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오사 중에서도 가장 기지가 뛰어난 인물이 아닌가? 그가 이렇듯 혼란하게 표식을 남긴 것은 분명 이 곳에서 무엇인가 발견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로부터 그는 항주의 번화가를 샅샅이 뒤졌다.
결국 기사가 남긴 최후의 기호는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장소였다.
그것은 바로 항주에서도 가장 유명한 한 기원(妓院)의 담벽에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천예만향루(天萬香樓).
그 곳은 항주는 물론 강남제일의 기루였다.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입에 담는 그런 곳이다.
천예만향루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그 곳에는 천하절색의 미녀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원한다면 어떤 기예도 마음껏 즐길 수가 있었다.
우선 미녀만 해도 그렇다.
사람에 따라서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미녀가 최상이라는 절대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점까지 감안하여 천예만향루에는 천하 각국의 미녀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항주를 위시하여 가까이는 소주나 강남에서,멀리로는 사천(四川)이나 북해(北海)에서 온 미인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피부가 가무잡잡한 묘강의 미인, 눈동자가 푸르고 금발을 지니고 있어 이국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색목국(色目國)의 미녀까지도 있었다.
더구나 지상에존재하는 모든 인종들을 집합시켜 놓은 듯한 이 미희들은 한결같이 내로라하는 재주들을 가지고 있었다.
금기서화는 물론 개중에는 웬만한 문사 정도는 따라 가지도 못할 만큼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여인도 있었다.
이 때문에 중원 각처에서 풍류께나 논하던 인사들도 항주에 오면 의례 천예만향루부터 찾곤 했다.
하지만 진일문은 그들과 입장이 같을 수가 없었다.
그가 어디 미희를 끼고 음풍농월이나 벗삼고 있을 풍류인사인가?
그는 기이한 느낌과 아울러 고소를 금치 못했다.
'후후... 기사가 나를 인도한 곳이 하필 기원이라니, 그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호사를 누리게 생겼군.'
저녁 무렵.
진일문은 천예만향루로 갔다.
어쨌든 그 곳으로 가 있어야 기사를 비롯한 오사와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예만향루의 규모는 그 어떤 사대부의 저택이나 관청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처마가 끝없이 줄을 이었고, 대문의 크기만 해도 현기증을 느낄 만큼 거대했다.
뿐만 아니라 대문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오직 그 곳에 들겠다는 일념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며 이렇듯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웬만한사람들은 그나마 이 천예만향루에 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것은 하룻밤의 술값이나 화대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었다.
대문 앞에 죽 치고 늘어선 자들 치고 평범한 자는 없었다.
적어도 황금을 수레에 가득 싣고 올만한 능력이 있는 대부호나 고관대작들이 대부분이었다.
진일문은 천예만향루에 이르기 전, 미리 비싼 문사의를 한 벌 사 입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평소의 차림으로는 문전에서 쫓겨나기가 십상일 것 같아서였다.
경위야 어찌 되었건 백색의 비단옷을 입고 손에 옥골섭선까지 들고 있는 진일문의 모습은 실로 수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공자대인이나 부호의 자제였다.
다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다른 방문객들과는 달리 곁에 수행자나 서동이 딸려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진일문은 전혀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인파를 제끼며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가 청등홍등이 걸려 휘황하게 빛나고 있는 천예만향루의 대문과 마주 했다.
"예약이 되어 있으십니까?"
대문 앞에는 비단옷을 입은 한 중년인이 서 있다가 진일문을 가로막았다.
기원의 문지기 치고는 차림새도 화려 했거니와 제법 품위도 갖춘 인물이었다.
진일문은 섭선을 가볍게 좌우로 흔들었다.
"예약을 해야 되는지는 미처 몰랐군. 나는 사실 부친께서 워낙 근엄하신지라 항주는 처음일세. 그리고 이 곳이 가장 유명하다기에 찾아왔네만 이렇게 문전박대 하긴가?"
점잖은 어투였으나 그것은 분명한 하대(下待)였다.
일테면 배경이 어지간히 든든하지 않고는 도저히 구사할 수 없는.
또한 그 말에는 소홀히 대접하면 높으신(?) 부친에게 이를 수도 있다는 협박이 은근히 깔려 있기도 했다.
중년인은 금새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애초에는 수레도 없이 홀홀단신으로 찾아온 진일문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도 사실이나 단박에 입장이 바뀐 것이었다.
"그럼 실례지만 공자께서는 어디서 오셨는지......?"
'후후... 필시 이 자는 이런 풍토에서 잔뼈가 굵은 자일텐데 의외로 간단히 넘어가는군.'
진일문은 내심실소하는 한편 병기점의 주인을 떠올렸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무리 위장을 하려 해도 종내 이력을 노출 당하고 마는, 그런 불행을 겪는 자들이 있다지 않았는가?
