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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우(詭遇)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만나게 했다는 뜻으로, 올바른 방법에 의하지 않고 임기응변의 수단에 의하여 다른 사람의 뜻에 맞도록 하는 것 또는 올바른 길을 밟지 아니하고 세상에 영합되어 부귀를 얻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詭 : 속일 궤(言/6)
遇 : 만날 우(辶/9)
출전 :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下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만나게 했다는 뜻으로, 반칙으로 목표를 이룬다는 말이다. 그러나 절차 하자 있을 땐 결과는 무의미하다. 결과보다 중요한 절차의 공정성을 일컫는 말이다.
당신이 다음 상황이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겠는가?
어느 날, 작은 옷을 입은 덩치 큰 소년이, 몸에 비해 큰 옷을 입은 왜소한 소년을 보았다. 덩치 큰 소년은 작은 소년에게 옷을 빼앗아 바꿔 입었다. 그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페르시아 대왕 키루스가 소년기에 리더십 교육을 받을 때 스승에게 받았던 질문이다. 그는 "두 사람이 각자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게 모두에게 낫다"고 했다가 스승에게 채찍질을 당한다. 판결은 옷의 모양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옷을 빼앗아 바꿔 입은 행위는 정당한가"를 조사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법에 따르는 것이 옳고 법에 따르지 않는 것은 그르기 때문에 재판관은 항상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이 정의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에서)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강조는 중국 고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맹자(孟子) 등문공하(滕文公下) 편에는 공정성을 어기는 벼슬아치를 질타하는 우인(虞人; 마부 혹은 산장관리인) 왕량(王良)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궤우(詭遇)는 잘못된 수레(말) 몰기로 사냥감을 포획하듯 '옳지 못한 방법으로 부귀영화, 목표를 이룸'을 뜻한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조간자(趙簡子)라는 재상이 있었다. 조간자는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 폐해(嬖奚)에게 왕량(王良)이라는 유능한 마부를 소개해 주고는 둘이서 사냥을 하게 했다.
폐해는 기대에 부풀었다. 왕량이 사냥감 쪽으로 마차를 몰면 함께 타고 있던 폐해는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폐해는 크게 실망해서 조간자에게 돌아와서 보고했다. "정말 형편없는 마부였습니다."
이 말은 왕량에게 전해졌다. 왕량은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간곡히 부탁을 하자 폐해는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해 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아침나절에만 열 마리의 새를 잡았다. 폐해는 크게 기뻐하면서 보고했다. "정말 대단한 마부였습니다."
폐해의 말을 들은 조간자가 말했다. "그럼 앞으로 왕량과 같이 사냥하도록 해라."
뜻밖에 왕량은 조간자의 명령을 거부했다. "제가 처음에 법대로 말을 몰았더니 그 사람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만났을 땐 부정한 방법으로 사냥감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아침나절에 열 마리를 잡았지요. 시경(詩經)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부가 말 모는 법을 잃지 않으니, 사수가 화살을 쏘자 사냥감을 깨뜨리듯 명중하네.' 저는 소인배와 함께 마차를 타는 법을 익히지 못했습니다. 조간자님의 말씀에 따를 수 없습니다."
옛날엔 사냥을 하는데도 규칙이 있었다. 짐승의 정면을 향해 마차를 몰면 어떤 놈은 도망을 가고, 수레 옆으로 스쳐가기도 하며, 사냥꾼에게 달려들기도 한다. 이 때 활잡이는 대들거나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짐승에게만 활을 쏴야 한다. 마차가 짐승과 나란히 달릴 때는 되도록 대가리보다는 어깨를 쏘는 것을 권장했다고 한다.
이런 규칙을 정해 놓은 이유는 짐승의 무분별한 포획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냥할 때 역시 일상생활을 할 때처럼 예절을 지키라는 의미도 있다. 왕량은 제대로 쏘지 못하는 폐해를 위해 정석을 깨뜨리고 말을 몰았던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일처리를 한다'는 뜻의 '궤우(詭遇)'라는 성어는 이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맹자는 이에 빗대 "아무리 목표가 좋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굽혀서는 세상을 바르게 할 수 없다(枉尺直尋)"고 말한다.
