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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물의 종착지
출처 부산일보 :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6021018130730720
허만하 (1932~)
물에게는 낮은 쪽이 앞이다. 물의 감각은 오직 높낮이다.
물은 혼자서 또 집단으로 묻힐 곳을 찾는다. 물은 서로를
불러모아 충만한 부피이면서 때로 바닥을 들어내면서, 조금
더 낮은 수위를 찾아 먼 쪽으로 우회하면서 굽이를 만들기도
한다
강은 곡선을 사랑한다. 물이 사라지는 곳은 기존의 물이
새로 들어오는 물을 몸으로 끌어안는 바다 깊이다.
바다 깊이에서 하늘 구름으로 머물다 다시 땅을 찾는 큰
동그라미를 물은 그린다. 사람이 보는 것은 언제나 물 행보
의 한 단면이다. 물은 태양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물은
언제나 운동 중이다. 시간처럼 정지할 줄 모른다
시집 〈별빛 탄생〉 (2025) 중에서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 온갖 것을 섬길 뿐 그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뿐이라 했지요.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 그래서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도 물은 그 공로를 인정받자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물을 이롭게 하고 있다는 것마저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 시를 읽는 동안에도 물은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며 순환하고 있겠지요. 곡선을 사랑하며 움직이는 물. 구름이 되기 위해 움직이는 바다. 물이 물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바다가 가까이에 있어 좋습니다. 물의 종착지는 어디일까요. 사람의 눈물은 어디쯤일까요. 물처럼, 물처럼 되라는 말씀을 되뇌이게 됩니다.
신정민 시인
빛명상
물은 강을 거쳐 바다로 모이고
사람은 세월을 거쳐 내생으로 모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연을 만들어 간다. 인연에는 영적으로 맺어지는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 즉 악연이 있다.
영장인연靈障因緣이란 말이 있다.인연은 만남에서 시작 된다. 즉 좋은 만남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만, 악연은 영의 장애가 만들어내는 '영장'으로써, 인간 세상에 많은 애로와 장애를 가져오고 여러 가지 파란을 겪도록 유도한다.
그 악연은 왜 오는가, 우연인가 필연인가, 그 대책은 없는가에 대해 고심하여 나온 것이 선이요, 사랑이요, 자비일 것이다. 선조의 억압된 욕망이 자손이 살아가는 데 나타난다. 결혼, 연애, 우정, 직업, 건강, 사업, 환경, 재난, 관재구설,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우주의 마음은 선조의 억압된 욕망 (생전에 악업을 지었던 대가, 결과 등)을 통하여 후세에 경계를 하고 정도를 깨치도록 한다. 물론 우주의 마음과 내생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 인과응보의 원리가 아닌가 한다.
물은 강으로 바다로 흐르고, 인생은 세월을 거쳐 내생으로 흐른다. 그 내생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곳이다. 육체는 죽으면 지금의 세상, 죽음으로 끝나지만 마음에는 죽음이 없다. 노후하여 못쓰게 된 육체를 벗어 버리고 마음은 영원한 곳, 내생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죽으면 저승에 간다고 한다. 저승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영혼)이 모이는 곳이다. 그때는 물론 분류되어 모인다. 세상에서도 요즈음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듯이 내생(저승)에서도 우리의 영혼들은 자연히 분리 된다. 그 분리수거장에는 인간 세계에서처럼 누가 나와서 분리해 주거나 교통정리 해주는 아무런 장치도 없다. 육체를 벗어버린 '진정 나' 즉 '내 마음'이 누구보다도 먼저, 세상에서 살아온 한 평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세상에서 말하는 빽이나 권력, 명예, 부귀영화가 그저 뜬구름일 뿐이다.
빈손으로 나왔다가 빈손으로 되돌아 왔는데 그 분은 그 손바닥을 보지 않으신다. 그 손이 '무엇을 했는지'를 보고자하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의 삶에서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손일지라도, 진심으로 살아왔다면, 그리고 초광력超光力을 받고 의지한 손이라면 거두어 주신다. 왜냐하면 초광력超光力의 힘은 우리의 마음을 한 순간 정화하여 맑게 씻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힘, 초광력超光力은 어떠한 조건이나 형식, 절차도 생략한다. 진심으로 확신과 신념을 갖고 고요히 명상에 잠겨,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잠깐 생각해 보라. 그리고 진솔하게 마음의 고향, 대 우주의 마음에 내 마음을 맡기면 된다.
