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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소수(狐裘羔袖)
여우 갖옷은 아름다우나 양 새끼의 가죽으로 소매를 달면 보기 흉하다는 뜻으로, 대체로는 좋으나 나쁜 곳이 조금 있을 때 쓰는 말이다.
狐 : 여우 호(犭/5)
裘 : 갖옷 구(衣/7)
羔 : 새끼 양 고(羊/4)
袖 : 소매 수(衤/5)
출전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4年條
갖옷은 가죽옷을 말한다. 이 성어는 자기는 윗사람에 붙어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며 사정하는 말이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헌공(獻公)이 대부들에게 모욕을 주자 그들이 헌공을 주살하려고 하자 제(齊)나라로 도망갔다.
그 이야기의 일부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4년조에서 보겠다.
제(齊)나라 사람이 내(郲) 지방을 주어 위나라 헌공(獻公)을 거처하게 하고 돌아갈 때에는 이 내(郲) 지방에서 나는 양식도 전부 가져가게 했다.
齊人以郲寄衛侯, 及其復也, 以郲糧歸.
우재(右宰) 곡(穀)이 헌공을 따라 다니다가 도망하여 귀국하니 위나라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다.
右宰穀從而逃歸, 衛人將殺之.
그는 변명하기를, '나는 처음에 헌공을 따라갔으나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소. 부득이해서 좇아간 것이오. 나는 마치 여우가죽 옷에서 소매만 양가죽으로 된 격이오' 하니 곧 용서해 주었다
辭曰: 余不說初矣. 余狐裘而羔袖, 乃赦之. 衛人立公孫剽.
(春秋左氏傳/襄公 14年)
春秋左氏傳 襄公 14年
(기원전 559년)
○ 十四年春, 吳告敗于晉.
양공 14년 봄에 오나라가 용포에서 패배한 사실을 진나라에 보고했다
會于向, 爲吳謀楚故也, 范宣子數吳之不德也, 以退吳人.
향에서의 회합은 오나라를 위해서 초나라를 정벌하고자 함이었는데, 범선자는 오나라가 초나라의 거상중에 쳐들얼간 부덕을 꾸짖어, 오나라 사람을 물러가게 했다.
執莒公子務婁, 以其通楚使也.
또 거나라의 공자 무루를 체포하니, 거나라가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통했기 때문이다.
將執戎子駒支, 范宣子親數諸朝曰: 來姜戎氏.
다음에 융의 아들 구지를 체포하고자 범선자는 친히 조정에서 이 사람을 꾸짖어 말하기를, '오라 강융씨여,
昔秦人迫逐乃祖吾離於瓜州, 乃祖吾離被苫蓋, 蒙荊棘以來歸我先君, 我先君惠公有不腆之田, 與女剖分而食之.
옛날 진나라 사람이 너의 선조 오리를 과주로부터 내어 쫓을 때에, 너희 선조 오리는 짚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몸에는 가시 덩굴을 뒤집어 쓰고 우리 선군에게 왔으므로, 우리 선군 혜공은 넉넉하지 못한 땅에서, 너희에게 일부를 나누어 주어 먹고 살게 하였다.
今諸侯之事我寡君不如昔者, 蓋言語漏洩, 則職女之由.
그런데 지금 제후들이 우리 임금을 섬기는 것이 옛날과 같지 않으니, 이는 우리 나라의 비밀을 주로 너희 입들이 누설했기 때문이다.
詰朝之事. 爾無與焉, 與將執女.
그러니 내일 아침부터는 너는 조회에 참여하지 말라. 만약 참석하면 너를 사로잡을 것이다'고 했다.
對曰: 昔秦人負恃其衆, 貪于土地, 逐我諸戎, 惠公蠲其大德, 謂我諸戎, 是四嶽之裔冑也. 毋是翦棄. 賜我南鄙之田.
이에 융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엣날 진나라 사람들이 수가 많음을 믿고 우리 땅을 탐내어, 우리를 몰아냈을 때에, 혜공은 큰 덕을 베풀어 우리들에게, '모든 융은 사악의 자손이다. 능멸해서는 안된다'고 하시고, 우리들에게 남쪽 변경의 땅을 하사하셨습니다.
狐狸所居, 豺狼所嘷, 我諸戎除翦其荊棘, 驅其狐狸豺狼, 以爲先君不侵不叛之臣, 至于今不貳.
그곳은 여우와 살쾡이들이 사는 곳이고, 승냥이와 이리들이 울부짖는 곳인데, 우리 융족들이 가시나무들을 제거하고, 그런 짐승들도 몰아 버리고서, 진나라 선군께서는 침략하지 않고 우리도 배반하지 않는 신하가 되어, 지금까지 변함이 없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昔文公與秦伐鄭, 秦人竊與鄭盟, 而舍戍焉, 於是乎有殽之師.
옛날 진나라 문공이 진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정벌할 때에, 진나라가 몰려 정나라와 동맹을 맺고, 수비병을 증가 했으므로, 이에 효산에서의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晉禦其上, 戎亢其下.
秦師不復, 我諸戎實然.
이때 진나라는 앞에서 방어하고, 우리 융족은 뒤를 억제했습니다. 그래서 진나라 군대가 다시는 본국을 엿보지 못한 것은, 모두가 우리 융의 힘입니다.
