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 사진이 한참 회자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논산훈련소에 방문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일일 훈련병으로써 각개전투에 참여했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특전사 출신인 문재인 후보의 이 사진을 두고 '진짜 각이 살아있다' 는 등 긍정적 평가가 많았지요.
그런데 정치인들이 이런 사진을 왜 찍고, 왜 대중에 노출시킬까요? 상황에 따라 그 비중이 달라집니다만, 기본적으로 특정한 주제나 내용을 담은 정치인의 사진은 대외와 대내 홍보용이란 두 가지 의미를 다 갖고 있습니다. 가령 푸틴이나 오바마가 총을 들고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사진은, 대통령의 강인한 모습을 드러내어 대외적으로는 국가와 정치인의 힘을 과시하고, 대내적으로는 여론이나 관심을 안보에 집중시키기 위함이었지요.
그리고 문재인 후보의 저 사진 역시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히 누군가는 찍었어야 했을 사진이었습니다.
대선 전의 우리나라 상황은 솔직히 좋지 않았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이미 2012년 초중반부터 '2013년 2~3월 남북한 내전설' 이라는 사상 초유의 시나리오가 군 상층부와 정계에서부터 흘러나올 정도로 외교적인 위험이 쌓여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개성공단 건도 그 시나리오 가운데 포함된 것이었지요.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군에서 다소 불순한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는 위험이 있었으며(전두환이 육사 사열에 참석한 것이라든지), 고위공직자의 군 미필 및 군 관련 비리 역시 국민들이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물론 거기에 상대 후보인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 대비하여 비교우월성을 강조하면 훨씬 더 이득이 컸던 것도 있었습니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은 문 후보가 저런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겁니다. 아, 힐링캠프에서의 벽돌격파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그리고 최근 MBC에서 방영중인 '진짜사나이' 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김수로, 서경석, 류수영, 손진영, 미르, 그리고 호주인 샘 해밍턴의 여섯 명이 군부대에 1주일간 입대하여 진짜 군생활을 체험한다는 '리얼 입대 프로젝트' 를 표방한 프로그램이지요.
(좌측 상단부터 서경석, 김수로, 류수영, 미르, 손진영, 샘 해밍턴)
이 프로그램은 사실 그 시작부터 의도가 뻔히 보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연예인들이 5박 6일동안 한 부대에 입대하여 현역병들과 똑같은 훈련에 똑같은 식사를 하고, 그것을 예전보다 덜 편집하여 내보낸다는 것 자체가 단순히 선전의 목적만 있는 프로그램이 나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그 의도가 뻔히 보였다 함은 문재인 후보의 저 사진이 나돌던 때에 비해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렇게 나아진 게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악화되었다면 악화된 상황입니다. 대외적 상황부터 따져봅시다. 일단 개성공단이 있습니다. 일본 아베 정권의 극우화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분쟁도 더욱 심해졌지요. 대내적으로는 물가의 폭등과 파탄이 난 서민경제, 그리고 시작부터 내홍 및 붕괴의 가능성을 안고 시작한 박근혜 정권의 한계가 있습니다.
즉 이런 대내외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 위해서 나온 방송이 바로 진짜사나이란 겁니다. 그 근거는 방송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예전에 제작되었던 여타의 군 관련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하나. 군의 '공개 가능하지만 안 하고 있었던 실상' 을 공개하여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너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주 타겟팅은 50대 이상의 남성과 40대 이상의 여성입니다. 예를 들어 기상하고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나, 확 달라진 관물대, 그리고 다양한 먹거리의 강조와 같은 것들은 군을 다녀온 남성들에게 '야 군대 좋아졌구나' 라는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자녀를 군에 보낸 여성들에게는 '훈련은 힘들어도 잘 먹고 있네' 와 같은 안도감을 주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촬영 및 편집된 영상입니다.
둘. 또한 '초기 훈련과정' 을 자세히 소개하고, 나아가 연예인 병사들로 하여금 '일부러' 실수를 저지르게 하는 것은 해당 프로그램을 보고 입대할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의도가 강한 부분이 있습니다. 미리 알고 입대하면 편하다 이겁니다. 손진영의 수염, 샘 해밍턴의 '요' 자 말투, 그리고 포병 숫자에 버벅이는 연예인 병사들과 같은 부분들은 전략적으로는 노출되어도 별 가치없는 이야기입니다만 군의 기강을 좀 더 쉽게 확립하는 교육 자료로 쓰기엔 충분한 것들입니다.
셋. 연예인 병사들의 입대 초기에 선임 현역병들의 무서운 이미지를 강조했다가, 나중에 갈수록 풀어지고 친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군 내 가혹행위에 대한 국민의 뿌리깊은 불안 또는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고, 달리 말하자면 '가 보면 다 사람사는 곳이다' 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 주기 위해 기획된 편집이라는 겁니다. 군입대를 두려워하는 자녀를 설득할 때 부모가 '이거 봐라' 하고 떡하니 내밀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쓰일 수 있을 겁니다.
넷. 또한 위에서 말한 것들은 그대로 적군의 여론 또는 스파이를 교란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군이 첨단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한국군은 먹는 것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군 내에서 군인끼리의 절도는 있어도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짓밟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인해 적은 비용과 적은 정보 노출로 적국의 군사도발을 억제하려는 계산이 보인다는 겁니다. 특히 이 점은, 우리나라의 방송 프로그램 상당수를 북한에서도 인터넷이나 보따리장사를 통해 구해서 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계산 아래 일부러 노출하고 있는 것이라 보입니다. 굳이 요약하자면 정보전의 일환인 셈입니다.
이러한 의도들이 실제 군 생활의 개선에 크게 기여를 하지는 못하며, 이미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면 다 알고 있는 군 내부의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감추는 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솔직히 불편한 것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이면지 사용하라는 명령이 내려오자마자 일부러 백지에 아무거나 막 출력한 다음 그것을 이면지로 사용한 것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 카페에서 군을 다녀오신 분들은 이와 비슷한 사례를 몇 개나 드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방송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런 방송이 지금 필요한 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제일 큰 이유는 안보의 불안입니다. 설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한들 이러한 프로그램을 제작했을 것이고, 그에 대해서 저는 큰 불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군이 안정되어야 하고, 다소 군이 군사력을 홍보할 필요가 있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둘. 잠재 훈련병들에 대한 사전 교육의 차원에서도 좋게 활용될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리 알고 있다는 것만큼 사람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입대를 하게 되면, 방송과 다른 선임병들의 분위기나 더 혹독한 얼차려 등으로 인해 '방송과 현실의 차이' 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훈련병들도 있겠지만 사전에 군대의 맛을 어느 정도 보고 간다는 것은 도움이 될 겁니다. 저도 이 방송을 보면서 '몸 나아지면 재입대 문의나 해봐야겠다' 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셋. 이런 프로그램은 활용하기에 따라서, 그리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군의 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역병들과 그 가족들, 혹은 막 전역한 예비역들이 방송을 보면서 '이러이러한 부분이 실제와 다르다' 고 크게 목소리를 내어주고, 그것이 국방부에 전달된다면 그 자체로 일정 부분이나마 군의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주말마다 이 방송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정부의 의도 때문에 보면서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재미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섯 연예인 병사들 가운데 노익장에 속하는 김수로와 서경석 콤비의 깨알같은 개그, 갈수록 군인이 되어가는 완벽한 남자 류수영의 몸을 던지는 모습이 재미있더군요.
심심하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의도가 있다는 걸 잊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