길어야 3분, 한 번밖에 없는 삶, 씩씩하고 건강하게 새 출발 하자. 육체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말자. 맑고 깨끗하게 새롭게 살자. 우주의 힘은 당신을 돕는다.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07.10. 1판1쇄 P. 49~50 중
초광력超光力이란 큰 바다
토요일 오후라 한가히 고요 속에 있는데, 지난 날 포항에 있을 때의 부하 직원이 찾아왔다. 근무 중에도 그는 역술책이나 정신 세계에 관한 책에 열중하더니, 하루는 사표를 내고 전라도 소재 ㄱ산사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난 오늘 느닷없이 찾아온 것이다. 눈을 보았을 때 맑고 총기가 있고 ‘영’의 기운이 담겨 있어 주송(呪誦) 수련이 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는 대담하게 나에게 포교를 하려고 들었다. 종교의 힘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때가 있다. 때로는 ‘ㅇㅇㅇ의 증인’이란 곳에서 찾아와 사탄을 물리치고 회개 하라고 하기도 한다.
한번은 각 종교인들이 모인 자리에 가게 되었다. 내가 초광력을 보내니, 한쪽에서는 ‘주님, 주님’을 외치고, 또 한쪽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외치고, 또 다른 사람은 ‘보현보살’을 부르고, 또 한편에서는 주송을 외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들이 불렀던 소리는 간 데가 없고 하나같이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을 뭐라고 중얼거렸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사람, 양손을 덜덜 떠는 사람도 있고, 모두들 제 각각의 행동을 했다.
몇 분이 경과하자 모두 고요 속에 잠겼다. 그리고 하나같이 조용 해졌다. 모두의 손에는 금빛이 나와 반짝거렸고, 더 이상 어떤 말도 필요가 없었다. 이 힘, 초광력超光力은 모두를 포용했기 때문이다.
모든 강줄기는 흘러 흘러 바다로 모이는 것. 그 바다에까지 와서 내 강물, 네 강물을 찾지 않는다. 아니 찾지 못한다.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강물에서 살던 때를 모두 잊어버린다. 바닷물 자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강물에 따라서는 정화되기 위하여 파도라는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모두 하나의 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초광력超光力은 바다라고 했고, 바다의 손길은 탁한 물을 맑게 하니, 생명의 물,어머니의 젖, 해인(海印)이라 했던가.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6.30. 초판 1쇄 P. 200-201중
‘제5의 힘’이 기존 종교의 독선을 넘어서는
단초를 준다
ㅡ 중략 ㅡ
기존 종교의 신개념을 넘어서는 ‘우주마음’에 대해 학회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태 신앙으로 그 누구보다 성당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신실한 신앙심 때문에 나에게 우연히 찾아온 초광력超光力을 종교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초광력超光力의 존재를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에 전 인생을 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8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모태신앙을 포용하여 초월할 수 있게 되었지요.
『요한복음』 1장 1절에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느(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느(하나)님이셨다.’ 나는 이 구절을 통해 자연스럽게 신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태초의 ‘말씀’을 바로 우주마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태초에 말씀이 계신 것을 전제로 해서 하느(하나)님이 계신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느(하나)님 역시 말씀, 곧 우주마음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 떠받드는 신들은 바로 우주마음의 한 자락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언어 다툼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학회장님은 노자의 말을 강조한다.
“현재 세상의 종교들이 서로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참으로 아픕니다. 이런 상황에서 귀담아야 할 것이 『도덕경』 제 1장 첫머리에 나오는 말입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이 뜻은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항상 된 도가 아니고,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항상 된 이름이 아니다.’입니다. 이처럼 말할 수 있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우주마음’이 아닙니다. 말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바로 ‘우주마음’이지요.
현재의 종교들은 무슨 무슨 신입네 말하고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류 역사를 보면 종교로 인해 왜 그렇게 많은 전쟁이 일어났습니까? 특히, 현재 한국에서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는 기독교는 ‘유일신 하나님’ 이라 말하고 이름 지음으로써 다른 종교와는 소통이 부재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일부 기독교에서는 ‘예수 믿으면 천국이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은 실로 강도의 협박이나 매한가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신 무슨 신이라고 특정 하는 순간 이미 신은 신이 아닙니다. 어떤 신으로도 특정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주마음’입니다.”
학회장님은 우리 선조의 전통 신앙을 높이 평가 한다. 외국에서 유입된 유교, 불교, 기독교는 모두 신, 숭배 대상이 있는 것에 반해 우리 전통 신앙에는 그것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천지신명(天地神明) 일월성신(一月星辰)에 의탁해 소원을 빌었다. 해와 달은 실제 숭배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있게 한 우주근원을 향해 신앙생활을 영위해온 것이다.
