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대통령 각하세요?"
임춘훈 전 KBS 미주지사장
얼마 전 미국에서도 상영된 한국영화 <극한직업>은 관객 동원 1600만, 박스 오피스 역대 2위를 기록한 대박 영화다. 5명의 경찰 마약반원들이 국제 마약조직 아지트 앞에 위장 치킨집을 운영하며 범인들과 벌이는 소동을 그린 코믹 액션물이다. 영화는 그렇다 치고 실제로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갖는 직업 중 최고의 극한직업은 뭘까. EBS 교육방송은 '태국 푸크리등산 국립공원의 짐꾼들'을 극한직업 랭킹 1위로 선정했다. 방송 리얼 다큐 프로그램에 소개된 수백 개의 각국 극한직업 중 태국 짐꾼들의 고단한 삶의 방식이 영예의(?) 1등을 차지했다.
많은 태국 청년들은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겨울을 느낄 수 있는 해발 1360미터의 푸크리등산 정상에서 성인식을 갖는다. 12월에서 2월까지 매일 600여 명의 청년들이 몰려오는데 이들이 바리바리 싸온 짐을 산 정상까지 실어 나르는 게 짐꾼들이 삶의 무게와 함께 짊어지는 고된 직업이다. 2미터가 넘는 길이의 대나무 장대 앞뒤에 자기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지고 산 정상까지 5시간을 뛰어 올라가는 일로 하루 수입은 30밧, 미화로 60달러 정도다. 문재인과 조국, 석 달 가까이나 허접스런 두 인간의 얘기를 글로 쓰며 내 직업의 모진 극한성을 실감했다.
한 평생 글을 써왔지만 글 쓰는 일이 태국 푸크리등산 짐꾼들이 짊어지는 삶의 지독한 고달픔 못지않은 Extreme Job 즉 극한직업임을 처음 깨달았다. 대통령 같지 않은 인간한테 대통령 호칭 붙여주고 사기 범죄조직의 두목 같은 인간을 법무장관으로 불러주며 지난 두 달 절제하고 성찰하는 착한 글쟁이 코스프레를 해봤다. 대도 법무장관과 그와의 공범관계를 사실상 커밍아웃한 대통령 얘기를 쓰는 내내 기분은 참으로 엿 같았다. 문재인 이름 뒤에 붙는 대통령 호칭이 지난 석 달 사이 언론과 시중 장삼이사들의 뒷 담화에서 슬그머니 사라져갔다.
'한겨레' 같은 일부 '대깨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튜브와 중립-보수 언론 등에서 대통령은 호칭 없이 그냥 문재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딱하게도 그는 허구한 날 술 마시고 마누라 두들겨 패는 동네 골칫덩이 '문씨 영감' 정도로 폄하됐다. 문재인은 조국 한 놈 살리려 스스로를 이렇게 업화의 나락에 내던졌다.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에 절망하며 문재인을 떠나기 시작한 민심은 문이 갖은 협박 꼼수로 윤석열 검찰에 사법훼방 공세를 가하면서 그를 아예 포기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 단초가 단일 시위로는 단군 이래 최대라는 500만 광화문 민심으로 폭발했다.
그 무렵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주간이 쓴 <나는 문재인을 더는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큰 울림을 줬다. "아무리 국정운영 능력이 떨어지고 온갖 문제가 많은 대통령이지만 그래도 대통령이라는 점을 감안해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글 쓸 때는 기본적인 예우를 갖췄지만 이번엔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도대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문재인은 지금 제 정신인가? 저런 사람이 국가원수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 이런 함량미달의 대통령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권 위원 칼럼의 결론부분은 국민저항권을 언급한다.
"이제 법치주위는 죽었다. 의식 있는 국민이라면 국민저항권을 발동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할 시점이 됐다. 적어도 현 정권이 야당 시절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근거로 소리 높여 외쳤던 촛불혁명보다는 훨씬 권력에 대한 저항이 정당한 시점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더는 인정할 수 없다." 조국 사퇴와 그의 처 정경심의 구속으로 문재인은 다시 한 번 정치적 리더십과 도덕성에 치명적 내상을 입었다. 정경심 구속에 이어질 조국에 대한 검찰의 본격 조사 그리고 광화문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하야 촛불을 보면서 문재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지못미' 조국에 '열나'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까. 배신자 윤석열을 향한 울분과 적개심에 어벤저스의 고뇌하는 빌런 타너스처럼 씩씩대며 날 밤을 새고 있을까. 조국 이슈로 지난 몇 달 대한민국을 잿빛 세상으로 만들더니 이제는 검찰개혁과 공수처 문제로 나라를 또다시 분탕질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해 편을 가르고 자기네 편의 배타적 결속력으로 국가경영의 동력을 충전하는 문재인식 갈라치기 통치술이 이번에는 뜬금없는 검찰개혁과 공수처 문제를 소환해 냈다. 검찰개혁은 99%의 국민에겐 관심이 별로 없는 이슈다.