산술 계산에선 8척(尺)을 펴기 위해 1척을 굽히면 7척의 이득이 발생한다. 인간사 결산은 그렇지 않다. 절차에 하자가 생기는 순간, 0이 된다. 절개를 잃는 순간, 졸개가 된다.
이상의 키루스 대왕, 맹자 모두 강조한 것은 '절차적 공정성'이다. 조직 차원에 '절차의 공정성' 개념을 도입한 레벤탈(Leventhal)은 그 여섯 요인으로 일관성, 편견 억제, 정확성, 수정 가능성(과정에서 잘못된 점은 즉시 수정), 대표성(모든 단계에서 구성원의 관심, 가치관이 반영돼야 함), 윤리성(분배 과정이 당사자의 개인적인 도덕 및 윤리 수준의 충족, 일치) 등을 지적한 바 있다.
최근 공정성은 시대정신을 대표한다. 정의가 흔들리는 것 못지않게 두려운 것은 '좋은 의도'란 이유만으로 숙의 과정 없이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가 독점되는 것이다. 이것도 요즘 유행하는 K를 갖다 붙이면 'K 공정성'일까.
◼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下
1. 자기를 굽신거리며 남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이는 없다(枉尺而直尋)
凡十章. 七章言出處之道, 二章言仁政, 一章言異端.
모두 10장이다. 7장은 출처의 도를 말했고, 2장은 인정(仁政)을 말했으며, 1장은 이단(異端)을 말했다.
陳代曰: 不見諸侯, 宜若小然. 今一見之, 大則以王, 小則以霸. 且志曰; 枉尺而直尋. 宜若可爲也.
진대가 "제후를 보지 않는 것은 마땅히 너무도 자잘한 예절을 지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 한 번 제후를 보면 크게는 왕도를 할 수 있고, 작게는 패도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기록에는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땅히 할 만한 것 같습니다"고 말씀드렸다.
王, 去聲.
○ 陳代, 孟子弟子也. 小, 謂小節也. 枉, 屈也, 直, 伸也.
진대(陳代)는 맹자의 제자다. 소(小)는 '작은 절개'를 말한다. 왕(枉)은 '굽힌다'는 뜻이고, 직(直)은 '편다'는 뜻이다.
八尺曰尋, 枉尺直尋, 猶屈己一見諸侯, 而可以致王霸, 所屈者小, 所伸者大也.
8척을 심(尋)이라 하니, 자기를 굽혀 한 번 제후를 보면 왕도나 패도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굽히는 것은 작고, 펴는 것은 큰 것 같다고 한 것이다.
孟子曰: 昔齊景公田, 招虞人以旌, 不至, 將殺之. 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
맹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옛적에 제경공이 사냥을 할 적에 동산 관리를 하는 우인(虞人)을 대부를 부르는 깃발로 불렀는데 그는 오지 않았기에 장차 죽이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공자께서는 우인을 '지사는 자신의 시체가 골짜기에 있게 될 지라도 잊지 않으며, 용사는 자신의 머리가 댕강 잘리더라도 잊지 않는다'며 칭찬하셨다. 공자께서는 어떤 것을 취해서 칭찬하신 걸까? 자신에게 맞는 예로 부르지 않으면 가지 않는 그 깡다구를 취한 것이니, 부르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간다면 어떻겠는가?
喪, 去聲.
○ 田, 獵也. 虞人, 守苑囿之吏也. 招大夫以旌, 招虞人以皮冠.
전(田)은 사냥이란 뜻이다. 우인(虞人)은 왕의 동산을 지키는 관리다. 대부는 정(旌)으로 부르고, 우인은 가죽으로 만든 관으로 불러야 한다.
元, 首也. 志士固窮, 常念死無棺槨, 棄溝壑而不恨.
원(元)은 머리라는 뜻이다. 지사는 곤궁하여 항상 죽음에 관곽이 없어 골짜기에 버려 지더라도 한스러워 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勇士輕生, 常念戰鬪而死, 喪其首而不顧也.
용사는 삶을 가벼이 여겨 항상 싸우다가 죽음에 그 머리를 잃더라도 돌아보지 않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此二句, 乃孔子歎美虞人之言.
