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 for Horses*
채윤희
재난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설산 위 소나무 잔가지. 유원지를 가로지르는 물풍선, 배롱나무를 타고 오르는 개미떼의 정렬, 멸균장갑과 맞닿는 생쥐의 하얀 배, 수산시장 붉은 대야 속의 상어, 아니 그것은. 싸구려 진을 엎지른 호밀바게트, 박새가 그려진 자기 그릇의 금, 다 써버린 온수에 과오납한 애정, 초겨울에 피어버린 벚꽃, 재개발단지의 잘려나간 수목……
미안한 밤이다 가령, 버려진 장난감 목마가 참회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발뒤꿈치가 암막커튼을 스칠 때면 부둥켜안는 행위를 종료하고
혹은 이불의 가로와 세로를 가늠해보는 연구를 시작하며 그에 몰두한다
가장 비루한 고백이 북북 찢기는 소리 혹은 학습된 소리를 소환하는 하나의 감각
어쩌면 빗자루였을지도 적확한 호명을 알지 못해 끝끝내 헤이, 하고 부른다
일단 자라고 나면 떨어지는 일은 없다 의심한 적 없으니 믿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
그러한 신호를 준 나의 세계의 풍경은 어둠, 떨어진 상태로 눈을 뜬다
낙상사고를 겪고도 말을 사랑해야 할 텐데
나는 건초 위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셔츠처럼 가만 있다
* Hey는 어이, Hay는 건초, 막역함과 무례함 사이에 위치하면 좋은 팻말
—월간 《현대시》 2022년 11월호 --------------------- 채윤희 / 1995년 부산 출생. 명지대 문창과 졸업.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