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군 감시경으로 본 국군 병사를 짝사랑하다.
내가 입대했을 당시만 해도 2군단 15사단은 황해도 금천군 현내리에 주둔했었다. 그러다가 평양 개성 고속도로 공사를 맡아 시작하면서 개성으로 이동했다.
개성에 오니 최전방 초소에서 우리가 ‘남조선괴뢰군’이라고 불렀던 국군 병사들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쌍방은 눈이 뚫어져라 서로를 감시경으로 지켜보며 감시한다.
북한쪽은 전호를 파고 위장망을 덮어 병사들의 움직임을 감췄지만 남한쪽은 빨간색 진흙땅이 다 바라보이고 개미 굴러다니는 것까지 다 보이게 드러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최전연초소에서 감시경으로 지켜보면 하품하는 것은 물론 속눈섭, 코털까지 세여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자세히 보인다.
말을 걸면 대화가 오고갈만한 거리구간에서 적군과 아군은 매일같이 가시품은 마음안고 반세기를 노려보며 살아왔다. 그 반세기의 극히 일부를 내가 지켜본 셈이다.
개성시 장풍군 대덕산리에 자리를 잡은 우리사단은 늘 ‘괴뢰군’ 초소에서 울려 퍼지는 대남방송소리를 듣고 살았다.
대덕산은 북한에서 ‘대덕산’이란 영화가 나올 정도로 최전방초소의 상징처럼 돼 있는 곳이다.
대덕산은 북한에서 일당백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1963년 김정일이 이곳을 방문해 일당백이란 말을 처음 했다고 한다.
이런 고지 초소로 이따금 치료하려 올라가면 국군 초소에서 어느새 우리 여자 군인들을 발견하고 저마다 한마디씩 외쳐대며 떠들어댄다.
“어이!~~~~여자군대. 군대언니! 오빠 보구 사랑해 하구 말해봐라이~
여자군대 오늘은 뽀샤시하네~ 북한오빠들 좋겠네이~히히히히히~”
국군 병사들은 초소에 여군들만 올라가는걸 보았다면 히히닥닥 거리며 초소로 올라오는 여군들을 늘 이런 식으로 놀려주었다.
그런 놀림을 당할 때마다 ‘도대체 남한 괴뢰군애들 어떻게 생겼나’하는 궁금증이 생겨 보고 싶었지만 감시경이 있는 곳까지 용기를 내서 좀처럼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속으론 늘 궁금했다.
“저 괴뢰군 놈들도 우리가 알아듣는 조선말을 할 줄 알 구나.
여자들보면 놀려주는 것도 제법이네~
도대체 저애들 어떻게 생겼을까.
한번만. 꼭 한번만 저 감시경으로 나가서 남조선군대들 내 눈으로 봤으면.”
건너 켠 괴뢰군초소에서 심심할세라 불어대는 웃음소리, 노래소리 방송은 쉴 새가 없었다.
건너 켠이 조용하면 우리가 심심했다.
어느 하루 예방선전차원으로 간호중대원 4명이 초소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날만큼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이번엔 전호속의 감시경으로 국군 초소를 꼭 보고 오자고 약속하고 올라갔다.
초소중대장에게 한번만 괴뢰군아새끼들 낯짝을 보여 달라고 말하자 쉽게 허락하며 따라오라고 한다.
그날이 국가요일제로 치면 일요일이다. 북한으로 말하면 작전 금요일.
일요일을 맞이한 남한 괴뢰군들이 빨간색운동복을 입고 농구도 하고 족구도 하면서 한가로운 여유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뭐라고 떠드는지 발음소리도 정확치 않다.
바람이 잘 불어오는 날이면 방송울림소리로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중대장은 우리들에게 전호까지 안내하면서 “저놈들이 우릴 유혹하느라 단복(체육복)을 입고 심리작전을 하고 있으니 그 꼴을 보라”고 한다.
감시경으로 처음 바라본 남조선의 괴뢰군들. 심장이 콩당콩당 뛰었다.
감시경을 돌려보는 여대원들은 말은 없었지만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와 책으로 늘 추악하고 더러운 몰골의 괴뢰군만 봐왔던 우리 눈 앞에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던 것이다.
벗어제껴진 운동복 사이로 바라보이는 몸통의 하얀 피부, 굵직굵직한 팔뚝과 근육들, 다부지고 훤칠한 키들이 진짜 멋있었다.
10년 최전방에서 군 복무하느라 까무잡잡한 북한군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 풍겼다.
대남방송에서 들리는 목소리만 살살 녹이는 것이 아니라, 생김새까지...
사실 방송에서 나오는 서울 말투도 억세고 거친 함남북도 말을 듣던 우리 여자들에겐 간이 살살 녹은 억양이었고 목소리톤도 너무 부드러웠다.
거기에 체격과 생김새는 나뿐만 아니라 함께 바라본 우리 여대원들 모두의 맘에 쏙 들기에 충분했다.
말은 못하지만 여대원들의 입가에 번지는 야릇한 미소. 하긴 내 심정이나 그들이 심정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감시경으로 쭉 흩어보던 중에 한 녀석이 내 눈에 쏙 들어온다.
와, 정말 내 이상형 타입이었다. 나도 북한치곤 키가 좀 큰데, 그 남자도 키가 훤칠했다. 나는 속으로 딱 점을 찍고 한참을 그가 노는 꼴을 지켜보았다.
하루 종일 서로가 총을 겨누고 벼르고 있는 곳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국군 초소에 총알이 아닌 하트를 뽕뽕뽕 쏘아 보내고 싶었다.
그날 하루 일과생활을 마치고 저녁점검에 이르러 잠자리에 누우니 그 점찍은 녀석이 눈에 밟힌다.
“처음 본 괴뢰군 병사에게 빠져 가슴이 설레다니, 에이 무슨 주책인감”하고 생각을 털어버리려 했지만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후 이 녀석은 한동안 잠자리에 들 때마다, 또는 대남 방송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눈앞에서 얼른 거렸다.
분단만 아니라면 어떻게 좀 해봤을 것인데...
한국에 입국한 뒤 옛날 전방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얼굴이 떠오른다.
그 녀석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까.
-이순실, 전 북한군 간호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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