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제 제안이) 국민들의 맹목적인
정치혐오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굉장
히 무서운 말인 것 같습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국민들이 무
조건 정치를 싫어하도록 안철수가 부추긴다는 말이지 않습
니까. (중략) 기존 정치에 실망하고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를 대중의 어리석음으로 폄훼한 겁니다.” 10월
26일, 진주 경상대 강연에서 한 안철수 후보의 말이다.
일주일 가깝게 계속된 ‘안철수 정치혁신 해법’ 논란에 대한
답이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의견이 강력
한 반대를 받을 것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빼고 나머지 논란은 다 반가웠다고 했다. 논란의 핵
심이 되었던 ‘국회의원 숫자’는 핵심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실제 국민의 목소리라고 했다. 덧붙여 그는 “왜 국민들이 차
라리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라고 하는지, 그 소리를 겸허하
게 받아들이면 논쟁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월 24일, 안철수 캠프 핵심 관계자를 만났다. 안 후보가
인하대 강연에서 ①국회의원 수 줄이기 ②국고보조금 줄이
기 ③중앙당 폐지 또는 축소 등의 정치혁신 방안을 언급한
다음날이다. 기자가 파악한 학계, 언론과 SNS 등의 여론과
이 관계자가 피부로 느끼는 ‘분위기’는 달랐다. “우리가 파
악한 국민들 반응은 기성 정치권에 ‘할 말은 했다’는 응원이
다. 두고 봐라. 학계나 언론에서는 비판적 분위기가 많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참여연대 안철수 비판의 의미
이날 낮,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논평을 냈다. 논평의 제
목은 ‘반(反)정치적 정치개혁 담론의 확산을 우려한다’였다.
논평에서는 문재인, 박근혜 후보의 정치개혁안을 두루 언급
했지만, 핵심은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한 시각이
다. 다시 말해 제목의 ’반정치적 정치개혁 담론’이란 안 후보
의 정치혁신안을 지칭하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안 후보가
말하는 국회의원 정원 축소는 의회정치 강화라는 시대적 요
구와 맞지 않으며, 기초의회 정당공천제 폐지도 선거를 통
해 유권자가 정당에 책임을 묻는 과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한편, 지방정치를 토호들의 리그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밝
혔다. 참여연대는 또 “정치혁신은 유권자의 정치혐오를 불
식하는 제대로 된 의회와 정당정치를 통해 가능하다”며 “기
성정당의 반성과 혁신 노력은 중요하지만, 빈대를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의 논평은 참여연대를 구성하는 하
나의 단위만의 의견으로 축소시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참
여연대를 구성하는 개별 섹터들이 내는 의견은 사무처의 초
안을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개별 섹터의 실행위원들이 회
람한 뒤 최종적으로 센터의 소장과 상임집행위원회, 사무처
의 결제를 거쳐 나온다. 황영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
사는 “논평의 형식으로 나갔지만, 토론 과정을 통해 기존에
합의되어온 담론에 기반한 것”이라며 “참여연대의 의견은
안 후보의 안에 대한 즉자적인 반박이 아니라 길게는 2004
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에 기초한 것”이라고 밝혔
다.
그런데 궁금한 점은 이것이다. 안 후보 측은 지난 9월 25일
“정치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을 정책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취지로 정치혁신포럼을 결성했다고 했다. 당시 발표자
료를 보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좌장격인 대표를
맡고, 고원 서울과기대 교수가 간사를 맡는 것으로 되어 있
다. 김호기 교수는 참여연대의 입장을 총괄하는 협동사무처
장을 맡았었다. 나중에 이 포럼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 김
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의정감시센터 소장
을 역임했다. 고원 교수는 현재도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이
다. 그런데 왜 안 후보의 정치혁신안은 과거 이들이 참여연
대에 있을 때와는 다른 결론을 담고 있을까.
“아침에 눈 뜨니 덜컥 겁이 났다. 큰 걱정을 하면서 나왔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정치혁신
포럼의 멤버는 아니다. 대신 정치혁신포럼이 매주 수요일,
대외 공개로 진행하는 행사의 세 번째 강연자로 안 후보 캠
프에 초대됐다. 10월 24일, 김 교수가 맡은 강의 제목은 ‘한
국 정당정치의 현주소와 새로운 방향’이었다. 그는 “현재 논
란이 되고 있는 안철수 후보의 강연 내용이 조금 왜곡돼 전
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는 그동안 정치혁신 문
제에 관해 대통령 및 각급 권력기관이 특권을 내려놔야 한
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른바 정치권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기혁신도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
는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 자신이 하는 일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의회정치가 망가지는 상황”이라며 “국회의원의
숫자를 줄인다고 해서 정당의 기능이 약화하는 것은 아니
며, 정말로 제대로 국회가 기능하려면 국회의원의 숫자는
줄이되 오히려 보좌관의 숫자는 늘리는 것이 맞는 게 아닌
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으로 안 캠프의 관련자
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을 통해 안이 나오게 되었는지
는 모른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안 후보가 제시한 안과 관련
해서 숫자가 이슈화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것이 바람
직하다고 보진 않으며, 그에 대한 책임은 안 캠프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일부 언론을 통해서 안 캠프 정치혁신포럼에서 있었던
‘잡음’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왔다. <주간경향>은 9월 25일
발표된 정치혁신포럼 참여 전문가 명단을 근거로 안 캠프
참여인사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참여인사들의 의견을 종
합해보면, 정치혁신포럼 개설 초기부터 이 문제는 뜨거운
이슈였다. 참여한 한 인사의 말. “정당정치를 전공한 한 교
수가 특히 내부에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논란은 평행선이
었다. 그 교수의 의견에 동조한 사람은 3명가량이었던 것으
로 기억한다. 한 시간 넘게 토론해도 결론이 나지 않자 그 문
제와 관련해서는 세부분과를 다시 만들어 논의를 하는 것으
로 이야기가 되었다.”