결과적으로 진일문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그 행운(?)을 유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낭랑하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하하하... 북경에서는 언제나 신분에 구애받아 마음 내키는 대로 쏘다니지를 못했네. 그래서 내 오늘은 모처럼 만에 귀찮은 친구들을 모두 떼어 버리고 홀가분하게 나왔지."
아울러 그는 품속에서 한 알의 보주(寶珠)를 꺼내 슬쩍 중년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신분을 입증해 보이려는 의도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중년인은 눈을 크게 떴다.
"아! 북경에서 오신 귀한 분인지도 모르고 소인이 무례를 범했습니다. 어서 저를 따라 오십시오."
그의 태도에 진일문은 쓴 웃음을 금치 못했다.
'이 곳은 워낙 금전이 흔하다 보니 지위로써 차등을 두고 대우하는 모양이구나.'
아무튼 이로써무사히 문전을 통과한 진일문은 그 때까지도 대문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흘깃 바라본 후, 뒷짐을 지고 그의 뒤를 따랐다.
천예만향루는 안으로 들어서자 더욱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대전과 전각의 단청은 그 채색감이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었고,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도 전부 순금이나 순은이었다.
기와도 그 하나하나가 유리나 옥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주변의 인공 연못이나 가산의 배치 등은 황궁 못지 않게 훌륭했다.
중년인은 진일문을 소위 전원(前院)으로 데려가지 않고 곧장 중원(中院)으로 안내했다.
원래 전원이란일반적인 부호들을 상대하는 곳으로 천예만향루 내에서는 가장 평범하게 꾸며 놓은 곳이었다.
이에 비해 중원은 고관이나 사대부의 귀인들을 모시는 장소답게 훨씬 거창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가장 각별한 곳은 역시 내원(內院)이었다.
하지만 그 곳은 천예만향루가 생긴 이래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인사 밖에 맞이한 적이 없는 은밀한 곳이었다.
화려한 대청.
사방의 벽면에는 진품의 고서화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발등이 푹푹 덮힐 정도로 푹신한 붉은 색의 양탄자가 깔려 있어 매우 안락한 느낌을 주었다.
한 가운데에는귀한 단향목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서 하나의 향로가 가늘게 향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것은 천축산 침향으로써 실내에 연신 그윽한 향기가 감돌게 해 주었다.
진일문.
그는 이런 곳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내친 김에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자리에 앉았다.
중년인이 그의곁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자께서는 어떤 미녀를 원하십니까?"
진일문은 잠시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가 누구인가?"
중년인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본 루에는 미녀가 무수히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려이교삼미(一麗二嬌三美)라면 본루의 간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려이교삼미?"
"네, 일려는 화중지화(花中之花) 옥가려 낭자를 말하는 것이며 이교는 모백아(毛白兒)와 소홍자(小紅仔)입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아무 손님이나 받지를 않습니다. 사실 다른 이들 경우에는 삼미 중 하나만 만나도 대부분 만족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 대가만도 엄청납니다만......."
진일문은 그 말을 듣자 환사가 이 자리에 있다면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실상 그는 이전에 환사로부터 한 주머니의 보주를 선사 받아 간직하고 있었다.
아까 중년인에게 건네준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진일문은 그 보주들의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쓸만한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의 손에서 또 하나의 구슬 한 개가 나와 탁자 위에 얹혔다.
"받게. 여기까지 안내한 수고비는 이미 지불했고, 이것은 또 다른 의미일세."
"그럼......?"
중년인은 무슨말이 떨어질지 대충 짐작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진일문은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잘라 말했다.
"본 공자는 일교를 원하네. 다른 계집은 싫네."
"으음......."
중년인은 낮게신음을 발했다.
진일문은 모르고 있으되 그는 그 보주의 값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진귀한 묘안옥(猫眼玉)으로써 한 개 만으로도 능히 만금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공자."
중년인은 묘안옥을 갈무리하더니 즉시 밖으로 나갔다.
진일문은 그가 사라지자 대청 안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기사가 기호를 남긴 것은 불과 하루 전이다. 그가 아직도 이 곳에 있거나 이 주변에 머무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왜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일까? 그라면 내가 여기에 와 있다는 사실을 능히 알아차리고도 남았을 텐데.......'
어느덧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한 예감이 깃들고 있었다.
'혹시 그의 신변에 무슨 변고라도......?'
잠시 후.
중년인이 돌아왔다.
"공자, 소인을 따르십시오."
미소 띈 그의 얼굴에 대고 진일문은 담담히 물었다.
"일교가 수락했는가?"
"그렇습니다. 화중지화가 공자를 직접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후후... 영광이군. 항주에 온 것이 헛걸음 만은 아닌 것 같네. 내 화중지화를 품게 되면 자네에게도 후사하겠네."
중년인은 문득정색을 지으며 말했다.