이 두 구절은 공자가 우인을 감탄하여 한 말이다.
夫虞人招之不以其物, 尙守死而不往, 況君子豈可不待其招而自往見之邪.
우인은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닌 것으로 부르면 오히려 죽음을 지켜 가지 않았는데, 하물며 군자가 어찌 부를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가서 그를 볼 수 있겠는가?
此以上告之以不可往見之意.
이곳 다음 편부터는 가서 볼 수 없다는 뜻을 알린 것이다.
且夫枉尺而直尋者, 以利言也. 如以利, 則枉尋直尺而利, 亦可爲與.
또한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는 것은 이익으로 말한 것이다. 만약 이익으로 행동한다면 생각해보라. 여덟 자를 굽혀 한 자를 펴는 게 이익이라면 또한 하지 않겠는가?
夫, 音扶. 與, 平聲.
○ 此以下, 正其所稱枉尺直尋之非.
여기 이하는 '1자를 굽혀 8자를 편다'는 것의 잘못을 바로잡았다.
夫所謂枉小而所伸者大則爲之者, 計其利耳.
조금 굽혀서 펴지는 것이 크기 때문에 그것을 하라고 말한다면, 이익을 계산한 것일 뿐이다.
一有計利之心, 則雖枉多伸少而有利, 亦將爲之邪? 甚言其不可也.
하나라도 이익을 계산하는 마음이 있다면 비록 많이 굽혀 적게 펴지더라도 이익이 있다면 또한 장차 그것을 하겠는가? 깊이 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昔者趙簡子使王良與嬖奚乘, 終日而不獲一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賤工也.
옛적에 조간자가 마부인 왕량에게 총애하는 신하 해와 수레를 타도록 했는데, 하루종일 사냥을 했음에도 한 마리의 새도 잡질 못했다. 해가 '(왕량은) 천하의 기술 없는 마부입니다'고 보고 드렸다.
乘, 去聲. 彊, 上聲. 女, 音汝. 爲, 去聲. 舍, 上聲.
○ 趙簡子, 晉大夫趙鞅也. 王良, 善御者也.
조간자는 진나라 대부 조앙이다. 왕량은 솜씨 좋은 마부다.
嬖奚, 簡子幸臣.
폐해(嬖奚)란 조간자가 총애하는 신하다.
與之乘, 爲之御也.
여지승(與之乘)이란 그를 위해 수레를 몬다는 것이다.
或以告王良. 良曰: 請復之. 彊而後可, 一朝而獲十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良工也.
어떤 이가 왕량에게 그런 내용을 알려줬다. 그러자 왕량은 '다시 (해와) 탈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 말했고, (해가 거부를 하자) 강권한 이후에야 함께 탈 수 있게 되어 그땐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10마리의 새를 잡아버렸다. 해가 '천하의 좋은 솜씨를 가진 마부입니다'고 말했다.
復之, 再乘也.
부지(復之)는 다시 탔다는 뜻이다.
彊而後可, 嬖奚不肯, 彊之而後肯也.
강이후가(彊而後可)는 해가 왕량의 제안을 기뻐하지 않아, 강권(强勸)한 이후에 기꺼이 했다는 뜻이다.
一朝, 自晨至食時也.
일조(一朝)는 새벽부터 아침식사에 이를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簡子曰: 我使掌與女乘. 謂王良. 良不可, 曰: 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 爲之詭遇, 一朝而獲十.
이에 조간자는 "나는 왕량이 너와 같이 수레를 타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왕량에게 그걸 말했다. 왕량은 거부의 뜻을 밝히며 "제가 그를 위해 법대로 말을 모니, 종일토록 한 마디도 잡질 못했지만, 그를 위해 짐승이 이동하는 통로로 거짓으로 말을 몰아 짐승을 맞닥뜨리게 하니, 그제야 아침밥을 먹기 전에 10마리를 잡았습니다.
掌, 專主也. 範, 法度也.
장(掌)은 오롯이 주장하겠다는 뜻이다. 범(範)는 법도란 뜻이다.
詭遇, 不正而與禽遇也.