譬如捕鹿, 晉人角之, 諸戎掎之, 與晉踣之. 戎何以不免.
비유하건대 사슴을 잡을 경우, 진나라 사람은 발을 잡고, 우리 융족은 뒷다리를 잡아, 진나라와 같이 그것을 넘어뜨리는 격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 융족이 벌을 받아야 합니까?
自是以來, 晉之百役, 與我諸戎相繼于時, 以從執政, 猶殽志也. 豈敢離적.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나라의 모든 싸움에, 우리 모든 융족이 끊임없이 집정관에게 복종한 것은, 효산의 싸움에서 결심한 뜻이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멀리 떠나야 합니까?
今官之師旅, 無乃實有所闕, 以攜諸侯, 而罪我諸戎.
지금 당신네 고관 중에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제후들을 이끌지 못하는 것인데, 어째서 우리 융족들에게 죄를 돌리려 하십니까?
我諸戎飮食衣服, 不與華同, 贄幣不通, 言語不達, 何惡之能爲.
우리 여러 융족들은 음식과 의복이 중국과 같지 않고, 왕래도 하지 않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 어떤 나쁜 자들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不與於會, 亦無瞢焉. 賦靑蠅而退.
내일 조회에 참여하지 못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고 하고서, '청승'이란 노래를 부르고 물러났다.
宣子辭焉, 使卽事於會, 成愷悌也.
그래서 범선자는 사과를 하고 그로 하여금 조회에 나오게 하니 이는 진실함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於是, 子叔齊子爲季武子介以會, 自是晉人輕魯幣而益敬其使.
이에, 자국제자가 계무자의 보좌역이 되어 모임에 참석 했으므로, 이때부터 진나라 사람들은 노나라의 공물을 줄이고 노나라의 사신을 더욱 공경하게 되었다
○ 吳子諸樊旣除喪, 將立季札.
오나라 임금 제번이 부친의 장례를 치른 후에, 막내 아우 계찰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季札辭曰: 曹宣公之卒也, 諸侯與曹人不義曹君, 將立子臧.
그러나 계찰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조나라 선공이 죽었을 때에, 제후들과 조나라 사람들이 조나라 임금을 옳지 않게 여겨서 장차 자장들 세우려고 했습니다.
子臧去之, 遂弗爲也, 以成曹君.
그러나 자장은 따나 버려 임금이 되지 않음으로써 조나라 선공을 왕이 되게 했습니다.
君子曰; 能守節.
그래서 군자들이 말하기를, '자장은 절개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君義嗣也, 誰敢奸君.
형님은 정당한 후게자이니 누가 감히 형님을 반대하겠습니까?
有國, 非吾節也.
국가를 소유하는 것은 제가 지킬 절개가 아닙니다.
札雖不才, 願附於子臧, 以無失節.
이 계찰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자장의 뒤를 따라 절개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했다.
固立之, 棄其室而耕, 乃舍之.
굳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니, 그는 집을 버리고 농사를 지으므로 그대로 내 버려 두었다.
○ 夏諸侯之大夫從晉侯伐秦, 以報櫟之役也.
여름에 제후의 대부들이 진나라 임금을 따라 진나라를 정벌한 것은, 역에서의 싸움을 보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晉侯待于竟, 使六卿帥諸侯之師以進, 及涇, 不濟.
이때 진나라 임금은 변경에서 기다리면서, 육경으로 하여금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게 했으나, 경수가에 이르러 건너지 않고 있었다.
叔向見叔孫穆子, 穆子賦匏有苦葉.
숙향이 숙손목자를 만나자, 숙곤목자는 '박에 쓴 잎이 있다'는 노래를 불렀다.
叔向退而具舟, 魯人莒人先濟.
숙향은 물러나와 배를 준비하니, 노나라 사람과 거나라 사람이 먼저 넌거갔다.
鄭子蟜見衛北宮懿子曰: 與人而不固, 取惡莫甚焉, 若社稷何.
또 정나라 자교가 위나라의 복궁의자를 만나 말하기를, '아군이 되어 게으르니 약한 짓을 행함이 이보다 더욱 큰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懿子說, 二子見諸侯之師而勸之濟, 濟涇而次.
복궁의자가 기뻐하고, 이 두 사람이 제후의 군사를 만나 건너가기를 권유해서, 경수를 건너가 주둔했다.
秦人毒涇上流, 師人多死.
이때 진나라 사람들이 이 경수 상류에다 독약을 풀었으므로, 제후의 군사들이 중에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鄭司馬子蟜帥鄭師以進, 師皆從之, 至于棫林, 不獲成焉.
그러나 정나라 사마 자교가 정나라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자, 군대들이 모두 그를 따라서 역림까지 이르렀으나, 진나라는 강화를 요청해 오지 않았다.
荀偃令曰: 鷄鳴而駕, 塞井夷竈, 唯余馬首是瞻.
그래서 순언이 명령을 내리기를, '내일 아침 닭이 울면 말을 수레에 매고, 우물을 묻어 버리고, 부뚜막을 없앤 다음 나의 말 머리가 어디로 향하는가를 보라'고 했다.