정치개혁과 사법개혁 교육개혁 재벌개혁 노동개혁 같은 여러 개혁 이슈 중 하나일 뿐이다. 헌데 문재인은 검찰개혁 안 하면 나라의 존립 근거가 무너진다는 식으로 여론을 오도하며 헌법에도 배치되고 세계에도 유례가 없는 옥상 옥 검찰인 공수처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은 애초 조국을 법무장관에 앉히기 위한 당위적 근거로 검찰개혁 카드를 꺼냈었다. 헌데 조국이 여론에 밀려 낙마하자 이제는 미운 털 검찰총장 윤석열을 숙청하기 위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검찰개혁 칼춤을 추고 있다. 문재인은 검찰총장 윤석열을 몰아내고 검찰의 힘을 빼는 일에 최우선 국정 목표를 정한 것 같다.
어떤 시급한 안건보다 먼저 공수처법 국회통과를 서두르는 이유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조국은 사법처리를 피할 수 있다. 퇴임 후 문재인이 구속을 모면할 수 있는 확실한 장치도 공수처다. 대통령 딸 가족 등 친인척 수사와 586 권력 실세들의 엄청난 비리도 공수처를 통해 조작 축소 은폐될 수 있다. 공수처는 문재인 같은 부도덕한 대통령 권력엔 꽃놀이패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이 같은 칼춤에서 비켜나 2년의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거다. 허지만 조국의 구속 등 대통령의 역린까지 건드리는 과감한 윤석열식 대시로 국민의 박수를 받은 후 장엄하게 쫓겨나는 길을 택하게 될 거다.
윤석열 검찰은 이번 조국 게이트 수사에서 문재인 정권을 뒤흔들 고급정보를 엄청 취득했다. 조국 게이트는 문재인 일가가 포함된 현 정권 586실세들의 권력형 부패와 연계된 다층적 국정농단 사건이다. 최순실과는 차원이 다른 메가톤급 폭발성을 안고 있다. 지난 석 달 조국 사태로 언론에도 엄청난 정보가 쌓였다. 여러 민관 조직 내의 휘슬 블로어들은 법정에 불려 다니는 것을 꺼려 검찰보다는 언론에 고급정보를 제보하는 경우도 많았다. 문재인이 무리수를 써서 윤석열을 끌어내리면 만만찮은 후폭풍이 몰아칠 거다. 광화문과 윤석열과 언론의 3각동맹이 문재인 진영을 포위하는 상황, 윤석열의 대반격이 일어날 수 있다.
조국 사태로 정치적 도덕적 치명상을 입은데다 임기 후반 레임덕에 빠진 문재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문재인은 제왕적 대통령제 안에서의 자신의 위상을 대통령 기관설의 부정에서 찾는 것 같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루이14세식 통치관이다. 생시몽 대공의 수기엔 이런 대목이 있다. "루이14세는 칭찬 감언 아첨을 좋아했다. 뻔히 아는 거짓말, 너무나 비열한 겉치레 인사도 즐겼다. 순종적이며 비굴한 신하들만 국왕 주변에 들끓었다." 요즘 청와대 꼬락서니가 딱 이짝이다. 대통령은 혼밥 혼술 즐기고 직언하는 참모는 씨가 말랐다.
조국과 김정은과 일본 얘기를 '삐딱하게 꺼냈다가 대통령 눈에서 발사되는 레이저 빔을 맞고 혼비백산했다는 누구누구의 얘기가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전해진다. 내 아내는 요즘 TV에서 문재인 얼굴이 나오면 <김수미 반찬> 같은 데로 채널을 돌린다. 어제 중앙일보 배명복 대기자가 쓴 칼럼에도 문재인 얼굴이 TV에 뜨면 사람들이 일제히 채널을 돌린다는 얘기가 쓰여 있더라. 시중의 장삼이사들로부터 이처럼 외면당하고 대통령 호칭까지 몰수당한 대통령. 그에게 묻고 싶다. "니가 대통령 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