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다 졌다.
꽃 진 자리에 어린잎들이 올라온다.
올해의 슬픔은 다 끝났다.
열심히 살 일만 남았다.
가난은 빛이 모자란 것,
구두 밑창이 벌어지는 슬픔,
해질녘엔 실밥 묻은 옷을 입고
벚꽃 진 길을 걸었다.
살강의 접시들과 저녁밥 짓던 형수,
옛날의 소년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나는 잘못 살지 않았으나
저 어린잎만큼 후회가 많구나.
(하략)
-『동아일보/나민애의 詩가 깃든 삶』2024.06.07. -
‘벚꽃’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에게 제각기의 의미로 피어난다. 벚꽃 핀 길을 함께 걸었던 그 사람은 지금 당신 곁에 있을까.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려던 그 시절은 여전히 기억에 있을까. 벚꽃을 보면 조금 멈칫하게 되는 이유는 예뻐서만은 아니다. 꽃이 피면 10년 전, 20년 전의 시간이 함께 돌아온다. 그때의 나와 사람과 마음도 돌아온다. 어쩌면 나무에 달린 꽃송이의 수보다 꽃에 담긴 의미의 수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 시인에게 벚꽃은 무엇일까. 그는 벚꽃이 다 졌으니 ‘올해의 슬픔’이 끝났다고 말한다. 작년에도 ‘작년의 벚꽃’과 ‘작년의 슬픔’이 있었다는 말이다. 내년에도 그는 ‘내년의 슬픔’을 다시 슬퍼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벚꽃을 잃어가는 내내 슬펐다. 하나씩 떨어지는 벚꽃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슬펐을지 궁금하다. 짐작건대 거기에는 시인이 사랑했던 모든 것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꽃 하나에 꿈과, 꽃 하나에 청춘과, 꽃 하나에 기억이, 다시 말해 꽃 하나씩에 모든 그리운 것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왔다가 사라진 모든 소중한 것에 이 시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