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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의 부인 허왕후는 나라에 큰 잔치가 열렸는데 바닥에 깔 돗자리가 없자 자신의 음문을 자리대신 깔았다.
잔치가 한참 무르익을때 한 손님이 뜨거운 국물을 엎질렀는데 그 때문에 허왕후의 음문에 흉터가 생겼다. 지금도 김해 허씨의 후예는 음문 위에 검은 점이 있다고 한다
단군의 설화에 단군의 남근은 예순 댓발의 거근을 가졌다고 한다
(위의 내용은 한국인의 성숭배문화에서 인용)
위의 내용을 보면 키가 크던지 많이 먹는다든가 몸무게가 무겁다. 아님 남녀의 남근과 여근이 아주 크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왕의 신성함을 치겨세우며 우리 왕은 특별함을 타고 태어났음을 알리는 듯하다
삼국유사에 661년 사비수 남쪽 바다에 여자의 시체가 떠올랐는데 몸길이기 73척이요 발길이가 6척이요 생식기의 길이가 3척이나 되었다.
삼국사기에도 2년 다른 기록이 있다
발견된 장소는 백제의 상징적인 장소인 사비수라고 했으므로 이는 백제의 멸망을 암시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대략 이만한 여인의 사체였다고 볼수 있다.
우리나라 설화에 이 정도 크기의 여신은 제주도 설문대 할망 밖에 없었을듯 하다.
선덕여왕때의 여근곡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봐서 당시는 성기숭배가 상당했을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유적중 낯 뜨거운 토우를 봐도 당시는 신체의 크기나 성기의 크기를 매우 상징적으로 보았음을 알수 있을듯 하다. 아마 왕권의 상징으로 보았지 않았을까?
신라왕중 크기가 큰분들은 거의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체제 구축에 애쓰신 왕들이었다고 한다.
신라의 정복군주였던 진흥왕이야 구테여 그런 내용이 없어도 괜찮았겠지만 다른 왕들은 귀족들과 권력투쟁을 통해 왕권강화를 하려다보니 이런 류의 과장이 생기지 않았을까하고 역사학자들은 추측하는듯 하다.
백제는 거녀가 죽음으로서 백제를 보호해왔던 다산과 풍요의 여신이 죽어 더 이상 백제는 존손하지 못함을 암시한듯 해 보인다
일본 설화에도 너구리의 부랄이 아주 커 돗자리나 우산으로 쓴다는 내용이 있고 그걸 에니메이션으로도 만들었는데 이것도 신라에서 전해진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일본 에니메이션에 나오는 너구리의 부랄은 다다미 8장 크기로
새도 잡고
물고기도 잡고
돗자리로 사용해 스모도 하고 잔치도 하고
우산으로도 사용한다.
이건 가야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내용이 전해져 변형되어진듯 해보인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