欒黶曰: 晉國之命, 未是有也. 余馬首欲東. 乃歸, 下軍從之.
이에 난염이 말하기를, '진나라의 명령이 이런 적이 없었다. 내 말 머리는 동쪽으로 향할 것이다'고 하고서, 곧 돌아가 버리니 하군도 그를 따랐다.
○ 左史謂魏莊子曰: 不待中行伯乎.
좌사가 위장자에게 말하기를, '중행백을 기다리지 않겠소'라고 하니,
莊子曰: 夫子命從帥. 鸞伯, 吾帥也, 吾將從之. 從帥, 所以待夫子也.
위장자는 말하기를, '나으리께서 장군을 따르라고 명령하셨으니, 난백은 우리 장수요, 나는 장차 그를 따르겠소. 장군을 따르는 것이 나으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伯游曰: 吾令實過. 悔之何及. 多遺秦禽. 乃命大還.
이때 백유가 말하기를, '내가 지금 실로 잘못했다. 후회해도 돌이킬 수가 없구나. 공연히 진나라에 포로를 더해 부는 결과가 되었구나'고 하고서, 곧 명령을 내려 일제히 돌아갔다.
晉人謂之, 遷延之役.
그래서 진나라 사람들은 이런 전쟁은 '천연의 싸움'이라고 불렀다.
欒鍼曰: 此役也, 報櫟之敗也, 役又無功, 晉之恥也. 吾有二位於戎路, 敢不恥乎. 與士鞅馳秦師, 死焉.
이때 난침이 말하기를, '이번 싸움은 역에서의 패배를 보곡하는 것인데, 싸움에 또한 공로가 없으면 이는 진나라의 수치다. 나는 임금 다음의 제 2인자이니, 감히 부끄럽지 않은가' 하고서, 사앙과 더불어 진나라 군대 속으로 공격했다가 죽었다.
士鞅反, 欒黶謂士匃曰: 余弟不欲往, 而子召之, 余弟死, 而子來, 是而子殺余之弟也. 弗逐, 余亦將殺之. 士鞅奔秦.
사앙이 살아서 돌아오자 난염이 사개에게 말하기를, '내 아우는 싸우러 나가지 않으려 했는데, 네 아들이 불러내어, 내 동생은 죽고 네 아들은 돌아왔으니, 이는 네 아들이 내 아우를 죽인 것이다. 네 아들을 쫓아 버리지 않으면 내가 그를 죽이겠다'고 하자, 사양은 진나라로 도망갔다.
於是, 齊崔杼, 宋華閱, 仲江會伐秦, 不書, 惰也.
이때 제나라 최저와, 송나라 화열과, 중가이 모여 진나라를 정벌했으나, 경문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전쟁에 태만했기 때문이다.
向之會亦如之, 衛北宮括不書於向, 書於伐秦, 攝也.
향에서의 모임에도 또한 이와 같아, 위나라 북궁은 향에서의 회합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이번 진나라를 정벌하는 싸움에 기록한 것은, 매우 활동적이었기 때문이다.
秦伯問於士鞅曰: 晉大夫其誰先亡.
진나라 임금이 사앙에게 묻기를, '진나라 대부 중에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 하자
對曰: 其鸞氏乎.
대답하기를, '그것은 난씨일 것입니다'고 했다.
秦伯曰: 以其汏乎.
진나라 임금이 또 묻기를, '그가 사치하기 때문인가?'고 묻자,
對曰: 然. 欒黶汰虐已甚, 猶可以免, 其在盈乎.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그러나 난염은 사치스럽고 잔학함이 이에 심하나, 그래도 죽음은 면할 수 있을 것이고, 일찍 죽을 자는 그의 아들 난영일 것입니다'고 하니,
秦伯曰: 何故.
진나라 임금이 다시 묻기를, '왜 그런가?' 하니,
對曰: 武子之德在民, 如周人之思召公焉, 愛其甘棠, 況其子乎.
대답하기를, '무자의 공덕이 아직도 백성들간에 남아 있어서, 마치 주나라 사람들이 소공을 생각하여, 소공이 앉았던 감당나무를 사랑하는 것과 같으니, 하물며 그의 아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欒黶死, 盈之善未能及人, 武子所施沒矣.
만약 난염이 죽으면 난영의 좋은 점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고, 무자가 베풀었던 덕도 없어져 버립니다.
而鸞之怨實章, 將於是乎在.
그렇게 되면 난염이 뿌려 놓은 원한이 점점 드러나니, 그때에는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秦伯以爲知言, 爲之請於晉而復之.
진나라 임금은 그 말을 매우 옳다고 여겨, 그를 위하여 진나라에 요청하여 돌아가게 했다.
○ 衛獻公戒孫文子, 寗惠子食, 皆服而朝, 日旰不召.
위나라 헌공이 손문자와 영혜자와 식사를 같이 할 것을 약속했으므로, 두 사람은 예복을 입고 조정으로 나갔으나, 해가 저물어도 부르지 않았다.
而射鴻於囿. 二子從之, 不釋皮冠而與之言. 二子怒.
그때 헌공은 왕의 동산에서 기러기를 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쫓아가니, 헌공은 가죽 모자를 벗지도 않고 그들에게 다른 말을 했다. 두 사람은 성을 냈다.
