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소환한 뜻밖의 만남… 영화 주인공과 시인 모두 순수했던 시절 그리워 해
[한시를 영화로 읊다]〈21〉원스 어폰 어 타임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년)에는 젊은 날의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 누들스는 대공황 시기 뉴욕의 뒷골목에서 친구들과 나쁜 짓을 일삼는다. 노인이 된 누들스는 죽은 줄 알았던 친구 맥스와 다시 만나 과거를 추억한다. 당나라 위응물(韋應物·737∼-793?)도 저주자사(저州刺史)로 부임하던 길에 30여 년 만에 옛 친구와 해후하곤 옛일을 회상하며 다음 시를 썼다.
시는 옛 추억들로 점철돼 있다. 위응물은 열다섯 살에 현종(玄宗)의 숙위(宿衛·경호원)가 돼 황제를 모셨다. 이 무렵 그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음주와 유흥에 빠져 살았다. 현종이 세상을 뜬 뒤에야 뒤늦게 마음을 잡고 글공부와 시 짓기에 전념하여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영화와 한시 모두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뜻밖의 만남이 계기가 돼 옛 기억이 소환된다. 영화 속 맥스는 갱스터라는 과거를 숨기고 베일리 장관으로 변신하였고, 누들스는 맥스와 만나 아련한 잔상으로 남은 추억을 떠올린다. 시인 역시 이젠 점잖은 문관이 되었지만 양개부(楊開府)를 만나 치기 어린 시절의 편린을 반추한다. 관료가 된 뒤의 위응물은 욕심을 버리고 수도자 같은 삶을 살았다고 알려졌는데, 이 시는 그의 숨겨진 면모를 잘 보여준다.(王世貞·‘章給事詩集序’)
영화 속 누들스도 시인도 과거의 잘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만은 놓치지 않고 싶어 한다. 마지막에 영화는 누들스의 환각 속 미소로, 한시는 남들은 영문 모를 눈물로 과거에 대한 짙은 회한을 드러낸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 ‘어린 시절 기억들’을 들으며 이 시를 낭송하면 지난날에 대한 향수로 목이 멜 것만 같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