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랄은 어떤 배경 하에 대규모 투자를 목말라했던 걸까요?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선 당시 러시아의 제철산업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랄은 처음에는 러시아의 제철산업을 선도하던 최고 선진 지역이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표트르 대제의 선택이었습니다. 우랄 산맥 인근은 강들이 많았죠. 풍부한 강은 동력을 얻는 데 유리했으며 내륙수운 덕후였던 러시아 종특 상 교통에도 아주 좋았습니다. 또한 배후의 거대한 숲은 제철소를 돌릴 연료를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지요.
또한 노동력 사정도 훌륭했습니다. 러시아에서 곶통 받던 농노들은 초원으로 흘러가 카자크가 되기도 하였지만 사실 이것도 15~16세기에나 통할 옛날 말이고, 대세는 동방의 새로운 개척지...는 아니고 유형지였지만, 아무튼 시베리아였죠. 19세기 중반 이전까지 이러한 동쪽지역들의 이미지는 정말 정말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사람들이었고, 저가의 노동력을 형성했습니다. 시장으로의 거리만 뺀다면 베버의 공업입지모델의 적격인 요소들이 다 들어갔다고 해야할까요~
러시아 핵심부의 철광석의 생산량이 슬슬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할 시점인 1699년, 표트르는 과감하게 우랄에 대규모 국가투자를 단행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철강 수요는 스웨덴으로부터의 수입으로 메꿔왔었는데, 표트르 대제가 집권기간의 상당수를 어디랑 전쟁하느라 보냈냐를 생각한다면 국산화는 필수불가결한 일이었죠.
1700년에 나르바 전투에서 코가 깨진 표트르는 우랄에 더욱 많은 투자를 단행합니다. 러시아의 포병이 개박살이 났기 때문이죠. 그리고 돈을 들이 붓고 들이 붓고 들이 부으니 성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1702년부터 1709년까지, 차르의 투자로 신설된 카멘스크 공방은 854문의 대포와 500톤의 군수품을 생산했고, 같은 기간 동안 네뱐스키 공방은 대포 생산을 위해 매년 260톤의 철강 생산을 주문 받았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결국 스웨덴을 탈탈 털어버렸고, 발트해로 나갈 출구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랄 제철산업의 확장은 이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752년부터 1762년까지 55개의 새로운 제철소가 새워졌고, 18세기 후반이 되면 우랄에는 176개의 제철소가 있게 됩니다. 우랄의 제철산업은 생산성과 이윤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매력적인 아이템이었습니다. 리즈시절에는 200%에 가까운 이윤이 보장되었으니까요. 공급이 대규모로 확대되었던 세기 말에도 우랄의 제철 기업인들은 가격담합을 통해 이윤율 60% 선을 유지했습니다. 표트르 시대 이후로 정부가 제공해주던 특혜를 통해 토지 보유권을 독점했고 공장에 소속된 농노나 다름 없는 노동력들 여전히 염가로 쓰고 있었습니다.
우랄은 그 천혜의 환경과 규모 덕택에 세계 제철 시장에서 그럭저럭 우위를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시장을 독점함은 물론이요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으로 변모하여 영국, 프랑스, 미국으로 실려나갔습니다. 1750년 러시아는 2만 2천톤의 철을 수출했고 47년 뒤에는 7만톤으로 늘었죠. 이 생산량은 동시대 영국보다 많은 수치였습니다.
그런 수준의 경영으로 뚫을 수 있는 안일한 시대가 아니다!
네덜란드를 꺾고 세계 무역 시장을 틀어쥐었던 영국의 경우 18세기 중반부터 제철산업이 아주 큰 곤경에 처해있었습니다. 바로 전국적으로 나무를 베어다 써서 잉글랜드의 숲이 고갈났던 것이죠. 영국은 캐나다, 러시아,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목재를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목재 빨아먹는 괴물이나 다름 없었죠. 그리고 점차 비용도 늘어갔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사회경제적 기반과 제도들은 이러한 고난도 뛰어넘게끔 하는 혁신을 자극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새로운 연료로 브리튼 섬에 풍부했던 석탄을 채굴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석탄은 초기에 그렇게 인기 있지 않았습니다. 일단 당시 연료 처리 기술이 떨어져서 석탄 사용시 유발되는 공해는 석탄의 인기를 떨어트리는 주요한 요소였습니다. 특히 연소과정은 불순물을 계속 만들어서 철의 품질을 떨어트릴 정도였습니다. 목재는 그에 비해 꽤 깔끔했죠. 그러나 19세기 초반 동안 계속 된 기술혁신을 통해 영국은 드디어 석탄 위주의 제철업으로 전환에 성공합니다.