孫文子如戚, 孫蒯入使, 公飮之酒, 使大師歌巧言之卒章.
그래서 손문자는 척이란 곳으로 가고, 아들인 손괴가 사신으로 조정에 들어가자, 헌공은 그에게 술을 먹이고, 태사로 하여금 '교언'이란 노래의 끝 장을 부르게 했다.
大師辭, 師曹請爲之.
그러나 태사가 사양하니 사조가 자청하여 그 노래를 불렀다.
初公有嬖妾, 使師曹誨之琴, 師曹鞭之.
처음에 헌공에게는 애첩이 있어, 조로 하여금 그녀에게 거문고를 가르치게 했었는데, 사 사조가 그녀를 한번 때린 일이 있었다.
公怒, 鞭師曹三百.
그러자 헌공은 성을 내고 사조를 3백 대나 때렸다.
故師曹欲歌之, 以怒孫子, 以報公.
그러므로 사조는 이 노래를 불러 손문자를 성내게 함으로써, 헌공에게 보복하게 하려 했다.
公使歌之, 遂誦之, 蒯懼, 告文子.
헌공이 그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자, 드디어 노래를 부르니 손괴는 두려워하여 아버지 손문장에게 고했다.
文子曰: 君忌我矣, 弗先必死.
손문자는 말하기를, '임금이 나를 꺼리니 내가 선수를 쓰지 않으면, 반드시 죽음을 당하리라' 하고서,
幷帑於戚而入, 見蘧伯玉曰: 君之暴虐, 子所知也. 將若之何.
가족들을 척 지방으로 보내고 들어와, 거백옥을 만나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난폴한 것은 당신도 알고 있는 바입니다.
大懼社稷之傾覆(대구사직지경복) :
그러나 나라가 망할 것이 크게 두려우니, 장차 어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對曰: 君制其國, 臣敢奸之. 雖奸之, 庸知愈乎.
거백옥이 대답하기를, '임금이 나라를 통제하니 신하가 감히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거슬린다고 해도 어찌 더 나아질지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遂行, 從近關出.
이에 손문자는 달아나 가장 가까운 국경 관문을 나아갔다.
公使子蟜子伯, 子皮與孫子盟于丘宮, 孫子皆殺之.
헌공은 곧 자교, 자백, 자피로 하여금 손문자와 더물어 구궁에서 동맹을 맺게 했으나, 손문자는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四月己未, 子展奔齊, 公如鄄, 使子行請於孫子, 孫子又殺之.
4월 을미일에, 자전은 제나라로 도망가고, 헌공은 전 지방으로 도망가서 자행을 손문자에게 보내니, 손문자는 역시 그도 죽여 버렸다.
公出奔齊, 孫氏追之, 敗公徒于河澤, 鄄人執之.
헌공이 제나라로 달아나자, 손문자는 그를 추격하여 헌공의 무리들을 하택에서 패배시키니, 전 지방 사람들이 그 헌공의 무리들을 사로잡았다.
初尹公佗學射於庾公差, 庾公差學射於公孫丁.
처음에 유공타는 유공정에게서 활쏘기를 배웠고, 유공차는 곳손성에게서 활쏘기를 배웠었다.
二子追公, 公孫丁御公.
유공타와 유공차 두 사람은, 손문자를 위해서 헌공을 쫓아가는데 이때 공손정은 헌공을 위하여 마부가 되었다.
子魚曰: 射爲背師, 不射爲戮, 射爲禮乎. 射兩軥而還.
자어가 말하기를, '쏘자니 스승을 배반하게 되고, 안 쏘면 죽음을 당하게 되니, 활쏘기에서 예법을 행합시다'라고 하고, 멍에다 화살 두 대를 쏘고 돌아왔다.
尹公佗曰: 子爲師, 我則遠矣. 乃反之.
이때 윤공타는 말하기를, '당신에게는 스승이 되지만 나하고는 먼 관계이다' 하고, 곧 되돌아 추격했다.
公孫丁授公轡而射之, 貫臂.
공손정이 헌공에게 말고삐를 주고서 손수 화살을 꺼내 쏘아, 윤공타의 팔을 관통시켰다.
子鮮從公.
자선이 헌공을 따라갔다.
○ 及竟, 公使祝宗告亡, 且告無罪.
위나라 헌공이 국경지대에 이르자, 종묘에 도망가는 것과, 죄가 없다는 것을 고하게 했다.
定姜曰: 無神, 何告. 若有, 不可誣也.
그러자 헌공의 어머니 정강이 말하기를, '신이 없다면 무엇을 빌 것인가. 신이 있다면 속여서는 안된다.
有罪, 若何告無.
죄가 있으면서 어찌 없다고 고하는가.
舍大臣而與小臣謀, 一罪也.
대신들을 버려 두고 소인들과 일을 꾀한 것이 첫째 죄요.
先君有冢卿以爲師保, 而蔑之, 二罪也.
선군이 대신들을 스승으로 임명했는데, 그들을 멸시했으니 그것이 둘째 죄요.
余以巾櫛事先君, 而暴妾使余, 三罪也.
나는 선군을 뒷바라지 했는데, 나에게 난폭하게 굴고 나를 부렸으니, 그것이 셋째 죄다.