궤우(詭遇)는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만나게 했다는 뜻이다.
言奚不善射, 以法馳驅則不獲, 廢法詭遇而後中也.
해는 활쏘기를 잘하지 못하기에 법대로 수레를 몰면 잡질 못했고 법을 어기며 짐승을 속여 만나게 해줘야 잡았다는 말이다.
詩云: 不失其馳, 舍矢如破. 我不貫與小人乘, 請辭.
시경에 '말 모는 법을 잃지 않았는데, 사수가 활을 쏨에 적중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소인과 수레 타는 것을 익힌 적이 없으니,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고 말했다.
詩 小雅 車攻之篇.
시경의 소아 '거공'의 편이다.
言御者不失其馳驅之法, 而射者發矢皆中而力, 今嬖奚不能也.
마부가 그 모는 법을 잃지 않았는데 활 쏘는 이가 활을 쏨에 다 맞추고도 힘이 넘친다는 말이니, 지금의 해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貫, 習也.
관(貫)은 익힌다는 말이다.
御者且羞與射者比. 比而得禽獸, 雖若丘陵, 弗爲也. 如枉道而從彼, 何也. 且子過矣, 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
마부도 또한 활 쏘는 이에게 아부 떠는 걸 부끄러워하여 아부를 떨어 짐승을 잡은 게 구릉만큼 쌓일 정도로 많이 잡더라도 하지 않는다. (하물며) 도를 굽혀 저를 쫓음엔 오죽할까? 또한 자네의 잘못이로다. 자기를 굽히는 인간치고 남을 펼 수 있는 자는 있지 않다.
比, 必二反.
○ 比, 阿黨也. 若丘陵, 言多也.
비(比)는 아부한다는 말이다. 구릉 같다는 말은 많다는 말이다.
○ 或曰: 居今之世, 出處去就不必一一中節, 欲其一一中節, 則道不得行矣.
어떤 이가 말했다. "지금 세상에 살면서 출처와 거취가 반드시 하나하나 절개에 맞을 필요는 없으니 하나하나 절개에 맞추려 한다면, 도는 행해질 수 없을 것이다.
楊氏曰: 何其不自重也, 枉己其能直人乎.
양시(楊時)가 말했다. "어찌 자중하지 않고 자기를 굽혀 남을 펼 수 있겠는가?
古之人寧道之不行, 而不輕其去就.
옛 사람들은 차라리 도가 행해지지 못할지언정, 그 거취를 가벼이 하지 않았다.
是以孔孟雖在春秋戰國之時, 而進必以正, 以至終不得行而死也.
그렇기 때문에 공자와 맹자는 비록 춘추전국의 시기에 반드시 바르게 하여 나아갔고 마침내 행할 수 없어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使不恤其去就而可以行道, 孔孟當先爲之矣.
만약 그 거취를 생각하지 않고 도를 행할 수 있었다면, 공자와 맹자는 마땅히 먼저 그것을 했을 것이다.
孔孟豈不欲道之行哉.
공자와 맹자가 어찌 도의 실행을 하고자 하지 않았겠는가?"
◼ 정도(正道)와 왕도(枉道) 그리고...