우랄의 제철업도 이에 슬슬 반응해야 했습니다. 왜냐면 100년에 걸쳐 유지된 대형 제철업은 우랄이 아무리 넓은 배후지를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숲에 무리가 가게끔 만들었습니다. 목재가 점점 떨어졌고 목재 운송료는 늘어만 갔습니다. 그럭저럭 우랄에서도 증기기관과 같은 신형기술들을 채택하기 시작하였으나, 러시아의 후진성과 기업가들의 안일함은 혁신의 수용을 저해하는 방해요인으로 계속 작용했습니다. 나폴레옹을 꺾고 유럽 정치의 거인으로 떠오른 러시아는 더이상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산업투자를 들이부을만큼 진취적인 국가가 아니게 된 것이죠.
우랄 제철산업의 관리자들은 대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던 귀족들이어서, 경영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의 이윤은 러시아 귀족과 부르주아의 사치재 소비에 유용되었고 재투자는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혁신을 따라갈만한 기술자, 숙련된 노동력들은 당연히 갖추어져있지 않았고, 18세기에 만들어진 설비가 여전히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표트르처럼 직접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우랄의 제철업을 박살낸 것도 결국은 차르였습니다. 바로 차르 알렉산드르 2세였지요. 전쟁은 대개 사회로 하여금 큰 결심을 감수하게 만들죠. 안일한 시대를 벗어나고자 한 알렉산드르 2세는 중요한 개혁을 반포합니다. 바로 알래스카 판매...가 아니라 농노 해방이죠. 농노해방은 우랄 제철업에 큰 타격을 줬는데 이전과 같은 반 강제노동식의 저가 노동력 활용이 불가능해졌다는 점 때문이었죠. 특히 곡물가격이 올랐습니다. 물가 상승과 함께 오른 임금은 이윤을 엄청나게 깎아먹었습니다.
몇십년 전 예카테리나 대제를 괴롭혔던 푸가쵸프의 봉기 또한 이 지역에서 일어났었고, 지역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이런 움직임을 유발할 어떤 행동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었죠. 여하튼 이런 저런 이유로 농노해방 이후 생산비는 60~80% 정도 올라갑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랄을 족치기 위한 마지막 타격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것은 바로 러시아 정부의 새로운 산업화 계획이었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새로운 산업화 계획이 어째서 러시아 산업의 전통적 강호인 우랄을 족쳤던 것일까요?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투자지로 우랄이 철저하게 배제되었거든요 ㅠㅠ
국가경제 현대화를 총괄한 세르게이 비테 백작은 새로운 장소를 물색했는데, 그곳이 바로 작년부터 맨날 뉴스에 나왔던 동부 우크라이나였습니다. 이곳은 러시아 제국의 새로운 산업개발계획에서 "남부"로 지칭되었죠. 남부는 여러 장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돈 분지, 흔히들 돈바스라고 얘기하는 곳은 엄청난 석탄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의 대표적 탄전지대였으며, 크리보이로크(우크라이나어로 크리비리흐)는 철광석 또한 풍부했습니다. 수요 부족으로 발견된 지 20년이 지나도 개발을 안 하고 있던 이 지역은 비테 백작의 강력한 추진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됩니다.
비테는 계산기를 두드려봤습니다. 특히 이제 수송 루트로 각광받는 것은 더이상 내륙수로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철도망이었죠. 철도망 신설비, 중공업의 발전으로 같이 딸려 올라올 경공업과 농업 등등을 고려했을 때 우크라이나에 새로 산업단지를 개발하는 것이 우랄의 설비를 개량하고 재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본격적으로 밀도 있는 철도망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갖는 우랄의 가장 큰 취약점은 바로 석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랄에 재투자를 하고 신기술로 산업을 개발해주려고 해도 근처에 쓸 석탄이 없으면 도저히 투자를 진행시켜줄 수가 없었죠. 뭐... 어쨌든 러시아 경제가 팽창해서 우랄도 제철업이 성장은 합니다. 1800년부터 1880년까지 우랄의 선철 생산량은 두배 늘었습니다. 그러나 1880년부터 1900년까지 러시아 제국 전체의 선철생산량은 6배가 늘었습니다. 이를 상당부분 우크라이나가 기여했음을 말할 필요조차 없겠죠.
