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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 스님이 약 2년 동안 머물렀던 향각전. 스님은 1895년 이곳에서 첫 견성을 경험했다. 향각전은 불사중이며, 산신각 맞은 편엔 만공탑이 서있다.
| 절이 숲길 끝에 있는 걸까. 숲길이 절에 딸린 걸까. ‘산사’라고 부르는 웬만한 절에는 숲길이 놓여 있다. 숲 한쪽을 헐어낸 그 길은 어찌 보면 숲의 생채기다. 숲이 ‘내준 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산사로 가기 위해선 그 미안한 길을 걸어야 한다. 이 미안한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까. 미안한 마음으로 걷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으로 걷다보면 산사에 들게 된다. 결국 산사의 숲길을 걷는 일은 ‘입정(入定)’의 절차가 된다. 한 발 한 발 걷는 동안 산문 밖에서 흔들릴 대로 흔들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산문에 들라는 것 같다. 법문을 듣기 위해 마음을 청정하게 가라앉히는 것과 같이 산문에 드는 일 또한 법에 다가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사의 숲길이 단순한 길로서의 길만이 아님을 생각한다면 문장 앞에 걸어둔 ‘숲길이 아름다운 사찰’이란 문패는 어색한 문패다. 하지만 문자의 힘이 거기까지인 것도 어쩔 수 핑계라면 핑계일 것이기에 그 핑계로 ‘아름다운 숲길’을 선정했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봉수산 기슭에 숲길이 하나 놓여있다. 봉곡사로 가는 길이다. 봉곡사 주차장에서 봉곡사까지 약 700m 소나무 숲길이다. 2007년 정부에서 지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다. 숲을 이루고 있는 이곳의 소나무는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 밑동에는 한결같이 ‘V’자 모양의 흉터가 있는데 이는 일제가 패망직전에 연료로 쓸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낸 상처다. 숲길이 깊어가면 숲길은 발로만 걸을 수 없다. 눈으로 걷고, 코로 걷고, 귀로 걷고, 이마로 걷고, 두 팔로 걷고, 가슴으로 걸어야 한다. 절정의 빛깔로 서있는 7월의 노송들, 함께 돋은 초목들의 향기, 먼 숲에서 들려오는 산새소리,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 그리고 기다리고 있을 산사의 마당. 발로만 걸을 수 없는 일이다. 봉곡사 숲길은 봉수산 정상(2.3km)으로 가는 길과 연결된 등산 코스이기도 하다. 주말이면 숲길은 등산객들의 발길로 꽉 찬다. 700m 지점에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데, 그 길목에 봉곡사가 있다. 주지(자암) 스님이 객을 맞아준다. 7월의 태양이 절 마당을 달구고 있었지만 종무소로 쓰고 있는 법당에 들어서자 뜨거운 태양이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한다. 땀을 닦고 앉자 스님이 차 한 잔을 냈다. 뜨거운 차 한 잔이 시원했다. 법당 안에는 흰 나비 한 마리가 들어와 날고 있다. 부처님 손끝에도 앉았다가 스님 어깨 뒤로 날다가 어디로 갔는지 한참을 안 보이다가 어느 샌가 찻잔 위를 지나간다. 진한 차향이 날갯짓에 흩어지고 부처님 입가에도 차향이 걸린다. 주지 스님은 봉수산 숲길이 매체에 많이 소개된 덕분에 봉곡사도 유명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등산객이 늘었지 불자가 늘어난 것은 아니라며 웃음을 웃었다. 찻잔을 비운 스님이 밖으로 나와 도량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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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곡사 전경. 대웅전엔 총알이 뚫지 못했던 목불이 있다. | 도량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향각전, 종무소를 겸한 인법당, 산신각. 조촐하다. 도량의 전부다. 규모를 내세울 도량은 아니다. 하지만 봉곡사는 선지의 발자국이 머문 절이다. 주지 스님이 봉곡사를 이야기한다. 불사중인 향각전은 만공 선사가 처음 견성한 곳이다. 만공 스님이 천장암에서 스승 경허 스님을 모시고 있었다. 객이 경허 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럼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萬法歸一 一歸何處)” 당나라 때 조주 스님도 후학으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았다. 조주 스님은 “내가 청주에 있을 때 삼베 적삼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조주포삼ㆍ趙州布衫)”라고 답했다. 경허 스님의 답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때 만공 스님은 그 공안에 묶이기 된다. 스승에게 질문을 던진 그 객과 함께 같은 공안에 붙들린 것이다. 그 길로 만공 스님은 길을 떠난다. 발길이 가는대로 걸어 당도한 곳이 지금의 봉곡사다. 만공 스님은 스승도 없이 화두 위에 앉았고, 2년 만에 오도송을 읊는다. 1895년 7월 25일, 스님이 스물다섯 때의 일이다. 얼마 전까지 향각전은 고시생들이 고시준비를 하기 위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산신각 맞은편에 만공탑이 서있다.