安 정치혁신안, 캠프 전문가 내부 논란?
이 인사가 기억하는 것에 따르면 구성된 분과는 행정개혁,
시민개혁, 의회정치개혁, 사회통합의 네 분과였다. 그런데
의회정치개혁 분과가 다시 문제였다. 분과에 참여한 교수들
이 모두 앞의 교수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특히 정당정치를
전공한 교수들의 반응이 완강했다.
정치혁신포럼에 참여한 교수들은 공식적으로 매주 금요일
저녁에 전체모임을 갖는다. 분과별 모임은 따로 갖는다. 10
월 23일 안 후보가 내놓은 ‘정치혁신안’은 정치혁신포럼이
정리해 실무진에게 전달한 내용의 일부다. 다른 참가자의
말에 따르면 포럼이 정리해 제출한 ‘안’은 모두 8개였다. 그
중 3개는 안 후보가 꺼내놓은 것이다. 이 8개의 안(案) 중에
는 ‘의원 정원 축소 반대’ 의견을 낸 전문가들의 의견은 포함
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포럼 운영의 난맥상이 드
러난 것이었을까.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10월 2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안 캠프에 참여한 분
들 중 학교에서 정당의 역할 확대를 가르치던 교수들이 입
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전문가는 10월 25일, 자
신의 페이스북에 곤혹스러운 심정을 담은 글을 올렸다가 비
공개로 돌렸다. 올렸던 글은 가르치던 제자로부터 메시지가
왔는데, ‘평상시에 듣던 교수 강의와 안 후보의 정치혁신안
이 같은 입장인지 혼란스럽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논란의 안 캠프 내부 인사들과 접촉해봤다. 주로 문제제기
를 했던 전문가는 두 사람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정치혁신
포럼에서 나와서 별도의 포럼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
적으로 정치혁신포럼에서 어떤 논의가 진행되었는지 모른
다”는 입장이었다. 이들이 준비하고 있는 포럼은 협치포럼
이다. 주로 정당체제, 선거권력구조 디자인, 시민사회와 정
치권 사이의 협치를 가능케 하는 제도에 대한 논의와 제안
을 목표로 하고 있는 포럼이다. 포럼의 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포럼을 주도하고 있는 한 인사는 “11월 초쯤 포럼
의 제안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거버넌스,
협치는 다시 정치혁신포럼이 포괄하고 있는 주제와 일부 겹
친다. ‘정치혁신포럼과 상반된 내용을 담은 제안을 하는 것
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인사는 “논의과정에 참여하
지 않았지만, 정치혁신포럼에서 그런 내용을 준비한다는 이
야기를 듣고 박선숙·송호창 선대본부장에게 해명을 요구했
는데, 그 과정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라며 “토론
과정에서는 의견이 갈리게 마련인데,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는 일이며 최종 판단은 역시 후보자 몫이 아니냐”고 덧붙
였다. 말하자면, 아직도 정치혁신포럼의 안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논란 지속될 듯… 안 후보의 선택은
10월 26일 진주 경상대 강연에서 안 후보의 발언만 놓고 보
면 안 후보는 기존에 내놓은 안을 철회할 뜻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비판 목소리를 쉽게 인정할 수도 없다. 만
약 기존 정치혁신안을 철회한다면 이번에는 “준비 부족으로
설익은 안을 내놨다”는 반대 바람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참
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조성대 한신대 국제
관계학부 교수는 “참여연대가 안 후보의 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논평을 냈지만 이견을 좁히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직 정식 공약이 나온 것은 아닌 만큼 시민사회
나 학계의 충고나 의견에 대해 언제든지 귀를 열고 들을 자
세가 되어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 표명하면 될 것으로 본
다”고 전망했다. 시민사회가 중재자가 되어 현재 문재인 캠
프나 안 캠프가 내놓고 있는 ‘정치혁신안’에 대한 토론을 조
직하고, 공동의 정치개혁안으로 다듬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
견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측이 과
연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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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일까
2012.10.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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