옛날 중국에 왕량(王良)이라는 유명한 사냥꾼이 있었다. 어느 날 왕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신하와 함께 사냥을 나갔는데 하루 종일 새를 한 마리도 못잡자 그 신하는 돌아와서 "왕량은 천하에서 가장 무능한 사냥꾼입니다"고 왕에게 보고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량은 왕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를 청하였고 다시 사냥을 나간 왕량은 한 나절 만에 열 마리의 새를 잡았다. 그러자 그 신하는 이번에는 왕에게 왕량이 천하의 최고의 사냥꾼이라고 보고 하면서 왕량을 자신의 전속 사냥꾼으로 있게 해 달라는 간청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량은 "저는 처음 사냥을 나가서는 바른 방법인 정도(正道)로 사냥을 하였을 때는 하루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지만 다음 번 사냥에서는 속임수를 사용한 편법인 왕도(枉道)로는 한 나절만에 열 마리를 잡았지요. 저는 바른 방법으로 옆에서 모시면 한 마리도 못잡듯이 아무 일도 못하면서 잔머리를 굴리는 편법으로 모시면 열 마리의 사냥감을 잡아 유능한 것처럼 보이는 소인배같은 것이 싫어 함께 사냥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때로는 자신의 원칙과 바른 길을 버리고 세상의 상식과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유연성이 있다 하기도 하고 융통성이 있고 현명한 삶이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의 원칙을 저버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잔머리를 굴려가면서 편법을 쓰기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그 과정과 수단도 중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선인들은 세상을 바르게 사는 방법을 정도(正道)라 하고 바르지 않게 사는 방법을 왕도(枉道)라 하였다. 아무리 자신의 눈 앞에 이익이 있더라도 그 길이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아니라면 가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 공정성 / 존 롤스(John Rawls)
현대 사회의 정의의 원칙은 절차의 공정성에 있다
1950년대 이후 20여년 이상 효율성과 실효성이란 두 요소가 정치 영역을 지배하여 정치이론 및 철학이 그 유효성을 상실해가고 있을 때, 고대 그리스부터 내려오던 정치적 이상인 '정의'라는 개념을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명저 '정의론'에서 제시하며 현대 정치철학의 논쟁을 새롭게 되살린 철학자가 바로 롤스이다.
롤스는 "사상체계의 제1덕목이 진리이듯이 사회제도의 제1덕목은 정의"라고 주장했다. 하나의 사상체계가 아무리 앞뒤가 맞고 간결하고 명료하게 제시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한 것이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특히 강조했던 것은, 사회에는 모든 개인들에게 주어진 바꿀 수 없는 정치적 권리들이 있기 때문에 소수가 다수의 편협한 의사 때문에 혹은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강자의 권력 때문에 자신들의 권리를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롤스의 주장은 사회의 효율성을 강조하던 공리주의에 대한 반박으로, 사회적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명분 아래 개인의 권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범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롤스는 현대 사회에서 정의의 핵심적 내용은 '절차적 공정성'에 있다고 보았다. 한 사회 내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사회를 운영해 나갈 법과 제도를 합의한다고 할 때, 법과 제도의 정의는 그것이 정해지는 절차가 정의로운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롤스가 제시하는 단순절차정의라는 것을 보자. 하나의 파이를 나누려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이 파이를 가장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은 한 사람에게 파이를 나누게 한 다음, 파이를 나눈 사람이 맨 나중에 자신의 몫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파이를 나눈 사람이 합리적이라면, 자신이 맨 나중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몫을 최대한 크게 하는 방법이란 최대한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다. 이 방법은 파이를 나누는 절차가 결과의 공정성을 보장한다.
이런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롤스는 법과 제도의 토대가 되는 사회 운영원리를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원초적 상황'이라는 독특한 입법원리 마련의 과정을 제시한다. 여기서 입법원리 마련이란 헌법이나 법을 만드는 데 근거가 될 수 있는 개괄적인 원리를 합의해서 만든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 헌법이나 법이 이 원리를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의미이다.
원초적 상황에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특수한 정보 차단장치가 있어서, 이 상황에 참여한 참여자들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지위나 자신의 선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다. 이때 참여자들이 합리적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개선하기 위하여, 자신이 가장 위험에 처했을 경우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참여자들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결론적으로 정보를 차단하는 특수한 절차가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롤스의 주장은 자유주의의 공공선(公共善)이 '개인 선호의 총합'이라는 기존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원초적 상황에 놓인 개인들은 자신의 선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들은 오로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을 뿐이며, 그 합리적 추구의 결과는 사회적 안전망의 확보라는 실질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이처럼 롤스는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함으로써 대부분의 자유주의 이론이 포함하고 있는, 공공선(公共善)이란 단순히 개인이 자신의 선호에 따라 추구한 이익의 총합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자유주의적 공공선이란 개인적 이익이나 편견을 배제한 합리적 개인들의 정의로운 절차적 합의의 결과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런 논리는 한편 합리적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 추구에 집착한다는 자유주의 논리를 반박하여, 오히려 합리적인 개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정의를 추구한다는 새로운 합리성을 제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