"술 한 잔 나누시는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공자께서도 어려우실 것입니다. 화중지화로 말하자면 본루가 문을 연 이래 손님을 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있다고 해야 단 두 번, 그것도 잠자리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진일문은 그 말을 듣자 화중지화라는 여인에 대해 호기심과 거부감이 동시에 일었다.
'대체 어떤 여인이길래 그토록 콧대가 높단 말인가? 설마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는 아니겠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결국 일개 기녀에 불과하지 않는가? 어차피 기루에 몸을 담았으면 동료들을 의식해서라도 본업에 충실해야 할진대.......'
그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기분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를 만나기 위해 이 곳에 들어오긴 했으나 콧대 높은 미녀를 만나본다고 생각하니 은연 중 흥미가 당겼다.
"자! 안내하게."
진일문은 마침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이와 더불어 그는 중년인을 향해 한 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자네는 아마도 본 공자로 인해 화중지화가 전례를 깨뜨리고 남자에게 안기는 것을 구경하게 될 것이네."
중년인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비록 찰나적이었으나 그의 눈가에는 경멸의 기색이 스쳤다.
'쯧! 한심한....... 부친이 쌓아놓은 권력을 믿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나는 이런 자만 보면 구역질이 나거든.'
그의 심중에서일어나는 한탄이야 누가 알겠는가?
내원(內院).
바야흐로 진일문은 천예만향루의 최고 귀빈실에 들게 되었다.
월동문 앞에 이르자 취의를 입은 두 명의 시녀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그녀들을 본 순간, 진일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개 시녀만 해도 가히 절색이구나. 이 정도라면 천 명의 여인을 놓고도 고를 수 있을지 의문이거늘, 정녕 화중지화는 천상의 우물일지도 모르겠구나.'
시녀들은 각각한 명은 앞에서, 한 명은 뒤에서 청등과 홍등을 든 채 그를 인도했다.
월동문 안은 막바로 화원이었다.
그런데 그 운치나 규모에 있어서는 그 어떤 훌륭한 곳도 비견될 수 없을 정도였다.
화목들은 그 숫자나 배치도 놀라왔지만 다듬어 놓은 모양새에서 언뜻 정교함마저 느껴졌다.
확실히 앞서의전원은 말할 것도 없고 중원과도 품격이 또 달랐다. 낮으막한 전각들이 그림처럼 서 있었고 교각과 정자 등이 곳곳
에 적절하게 자리잡고 있어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풍취가 일단 마음을 끄는군.'
진일문은 내심이렇게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 곳은 수려하되 천박한 것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였다.
자연과 인공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어 아늑한 낙원(樂園)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한 채의 별원으로 안내되었다.
별원은 다른 곳과는 달리 아담했으나 그 대신 마치 구름 속의 운각인양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금 진일문이당도해 있는 곳은 별원의 대청이었다.
그리고 그 한 쪽 벽이 유리로 되어 밖을 내다볼 수가 있었다.
연못.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에 깔린 자갈이 하나하나 다 보일 정도였다.
그 속에서는 비단잉어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진일문은 유리벽을 통해 그 광경을 보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도처에 이처럼 아름다운 것들만 널려 있다니.......'
그의 시선은 바닥으로 향해졌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밟고 서 있는 것이 눈같이 하얀 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후... 호사의 극치이면서도 도무지 역감이 일지 않는구나.'
유리로 된 벽을 제외하고 삼면의 벽에는 각기 다른 고대의 산수화들이 걸려 있었다.
진일문은 낙관으로 보아 그것이 중원에서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이전의 진품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청옥석으로 된 탁자에 앉자 두 시녀는 사라졌다.
이어 다시 나타난 여인들은 홍의 차림의 또 다른 두 시녀였다.
그녀들은 탁자 위에 녹옥주전자와 녹옥배를 올려 놓았다.
"귀인께서는 먼저 설산안령차(雪山雁靈茶)를 드십시오."
진일문은 다른것은 몰라도 차에 대해서만은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시녀가 내놓는 차는 그로서도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차를 한 모금 음미한 후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입안에 흘러드는 순간, 폐부까지 시원해지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라면 희대의 진품이라는 것쯤은 이내 알 수 있었다.
"으음, 정말 좋은 차군."
그가 나직히 탄성을 발하자 왼쪽의 홍의시녀가 생긋 웃었다.
"공자께서는 이 곳에 들어오신 세 번째 손님이세요. 그리고 이 곳에 있는 것은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이에요."
첫댓글 즐감하구갑니다
오늘편은 무협지의 정수 ㅎㅎㅎ 잘 보고 가요~~
즐감요!!!
ㅈㄷㄱ~~~~~~~~~~~~~~~``````````````````````````
늘 감사합니다.
굿,,즐감,,,,
ㅎㅎ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쟴납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
花中之花 一麗 玉駕麗^^ 즐독했슴다.
줄겁게 열독하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난형난제 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