이러한 우리 선조의 전통처럼 빛VIIT명상 또한 숭배 대상이 없다. 다만 나의 존재와 삼라만상을 있게 한 우주근원이자 우주마음에 신뢰하고 의탁한다.
학회장님은 빛VIIT명상이 종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따가운 지적을 아끼지 않는다. 기독교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은 우상 숭배를 해왔으며, 마귀를 섬긴 죄를 지은 셈이다. 빛VIIT명상 또한 유일신 하나님을 안 받들고 ‘우주마음’을 이야기하니, 결국 사탄을 섬기는 죄를 짓는 것이다.
따라서, 학회장님은 기독교의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 할 수밖에 없다. 이웃과 함께 편하게 지내지는 못할망정 이웃을 ‘마귀를 섬긴 죄인’이라고 떠들고 다니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웃은 졸지에 사상 최악의 죄를 저지른 누명을 뒤집어쓴 기분이 들고 만다.
학회장님은 앞서 언급한 대로 모태신앙으로 성당에 다녀서 그 누구보다 성경 지식에 해박하다. 성경 비판론자들의 주장대로 성경이 다른 민족의 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구약이 연대상의 오류를 범하는 것은 물론 역사적으로 예수가 어떻게 해서 ‘메시아’로 떠받들어지게 됐는지도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일이 언급하면서 지면을 낭비하지는 않겠다.
다만, 학회장님이 강조한 『마태복음』에 나온 예수의 산상 설교를 언급하고자 한다.
너희가 심판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말하기를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줄테니 가만히 있거라’라고 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 따라 기독교는 타종교에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심판’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 역사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기독교 또한 안을 들여다보면 부조리와 허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고, 네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라고 하면서 폭력을 포기하라 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으며,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과연, 오늘날 이 말씀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산상 설교는 아무나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개했다고 죄 씻음을 받고, 예수를 믿으면 곧바로 천당, 구원이 보장받는 것이 아니다. 자칫 구원 받았다고 집단 착각에 빠졌다가는, 산상 설교에서처럼 ‘비와 홍수와 바람으로 인한 무너짐’이 엄청날 것이 틀림없다.
당신은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와 달리, 우리 선조의 전통 신앙과도 잘 조화가 되는 빛VIIT명상은 천국이니 지옥이니, 내세 또는 구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빛VIIT명상은 다른 종교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으며, 함께 잘 어울린다. 빛VIIT명상은 근본적으로 바로 현실의 삶을 중요시하고 ‘참마음(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기를 권한다.
입맛을 돋구는 콜라가 기존의 종교라면, 그 음료수의 재료가 되는 순수한 물이 바로 빛VIIT명상이다. 빛VIIT명상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에 스며들기 때문에 모든 것의 중심이자 근원이다. 빛VIIT명상은 신을 낳은 어머니 ‘우주마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뿐이다.
언젠가 ‘제5의 힘’이 제도 학문에서 인정받을 때, 초광력超光力 또한 세상에서 인정받을 것이다. 이와 함께 ‘우주마음’의 진정한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면 기존 종교들의 독선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당신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겠는가?
출처 : 해독제 2012년 7월 7일 초판 1쇄 P. 142~146
풀꽃차 예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마음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나옹선사懶翁禪師 ―
가끔 번뇌가 일어나고 짜증이 섞여오면
고요히 눈을 감고 이 시를 더듬는다
그러고는 뒷밭에 나가 풀꽃 한두 송이 얻어와
보글보글 끓인 물을 약간 식혀 띄우면
절로 향기에 취한다
그 소박하고 그윽한 야생의 향음鄕音은
번뇌도 짜증도 삼켜버린다
출처 : 甲辰年 그림찻방3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P. 176-177
첫댓글 감사합니다.
누가 초광력超光力은 바다라고 했고,
바다의 손길은 탁한 물을 맑게 하니,
생명의 물,어머니의 젖, 해인(海印)이라 했던가.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물은 강으로 바다로 흐르고, 인생은 세월을 거쳐 내생으로 흐른다.
그 내생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곳이다. 마음은 영원한 곳 내생으로 가게 된다,
깨우침의 귀한 빛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귀한 글
마음에 새겨습니다.
감사합니다.*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가며 모든 것을 이롭게 하는 맑은 물처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물 품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바다 초광력 빛을 향해 흘러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반이 화강암 덩어리라 지진에 강하고 무엇보다 물이 깨끗하지요. 빛, 공기, 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글, 마음에 담습니다. 초광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연 특히 빛,공기,물 에대한 감사....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자연에 감사합니다.
언제나 초광력과 함께 함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귀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