수 있는 계기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교장은 “40년이 넘게 교직생활을 하면서 열의 있는 교사나 교장이 들고 남에 따라 학교가 급성장을 했다가 쇠퇴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면서 “작은학교 지원 사업은 어느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학교들이 흔들림 없이 계속 커 나갈 수 있는 지속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용진 기자
▶ ‘작은학교 희망찾기’ 기획취재는 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