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학교희망찾기>영월무릉초등학교 ‘내적 자발성’ 강조하는 ‘행복 충전 학교’ 교사-학부모-학생 머리 맞대 ‘교육계획서’ 짜고 실천
일상 교육활동이 SNS 생중계, 학부모-학교 ‘일심동체’ 등굣길서부터 원어민 교사가 맞아주는 생활영어 ‘쏠쏠’
17일 영월군의 한 병원 병실에는 다리를 다친 무릉초등학교 2학년 연우 학생의 어머니 심미순씨가 침대에 누워 연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날 영어발표회에서 연우를 비롯한 2학년 학생들이 ‘Walking in the Jungle’이라는 노래를 영어로 부르며 춤을 선보이기로 돼 있지만, 직접 가볼 수 없어 딸아이가 걱정되던 차에 아이들의 공연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학교 SNS에 등록되자 심씨는 함박웃음을 띤다. 아이들이 공연을 잘 마치고 웃고 있는 사진을 보자 금새 마음이 편해졌다.
▲꿈날개독서교실’시간 선생님 옆게 꼭 붙어 앉아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학생들.
심씨는 사진에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며 답글을 남겼다. 연우 어머니의 댓글에 신동훈 교장은 “연우 어머니 얼른 나으세요”라고 금방 댓글을 남긴다.
무릉초등학교에서는 평소에도 교내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활동들이 SNS를 통해 생중계된다. SNS에 가입한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들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때로는 각자가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글들로 학교의 교육과정과 활동을 공유하고 스스럼없이 댓글을 달며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지난 17일 여름계절 체험학교는 오전에 진행된 영어발표회를 시작으로 점심식사 후 진행된 수주계곡에서의 수중 생태체험 활동과 운동장 야영, 다문화 음식만들기 행사 등 프로그램들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의 활동모습이 SNS에 올라왔다.
비록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학교에서의 캠핑이지만, 밖에 나가 있는 자녀들이 걱정될 법도 한 부모들은 SNS에서 자녀들이 즐겁게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뿌듯해지기도 한다. 이날 밤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 자녀들이 걱정되기도 했던 부모님들은 아침 일찍 교장 선생님이 ‘아무일 없이 아이들이 잘 자고 일어났다’는 글을 남기자 ‘좋아요’를 누르고, “선생님들이 계셔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댓글들을 남긴다.
영월군 무릉초등학교는 말 그대로 ‘진짜’를 추구한다. 남들에게 멋있어 보일 것 같은 특성화가 아닌, 학교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것을 특성화하고, 형식적인 학교 참여가 아닌 일상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모습이 무릉초등학교가 추구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커진다. 모든 학교가 작성하는 연간 교육계획서는 학교 책장에 비치용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 평가하고, 계획을 세웠고, 그래서 내용에서도 부모님과 학생들의 목소리가 ‘날 것’으로 반영돼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자는 각 가정으로 배포된다.
3남매를 모두 무릉초에 보내고 있는 신현숙씨는 “부모 입장에서 학교에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학교가는 것을 즐거워 한다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늘 웃으면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학교에서 행복을 충전하고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17~18일 진행된 여름계절 체험학교에서 학생들이 조를 나눠 만든 다문화 요리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지난 2012년 가을 신동훈 교장이 공모교장으로 부임할 당시만 하더라도 학생수는 27명으로 많이 줄어 있었다. 주변에 수주천이 있어 관광객들이 곧잘 찾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마을 인구가 많지는 않아 한해 입학 예정 학생이 2~3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2년이 지난 지금 학생수가 40명으로 늘어난 데는 교직원을 비롯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여’ 덕분이었다.
신 교장은 무엇이든 내재적 자발성이 중요하다는 교육철학으로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역동적으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학교운영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에 따라, 학교운영과 관련해서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토론과 참여를 보장했고, 학생들의 의견에 대해 신교장은 구체적인 약속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교사들에게도 학사 운영 등에 대해 교사들의 의사결정 구조를 존중했다. 교사들이 결정한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응원하면서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신교장은 공모교장으로 부임해 오면서 부모님들께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영어를 잘 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신교장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영어교육을 강화했다. 무릉초는 아이들이 즐겁게 영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실에 갇히기 보다는 일상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애썼다. 학생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면서부터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미란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다. 인사를 하고 오늘 기분은 어떤지, 아침식사는 뭘 먹었는지 등을 묻고 답하면서 학생들은 생활영어를 익힌다. 이렇게 시작되는 영어 말하기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늘 이뤄진다. 학생들과 미란다 선생님과의 대화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미란다 선생님과 함께 배정된 한국인 보조 교사가 서로를 도와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다. 방과후 수업이나, 점심시간 등에도 학생들은 외국인 교사와 함께 게임을 하고, 놀면서 영어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을 키운다.
▲ 강당교실 증축 기념 영어발표회에서 3학년 김녹웅 학생이 미란다 선생님과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6학년 홍신영 학생은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게임같은 것을 통해서 영어를 하다보니, 영어가 두렵거나 어렵기 보다는 재미있고,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며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더라도 유창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황하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할 자신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학생들이 갈고닦은 실력은 지난 17일 영어발표회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빠짐없이 참여한 영어 발표회에서 학생들은 영어로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연극을 선보였다.
무릉초에는 영어 담당 교사가 모두 4명이 있다. ‘영어 Talk’ 담당교사 미란다 선생님과 원어민 교사 에리카 선생님. 그리고 한국인 영어담당교사 2명이 학생들의 일상영어회화를 돕고 있다. 2년째 무릉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에리카 교사는 “무릉초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학생 수도 적고,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으로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무릉리와 도원리에 위치한 학교답게 천혜의 자연을 활용한 교육활동도 강조하고 있다. 주변의 자연을 활용해 교과과정을 풍성하게 할 수 있도록 했고, 1인 1악기 교육 과정에서도 학생들이 즐겁고 신명나게 할 수 있도록 야외 활동과 접목하기도 한다. 그리고 매 계절마다 주제를 달리해 자연 속에서 체험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신 교장은 “특성화는 남들과 다른 것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는 것이라도 학교의 여건과 상황에 맞게, 학생들의 상태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뿌듯함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더 큰 성취를 위해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