봉곡사는 마곡사 말사로 887년(진성여왕 1)에 도선 국사가 석암이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도선 국사가 석암을 창건할 당시, 원래 도선 국사가 생각한 자리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보다 더 깊은 곳이었는데, 불사를 시작할 무렵 새 한 마리가 때때로 날아와 절터에 흩어진 나뭇가지들을 물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수일 동안 그 일이 반복되자 스님은 어느 날 새가 날아간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그 자리가 지금의 봉곡사 자리가 됐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도선 국사는 처음 생각했던 자리보다 지금의 자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1170년(고려 의종)에 보조국사가 중창했으며, 함허 화상이 중창했다. 당시는 암자만도 상암, 벽련암, 보조암, 태화암 등이 있었다. 조선 왕조 선조 때, 임진왜란을 겪으며 본전과 여섯 암자들이 전부 폐허가 되었다가 1647년(인조 24) 다시 중창했다. 그 후 1794년(정조18)에 궤한 화상이 중수하고 산의 모양이 봉황이 양 날개를 펼치고 나는 것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봉곡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891년(고종 7)에 서종 화상이 법당 및 요사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느 절과 마찬가지로 봉곡사 역시 전쟁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 하지만 6.25 한국전쟁 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봉곡사를 점거한 북한군의 지휘관은 주민들을 위협하기 위해 대웅전의 불상에 총을 쐈다. 그런데 총구를 떠난 총알이 불상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고 한다. 그 불상이 지금의 불상인데 놀랍게도 목불이다. 총알이 목불을 뚫지 못한 것이다. 놀란 북한군들이 절을 포기하고 떠났고, 봉곡사는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절 마당을 나서면 다시 길이 시작된다. 다시 오르는 길, 왔던 곳으로 내려가는 길. 어느 길이든 숲길은 미안한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 봉곡사에 가면 미안한 마음으로 걸어야 하는 천 년 숲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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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곡사 숲길. 주차장에서 봉곡사까지 약 700m 길이다. |
주변보기
<사찰>
▲세심사 /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
백제 때 창건하였으며 654년(신라 선덕여왕 14)에 자장율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은 없다. 처음엔 신심사(神心寺)였는데 1968년 일타 스님과 도견 스님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
▲인취사 /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84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인취사는 고려시대 창건한 사찰로 경내에 삼층석탑2기(석탑1기는 지방문화재 자료 235호), 극락전과 3존불상, 경내에서 수습된 기와 와편이 있다.
<가볼 만한 곳>
▲외암 민속마을 /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169-1
약 500년 전 조선 중기에 형성된 국가지정 문화재 마을로, 가가호호 주민이 살고 있고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이다. 반가의 고택과 5.3km에 달하는 나지막한 돌담길, 전통정원 등이 잘 보존되어 있고 배산임수의 풍수와 자연경관이 뛰어나 국내 최고의 민속마을로 꼽힌다. 특히 팜스테이 프로그램은 인기가 많으며 영웅시대, 야인시대,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등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맹씨행단 / 아산시 배방읍 중리 300
조선왕조 청백리 명재상 매사성이 살았던 집으로 고택과 사당, 정자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옛 살림집이다. 뜰 안에는 600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현충사 /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298-1
1706년(숙종)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기념관에는 국보 76호 난중일기, 보물 326호 장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도고온천 / 아산시 도고면 기곡리 일원
신라시대 학이 온천수로 다리를 치유했다는 ‘학다리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2009년 국가로부터 보양온천으로 지정되어 그 효능을 인정받았다. 온천수 워터파크와 온천탕, 콘도, 기타 숙박시설이 있다.
<숙박>
도고 글로리콘도/도고면 기곡리 17-10/041-541-7100
토비스콘도미니엄/도고면 기곡리 261-15/041-541-5432
도고로얄호텔/도고면 기곡리 174-13/041-543-5511
〈식당〉
-시골밥상/송악면 강당리/041-543-0414/시골밥상정식
-산과들묵집/송악면 역촌리/041-541-7762/묵밥, 보리밥
-흑두부집/송악면 강장리/041-544-2707/두부전골 |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