告亡而已, 無告無罪.
도망간 것만 고할 뿐이지, 죄가 없다고는 고할 수 없겠다'고 했다.
公使厚成叔弔于衛曰: 寡君使瘠, 聞君不撫社稷, 而越在他竟, 若之何不弔.
노나라 양공이 대부 후성숙으로 하여금 위나라로 가서 헌공을 위로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나라 임금님께서 이 척으로 하여금 임금님께서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와 계시니 어찌 위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以同盟之故, 使瘠敢私於執事曰; 有君不弔, 有臣不敏, 君不赦宥, 臣亦不帥職, 增淫發洩, 其若之何.
과거에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저로 하여금 여러 대부들에게 사사로이 말하게 하기를, '임금이 되어 사랑하지 않고, 신하가 되어 총민하지 못하고, 임금이 용서할 줄 모르고, 신하로서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국내의 어지러움이 국회까지 새어 나가니, 어떻게 할 작정이오'라고 했습니다.'
衛人使大叔儀對曰: 羣臣不佞, 得罪於寡君.
위나라 사람이 대숙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기를, '여러 신하들이 재주가 없어 임금에게 죄를 졌습니다.
寡君不以卽刑, 而悼棄之. 以爲君憂.
그러나 우리 임금님께서는 저희들을 처벌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마음 아파하시면서 멀리 떠나가셨습니다. 그래서 당신네 나라 임금에게도 근심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君不忘先君之好, 辱弔羣臣, 又重恤之, 敢拜君命之辱, 重拜大貺.
그런데 당신네 나라 임금께서는 선군의 때의 우호를 잊지 않으시고, 외람되이 저희 여러 신하들을 위로해 주시고, 또한 구휼해 주시니, 그 은혜에 감사하옵고 후한 선믈에 더욱 감사합니다'고 했다.
厚孫歸, 復命, 語臧武仲曰: 衛君其必歸乎. 有大叔儀以守, 有母弟鱄以出. 或撫其內, 或營其外, 能無歸乎.
후손이 돌아가 복명하고 장무중에게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은 반드시 돌아갈 것이오. 대숙의가 안에서 지키고, 동모제 전이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나라 안을 다스리고, 한 사람은 밖에서 경영하니, 돌아가지 못할 리가 있겠소'라고 했다.
齊人以郲寄衛侯, 及其復也, 以郲糧歸.
제나라 사람이 내 지방을 주어 위나라 헌공을 거처하게 하고, 돌아갈 때에는 이 내 지방에서 나는 양식도 전부 가져가게 했다.
右宰穀從而逃歸, 衛人將殺之.
우재 곡이 현공을 따라다니다가 도망하여 귀국하니, 위나라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다.
辭曰: 余不說初矣. 余狐裘而羔袖. 乃赦之.
그는 변명하기를, '나는 처음에 헌공을 따라갔으나 그를 좋아하지는 않았소. 부득이해서 좇아간 것이오. 나는 마치 여우가죽 옷에서 소매만 양가죽으로 된 격이오' 하니, 곧 용서해 주었다.
衛人立公孫剽, 孫林父, 寗殖相之, 以聽命於諸侯.
위나라 사람들이 공손표를 임금으로 세워 손임보와, 영식이 재상이 되어 제후들의 회합에 나아갔다.
衛侯在郲, 將紇如齊唁衛侯, 衛侯與之言虐.
그때 위나라 헌공은 내지방에 있었는데, 장흘이 제나라로 가서 위나라 헌공을 위안할 때, 위나라 헌공은 그와 말을 하는데 매우 잔학스러웠다.
退而告其人曰: 衛侯其不得入矣. 其言糞土也. 亡而不變, 何以復國.
그래서 장흘이 물러나와 곁의 사람에게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은 나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은 모두 썩은 흙과 같다. 해외로 도망다니면서도 예전의 생각을 고치지 못하니, 어떻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고 했다.
子展子鮮聞之, 見臧紇, 與之言道.
자전과 자선이 이 소식을 듣고 장흘을 만나, 같이 이야기해 보니 그들의 한 말이 이치에 맞았다.
臧孫說, 謂其人曰: 衛君必入. 夫二子者, 或輓之, 或推之, 欲無入得乎.
장손이 매우 기뻐하여 그들을 따라온 사람에게 말하기를, '위나라 임금은 반드시 돌아갈 것이오.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끌고 한 사람은 밀며, 이미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 師歸自伐秦, 晉侯舍新軍, 禮也.
진나라 군대가 진나라를 정벌하고 돌아가자, 진나라 도공이 신군을 없애니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成國不過半天子之軍. 周爲六軍, 諸侯之大者, 三軍可也.
큰 나라도 천자의 군대의 반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어 있다. 곧 주나라가 육군이니, 제후 중에 큰 나라라야 삼군이면 된다.
於是知朔生盈而死, 盈生六年而武子卒.
이때 지삭이 아들 지영을 낳고 죽었는데, 지영이 생한 지 6년만에 조부인 무자가 죽었다.
彘裘亦幼. 皆未可立也.
또 사방의 아들 체구도 어렸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경으로 임명할 수가 없었다.
新軍無帥, 故舍之.
