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의 전봇대
정윤서
섬과 섬 사이 세븐일레븐이 있고 소 한 마리가 온전히 걸어 들어가
앉아 있는 신선 설농탕집이 있고 섬과 섬 사이를 킁킁거리며 떠도는
떠돌이 개가 섬 한구석에 오줌을 갈기고 짐 자전거와 꼬마 오토바이
는 갸우뚱 그 꼬라지를 말없이 지켜보고
뒤룩뒤룩 살이 쪄야 하는 지상과제를 완수한 돼지가 저 시장 어귀
순대 집에 내장을 몽창 쏟아놓고는 갈빗집 주방에서 해체된 육신으
로 자빠져 있고 소란스런 오리들이 소란스런 주둥이를 버린 채 오리
구이 집에서 헛물을 켜고 있고 서리보다 더 무서운 왕소금에 백기투
항 해 버린 배추가 숨을 막 버리는 중이고 몸뚱이 털을 기계에 몽창
내어준 닭들이 기름에 튀겨지고 또 튀겨지는 삼식이 치킨집이 있고
세탁소 다림질하는 유리 창가에서 고요한 파문을 물고 비늘처럼 흩
어지는 물방울이 있고 섬과 섬 사이에 얽히고설킨 곳에 날아와 파수
꾼처럼 모가지를 훽가닥 훽가닥 돌리며 조잘대는 새들이 있고 골목
쓰레기 더미에 라이터 불을 붙이며 지나가는 취객이 있고 그 뒤를 따
라 서로 헛 주먹질하는 배 나온 중년의 사내들이 어기적 어기적 거리
다 쓰러져 버리고
자정이 되어서야 해사한 눈썹을 배시시 보이는 초승달 아래 쓰레
기봉투를 청소차에 집어 던지는 지친 어깨의 청소부가 있고 새벽녘
낯선 도시에 떨어져 반은 장님인 것처럼 모든 골목을 하악 하악 대
는 털 곧추선 고양이처럼 된장국 보글보글 끓고 있는 어느 반지하
창가에서 방문 삐걱거리는 소리 들으며 크르릉 크르릉 거리기도 해
보고
사실 무서운 것은 저 막다른 골목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
이고 골목을 따라 흘러갔다 흘러나온 젖은 사내들 검 은 웃음에 섬이
무너져 순식간 일대가 암흑의 바다로 변신하는 것이고 그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신경쇠약에 걸린 나만의 바다에 아무도 들일 수 없는
것이고 섬 그림자마저 무서워 차라리 사람 없는 곳이 마음 제일 편한
것이고 그럴수록 부스러기 껍데기만 휑하니 숙명처럼 자꾸만 자라는
것이고 결코 방파제 넘어 저 파도에 평생 닻을 내릴 수 없는 것이고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2월호 발표
정윤서 시인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2020년 《미네르바》 등단.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