우크라이나는 게다가 외국 투자를 받기도 용이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기업인들은 어찌되었든 유럽이라고 우겨라고 볼 수도 있는 우크라이나에 투자하기를 더 선호했고, 정부도 정책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일단 기업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신용 대부를 적극적으로 자극했죠. 85년부터 95년까지 16개의 새로운 제철소가 건설되고, 당시로서 200년 전통의 우랄의 생산량을 초월하게 됩니다.
이제 우랄의 실무자들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계와 석탄의 우월함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설비는 우랄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생산성은 우크라이나가 압도적으로 높았죠. 효율이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우랄은 1900년에 우크라이나보다 네 배 많은 제철소 숫자를 자랑했지만 개별 제철소 당 생산성은 8배 낮았습니다. 우랄은 우크라이나보다 세 배 많은 노동자를 고용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우랄보다 60% 많은 생산량을 자랑했습니다. 새롭게 지어진 공장, 설비, 급증하는 투자, 기술적 우위 등등 우크라이나는 모든 것에서 우랄을 앞질렀습니다.
20세기로 들어오자 게임은 완전히 끝난 것 같았습니다. 1890년대 러시아 산업의 대팽창기에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실적을 냈으나 우랄은 신통치 못했죠. 결국 우랄은 쇠퇴 일로를 걷게 되었습니다. 제철소들이 폐업하기 시작했고, 노동력들은 우랄을 떠나갔습니다. 그야말로 우랄 제철산업의 종말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부의 기업가들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의 독점 상태를 즐겼습니다. 러시아 제국 전체의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자 하는 그들의 야망은 곧 실현될 것이었죠.
인기를 잃은 우랄 동지.. 아니 우랄의 기업가들은 이에 매우 분노했습니다. 우랄의 기업가들은 이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고, 결국 국가의 대규모 투자에서 그들이 소외되었다는 것이 패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재정보조와 대규모 투자, 발주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 이는 앞으로 우랄 지역의 지역 인사들이 골몰하게 될 핵심 테마로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정부는 관심 없었습니다.
부라... 아니 우랄에서는 계속 SOS를 날렸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제철산업이 전부 죽는다구요~!!" 그러나 의사양반은 매몰찼죠. 응급수술로 지혈만 가능할 정도로 손을 봐줬습니다. 우랄에 지급되는 보조금이라는 것은 산업을 부흥시킬 보조금이 아니라 폐업할 제철소에서 실업자 신세가 될 노동자들의 내부 소요를 달래줄 보조금이었습니다. 부라.. 아니 우랄의 제철산업이 고자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으니 지혈을 해서 목숨이라도 구하자...가 정부의 방침이었습니다.
국가 두마에서는 박살난 부... 허허 아니 우랄의 산업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두 가지 보고서가 올라옵니다. 하나는 오제로프의 보고서로, 더 이상 우랄을 러시아 제철산업의 핵심적 위치에 올려둘 필요가 없다는 요지의 보고서였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정착붐을 맞이하고 있었죠. 우랄의 목재 연료에 기반한 제철 산업은 이러한 움직임에 부응하여 철물 소비재를 공급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위치는 우크라이나가 점하게 두고, 우랄은 그저 거들면 될 뿐이죠.
문제는 러시아 농민들의 구매력이라는 게... 생산을 해도 좀 사줘야 생산이라는 걸 하지, 사줄 능력도 안 되는데 구태여 생산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죠. 우랄의 기업인들은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항변합니다. 향후 러시아 공업의 중추를 담당하며 거대한 기계와 기관차와 크고 아름다운 강철을 쭉쭉 뽑아내고 싶던 남자의 로망을 대놓고 드러낸 거죠.
"아니 우랄 너 왜 이래 다 알만한 사람이! 우리 다 통할 수 있는 처지 아냐?"
"뭐가 통합니까? 지금 당장, 쿠즈네츠크 탄전을 연결시켜 주세요!"
