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징한 새벽을 위해
십일월 둘째 주말을 맞았다. 간밤은 퇴직 후 가끔 얼굴을 보는 두 친구와 명서시장 횟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횟집 상호가 ‘욕지도 사량도 횟집’인데 바깥양반은 사량도 출신이고 안주인 친정은 욕지도라 그렇게 붙였단다. 요즘은 어느 횟집에서나 양식 활어가 대세인데 그 횟집은 어떻게 구하는지 자연산만 고집해 요새는 개체수가 희귀해진 쥐치와 같은 생선회도 맛볼 수 있었다.
자리를 함께했던 꽃대감은 도청에서 퇴직한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학교 친구다. 다른 한 친구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단지와 거리가 제법 떨어진 향토사단이 옮겨간 터에 들어선 아파트에 산다. 이 친구는 이십여 년 전 근무지에서 동료로 만나 여태껏 친분이 두텁게 지내는 사이다. 꽃대감은 실내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로 건강을 다져가고 예전 동료는 문인화 화실에서 매화를 친다.
셋이 횟집 자리에서 일어나 꽃대감과는 차수를 변경해 집 근처 반송시장 상가의 스카이라운지에서 하현으로 기우는 달빛 아래 흑맥주를 들었다. 그때 내가 속한 문학회의 한 동인과도 합류해 밤이 이슥하도록 얘기꽃을 피우다 귀가가 늦었다. 날이 밝아오고 보니 숙취보다 더한 피로감이 엄습해 왔는데 요새 며칠 내가 산행이나 산책을 너무 강행군으로 다녀 몸에 무리가 오는 듯했다.
노후의 건강 관리 가운데 무릎 관절에 탈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함은 익히 들었다. 내가 산행을 나서면 특히 하산길을 조심조심 내려섬은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서다. 무릎이 시큰해지면 산행을 멈추고 안정을 취함이 우선이다. 여가가 나면 온천장을 찾아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최면 효과인지 시큰하던 무릎이 괜찮아졌다. 언제 부곡 온천으로 한 번 가 보리라.
본래 이번 주말 서북산 기슭으로 가서 지난번 잘라둔 헛개나무 가지를 도막 내어 챙겨올까 했는데 아침나절은 집에서 미적대고 보냈다. 전날의 산행과 텃밭의 일과를 일기로 남겨 놓고 이른 점심을 들었다. 이후 도심 거리로 가벼운 산책을 나서 도서관에서 책을 펼쳐볼까 싶었다. 비가 오면 도서관으로 향하려는 생각인데 늦은 오후에 강수가 예보되어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였다.
점심나절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니 높이 솟구쳐 자라는 메타스퀘어 가로수가 갈색으로 바뀌어 갔다. 벚나무를 비롯해 다른 활엽수들은 가을이 깊어지면 수액이 마르면서 단풍잎이 절로 물드는데 메타스퀘어는 무서리가 내려야 단풍이 물들었다. 도심에서는 서리가 내린 흔적은 볼 수 없으나 메타스퀘어의 새 깃털 같은 나뭇잎이 갈색으로 물들면 확연히 만추임을 실감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용지호수로 가니 호숫가 둘레는 단풍이 물든 활엽수에서 만추의 서정이 물씬 묻어났다. 일전에도 호숫가를 산책했는데 그때보다 가을이 더 깊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파트단지 뜰에서도 그랬지만 호숫가의 벚나무는 선홍빛 단풍잎이 이제 달랑 몇 장 밖에 남지 않았더랬다. 주말의 여가를 맞아 호숫가에는 남녀노소 전 연령층에서 나온 산책객들을 볼 수 있었다.
용지호수 산책로를 두 바퀴 걷고는 어울림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청에서 관리하는 거점 도서관 산하에 작은 어울림 도서관이 마을마다 흩어져 있어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했다. 퇴직 후 여가 활동에서 도서관이 차지하는 몫도 톡톡해 시골에서 산다면 감히 누려보지 못할 문화 혜택이었다. 찻집이나 술집에서 머무는 시간 이상으로 도서관에서도 소일함은 당연한 노후 생활이었다.
호숫가 산책로와 잔디밭엔 주말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더니만 작은 도서관에는 이용자가 한 명도 없어 사서 혼자 외로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열람대의 지방지를 펼쳐 지인이 쓴 칼럼에서 공감이 가 고개가 끄떡여졌다. 서가에 비치된 장서를 둘러보고 집에서 읽을 책 다섯 권을 골라 사서에게 대출을 신청했다. 한밤중에 잠을 깨도 정신은 명징하게 새벽을 맞으리라. 22.11.12
첫댓글 무릎 관절에 좋다는 콘드로이친
강행군 하시는데 꼭 챙겨 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