그래서 신군에는 통솔할 책임자가 없으므로 없애 버린 것이다
○ 師曠侍於晉侯, 晉侯曰: 衛人出其君, 不亦甚乎.
진나라의 악사 사광이 진나라 도공 곁에 있었는데 도공이 물었다. '위나라 사람들이 그의 임금을 내 쫓았으니, 이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對曰: 或者其君實甚. 良君將賞善而刑淫.
사광은 이렇게 대답했다. '혹 그 임금이 너무 심하기도 합니다. 훌륭한 임금은 착한 사람을 상주고 옳지 못한 자를 벌주는 것입니다.
養民如子, 蓋之如天, 容之如地.
백성들 기르기를 자식같이 하고, 백성들을 덮어 주기를 하늘같이 하며, 백성을 받아들이기를 땅과 같이 합니다.
民奉其君, 愛之如父母, 仰之如日月, 敬之如神明, 畏之如雷霆, 其可出乎.
그리고 백성은 그 임금을 받들되, 부모같이 사랑하고, 일월같이 우러르며, 신명같이 공경하고, 우레같이 두려워하면, 이런 임금이 내쫓길 수가 있겠습니까?
夫君, 神之主而民之望也.
대저 임금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주인이요, 백성들의 소망입니다.
若困民之主, 匱神乏祀, 百姓絶望, 社稷無主, 將安用之. 弗去何爲.
그러니 만약 백성의 생활을 괴롭히는 임금, 신을 없애고 제사를 안 지내며 백성들이 절망하고 나라에 주인이 없는 격이 되면 그런 임금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내쫓지 않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天生民而立之君, 使司牧之, 勿使失性.
하늘은 백성을 낳고 임금을 세워 백성들을 지도하여, 그들의 천성을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有君而爲之貳, 使師保之, 勿使過度.
또 임금이 있으면 거기에 보좌역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임금을 도와 정상적인 법도를 넘기지 못하게 한다.
是故天子有公, 諸侯有卿, 卿置側室, 大夫有貳宗, 士有朋友, 庶人工商皁隸牧圉, 皆有親暱, 以相輔佐也.
그러므로 천자에게는 공이 있고, 제후에게는 경이 있으며, 경에게는 아전이 있으며, 대부에게는 비서가 있으며, 사에게는 벗이 있고, 서민, 공인, 상인, 조, 예, 목, 축인에게는 친한 자가 있어 돕는 법입니다.
善則賞之, 過則匡之, 患則救之, 失則革之.
그리하여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바로 잡으며, 우환이 있으면 구제하고, 어기면 고칩니다.
自王以下各有父兄子弟, 以補察其政.
그리하여 왕이 이하 누구에게나 부형과 자제가 있어, 그 정치를 보완하고 살핍니다.
史爲書, 瞽爲詩, 工誦箴諫, 大夫規誨, 士傳言, 庶人謗, 商旅于市, 百工獻藝.
그러므로 사관은 기록을 하고, 맹인은 시를 편찬하며, 악공은 잠언과 간언을 노래 부르고, 대부는 임금을 일깨우며, 사는 의견을 전달하고, 서민은 비판하며, 상인은 시장에서 떠들어 대고, 모든 공인들은 온갖 기술을 발휘합니다.
故夏書曰: 遒人以木鐸徇於路.
그러므로 '하서'에서도, '관인이 목탁을 치면서 길로 돌아 다닌다'고 했습니다.
官師相規, 工執藝事以諫.
관원은 서로 경계하고, 공인은 그의 기능을 다하여 간합니다.
正月孟春, 於是乎有之, 諫失常也.
정월 맹춘에 이런 날이 있어 정상을 잃은 것에 대하여 마음대로 간합니다.
天之愛民甚矣. 豈其使一人肆於民上, 以從其淫, 而棄天地之性. 必不然矣.
이렇게 하늘이 백성을 사랑함이 깊습니다. 그러니 어찌 한 사람이 백성들 위에서, 멋대로 굴면서 나쁜 짓을 하여 천지의 성질을 버리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반드시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고 했다.
○ 秋楚子爲庸浦之役故, 子囊師于棠, 以伐吳.
가을에 초나라 임금은 용포의 싸움을 보복하기 위하여, 자낭으로 하여금 당 지방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오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吳人不出而還. 子囊殿, 以吳爲不能而弗儆.
그러나 오나라 사람들이 감히 나타나지 않으므로 초나라 군대는 곧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때 자낭이 맨뒤의 부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오나라가 추격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해 경계하지 않았다.
吳人自皐舟之隘要而擊之, 楚人不能相救.
그런데 오나라 군대가 고주라는 험한 곳으로부터 나타나 초나라 군대를 맞아 공격하니, 초나라 군대는 앞뒤가 서로 구제할 수 없었다.
吳人敗之, 獲楚公子宜穀.
오나라 군사는 초나라 군대를 패배시키고 초나라 공자 의곡을 생포했다.
○ 王使劉定公賜齊侯命曰: 昔伯舅大公右我先王, 股肱周室, 師保萬民, 世胙大師, 以表東海.