오제로프의 보고서와 함께 올라온 교통부 장관 미틴스키 보고서는 많이 다른 논지를 펴고 있었습니다. 정말 우랄하고 통할 수 있는 처지였던 거죠. 그는 남부의 독점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쟁이야말로 노오력 경제의 기본인 즉슨, 우랄을 목재 기반에서 석탄 기반으로 설비를 바꾸고 확대시켜서 소생시켜야한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습니다. 1909년은 당시 경제불황이 슬슬 끝나가던 시점이었고, 또 하나의 대규모 경제팽창과 투자가 있을 걸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미틴스키의 보고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완공과 맞물려 우랄에 늘어난 국내외 투자가들의 관심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랄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석탄 공급을, 시베리아의 쿠즈네츠크 탄전과 연결시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복안이었다는 거죠. 하지만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당시에는 너무나 빈약했습니다. 인프라도 새로 깔아야 했죠. 관심 있는 국내외 자본을 합친 합작회사가 등장하고 우랄에도 빛이 보이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랄에겐 정말 재수 없게도 이는 곧바로 좌절됩니다. 상하이 조..가 아닌 가브리엘 프린체프가 베오그라드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탕탕 해버렸기 때문이죠.
첫댓글 부라...흠흠 정말 흥미롭네요.
훌륭한 산맥 이름 아닙니까 히히
그토록 고대하시던 님을 만날 시간이군요
사회주의 지상락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삭제된 댓글 입니다.
14년에도 뭐...
@클박클박 근데 굳이 1년 단위로 나눌 필요 있나요?
@클박클박 브루실로프...
@클박클박 공부를 열심히 하시오!
@클박클박 근데 ㅋㅋㅋ 이거 진짜 헷갈리죠ㅋㅋ 저도 브루실로프&보로실로프에다가 당시에 읽던 책 등장인물들 보로미르(?) 보르코시건(?) 등등까지 기억에 막 섞여들어가서 몇 배로 헷갈렸던 기억이 나네요...
허니잼이네요 ㅋ_ㅋ
걸스데이의 부...라? 드립이 생각나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부... 산맥 드립이 흥하긴 하는군요 낄낄
좀더 창의적인 오...랄? 산맥은 어떤가요? ㅎㅎ
가이스터님의 신사력에 우랄을 탁치고 갑니다!
하하! 회원님의 연재물에 ㅂ우랄을 탁! 치고갑니다.
내용 얘기는 없고... 다들 김두한이랑 한패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요시!
이렇게 골골대던 우랄은 한 강철의 대원수를 만나게 되는거군요 ㄷㄷ
요시
아니 저 토야마 선생 짤은 또 어디서~
구글은 자비롭습니다
아니 근데 그 낙후한 시설들이 그럭저럭 20세기 초까지 명맥을 이었다는게 더 대단하네요. 광활한 러시아의 지리적 이격때문인건가...--
아마이한 경제경영의 현실이겠지요
흠...이글을 읽으니 우랄지역의 성장은 시작은 정치적요구로 시작했고 어느정도 경제적인부분도 성장을 거두었지만, 이후 세계의 변화와 자체적인 경쟁력하락등으로 인해 하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군요.
솔직히 우랄지역의 가장 큰 단점은 실제 수요지역과 생산지역의 거리가 아닌가 싶내요. 아무리 열차보급이니 저렴한 노동력이니 원자재니 해도 공간은 무슨 워프수준으로 접지않는이상 불변하는 거라...
나중에 미국의 서부개척처럼 러시아에도 동부개척이 활발하게 되면 정말 미국처럼 라스베이거스도 생기고, 실리콘벨리도 생길듯....광할한 미개발토지야 말로 우랄의 가장 큰 장점이죠.
성장가능성이 잠재되어있는건 좋은거죠.
그건 비단 우랄의 단점이 아니라 소련권 경제의 핵심적인 취약점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되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맙습니다! 진짜 재미가 30년대인 건 맞지만 20년대 트로츠키를 족치는 것도 아주 빅잼이니 앞으로도 계속 읽어주시길!
아닛 뭔가 기다리나요?!
?!?!
우랄을 탁 치고 가게 만드는 훌륭한 글입니다.
요시
ㅂ우랄을 탁 치고 갑니다
Ah! Thank you sir!
뭔가 드립을 써야 하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B우랄차게 B우랄한 B우랄이군요...
혼란하다 혼란해
살아나다가 전쟁행이라니 의사양반.. 여기가 어디요?
말 B우랄 같이 튼실하던 철강 산업이 개 B우랄 마냥 쪼그라 들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