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61장 (구 489장) / 데살로니가후서 3 : 1 - 9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6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3장 1절 – 9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오늘 본문의 시작을 보면 사도 바울이 먼저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를 부탁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이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 왕성해지고 그들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편만해 지기를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복음 증거로 인해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 회복의 역사들이 일어날 것을 소망하며 중보기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런 중보기도 부탁을 했던 것은 사도 바울의 복음전도 사역에 많은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전도 사역이 방해받지 않도록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을 위하여 중보 기도할 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바울 만을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그들까지도 지켜 보호하신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알았습니다.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이면서도 결국은 자신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중보 기도를 하면 함께 보호를 받으며 함께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숙한 중보기도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네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평범한 진리입니다. 첫 번째는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보람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네 번째로 사랑할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조건은, 누구나 할 일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있어야 거기에서 보람을 얻고 건강하게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이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아직도 건강하다는 증거요.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증명입니다. 이렇게 일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신성한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하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요. 일하지 않고도 사는 사람은 행복하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할 일을 주시고 또 일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정신세계를 신성시하고 물질적인 세계를 천대시 하는 이원론적 헬라 사상이,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스며들어 일하지 않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금욕과 고행이 거룩한 경건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다가 종말사상이 결부되니 일하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걸식 수도자들이 늘어가고 걸식 전도자들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장 다시 오신다고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자신의 생계를 남에게 의존하고,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일하기 싫거든 먹지 말라.” 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상대하지 말라. 또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교회에서 떠나게 하라.” 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제발 밥값을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먹는 사람은 밥맛이 없고 살맛이 없습니다. 삶의 즐거움이 없습니다. 가치와 창조가 없습니다. 양심이 바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사람은 은혜를 모릅니다.
일하고 먹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때 밥맛을 줍니다. 밥맛이 나야 살맛이 나고 살맛이 나야 밥맛이 납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잠을 달게 잡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밥맛이 나고 잠을 달게 자므로 자연히 건강하게 됩니다. 일하는 사람은 육체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정신도 건강해집니다. 이처럼 일은 우리에게 밥맛을 주고, 단잠을 주고, 건강을 줍니다. 힘도 일해야 솟아납니다. 힘이 있어서 일하기보다 일해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은 즐겁게 해야 합니다. 즐겁게 일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행복을 주십니다. 일하고 돈을 먹으려고 하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일은 즐겁게 하고 즐거움을 창조해 가야 합니다. 억지로 하면 고통입니다. 일이란 즐겁게 하면 직업이 되고 억지로 하면 노동이 됩니다. 일을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은 피곤하고 괴로운 노동이요. 노동판에 나아가는 자는 하루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들고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일에서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도 즐겁게 하는 운동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죽기 살기로 목숨 걸고 하는 운동은 오히려 건강을 해롭게 합니다. 먹는 것도 즐겁게 먹고, 생각도 즐겁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때 삶이 행복해 집니다. 여러분! 날마다 행복하십시오. 즐거운 생각을 하며 사십시오. 아무도 원망하지 말고 불행하다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하나의 믿음으로 즐거워하세요. 내 눈에서 눈물이 솟아날 때까지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세요. 하루하루 숨을 쉬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세요.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늘 양식도 먹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하늘 양식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 나 예수를 믿는 것이라.” - 우리의 영적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하늘 양식, 곧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양식,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일하고 보람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는 은혜를 먹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고 있으며 하늘 양식을 먹는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시는 일의 가치가 있어야 하고 그 일의 소명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기 하는 일에 대하여 긍지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최상의 긍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때, 그 일은 성직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에서 일하든, 직장에서 일하든, 그리고 교회에서 일하든 무슨 일이든지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듯 일을 하므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