주나라 천자가 유정공으로 하여금 제나라 영공에게 명령을 내리게 했는데 그 말에, '옛날 제나라 시조 태공망이 우리 선왕을 도와, 주나라 왕실의 팔과 다리가 되어, 만인을 보호함으로부터 대대로 천자의 스승의 직책을 이어받아, 제후의 대표로서 동해를 다스려 왔다.
王室之不壞, 繄伯舅是賴.
그리하여 주나라 왕실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완전히 제나라 덕택이다.
今余命女環, 玆率舅氏之典, 纂乃祖考, 無忝乃舊.
지금 내 그대 환에게 명하노니, 대대로 제나라 시조의 모범을 지키고, 조부의 업적을 계승하여, 옛 공로를 잃지 말라.
敬之哉, 無廢朕命.
잘 공경하여 짐의 명령을 어기지 말지어다'고 하였다.
○ 晉侯問衛故於中行獻子, 對曰: 不如因而定之. 衛有君矣.
진나라 도공이 위나라 사건에 관하여 중행헌자에게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이 정도에서 수습하는 거산 같지 못합니다. 위나라에는 임금이 들어섰습니다.
伐之, 未可以得志, 而勤諸侯.
정벌하려하면 뜻을 달성하지도 못하고, 제후들만 괴롭히게 됩니다.
史佚有言曰: 因重而撫之.
옛날의 현인 사일이 말하기를, '정중하게 행동하여 어루만지라'고 했으며,
仲虺有言曰: 亡者侮之, 亂者取之, 推亡固存, 國之道也.
또 탕왕 때의 재상 중훼도 말하기를, '망하는 자는 업신여기고, 어지러운 자를 빼앗으며, 멸망하는 나라를 무너뜨리고 존속하는 국가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나라의 길이다'고 했습니다.
君其定衛以待時乎.
그러니 임금님께서는 위나라를 안정시켜 주면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고 했다.
冬會于戚, 謀定衛也.
겨울에 척에서 회합한 것은, 위나라의 안정을 도마하기 위해서였다.
○ 范宣子假羽毛於齊而弗歸. 齊人始貳.
범선자가 새날개로 만든 기를 제나라로부터 빌려갔다가 돌여보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제나라 사람이 두 마음을 품게 되었다.
楚子囊還自伐吳卒. 將死, 遺言謂子庚, 必城郢.
초나라 자낭이 오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와 죽었다. 그가 죽을 때 자경에게 유언하기를, '반드시 영에다 성을 쌓으라'고 했다.
君子謂, 子囊忠. 君薨, 不忘增其名, 將死, 不忘衛社稷, 可不謂忠乎. 忠民之望也.
군자가 말하기를, '자낭은 충성스러웠다. 초나라 임금이 죽자, 시호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고, 죽으려 할 때 국가의 안보를 잊지 않았으니, 충성되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충성은 백성들의 소망이다.
詩曰: 行歸于周, 萬民所望. 忠也.
그래서 '시경'에서도 말하기를, '덕행이 충신으로 돌아가니 만민이 바라는 바라'고 했다. 이것이 곧 충이다'고 하였다.
▶️ 狐(여우 호)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을 나타내는 瓜(과, 호)가 합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狐(호)는 ①여우(갯과의 포유류) ②여우털 옷 ③부엉이(올빼밋과의 새) ④의심(疑心)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암내로 겨드랑이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호취(狐臭), 여우와 삵으로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 즉 소인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호리(狐狸), 여우 귀신을 호귀(狐鬼), 궤의 밑바닥에 대는 말굽같이 생긴 쇳조각을 호번(狐蹯), 여색을 좋아하여 밝히는 일을 호수(狐綏), 여우의 굴을 호혈(狐穴), 여우의 넋을 호정(狐精), 여우의 겨드랑이 밑에 있는 흰 털로 만든 갖옷을 호구(狐裘), 여우를 잡기 위하여 치는 그물을 호망(狐網), 호기롭고 열쌤 또는 호탕하고 영매함을 호매(狐邁), 한쪽 불알이 아프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병을 호산(狐疝), 여우의 눈썹이라는 뜻으로 알씬거리어 아양을 떨고 아첨함을 호미(狐媚), 여우가 의심이 많다는 뜻으로 매사에 지나치게 의심함을 이르는 말을 호의(狐擬), 임금 곁에 있는 소인을 비유하는 말을 성호(城狐), 승냥이와 여우를 시호(豺狐), 늙은 여우를 노호(老狐), 흰 여우를 백호(白狐), 작은 새끼 여우를 소호(小狐),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이 있는 부분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호백구(狐白裘), 암내로 겨드랑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일컫는 말을 호조기(狐臊氣), 여우와 쥐새끼 같은 무리라는 뜻으로 간사하고 못된 무리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호서배(狐鼠輩),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를 일컫는 말을 구미호(九尾狐),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을 빌어 위세를 부림을 일컫는 말을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는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 있는 언덕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호사수구(狐死首丘), 여우의 죽음에 토끼가 운다는 뜻으로 동류의 불행을 슬퍼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호사토읍(狐死兔泣),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하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호의불결(狐疑不決), 여우는 수놈 두 마리가 함께 살지 않는다는 뜻으로 두 영웅이 병립할 수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호불이웅(狐不二雄), 위엄을 빌린 여우 곧 권력자에게 빌붙어 날뛰는 소인을 일컫는 말을 가위지호(假威之狐), 범의 탈을 쓴 여우 곧 권세를 부리는 간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가호지호(假虎之狐), 동호의 곧은 붓이란 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바르게 기록한다는 말을 동호직필(董狐直筆), 두 다리의 여우라는 뜻으로 마음이 음흉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양각야호(兩脚野狐), 여우하고 여우의 모피를 벗길 모의를 한다는 뜻으로 이해가 상충하는 사람하고 의논하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호모피(與狐謀皮) 등에 쓰인다.
▶️ 裘(갖옷 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옷의(衣=衤; 옷)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求(구)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裘(구)는 성(姓)의 하나로 ①갖옷(짐승의 털가죽으로 안을 댄 옷) ②갖옷을 입다, 따위의 뜻이다. 용례로는 갖옷과 베옷(겨울옷과 여름옷)뜻이 바뀌어 1년이라는 구갈(裘葛), 갖옷과 털옷 곧 검소한 옷을 구갈(裘褐), 의복과 거마 또는 부자를 달리 이르는 구마(裘馬), 가벼운 가죽옷을 경구(輕裘), 양가죽으로 만든 옷을 양구(羊裘), 의복과 갖옷을 의구(衣裘), 가죽으로 지은 옷을 피구(皮裘),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녹구(鹿裘), 담비의 모피(毛皮)로 만든 갖옷을 초구(貂裘), 여우의 겨드랑이 밑에 있는 흰 털로 만든 갖옷을 호구(狐裘), 여름의 서늘한 베옷과 겨울의 따뜻한 갖옷이란 뜻으로 곧 격에 맞음을 이르는 말을 하갈동구(夏葛冬裘), 가벼운 가죽옷과 살찐 말이라는 뜻으로 부귀영화를 형용해 이르는 말을 경구비마(輕裘肥馬), 자기 갑옷을 벗어 남에게 입힌다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풂을 이르는 말을 해구의지(解裘衣之), 여우의 겨드랑이 밑에 난 흰털을 모아 갖옷을 만든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한 가지 일을 성취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집액성구(集腋成裘), 한 벌의 갖옷과 한 벌의 베옷이라는 뜻으로 아주 가난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구일갈(一裘一葛), 혹한이 닥쳐오자 비로소 갖옷 즉 가죽옷을 구한다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일에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보태는 경우를 이르는 말을 대한색구(大寒索裘) 등에 쓰인다.
▶️ 羔(새끼 양 고)는 형성문자로 羙(고)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양 양(羊; 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照(조, 고)의 생략형(省略形)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羔(고)는 ①새 끼양(羊) ②흑양(黑羊)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린 양이나 염소와 양 또는 경대부의 행위가 결백하여 진퇴에 절도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양(羔羊), 염소와 기러기를 고안(羔雁), 염소의 털을 고모(羔毛), 염소의 수염을 고수(羔鬚), 새끼양의 가죽으로 만든 대부의 예복의 하나를 고구(羔裘), 노루의 새끼를 일컫는 말을 장고(獐羔), 설 같은 때에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 잔치를 차려 베풂을 일컫는 말을 팽양포고(烹羊炮羔), 시전 고양편에 문왕의 덕을 입은 남국 대부의 정직함을 칭찬하였으니 사람의 선악을 말한 것을 이르는 말을 시찬고양(詩讚羔羊) 등에 쓰인다.
▶️ 袖(소매 수)는 형성문자로 褎(수), 褏(수)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옷의변(衤=衣; 옷)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由(유, 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袖(수)는 ①소매(윗옷의 좌우에 있는 두 팔을 꿰는 부분) ②반소매 저고리 ③소매에 넣다 ④소매 속에 숨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통솔하고 지도하는 우두머리를 수령(袖領), 소매의 길이를 수장(袖長), 소매의 폭을 수장(袖樁), 소매 속에서 꺼내어 바친다는 뜻으로 자신이 직접 바침을 이르는 말을 수정(袖呈), 팔짱을 낌으로 어떤 일에 직접 나서지 않고 버려둠을 수수(袖手), 편지나 서류 따위를 몸소 가지고 가서 직접 전함을 수전(袖傳), 편지 따위를 가지고 가서 드림을 수납(袖納), 여럿 중의 우두머리를 영수(領袖),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단수(斷袖), 옛 군복의 붉은 소매를 홍수(紅袖), 폭이 너른 소매를 광수(廣袖), 폭이 좁은 소매를 착수(窄袖), 서로 소매가 맞닿았다는 뜻으로 교분이 아주 친밀함을 이르는 말을 교수(交袖), 손을 들어 소매를 안으로 여미면서 가슴에 대는 춤사위를 내수(內袖), 읍을 하는 예로서 소매를 들어 올림을 거수(擧袖), 저고리 소매 위에 덧씌우는 토시를 정수(淨袖), 짧은 소매를 단수(短袖), 양쪽 소매를 쌍수(雙袖), 춤추는 사람의 옷소매를 수수(舞袖),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말함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조건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는 말을 장수선무(長袖善舞), 서로 소매를 나누고 헤어짐이란 말로 곧 서로 이별함을 이르는 말을 분수상별(分袖相別)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